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12평에서부터 50평까지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빛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주로 하는 일상은 읽기와 쓰기와 다시 읽기와 쓰기이지만 그럼에도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공간 크기와 무관하게 알았다. 내가 품을 수 있는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도 대략 이제는 눈치를 챘다. 그럼에도 공간에 대한 욕심을 쉽게 버릴 수 없는 건 어쩐 일인지 알 수 없다. 4년 전 급하게 이사를 하면서 이삿짐 정리를 하기 전에 찍어놓은 사진을 발견했다. 발견은 무슨. 4년 전 오늘이라고 떠서 알았다. 내게는 아직 집이 없다. 내 소유의 공간이 아닌지라 항상 내게는 집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잠시 빌려 사는 공간들이었고 그 공간들에 시간을 덧대어 애정을 덧대어 보금자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지만 온전하게 이곳은 나의 집이다 라고 말한 기억은 없다. 엄마아빠 집에서 사는 동안에도 이곳은 우리집이다 라는 말보다 엄마아빠 집이라고 말했다. 엄마아빠 집이 항상 드넓고 빛이 많아서 나는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그런 공간에서 살 줄 알았다. 문득 언제쯤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생기려나 싶다. 나는 그럴만한 깜냥이 안 되기에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면 네가 내 집이다 라는 소리를 곧잘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느꼈다. 내게 집은 유목민의 그것과 비슷해서 쉬이 움직일 수 있고 쉬이 안착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항상 그럴 수 있다면 그들이 내 집이 되어주리니 그런 마음으로 사랑을 했다. 배낭 하나만 갖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동갑내기 여자아이를 스물다섯에 방콕 카오산 로드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나 배가 고픈데 밥 좀 사줄 수 있니 라고 그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해서 아 그래, 그럼 국수집으로 갈까 하고 쌀국수를 사주고 같이 바에 들어가 병맥주를 마시면서 물어보았다. 어떻게 해야 그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 거냐고? 마음과 몸이 동시에 나아가야 그것이 옳은 삶이라고 여겼지만 나는 마음만 그럴뿐 차마 그렇게 배낭 하나만 짊어메고 온 세상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상고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 잘 다니다가 문득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가 싶어서 모아놓은 적금을 깨고 항공권을 샀다고 했다. 그리고 인도로 들어가기 전에 방콕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홀몸으로 돌아다니는 게 가능해? 물어보니 그때 그 아이가 해준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세상에는 신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 무서운 사람들도 있지만 따뜻한 환대를 해주는 낯선 사람들이 엄청 많아. 영어는? 영어는? 이라고 물어보는 나도 내 질문이 바보 같아서 막 웃었다. 영어는 아무것도 아니야. 영어 못하는 사람들이 영어 잘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아. 영어는 그냥 하다보면 늘어. 나도 영어 엄청 못해. 못하긴 개뿔. 엄청 잘 하던데. 늘었어. 여행하다보니.얼마나 더 돌아다닐 거니? 물어보니 계획상으로는 그리고 지금 통장에 있는 돈으로는 앞으로 2년 남았어. 근데 가능하면 더 돌아다니고 싶어. 그리고? 그리고 뭘 할 거니? 한국으로 돌아갈 거니? 글쎄. 영영 안 돌아갈 수도 있지. 그래도 울엄마가 계시니까 가긴 가야지. 우리엄마는 아직도 일주일마다 통화할 적마다 운다. 둘이 마구 웃으면서 엄마라는 존재들은 원래 그러니까. 그리고 문득 왜 그러지 못했을까 지금 와보니. 오랜만에 좋아하는 곡을 들으며 느긋하게 아침을 맞이한다. 줌파 라히리를 다 읽은 아침인지라 더 느긋해진다. 집이 문득 갖고싶어진다. 온전하게 나만의 집.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고 마침내 안착하여 편하게 몸을 눕힐 수 있는 곳. 카오산로드에서 만났던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그것도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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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5-10 11: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수연님. 저도 어릴 때 그런 생각했어요. 어른이 되면 이층집이 저절로 생길 거라고. ㅋㅋ 저는 전세든 월세든 내 사는 곳이 다 내 집이다 생각하며 살아요. 누가 그러더라구요. 임대받는 집은 있어도 임대받는 삶은 없다고.
생각해보니 저는 늘 빛이 아쉬운 집에서 산 날들이 많았어요. 빛이 모자라 빛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몸과 맘이 동시에 나아가기란 원래 힘들지 않나요. 몸이 좀 늦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자구요^^

수연 2021-05-10 21:10   좋아요 1 | URL
욕심이 많아서 제가 동시에 나아가야 하는 사람인데 생각해보니 행복한책읽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과 몸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아 몸이 고생하는 경우가 꽤 있더라구요. 임대받는 집과 임대받는 삶에 대한 통찰은 깊이 새겨들을게요. 그런데 어쩐지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마치 임대받은 삶처럼 시간을 허비한 경우가 많아서 앗 가슴이 찌리릿 하고 아팠습니다.

transient-guest 2021-05-10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빛과 공간의 조화가 기묘합니다 아름다워요 ㅎ

수연 2021-05-10 21:11   좋아요 1 | URL
해가 잘 드는 곳이었는데 갑자기 앞에 빌라가 뚝딱 하고 들어서더니 저 빛을 모두 잡아먹더라구요. 그런데 저 빛 또한 지금 대하니 아주 소중했구나 알았습니다.

mini74 2021-05-10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땅 내 집이 있나 싶어요. 다 빌려 사는 삶, 갈 때 다 주고 가는 삶 ㅎㅎ 그 날의 빛 그 날의 책 그 날의 즐거움을 나무테마냥 새기다 가고 싶어요 ㅎ근데 좋은 것만 새겨지진 않네요. 좋은 글 좋은 사진에 주저리 하다 갑니다 *^^*

수연 2021-05-10 21:13   좋아요 1 | URL
물론 이건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닐 텐데 땅이랑 집에 목숨 거는 이들이 꽤 많아서 갈 때 역시 돌려준다기보다는 물려주는 개념이 더 짙어져가는 거 같아요. 순간의 빛 찰나의 순간들 모두 기록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걸 다 해내지 못해서 매순간 아쉬워지는 거 같아요, 더 나이가 들면 그런 아쉬움도 덜해지겠지만요 :)

난티나무 2021-05-10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에서 결국 울컥. 저도요.ㅠㅠ

수연 2021-05-10 21:14   좋아요 0 | URL
우리에게는 하염없이 수많은 찰나들이 있어요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