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모자이크 - 뇌는 남녀로 나눌 수 없다
다프나 조엘.루바 비칸스키 지음, 김혜림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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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가 없는 세상에서는 성별이라는 범주 자체가 그 중요성을 잃을 것이다. 사회적 의미가 없으면 어떤 사람의 성기 모양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는 비전형적인 성기를 가진 사람이나 그 부모에게, 아이가 외과적 수술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완화시켜 큰 안도감을 줄 것이다. 인간의 모든 가능한 특질이 갖는 엄청난 다양성을 두 개의 상자에 욱여넣는 대신에 우리는 이 다양성에 축배를 들 것이다.  [젠더 모자이크]






6월 여성주의 읽기 도서 완독. 제일 심금을 울린 문장,

"아이들을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작은 구멍에 끼워 맞추지 말자.

그들이 온전한 인간으로 자라도록 젠더의 이름을 제거하자."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양육되어 여성의 삶을 살아간다. 그로 인해 받는 혜택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는 아는가 하고 내게 말해준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제까지. 무수한 할머니들과 무수한 이모들에게 여성으로 태어난 죄,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그토록 많이 지었길래 여자로 태어났을까! 는 어린 시절부터 귀에 딱지가 얹힐 정도로 들었다. 어린 마음에도 분했다. 아니 여자로 태어난 게 형벌이란 말인가.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테다. 나는 내 마음대로 살 것이다 했다. 얼추 중년의 나이에 다다르고보니 왜 할머니들이 이모들이 그렇게나 말했는지 알 것도 같다. 어느 날인가 엄마와 팥빙수를 가운데 놓고 나눠 먹으며 물었더란다. 엄마 왜 여자로 태어난 걸까. 전생에 무수한 죄를 저질러서 여자로 태어난 형벌을 받는건가 하고 엄마도 젊을 때 툭 하면 신세 한탄하고 그랬잖아.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엄마의 대답. 제약이 많잖아. 할 수 없는 게 어마어마하고. 남자새끼들은 고추 하나 달랑 갖고 태어난 거 말곤 없는데 걔네들은 할 수 있는 게 어마어마하고 여자로 태어나면 못 하는 게 너무 많으니까. 지금이야 좀 시대가 변해서 괜찮아졌지만 엄마 때는 더 했지. 우리 작은 엄마는 너무 너무 나가고 싶어하셨단 말이야. 근데 우리 작은 아빠랑 만나 결혼하시는 바람에 일본 유학길 막혔지. 그때 우리 삼촌이랑 결혼 안 했으면 일본 가셨지. 그때는 얼마나 더 심했겠니. 여자로 살아가면서 못하는 것들이.

팥빙수를 엄마가 열심히 드시는 동안 그래 기억났다. 작은 할머니가 너희 작은 할아버지랑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우리 아부지가 동경 유학 보내주신다고 했는데 그때 하필 네 작은 할아버지랑 선을 봐서 한국에 주저앉고 말았지. 이 할미는 너무 결혼이 하기 싫었어. 그래서 아부지가 동경으로 유학 보내주신다 했을 때 너무너무 좋아서 막 춤을 추었더란다. 근데 우리 어무니가 미친듯 우시는 거야. 기집애 혼자 외딴 동경이라니 나는 죽어도 못 보낸다고. 내가 또 외동이잖니. 동경으로 보내니 차라리 같이 죽어버리겠노라고 며칠 동안 밥도 거르셨어. 그래서 어찌 해. 주저앉았지. 엄마 죽이고 동경으로 공부하러 떠날 수는 없는 거 아니겠니. 이 할미는 그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했어. 저 멀리 낯선 세상으로 날아가서 내 마음대로 살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공부도 실컷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주저앉아 결혼하고 애 낳고 밥 하고 애 낳고 밥 하고 결혼하면서 우울증도 동시에 왔지. 애를 일곱을 낳았어. 그 중에 둘은 일찍 가버렸지. 더는 애 낳기 싫더라.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이 할미가 니 할아버지에게 정관수술을 하라 했지. 그런데 정관수술이 잘못 되었다. 꼬추가 서지를 않는 거야. 그 뒤로 매일 맞았다. 니 작은 할아버지가 덩치는 또 얼마나 좋았는데. 도망치기도 많이 도망쳤지. 니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가 미친 짓 그만 하라고 말리기도 엄청 말렸어. 나야 미안했지. 내가 애 낳기 싫어서 정관수술 하라 했으니. 그런데 뭐 나라고 고추가 서지 않을 줄 알았겠니. 나 때문에 고자 됐다고 미친듯 때리고 니 작은 할아버지도 그때부터 홧병 생겼지. 사업이 잘 되어도 뭐 하나 고추가 서지 않는데. 기방도 그때부터 안 나갔지. 매일밤마다 맞고 사는 것도 못할 짓인지라 이 할미가 딱 죽을 결심을 했거든. 근데 얼마 뒤에 네 할아비가 홧병 생겨 그런지 갑자기 심장마비로 가버리더라. 그래서 마흔도 안 되어 이 할미는 과부가 되었어. 혼자 애들 다섯을 키우면서 별의별 짓을 다 했다. 몸 파는 짓만 빼고. 그리고 살아가는 내내 계속 왜 그때 동경으로 가지 않았을까. 엄마가 죽는다고 해도 그냥 갔었어야 했는데. 왜 죄 많은 여자로 태어나 하고싶은 공부도 못 하나 그랬지. 고추를 달고 나왔으면 결혼이고 뭐고 노처녀고 뭐고 그런 소리 하나도 안 듣고 동경으로 갔을 텐데 말이다. 수연아 우리 수연이는 비록 고추 달고 나오지는 못했지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라. 시대가 달라졌으니 여자라고 못할 게 뭐 있겠니. 이 할미 대신에 동경도 다녀오고 저 멀리 있는 구라파도 다 보고 와주렴 이 할미 대신.

