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우리 사남매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엄마가 더 이상 스스로의 육신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제정신이 아닐 때 그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할지 그 이야기도 나누었다. 엄마가 아가가 될 경우_라고 에둘러서 이야기했는데 공포에 질린 엄마와 통화할 때 우리 넷 모두 느꼈다, 엄마가 아가가 되어버렸구나 라고. 퇴원 후 요즘 엄마와 자주 나누는 이야기. 엄마는 아가가 되어버리고난 후 버려지고 싶지 않아_ 나를 보내지 마. 나를 보내면 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어. 난 내 아가들과 함께 지내다가 하늘로 가고 싶어. 나를 버리지 말아줘_라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아무리 시설 좋은 요양 시설로 간다고 해도 그 사실이 엄마에게는 버려짐과 동일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독을 제일 무서워하는 엄마. 더불어 딸아이와도 나누는 이야기. 나의 노년. 상상하기 싫지만 언젠가는 닥치리라.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를 보러 친정에 갔다. 엄마는 지방에서 일을 마치고 오는 중이었고 남동생은 퇴근 전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동생 둘은 집에 있었다. 아빠는 엄마가 오기 전까지 기저귀를 갈지 않겠다고 버텼다. 엄마가 도착하려면 두 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 아빠 혼자 힘으로 화장실에 갈 수 없던 시기였다. 엄마에게 한참 혼나고 얼르고 달래지고난 후 결혼한 딸이니 아빠 고추 보아도 괜찮다 하고난 후,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의도치 않게 아빠의 성기를 마주했을 때 물티슈로 엉덩이를 닦아주는 동안 아빠는 거인과 같은 커다란 두 손으로 뼈만 남은 얼굴을 가리며 엉엉 울었다. 입술을 깨물며 울지 않고 엉덩이에 분을 발라주고난 후 기저귀를 다 갈고난 후 아빠를 꼬옥 안았다.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하는 건 나의 특기인지라 아빠에게 농담을 건네며 복숭아 껍질을 벗겼다. 달콤한 과즙을 묻히며 아이처럼 웃는 아빠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빠가 복숭아를 사랑하는 걸 지인들은 모두 알고 있어서 복숭아 상자가 한그득 쌓여있었다. 질려서 못 먹겠어 병원으로 들어가기 전 아빠의 말. 사랑이 질릴 수도 있다. 그것도 사랑의 한 과정이다. 즙이 많고 달콤하지 않은 과일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복숭아는 사랑의 열매로 고대로부터 쭉 전해져온다. 얼마 전에 읽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도 복숭아는 사랑의 과실로 등장한다. 그 전부터도 내게 복숭아는 아빠의 과일이다. 탐욕스럽게 복숭아를 먹던 아빠의 젊은 시절 기억 난다. 이건 다 아빠 먹을거야! 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복숭아를 포크로 콕 찍어 아빠의 입 안으로 들어가던 그 스피드는 이길 수 없었다. 우리 아빠는 복숭아 괴물이군, 하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머리 속에 박혀 있다. 먹을 거에 탐심을 보이는 사람이긴 했지만 복숭아에 있어서만은 원탑. 아빠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소식이 여기저기 전해지면서 복숭아는 집에 한가득 쌓이고 쌓였고 아빠는 그토록 탐심을 보이던 복숭아에 그만 질리고 말았다. 사랑과 웃음이 많았던 그와 복숭아는 잘 걸맞는다. 곧 아빠의 기일이다. 복숭아를 준비한다.







간병인이 내게 "당신 어머니가 오줌을 누었어요. 방안 여기저기에 오줌을 누고 다니니 어쩜 좋아요, 그래"라며 나무라듯 말한다.
어머니를 때려주고 싶은 사디즘적 욕구가 솟구쳐 올라와 나 자신이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어머니에게 강제로 스타킹과 코르셋을 입히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코르셋을 엉성하게 졸라매었다. 어머니의 마른 두 다리 사이로 편물로 짜인 팬티를 입혀주었다. 마치 삼각형의 작은 배 같았다. 어머니는 겁이 나서 내 말을 고분고분 잘 들었다. 제정신이 아닌 어머니처럼 나 역시 광기 어린 시선으로 어머니를 쳐다보고 있는 장면이 자꾸만 연상되었다.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차마 울음을 터뜨릴 수가 없었다. (오로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만 그렇게 울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일까?) 오늘 내 안에서 비집고 올라왔던 사디즘적인 욕구는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 다른 소녀들에게 느꼈 - P29

던 가학적 욕구와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어머니가 자꾸 나를 공포에 떨게 하므로 보상 심리에서 내가 가학적 욕구를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 P30

내가 떠나려 하자 어머니는 "가버린다구?" 하며 깜짝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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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1-08-12 16: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눈물이... 누구나 마주하고 싶지는 않지만 결국 통과해야 하는 시간...아버님 얘기 너무 슬픈데 vita님의 현명한 대처가 뭉클합니다.

vita 2021-08-12 21:10   좋아요 2 | URL
누구나 겪는 과정인데 쉬운 사람은 한 명도 없을듯 싶어요.

mini74 2021-08-12 17: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시간일텐데 참 오만하게 살아온거 같아요 ㅠㅠ우리 아빠도 복숭아 좋아하셨는데 . 이 글 읽으니 참 보고싶네요. 우리 아버진 코로나때문에 외롭게 혼자 가셨어요. 기일 잘 보내시길.

vita 2021-08-12 21:11   좋아요 3 | URL
얼마나 괴롭고 가슴 아프셨을까요. 미니님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해요. 오만해질 때마다 중얼거리게 되는 건 끝이 온다는 거.....

새파랑 2021-08-12 17: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슬프네요 ㅜㅜ vita님 힘내시길 바라고, 기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vita 2021-08-12 21:11   좋아요 2 | URL
옛날 일인지라;;; 감사해요 새파랑님

책읽는나무 2021-08-13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슬프고 가슴 아프네요ㅜㅜ
그리고 몇 년 전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기저귀 갈아드렸던 시간들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구요.
부모라서 또는 제겐 엄마라서 그랬던 건지..그 시간들도 지나고 보니,내가 마지막으로 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부모를 자식 바라보듯 대해지는 순간들이 하필 부모님이 아픈 순간들이라 참 마음이 아프기도 하구요!!!
암튼...저도 그저 힘내시란 말밖엔 해드릴 말이 없네요.현명하게 잘 버텨내실 거라고 믿습니다^^

vita 2021-08-13 13:46   좋아요 1 | URL
부모님을 돌보는 시간이 노년이 될 미래의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간접적인 경험이 되는 거 같아요. 너무 힘들었고 너무 도망치고 싶었고 모두 다 우울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 암울한 시간이었던지라 당시 엄청 괴로워했는데 아빠의 마음을 너무 헤아리지 못했던 거 같아 죄스럽구요. 나이가 들면 조금 더 철이 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