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암스트롱의 [소설의 정치사] 완독. 어제 음주했다면 힘들었을 텐데 음주할까 유혹의 가능성을 점치며 와인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가 와인을 마신 후 곧 있을 근미래의 풍경을 스케치한 후 와인을 다시 냉장고 안으로 넣었다. 소설의 정치사_라는 책을 완독한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와인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근미래를 점친 후 다시 냉장고에 넣은 것 또한 거의 알코홀릭에게는 더 대단한 일이다. 딸아이랑 저녁 준비를 하면서 같이 레몬에이드 만들어 마셨고 결과적으로 독서할 수 있었다. 어제 끝내려고 했으나 다른 짓 하는 바람에 오늘 완독. 잡소리 여기까지.이 책을 읽고 기존에 읽었던 소설에 대한 편견, 읽지 않았던 소설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바윗덩어리 같았는지 깨달았다. [제인 에어]는 여중생때 읽고 [폭풍의 언덕]은 [제인 에어] 다 읽고 바로 읽었다. 여성들의 서사와 주체성, 자아 정체성 탐구, 채 밝힐 수 없는 감출 수 없는 여성으로서 열정 이런 것들을 세세하게 헤아릴 수 있었던 때가 아니었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것까지 모두 헤아리는 것 같다. 그런 게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걸까.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대한 편견 또한 그저 몇몇 단편적인 조각만을 접하고 아 그게 여성 삶의 전부는 아닌 거지 하고 허영심에 들떠서 나는 제인 오스틴 별로_ 읽지도 않고 별로_라고 감히 단언했던 무지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때는 이십대 초중반이었다. 읽는 동안 어려웠지만 내 무지와 내 편견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헤아릴 수 있었기에 잘 읽었다, 이 책 진짜 잘 만났어. 잘 읽었어. 결코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어려웠기에 내가 지금 잘 읽기는 하고 있는 건가 하고 잠시 잠시 잠시 중간 중간 주춤 갈등했다. 그래도 읽었던 소설과 읽지 않았던 소설이 해설서처럼 나란히 등장해 어렵지 않은 거 같은데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러면서 주억거리며 읽었다. 



 무엇보다도 소녀들의 소설이라 여겼던 그런 편견을 지녔던 샬롯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와 앤 브론테의 소설을 다시 읽을 마음이 과녁처럼 생겼다. 베일을 전부라고 여기고 베일을 차마 들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좀 안타깝고 좀 어리석고 과거의 스스로에게_ 아 그때 읽었더라면 그때 제대로 캐치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그런 안타까운 마음으로 제인 에어도 다시 읽었다. 여성의 삶의 궁극적 목적이 결혼이라고 단언하고 감히 펼쳐보려고 하지 않았던 제인 오스틴을 읽기로 마음먹은 것은 모두 [소설의 정치사]를 읽은 덕분이다. [파멜라]는 계속 등장하니 언젠가는 읽어야 할 거 같지만 아직은 찾아서 읽고싶지 않아. 울프에 대한 마음도 다시 가을 바람과 함께 스며들어 온다. 울프 언니는 얼마나 여성의 읽기와 여성의 쓰기에 대해서 수많은 시간을 보냈단 말인가. 머무른 자리에서 그러니까 이 안온한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기껏 무어가 있을까 하고 한탄하기보다는 그 마음을 하나의 활동으로 만드는 과정. 그 스텝을 밟아보고 싶어졌다. 이런 마음의 흐름은 별로 흔치 않아서 신선했다. 뭔가 아 이런 마음은 뭔가 내 마음이 아닌데, 그런 낯섦과 더불어. 


