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산체스의 소설을 읽고 있다. 의도한 바 아니지만 요즘 계속 청소년 소설만 주구장창 읽고 있다. 공지영의 소설 역시 화자는 고등학생이니까 청소년 소설이라고 우겨보자. 화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위녕의 인생 결코 쉽지 않으리라. 아무리 내 인생 아니라 엄마 인생이라고 하지만 아빠가 다 제각각인 동생들과 함께 살아가기가 쉽겠는가. 아빠 같고 엄마 다른 이복동생 역시 있으니 위녕의 자아가 아무리 바위 같다고 해봤자 사춘기 청소년인데 쉬울까. 역시 이리저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고달픈 건 마찬가지일 거 같다. 중산층 집의 장녀라고 해도. 그리고 요즘 읽는 에리카 산체스 소설 속 주인공이자 화자인 훌리아의 인생 역시 벌써 파란만장하다. 아가, 이모 가슴 또 막 찢어지는구나. 시카고에서 불법이민자의 자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훌리아의 나이가 15세로 나오니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생일듯. 근데 벌써 막 술 마시고 막 약 하고. 아 그렇게 살면 안돼 얘야. 어떤 동갑내기들은 벌써 임신을 하고 곧 결혼을 한다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훌리아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말소리 인상적이다. 자신을 놓치려고 하지 않는 강한 자아가 느껴진다. 난 어떻게 해서든지 대학교에 가야 해. 저렇게 살아서는 안돼 . 꽤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장면들 있다. 훌리아의 멘붕 상황 역시 사실적이고. 나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멕시코 소녀도 아니건만 실제로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멕시코 소녀들과 라틴계 소녀들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그야말로 맴찢 아니겠는가. 표백제 냄새 달고 사는 엄마와 사탕공장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는 아빠의 피곤한 일상 사이 하나뿐인 내 편, 하나뿐인 내 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녀의 정신세계. 요즘 자꾸 골몰하게 된다. 사춘기 딸아이 가져서 더 그렇겠지만. 공지영의 소설 속 위녕에게 위안을 주는 대화 상대가 서점 아저씨라면 에리카 산체스의 소설 속 훌리아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대화 상대는 문학 선생님이다. 둘 다 책 좀 읽고 가슴 아픈 사연들 갖고 있는 아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제목은 나는 당신의 완벽한 멕시컨 딸이 아니다_ 여기에서 포인트는 퍼.펙.트.에 있다. 훌리아가 완벽하지 않은 딸인 반면 죽은 언니 올가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딸이었다. 아름다운 엄마를 닮아 아름다웠던 올가 언니. 항상 깨끗하고 다소곳했다. 반면 훌리아는 아빠를 닮았다. 아름답지 않고 거대한 덩치를 지니고 있다. 자매가 얼마나 수없이 비교를 당했겠는가. 인간 자체가 불완전해서 끝없이 다른 이들을 비교하고 나 자신 역시 다른 이들과 비교를 하는 거겠지만_ 신이 인간 개개인을 떠올리며 만들었다면 그에게 인간은 그 모두 완벽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가 인간들을 비교하면서 이리저리 재면서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가 신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까닭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 과제를 하다가 잘 풀리지 않으니까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아 이 바보, 이 바보야 하고 자신을 탓하는 딸아이한테 아니 왜 자신을 비하해, 너는 바보 아니야, 천재야 하니까 째려보더니 엄마가 나한테 다섯 살때 한글 가르칠 때 잘 외우지 못하니까 이 바보야 하고 말했던 거 나 아직도 기억해, 내 영혼의 첫 상처야. 해서 흡 했다. 병 주고 약 주는 데 천재야 우리 엄마는. 아무리 미안하고 잘못하다고 해도 그 상처가 어디 잊혀질까. 그러니 상처로 내내 기억되는 거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주도록 하지 말자 우리는 서로 말랑말랑 한없이 말랑말랑거리는 인간들인데. 공지영이랑 에리카 산체스 읽느라 밀린 공부 더 밀렸다. 중간중간 스페인어 나온다. 스페인어 단어도 찾으면서 읽는다. 에리카 산체스는 이 책을 부모님에게 바쳤다. 자전적 느낌도 물씬 풍긴다. 결국 훌리아는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이다. 멋진 작가가 되어 내가 이루고 싶은 삶을 살 거라고 훌리아가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훌리아들에게 바치는 에리카 산체스의 이 자그마한 소설이 주는 울림 크다. 아직 중반부까지만 읽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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