딸아이가 스스로 게임 어플을 삭제했다. 몇번 게임 갖고 계속 다투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내버려뒀다. 삭제하고 다시 깔고 삭제하고 다시 까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어젯밤 나 이제 게임 안할거야, 다시 안 깔거야 해서 오! 멋져. 했다. 그리고 악몽을 꾼 딸아이. 우리 딸아이 잠꼬대는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커다란 목소리로 자기 할 말을 하는 건데. 잘 자다 말고 갑자기, "엄마는 죽으면 좋아?" 그래서 뭐라고? 죽으면 왜 좋아? 놀래서 말을 걸어보았다. "죽으면 안 좋지." 그랬더니 "게임에서도 죽으면 슬퍼. 아파." 하더니 울먹울먹거리다가 "몰라! 엄마 나빠!" 하더니 다시 고요한 얼굴로 잠을 자서 쟤가 나를 놀리려고 일부러 새벽 다섯시에 이러나 싶어 가만히 얼굴을 쓰다듬다가 우리는 너무 서로에게 몹쓸 짓을 하면서 서로를 사랑하는구나 깨달았다. 하지만 빠져들면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나는 그런 꼴을 결코 가만히 지켜보면서 그래, 기다려주자 할 수 있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휴화산이 활화산이 되는 데 필요한 건 고작해야 게임 한 시간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면 된다. 나도 중독에 취약한 인간이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그런 걸 수도 있고. 켄 로빈슨과 루 애로니카의 [학교혁명]을 읽었다. 좋은 내용이지만 글쓴이의 문장 실력이 별로라서 그런지 책 내용이 좀 어수선하다. 확 와닿는 지점들은 얼마 없었다. 기본 모토는 아주 마음에 들지만. 홈스쿨링을 하는 캘리포니아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고 홈스쿨링의 근본은 독학에 있는지라 아이들 개개인에 대한 믿음도 한몫 한다. 학교혁명에서 하는 근본적인 내용 역시 아이들을 좀 믿어주도록 하자, 아이들은 잠재가능성 100% 가지고 있는데 어른들이 그걸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학교 밖으로 거리로 자꾸 나가려고 한다는 것. 빈곤층 아이들이 대부분 불행한 인생길에 접어드는 요인, 배움과 학습, 공부에 흥미를 보이지 못한다는 것. 뛰어난 교장 선생님이 명령조는 안됩니다, 아이들은 미묘하게 캐치합니다 모든 걸. 할 때 으흠 했다.