할머니에게 나중에 들은 이야기, 할머니의 엄마 그러니까 내게는 작은 외할머니의 어머니 아 족보 복잡하니까 그냥 왕할머니라고 치자. 왕할머니는 나중에 돌아가시기 직전에 작은 외할머니 손 꼭 붙잡고 이야기하셨더란다. 내가 미안하다. 너를 그때 안 붙잡고 동경으로 보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텐데 내가 박복한 년이라 하나뿐인 너를 곁에 두고 행복하게 살아보겠노라고 욕심을 부렸다가 역시 박복한 년이라 네 앞길을 막고 말았다. 동경 갔으면 행복한 신여성이 되어 자유롭게 살았을 텐데 이 어미가 너무너무 미안하다 우리딸. 우리 왕할머니가 그러셨단다. 우리 작은 외할머니 나이 93세. 치매도 없고 눈도 귀도 멀쩡하시다. 고관절 수술 하시고 산책은 예전만큼 다니지 못하시지만 한없이 낙천적이고 예민하시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나 엄청 예뻐하셨다. 할머니 손 붙잡고 나중에 같이 세계여행 다니자고 고추 안 달고 나와도 세계여행 할 수 있다고 고사리 손으로 그랬을 때 할머니 너무 좋아하셔서 우셨다. 그런데 약속 아직도 지키지 못하고 있어. 



"아이들을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작은 구멍에 끼워 맞추지 말자.

그들이 온전한 인간으로 자라도록 젠더의 이름을 제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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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6-30 1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달에도 해당 도서 읽고 또 쓰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비타 님.
다음달에도 우리 열심히 읽고 씁시다. 그리고 더 멀리 힘차게 나아갑시다!!

vita 2021-06-30 10:35   좋아요 2 | URL
아자!!!! 근데 젠더 트러블인지라;;;;;; 약간 바들바들 떨면서 대기하고 있습니다-_-

블랙겟타 2021-07-29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6월의 책을 읽고 비타님의 글을 이렇게 읽고 있네요.

비타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마지막 몇년을 저희 집에 계시다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이 났어요. 사실 할머니가 치매가 오시기 전엔 저에겐 무서운 할머니 였지요. 어쩌다 외갓집에 가면 공부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만 들었었고 당시 저에겐 조금은 무뚝뚝하게 느껴져서 약간은 무서웠었어요. 나중에 치매에 걸리셔서 저희 집에 오셨을 때 아니러니하게도 그때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당시 할머니는 해방 후 그 지역에서 교편을 잡았을 만큼 능력도 있으신 분이였지만 할어버지와 결혼하고 나서는 쭉 집에 계셨던 것 같아요. 외할아버지께서 엄청 까탈스럽다고 할까 보통이 넘는 분이었거든요.
일본어를 곧잘 잘해서 제가 몇년 전부터 일본어를 배우면서는 괜히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기 위해 일본어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면서 대화를 나누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치매에 걸리셨어도 단어단어는 다 기억하고 계신게 신기했었어요.
그때를 살아가며 여자로서 장녀로서 고생많이 하셨을 거라는 걸 그 당시 대화를 하며 조금이나마 느꼈어요.
조금 더 친해질 때쯤에 저에게서 떠났지만요…
비타님 글을 보며 갑자기 그 때가 떠올랐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vita 2021-07-30 13:17   좋아요 0 | URL
겟타님 6월 책 이제 다 읽으셨으면 7월 책 펼치시는 건가요? 버틀러 나만 힘든가봐요;;; 할머니 인생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이야기들이 있어서 단편이라도 좋으니 이야기로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그 이야기를 아는 이들이 이야기를 써서 기록으로 남기고. 여름이 너무 더워요 나가서 막 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 많이 갑갑한 거 같아요. 부산도 서울도 많이 많이 덥지만 무사히 여름 보내고 찬 바람 불 때쯤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