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언니들이 책 두 권을 번역했다. 본받고싶은 훌륭한 언니들이 번역까지! [위민 투 드라이브]와 [은밀하고 위험한 엄마 구출 작전] 조금씩 소중하게 페이지를 넘기는 봄날. 더 많은 여성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면 좋겠다. 어디에서 개소리를 하고 있어, 라는 반응을 직간접적으로 겪는다. 물론 그런 소리를 듣고도 기분이 좋다면 제가 싸이코지요. 가뜩이나 갱년기 진입시기인지라 하루에도 수십번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견고하고 사방팔방이 막히다못해 뻥 뚫린 저 하늘마저 막히는 건 아닐까 겁먹을 때도 있지만 언니들 번역서 읽으면서 하나씩 이론을 습득해나가면서 잔근육이 슬슬 꿈틀거리는 게 느껴진다. 









 우리는 보다 더 많이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하는 건 아닌지 오늘 엄마와 이야기 나누었다. 내게는 이런 욕망이 한없이 바다처럼 한계를 느끼지 못하고 들끓는데 어째서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욕망들을 감추고 내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의 것처럼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나는 그걸 도통 모르겠어 엄마. 그럼 내가 내가 아니라는 거고 내가 내 욕망들을 감추고 살아야 하니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거잖아. 이게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한달을 보내고 1년을 보내고 10년을 보내다가 또 어느 순간 환갑이 되고 일흔이 되고 여든이 되어서 앗차차 하면 거기에 쌓이는 게 대체 뭐가 있을지 그것들을 과연 내 인생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내 새끼한테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 내 새끼한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엄마. 이 한심한 것아 라는 눈빛으로 잠깐 바라보던 엄마는 건너편 광화문 교보빌딩을 응시하다가 욕망이라 그럼 어디 한번? 하고 말을 이었다. 일흔이 되어서도 일흔이 넘어서도 하고싶은 일 투성이고 사고싶은 것도 많고 갖고싶은 것도 많고 다니고싶은 곳도 많아, 나이가 들어 욕망이 저절로 불꽃 사그라지듯 사라질거라 알았지. 근데 아가 엄마가 일흔이 넘고보니 그 욕망이라는 건 티끌 한점 만큼 사그라들지 않더라. 나이가 들어서도 욕망 운운하면 사람들은 주책이지, 노망난 할머니구만, 말할지도 모르지. 세상이라는 게 나 혼자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나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지만 몸이 고장나다보면 조절하고 자제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탓할 때 있지만 너도 스스럼 없이 네 욕망을 이야기하니 일흔이 넘은 이 어미의 욕망도 좀 이야기해볼까. 우리가 가진 이 보헤미안들을 맨날 죽여야 한다고 그것이 정상적인 거라고 그 길밖에 없다고 그 길을 벗어나면 죽음과도 같은 으스스한 어둠만이 남을 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말 그곳에 죽음의 동굴 같은 으스스한 어둠만 한그득일지 어떻게 알지? 가보지도 않고서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걔네들은 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가고싶은 길은 가보는 게 좋을 거 같아. 가봤더니 불행해지면? 설령 불행을 겪는다고 치자, 하지만 그 불행도 온전하게 네 몫으로 떠안을 수 있다면 그래도 네가 마냥 불행한 거라고 할 수 있겠니. 나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백번 떠들어봤자 나이가 실로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걸 직접 깨닫지 못하면 도루묵이야. 들끓는 걸 일부러 잠재울 필요는 없지. 부러 잠재운다고 해서 잠들 것도 아니고. 그 정도로 잠든다면 그걸 어디 들끓는 거에 비유를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말하지. 우리가 우리 안의 보헤미안들을 죽여야 한다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수연아, 우리가 우리 안의 보헤미안들을 죽이고도 살아갈 수 있을까. 잠깐 잠재울 수는 있겠지. 그 잠깐이 누구에게는 1년일 수도 있고 10년일 수도 있고 한평생일 수도 있겠지. 너는 언제까지 네 보헤미안을 잠재울래? 


























 정희진을 읽는다. 나는 구분짓는 일에 서툴다. 그래서 편가르기를 해서 싸움을 할 때도 구경하는 축에 속한다. 그럼에도 마냥 구경만 하기는 글렀다 싶은 순간들을 맞이할때 있다. 정희진을 읽을 때 역시. 



 누가 더 페미니스트인가, 누가 더 피해자인가, 누가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가를 두고 싸우거나 앞의 사례처럼 기본적인 개념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이미 생물학적으로 여성인데, 왜 공부가 필요한가요?"라고 묻는 여성들에게 나는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공부. 자기 언어를 갖는 것은 피억압 집단에게 가장 필요한 투쟁이다. 남성, 백인 문화는 피억압자의 언어를 두려워하고, 이는 여성 혐오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여성들 스스로 내면화하고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페미니즘의 대중화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제 페미니즘은 가치관이 아니라 자기 계발의 하나가 된 것뿐일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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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4-23 14: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너무 멋있으세요. 성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나이듦에 대한 속박과 편견도 참 큰 벽같다고 , 나이가 드니 그렇게 느껴지네요 ㅠㅠ

얄라알라북사랑 2021-04-23 15:08   좋아요 3 | URL
저도 그생각하면서 읽었어요^^ 눈 들어 보면 교보문고가 보이는 장소적 환상도 생기고요^^ 수연님 글 넘 좋아요!!!!

바람돌이 2021-04-23 15: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흔이 넘은 어머님과 저런 대화가 가능하다니..... 우와 어머님 정말 멋지시네요. ^^ 그래서 수연님이 이렇게 멋진거였군요. ㅎㅎ

수연 2021-04-23 21:08   좋아요 0 | URL
어머니들은 다 훌륭하시죠. 엄마는 불의 여자라서 표현을 뜨겁게 하시는 거 같아요 ^^;;

난티나무 2021-04-23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럽습니다.....

수연 2021-04-23 21:08   좋아요 1 | URL
왜 부러워요, 언니에게는 내가 있잖아!!!!

psyche 2021-04-25 0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받을만한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수연님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너무 기분이 좋아요!!
엄마랑 같이 저런 대화라니. 수연님 어머니도 수연님도 너무 멋져요. 나도 저런 엄마가 되어야겠다.

수연 2021-04-25 17:40   좋아요 0 | URL
저 언니 좋아해요 언니~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 책 조금씩 읽고 있어요. 다 읽고 처음 번역하신 책도 다시 읽어보려고 해요. 지금도 훌륭한 엄마인데 더 훌륭해지시면 어떻게 해요!!

2021-04-27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30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bar21 2021-04-30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저였군요? 본받고 싶은 좋아하는 언니 두 명 중에 한 명이!
와♡♡♡ 설마 내 얘기랴 했네요. 수연님, 넘나 고마운ㅋㅋ

수연 2021-04-30 21:02   좋아요 0 | URL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