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호기심 상승

유럽 협동조합 가운데 매출이 가장 큰 상위 8개 기업이 이탈리아 협동조합이며, 이 가운데 에밀리아로마냐가 협동조합이 가장 발달한 곳이다. 볼로냐에 발달한 협동조합은 볼로냐의 생활물가와 실업률을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전체실업률은 물론, 30퍼센트에 육박하는 이탈리아의 청년실업률이 가장낮은 곳도 볼로냐를 비롯한 에밀리아로마냐의 도시들이다. 더불어 여성의 취업률도 가장 높다. 볼로냐에 가면 느낄 수 있는 이곳 사람들의 친절함은 이런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볼로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넉넉한 풍경이었던 듯하다. 러시아의 작가 파벨 무라토프 Pavel Muratory, 1881~1950는 19세기 말《이탈리아의 이미지》라는 책에서 볼로냐를 이렇게 찬양했다.
"볼로냐는 복잡하지 않고 경쾌하며, 눈을 즐겁게 하는 가벼운 무언가가 있다. 이곳 사람들의 마음에는 기쁨이 가득하고 신체는건강하다. 이곳은 기름진 곡창 지대와 유명한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풍성함과 다양함에서 볼로냐를 따라올 도시는 없다."
볼로냐에 가면 100년 전 러시아 작가가 느낀 감정이 과장이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 P127

피에몬테는 ‘산monte‘이란 단어와 ‘발piedi‘ 이란 단어가 합쳐져만들어진 지명으로, 알프스산맥의 끝자락에 있다는 의미다. 베네토주에는 한때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던 베네치아가있다. 이탈리아에서 살기 좋은 도시의 대부분은 파다노 평원을 포함한 북부 이탈리아에 몰려 있다. 볼로냐는 2019년 로마의 한 대학과 언론사가 선정하는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 107개 도시 가운데 - P134

13위에 올랐다. 5개 광역시인 볼로냐, 로마, 밀라노, 나폴리, 토리노 가운데 1등이었다. - P135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높은 하늘, 중세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예스러운 거리와 집들, 그리고맛있는 음식들. 이 모든 것에서 이탈리아인 특유의 여유가 만들어진것은 아닐까? "너희가 잘살면 얼마나 잘살아? 우리도 예전에 잘 살았어"라고 말하는 듯한 그들의 허세 아닌 허세가 이탈리아에서 지내다 보면 그렇게 미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한때 그들의 부유했던 영광은 파르미지아노 같은 그들의 먹거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 P157

샤르데냐 왕국의 토리노에서 시작된 이탈리아 통일운동은 이탈리아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외세를 물리치며이루어졌고, 결국 통일된 이탈리아 왕국의 첫 수도는 토리노가되었다. 볼로냐 역시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여기던 로마의 교황청에맞서서 이탈리아에 새로운 생각을 도입한 도시다. 로마가 성경을 중심에 두었다면, 볼로냐는 그리스·로마의 고전을 중요시했다. 결국16세기에 교황청은 이 위험한 ‘이념의 도시’ 볼로냐를 병합했다.
재미있게도 역사적으로 커피가 퍼진 곳에서는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는 혁명이 일어났다. 유럽보다 앞서 커피를 적극적으로받아들인 곳은 이슬람 제국이었다. 처음에는 이슬람에서도 커피를금지했다. 하지만 이후 이슬람에서는 술 대신 커피 정도는 받아들일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알코올을 카페인으로 대체한 셈이었다.
‘이슬람의 와인‘으로 불리던 커피는 이슬람 세계에 변화를가져왔다. 이슬람은 커피를 즐기면서 9세기에 이미 종교와 철학을분리하는 냉철함을 보였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받아들여 신학과 철학의 진리가 각각의 영역임을 논증했다.
이슬람에서 철학의 독립은 사회과학의 독립으로 이어졌다. 이는정치가 종교로부터의 독립하는 논리적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이런유연한 사고방식 덕분에 아랍에서는 수학, 과학, 의학 등 새로운학문이 쏟아져 나왔다.
중세 유럽의 지식인들은 이슬람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던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로마 고전의 힘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을 중심에 놓았고, 인간의 정신과 물질문명에철학적 해석과 의미를 부여했다. 이 전통은 고대 로마로 이어졌고,로마는 여기에 실용적인 틀을 입혀 제국을 건설했다. 인간다움을추구하는 휴머니즘의 뼈대는 그리스·로마에서 만들어졌다. - P202

볼로냐 대학이 모든 대학의 모교’라고 불리는 까닭은 학생과교수의 자발적인 공동체였다는 독특함 덕분이기도 하다. 공동체의운영 방식은 지금의 관점으로 봐도 흥미롭다. 일단 학생이 방을구하고 돈을 각출해 명망 있는 학자를 불러와서, 수업료를 지불하며강의를 듣는 방식이었다. 이들은 매일 새벽같이 수업을 시작해 함께밥을 먹고 토론하다 잠자는 동고동락 생활을 했다고 한다. 덕분에 볼로냐는 도시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외국인이나 외지인이 몰렸다. 1260년대 기준으로 볼로냐 법학부에 등록한 학생들을 보면 로마, 토스카나, 롬바르디아 등의 알프스 안쪽 지역과 갈리아, 부르고뉴, 프로방스, 노르망디, 카탈루냐, 헝가리, 폴란드, 독일, 스페인, 잉글랜드 등 알프스 바깥쪽 지역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중세의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외국에 유학을 오고 교수급여를 댈 정도였으니 학생들은 각국의 유력한 가문의 자제이거나종교인이었다. 이들은 학생이라기에는 나이가 많았고, 교수와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볼로냐 대학은 자치가 강한특이한 대학 문화를 갖게 되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모임을 ‘유니베르시타스Universitas (공동체)라고 불렀고, 이 단어에서 지금의대학이라는 뜻의 유니버시티 university가 유래되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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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6-05 11: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내용 들은 적이 있었어요
저도 관심도 상승!

Vita 2021-06-05 15:51   좋아요 2 | URL
볼로냐가 그렇게 괜찮은 도시라고 하네요. 볼로냐라고 하면 볼로네제 소스만 떠올랐는데...... 아 에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