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 시민 - 엄마를 위한 페미니즘 소설 선집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 시대의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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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라 데이비의 [이등 시민]을 재독중이다.

틸리 올슨의 [나는 다림질을 하며 여기 서 있다] 단편에서는 큰딸 이야기,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지점들 건드려졌다. 어리고 가난한 엄마가 큰딸을 어떻게 대하는지...... 스물한살 때였나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 눈빛이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보여서 무슨 일 있니? 하고 커피 한모금 입에 털어넣고 물어보았다. 주저하지 않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는데 눈이 마치 정신 나간 사람 같아서 무서웠다. 세상에는 정말 개새끼들이 많구나 그때 알았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이 새끼는 탑 오브 더 탑이구나. 그때 느낀 건 왜 이토록 재능 많고 똑똑한 사람이 남자의 사랑 따위 얻겠다고 스스로를 망치는건가 였다. 네 마음도 알겠지만 네 친구로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된다면 그 새끼는 개새끼인데 왜 그런 개새끼의 성노예가 되어 한평생 곁에 있고 싶어하는건가 물어보았다. 친구의 표현에 따르면 지긋지긋한 가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 였다. 그래도 그건 아닌 거 같아 하니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사는 공주님이 이 소녀의 마음을 어찌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둘이 잠깐 싸우다가 결혼하면 미국 갈 거야, 했는데 그 후로 그 개새끼랑 결혼했는지 미국 갔는지 알 수 없다. 잠수 타버려서. 틸리 올슨 읽는 동안 계속 그 친구 떠올랐다.

그레이스 페일리, [어린 시절의 문제] - 애인이 아이들하고 놀아주다가 다쳐서 낑낑거린다. 막말을 하는 애인에게 재떨이를 집어던지고 여자가 말한다.

"여자에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조용히 말했다. "재수 없는 멍청한 새끼. 그런 말은 여자한테 하는 게 아니라고. 세수나 해, 멍청한 자식아, 피 흘리다 죽겠네." (33)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건 무얼 뜻할까. 소외받고 소외받지 않고. 그 차이가 중요하지 않을까. 얼마 전에는 남편이랑 딸 둘이 장난치면서 막 좋아죽을 것처럼 노는 거 보고 난 죽어도 괜찮을 거 같아, 물론 죽을거야 이런 말은 아니지만 내가 갑자기 죽는다고 해도 둘이 사이 좋게 이렇게 지내면 별다른 걱정은 없을 거 같아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도 했다. 한 번도 아빠랑 저렇게 즐거운 시간을 단 둘이 보낸 적이 없어서 딸의 입장에서 바라본 광경이었다. 물론 새엄마 따위는 없어. 이 말도 덧붙였다. 부모가 이혼해서 엄마나 아빠와 같이 살고 있는 아이들 수는 생각보다 많다. 기사 읽다가 댓글 읽다가 발견한 건데 아이 데리고 그냥 혼자 살아요, 왜 또 재혼을 해서 그런 불행을 만들어요 종류의 댓글이 많았다. 여자들을 탓하는 경우만 보았다. 남자들 보고 왜 재혼을 해서 그런 불행을 만드나요 라는 댓글은 본 기억 없다. 가해자는 분명 엄마가 아닌데 마치 엄마가 가해자인 것처럼.

로젤린 브라운, [훌륭한 살림살이] - 사진을 위해서 일회성 학대가 저질러진 거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학대의 시작이라고 봐야 할까. 예술이 먼저일까, 인생이 먼저일까. 순서를 딱 다잡을 수 있을지. 엄마라고 한다면, 엄마에게 예술이 먼저일까 인생이 먼저일까 이 질문 끝없이 일어날 수 있는데 초짜에게서나 일어나는 일일 수도. 아빠보다는 엄마가 이런 갈등 더 많이 할 거 같다. 인생이 먼저일까 예술이 먼저일까. 그렇게 해서 수많은 예술가들은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가사 속에 집 속에서 투명 인간처럼 서서히 사라져가고.

부치 에메체타, [이등 시민] - 엄마로서 흑인으로서 더구나 여자로서 더구나 가난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와중에_ 목숨 걸고 출산했는데 파란 가운 하나 마음대로 입지 못하는 그 상황. 무능력한 남자 이야기, 함께 있는 다른 여인들과 자신을 끝없이 비교하면서. 아파트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동안 서로에게 잣대를 갖다대는 이 쓸모없는 활동에 지나친 에너지가 들어가 피곤했던 기억 났다. 누구는 30평대, 누구는 40평대, 누구는 50평대, 누구는 펜트하우스, 누구는 생활비를 200만원 받고 누구는 생활비를 300만원 받고 누구는 생활비를 1000만원 받고 왜 그런 이야기들이 가감없이 밑도는지. 책 읽는다고 공부한다고 다 모였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유한 마담들 사이에서도 등급이 확실히 나뉘는 거네! 나 홀로 놀라워했던 그 기억 다시 떠올랐다.

린다 쇼어, [나의 죽음] - 린다 쇼어까지 읽었다. 제일 좋았던 단편. 소설은 이렇게 쓰는 거지요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였다. 신선했다. 처음 읽을 때도 좋았는데 다시 읽으니 더 좋아. 더불어 죽어서까지 꼭 그래야만 하는 거니. 얼마 전에 넷에서 본 명절 뒷담화 떠올랐다. 제삿상을 차려야 하는데 제삿상 차릴 며느리들이 하나도 없어, 시엄마도 돌아가시고 없고 모두 이혼해서 여자들 없고 남자들뿐. 그렇게 남자들만 남으니 제사가 사라지더라. 여든다섯 된 우리 고모는 아직까지 제사 죽었다 깨어나도 지내야 하는줄 아는데 올해 처음으로 엄마에게 이제 자네도 그만 쉬어도 될 거 같아 라고 했다고. 아 정말 제사 왜 지내는지 알 수 없다. 참고로 저는 한 번도 제삿상 차린 적 없는 며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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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9-30 1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시 읽으려고요. 몇 개는 빼먹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오늘도 역시나 잘 읽고 갑니다^^

vita 2021-09-30 16:40   좋아요 1 | URL
백만년 전도 아닌데 저는 거의 다 까먹었더라구요. 단발머리님이 읽으셨던 보라색 책 전 아직 읽기 전인지라 곧 읽어보려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