성폭력 사건들 이야기를 엄마와 주고받다가 민이가 이제 처녀처럼 보여서 걱정이라면서 아이들이랑 노는 시간도 제한시키고 절대 어디 멀리 아이들끼리 나가지 못하게 하고 아이들끼리(남자아이들 포함) 있지 못하게 하라고 할 때는 그만 나도 폭발해서 엄마! 그럼 민이는 24시간 내 품 안에만 있어야 해. 그럼 아이가 누구를 만나서 친구를 사귀고 연애를 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 엄마랑 내가 계속 옆에 있어줄 수도 없는데. 그렇게 걱정이 심하면 유학은 또 어떻게 보내?! 하니까 엄마 이마에 핏줄 잠깐 불끈했다. 엄마의 과잉보호로 순간 숨이 막힐 거 같은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열폭하고 말았다. 프랑스에 있었을 때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은 시대인지라 SNS로 근황을 알릴 수도 없어서 매일 나나 동생이 엄마에게 전화를 한 번씩 하는 걸로 잘 지내고 있음을 알렸다. 나는 동생이, 동생은 내가 전화를 할 차례인 줄 알고 언제인가 깜박 전화를 하지 않았을 때 24시간이 지나서 엄마는 기숙사로 전화를 해왔고. 와 그때 숨막혀 죽는 줄 알았다. 엄마의 사랑이 국경을 넘어 피부로 느껴지니까 소름이 돋았다. 엄마와 전화선이 닿지 않는 저 머나먼 섬으로 도망치고싶은 마음 절반과 엄마 보고싶은 마음 절반이 합쳐져서 괴물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 모든 게 복합적으로 피부로 체감되어 열폭. 엄마가 우리 과잉보호해서 내가 우리 민이 과잉보호 하는거야 했다. 유학을 가거나 결혼을 하거나 어쨌거나 그 어느 곳에 있든 매일 엄마에게 전화는 해야 해. 안 그러면 엄마가 너무 불안해 하니까 민이는 오케이 하면서도 한숨을 내쉬었고 남편은 자기 병이야 라고 한마디 했다. 그렇다, 사랑은 병이다. 엄마에게 열폭한 게 미안해서 전화했다. 박여사는 쌔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살살 달래주며 제주도 여행갈 때 어디 어디 가고 싶어? 하니까 우리 박여사 금세 배시시 웃으며 음 엄마가 이모들이랑 친구들에게 물어볼게 제주도 어디 어디가 좋은지. 전화를 끊고난 후에도 역시, 사랑은 병이다. 믿음을 왜곡시키지 말도록 하자. 뒤틀린 사랑을 하지 말도록 하자. 기다려, 기다려, 믿음을 잃지 마, 믿어줘.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또 게임 어플을 오늘 깔려나, 깔게 해야 하나. 놓아주면서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그런 사랑이 어디 사랑일까 싶기도 하고 그런 사랑이 실로 존재한다면 나도 그런 사랑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데 그래서 아이를 들들 볶지 않으면 좋겠는데 기다리기만 하다가 게임 중독, 스마트폰 중독으로 치료 받아야 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책중독인 나는 일단 보부아르만 읽고 이 활자 중독을 어떻게 치유할지 방법을 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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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19 1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왜 그렇게 불안해 할까요?
저도 얼마전 막내한테 나는 왜 그렇게 불안해했을까? 하고 얘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대학생인데도 9시 넘어 안들어오고 있으면 수시로 소재를 파악해요ㅠㅠ^^

vita 2021-10-20 13:04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여성이니까 더 불안한 것도 있고 아무리 대한민국이 치안이 좋다고 해도 어딘가에서 범죄는 계속 일어나고 있고 그러니 불안해하지 않나 싶어요. 제가 엄마가 아닐 때는 엄마가 너무 불안해해서 그거 병이야 했는데 제가 엄마가 되고보니 그런 마음이 드네요 ^^;;; 유학 보내긴 틀렸지 싶습니다 아니면 따라가던가 ㅋㅋㅋㅋ

mini74 2021-10-19 1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엄마가 달달 볶을때 그 마음을 저도 몰랐었지요 . ㅠㅠ 제 친구가 그렇게 엄마속을 썩여서 그 어머님이 꼭 너같은 딸 낳아 개고생해봐라했는데 정말 친구랑 똑같은 딸을 낳았지요. 반전은 맞벌이라 그 어머님이 딸과 똑같은 손녈 키우고 계신다는 ㅎㅎㅎ

그레이스 2021-10-19 18:52   좋아요 2 | URL
ㅋㅋ

vita 2021-10-20 13:05   좋아요 2 | URL
저는 불량학생이었지만 딸아이는 모범생인지라 ㅋㅋㅋㅋㅋ 저도 그 소리 엄청 엄마에게 들었지만 반듯한 이미지의 딸아이를 두고보니 엄마는 신기하네 어떻게 내 딸에게서 모범생 손녀딸이 나왔지 하십니다 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10-19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독에 취약한 인간..이 아니라 전 중독자네요? 하하하하하! 그래도 스스로 지운 게 너무 기특합니다~~

vita 2021-10-20 13:06   좋아요 1 | URL
중독에 취약한지라 더 딸아이 힘든 거 아는데 그래도 저도 지웠다 다시 깔았다 지웠다 다시 깔았다 합니다. 저는 술만 좀 제대로 끊으면 좋겠어요 ㅋㅋㅋ 한번 마시면 취할 때까지 마시고 싶어서 문제예요 툐툐님 ㅠㅠ

2021-10-19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20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