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 시민 - 엄마를 위한 페미니즘 소설 선집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 시대의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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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에이드리언 리치가 시작했던 지점에 도착한 것일까? "아이들은 내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격렬한 고통을 안겨준다. 양가감정이라는 고통이다. 나는 쓰라린 분노와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 더없는 행복에 대한 감사와 애정 사이를 죽을 듯이 오간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일기에서 나타나듯 리치에게 양가감정은 분노와 애정이, 아이에 대한 거부와 아이에게로의 손 내밀기가 번갈아 발생하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충동은 마치 서로 단절되어 있고, 극복 불가능한 대립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작가로서의 자신을 긍정하고픈 엄마의 욕구와 엄마의 이타심에 대한 아이의 욕구(또는 아이에게 그러한 욕구가 있으리라는 엄마의 믿음)가 서로 대립하듯이 말이다. 라자르의 우화에도 이러한 분투가 어느 정도 나타나긴 하지만, 대립하는 요소 사이의 갈등이 아닌 조화의 가능성 또한 나타난다. 엄마가 검은 여인이고 검은 여인이 엄마라면, 둘 중 하나가 가진 에너지와 열망은 곧 다른 한쪽이 가진 에너지와 열망일 것이다. 엄마로서의 애정과 검은 여인의 자기표현 욕구는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도울 수 있다. (190)




오늘 같이 샤워하면서 나눈 이야기는 주로 공부였지만, 주체적으로 공부 의욕을 드러내보이고 눈을 반짝이는 모습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공부 못해도 괜찮아, 공부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야. 하니까 거짓말 하고 있어, 안 믿어 흥! 이사가면 내 책상과 책장 달라고,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자기 책상은 작업대로 쓰겠다고. 응 그래라 했다. 남편도 봐둔 책상 있어, 나 그거 사줘 해서 그러기로. 나 지금 쓰는 건 작업대로 할래. (아니 왜 이렇게 작업대를 갖겠다고 하는거야, 다들) 그럼 나는 책상을 또 사야겠다. 어쩔 수 없이 사는 거랍니다, 책상. 이번에는 기필코 어마무시 넓은 책상을 사도록 하겠다. 이등 시민을 다 읽고나니 책상이 떠올랐고 내 책상과 책장을 달라고 한 민이 말이 떠올랐다. 모이라 데이비가 엮은 소설집 [이등 시민]을 완독. 오랜만에 재독했는데 역시 뼈를 울리는 구절들. 지금은 얼추 안정됐지만 그 긴장감을 생각하면 다시 아이를 낳을 자신 없다. 물론 둘째 계획도 없지만. 언제더라 결혼 생활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였던 거 같다. 남동생과 아이스 커피를 한 잔씩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누나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타임머신을 타고 말야,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다시 결혼할 거야? 아니면 솔로로 자유롭게 인생을 살아갈 거야? 조건은 없는 거야? 하고 물어보니 당연히 있지. 민이가 있고 없고. 다시 돌아가도 역시 나는 결혼을 할 거다. 민이는 내 목숨이랑 맞바꿀 수 있는 단 하나, 하니까 다시 똑같은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다 해도? 당연하지. 이런 고통 따위 아무 것도 아닌걸 푸후후 웃고 말았다. 저울로 무게를 잴 수 없다. 자식이라는 건. 꿈과 미래, 특히나 읽고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앞으로 업으로 삼을 엄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봐도 결론은 매한가지다. 물론 에이드리언 리치와 같은 고통은 아이가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자기만의 인생을 살겠노라고 떨어져 나갈 때까지 이어지지만 (우리 엄마 보면 그것도 아닌듯).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해보았다. 나중에 딸아이가 엄마가 되어 엄마로서의 인생과 자신의 일 사이에서 갈등을 할 시간이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지만 이건 딸아이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기도 하다. 내 목숨 수천 만개와 맞바꾸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우리 아가다. 모성애라는 건 그렇게 수없는 씨실과 날실이 엮여 만들어진다. 애를 덤벙 낳았다고 해서 덤으로 거저 생기는 게 모성애가 아니다. 수많은 페이지를 넘기듯 싹트는 사랑이다. 엄마 마음이라는 건. 그토록 읽고 쓸 시간이 부족해서 허덕여도 나같이 천하의 게으름뱅이 엄마에 부족한 어미라 해도 결론은 단 하나다. 이게 그들이 말하는 피학적인 애정이라고 한다면 백날 밤낮으로 비웃어줄 수 있다.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소설들 안에서 드러나있는 엄마 존재는 갈등 사이 여기와 저기에 있는 모습 투명하게 보여준다. 쓰다가 망할지라도 놓을 수 없는 자리이다. 흥한다면 더 좋겠지만 빛 반대편 이름 없는 존재들도 존재는 존재니까 또 나는 응달에 있는 이들에게 끌리더라. 거짓말하고 있네 라고 민이가 이 글 읽으면 그러겠네 크크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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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10-03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학적인 애정이든 뭐든 아이에 대한 부모의 마음은 뭐라 하나로 이름붙이기 어렵죠. 아이 때문에 세상을 더 잘 보게 된다고 느낄 때도 많고, 아이때문에 내 삶이 너무 허덕인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고요.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이 아이로 인해서 나라는 인간이 좀 더 나아진다는게 맞는거 같아요.

vita 2021-10-03 22:18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말씀이 맞아요. 저는 더 밝고 긍정적인 쪽으로 바라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더라구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제가 부족하고 한없이 모자른 인간인지라 그런가 보다 다른 여자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데 하고 나만 약간 또라이인가 하고 유독 힘들어했는데 지나고보니 그건 또 아니었더라구요. 모성애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뭐 지금이라고 다른 엄마들처럼 잘해주나 싶으면 그것도 아닌 거 같아요. 그래도 자괴감은 더 이상 들지 않으니 살 거 같던데 아마도 아이랑 말이 통하고 서로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이해해주려는 마음가짐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결론은 역시 잘 낳았다 입니다 후후

2021-10-15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5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