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일곱 명 중에 넷은 서둘러 나가고, 교실에 치에코와 나, 에드워드 이 셋만 남았다. 에드워드는 누가 라틴어 선생 아니랄까 봐, 우리에게 계속 이탈리아어로 말을 했다. 저렇게 말을 잘하는데 왜 나랑 같은 반인지 모르겠다 했더니, 마침 자기도 초급 회화반 수업이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울상을 짓는다. 그리고 사무실에 가서 다른 반으로 옮겨 달라고 해야겠다며 나간다. 이제 치에코와 나만 남았다. 우린 그날의 만남을 기념하며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치에코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이탈리아어 문법 책을 하나 샀다. 아무래도 머리 좋은 어린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려면 최소한 민폐는 끼치지 않아야겠다 싶어서였다.- P168

그다지 대단한 포부나 절실함도 없이 시작한 이탈리아어 공부인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시험에 대한 부담이나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는 게 이탈리아어 공부를 즐길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외국어를 새로 배우기엔 내 뇌가 폭삭 늙어버린 모양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졸업한 내 언어 학교 친구들은 똑같이 공부를 시작했는데 다들 나보다 잘한다. 그들은 친절할 뿐더러 이해심도 많은데, 그것도 모자라 인내심까지도 많다. 나의 반복되는 헛소리와 이해력 부족을 무던히도 참고 봐준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이탈리아어를 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씩이라도 이탈리아어를 할 수 있게 되고부터 이 몹쓸 뻔뻔함이 수업 이외의 시간에 밑천 없는 자신감을 불러와 성가시기만 하던 강적들을 은근히 기다리게 한다. 그런데 그렇게 성가시게 굴던 사람들도 막상 기다리니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이 기세를 몰아 현지 친구들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친구란 여행에선 선택이지만, 생활에선 필수이기 때문이다.- P171

‘라 사피엔자‘라 불리는 로마 제 1대학 Inversità degl Studi di Roma La Saipenza 에는 동양학부가있다. 이곳에는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를 비롯한 아시아의 언어와 문화, 철학 등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다. 언어 학교 수업시간에 머리 좋은 이들 사이에서 주눅들다 보니, 소싯적 지고는 못 살던 자존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민다. 들어가기는 쉬워도 졸업하기 힘든 탓에 세계에서 등록된 재학생이 가장 많다고 소문난 로마 대학이다 보니, 여기서 공부하는 이들도 내 언어 학교 친구들만큼이나 똑똑하겠지만 이곳이라면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 앞에서 한국어 토박이 사용자라는 고귀한 신분이 되어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으쓱해졌다.
이탈리아의 모든 국립대학은 재학생이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등록된 재학생이 아니면 시험을 보거나 학위를 받을 수는 없지만, 수업을 듣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학위가 아니라 학업이 목적이라면, 얼마 안 되는 학비조차도 낼 필요없이 공짜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의 국립대학이다. 만약 이탈리아 유학을 생각하고 있다면 입학 전에 미리 강의를 체험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몇 번의 클릭으로 동양학부 8번 교실에서 금요일 낮 12시부터 2시까지 1학년 한국어수업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지하철 A선을 타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역에서 내렸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역 주변은 로마의 차이나타운 같은 곳으로, 역에서 나오자마자 온통 중국인들이운영하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아무래도 대학 측에서 동양학부라는 타이틀을 지나치게 인식한 것 같다. 예전에는 아무나 살 수 없는 부촌이었다는데, 지금 역 주변의 첫인상은 솔직히 좀 허름하다. 20대 초중반의 학생들이 학부 앞 주차장에 스쿠터를 세워놓고 들어간다. 정면으로 커다란 유리문이 있고, 그 건너편으로 아담한 학부 캠퍼스가 보인다. 유리문은 언제나 닫혀있는지 모두들 정문에서 보이는 유리문 대신 왼쪽 계단을 이용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을 따라 계단을 오르니 정면에 학생 게시판이 있다.- P172

로마에서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아무도 내 나이에 개의치 않는다. 사실서울에서는 20대들과 같이 놀아보려다가 왕따를 당한 적도 몇 번 있고, 억울하게도 10대들에게 ‘아줌마‘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로마의 젊은이들은 나이와 상관 없이 기꺼이 나와 친구가 되어주었다.-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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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05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작가님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하신분!!ㅋㅋㅋㅋ

수연 2021-05-05 09:50   좋아요 1 | URL
책 제목만 알았는데 다양한 책을 쓰셨네요 ^^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