 간밤에는 영문학 교수 관련 드라마를 한편 보았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찰스 디킨슨 구절들 들으면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친건가 싶었다. 공부만 하느라 연구만 하느라 요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입양한 딸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모지리로 그려진 건 열받으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영문학과 최초의 유색인종, 최초의 여성으로 학장이 된 김지윤 이야기. 피부 노오란 애가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하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농담을 하는 김지윤 이야기.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데 에밀리 디킨슨이라니. 이해나 할 수 있겠니?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데 에밀리 디킨슨이 내 영혼을 울린다면. 그건 영어의 힘이 아니라 에밀리 디킨슨의 글이 갖고 있는 힘이 아니겠는가. 엄마가 요리를 하면 가서 요리를 도우려고 지윤이가 옆으로 다가오면 넌 요리하지 마, 요리하지 말고 공부해_라고 하는 엄마. 그런 엄마 심정. 그 마음. 항상 엄마가 그러셨노라고 지윤이 카메라를 마주보면서 이야기한다. 요리는 못하지만 공부만 해서 영문학과 학과장이 된 우리의 지윤이 좌충우돌 헤매는 과정은 별로 유쾌하지 않지만 이건 남성 여성의 젠더 문제를 떠나 불완전한 인간의 면면을 드러내는 거 아닌가 싶어 유쾌했다. 어딘가에는 공부도 잘하고 요리도 잘 하는 영문학과 교수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녹록치 않아. 어랏 그런데 지희의 동료 (남자) 교수는 아이도 잘 케어하고 요리도 곧잘 하고 강의도 잘한다. 여기에서부터 벌써 추가 막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 따위 내게는 없었다. 진심으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냥 얼추 어느 정도 허영심에 들떠 영문 소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추어대곤 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소설에 대한 진정성을 발견. 빵을 만들기 위해서 밀가루 반죽을 치대면서 계속 책을 부엌에 그득 놓았던 브론테 자매의 열정을 본받아 밥을 계속 지으면서도 소설을 내내 읽을 진정성을 얻은 게 이번 여성주의 읽기의 가장 큰 수확이다. 아 에밀리 브론테 언니는 빵도 잘 만들고 소설도 잘 썼네. 올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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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8-21 15: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오 비타님 완독 수고하셨어요👍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것, 저도 여성주의 책 함께 읽으며 얻은 큰 변화입니당~♡

vita 2021-08-21 20:08   좋아요 1 | URL
네 중간 좀 헤매고 아 헷갈려 이해 힘들어 하는 구절들도 자주 마주쳤지만 제인 에어를 다시 읽게 만들고 언니들의 다른 소설을 읽기로 한 게 가장 큰 수확입니다. 각자 할 수 있는 일 찾기_ 이 변화 또한 값지고 크고. 미미님도 남은 페이지들 화이팅. :)

단발머리 2021-08-21 15: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비타님 완독 축하해요! 근거 없이 저는 제가 먼저 읽을 거 같았는데 이 무슨 희소식이란 말입니까? 브론테 자매들에 대한 애정뿜뿜이 팍팍 느껴지네요^^ 저도 그래요😘

vita 2021-08-21 20:09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단발님 읽으시는 거 보고 비슷한 시기에 완독할 거 같은데...... 했습니다. 제인 에어를 그토록 이른 나이에 알아보신 그대 안목에 두 엄지 척척. 부지런히 제인 오스틴도 읽어야하고 읽을 게 산더미입니다. 오늘 도서관 가서 왕창 빌려 왔어요 :)

유부만두 2021-08-22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일 먼저 시작한다고 뻐기다가 .... 게으른 전 아직 초반부에서 헤매는 중이에요
월말까지 열흘, 하루에 몇쪽씩이면 되냐, 계산만 매일 고쳐서 하고요 ㅎㅎㅎ
아 근데 읽을 책이 너무 너무 많이 새로 막 생기는 거에요. 아시죠, 그런 거?!!!

vita 2021-08-22 18:40   좋아요 0 | URL
방금 쇼님 페이퍼 읽고 왔는데 너무 제 마음 같더라구요. 그런데도 전 읽어야 할 게 워낙 많고 제인 에어도 다시 읽고 있고 그래서 별 다섯 주고싶었어요. 근데 넘 달렸나봐요;;;; 후달려요 언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