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50여명이 채 안 되는 인원이었으니 아마도 고등학생들이 아닐까 싶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벌써 눈물이 흐른다. 높고 커다란 쇼핑몰로 아기자기한 팬시용품을 사겠노라고 모두 우루루루 몰려갔다. 중앙에 아주 커다란 우물 같은 것이 있어서 신기했다. 저 구멍은 무슨 용도로 저렇게 있을까 무서우면서도 신기했다. 마치 입을 떠억 벌리고 있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신나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더듬거리며 영어로 이건 얼마냐 저건 얼마냐 물어보았다. 예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용돈을 더 받아올걸, 세상에 이렇게 예쁜 게 많다니 우리는 너무 들떠있었다. 이내 총소리가 들리고 무시무시한 남자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모두 무서워 바들바들 떨었다. 암전. 더듬더듬 눈을 떠보니 자궁이 빠진 것처럼 아래가 아파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불을 켜야 하는지 더듬거리면서 앞을 향해 나아갔고 어둠에 서서히 눈이 익어갔다. 실수로 중앙에 뚫린 구멍에 빠질뻔 했다. 아찔했다. 목소리를 내어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친구들을 부르고 싶었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인기척이 들려서 그쪽으로 향하니 묶이고 피범벅이 된 동급생 둘을 발견했다. 스위치를 찾았고 불을 켰다. 역시 자궁이 빠진 듯한 아이들 둘이 재갈 물린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게 하고 가까이 가려고 했지만 아이들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두 손이 묶인 끈을 풀어주려고 애썼다. 울면서 웃고 있었다. 왜 내가 여기 있는데 쟤네들은 나를 보려고 하지 않지. 혹시 다른 아이들이 더 있을지 몰라서 한바퀴 둘러보고 왔다. 몸이 이상하게 가벼웠다. 자궁도 없어진 거 같았다. 다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넋이 나가있었다. 몸짓으로 아이들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만 너와 나만 살아남았어 라고. 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나는 죽었구나. 저 아이들을 제외하고 모두 저 구멍으로 떨어졌구나. 강간을 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뛰어내린 아이들도 있었고 강간을 당한 후 스스로 뛰어내린 아이들도 있었고 강간을 당하고 쓰레기 버려지듯 남자들에 의해서 떨어진 아이들도 있었다는 걸 그 모든 과정을 내가 보았다는 걸 그중의 하나가 나였다는 걸 깨닫고 황망해서 주저앉았다. 그래도 말을 하려고 내가 어떻게 죽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귀신이 되었나보다 했다.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뒤이어 떠올랐다. 모두 재갈이 물렸다는 걸. 그 모든 과정이 시작되기 전에 손이 묶이고 재갈이 물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말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귀신이 되어서도 재갈이 물린 채 그대로라는 걸 알고 억장이 무너져 두 손톱에 날을 세워 스스로의 가슴을 후벼파며 울다가 잠이 깼다. 베개가 눈물로 모두 젖어있었다. 잠을 깨고 그 모든 게 꿈이라는 걸 알았는데도 너무 무섭고 두려워 내 입과 내 자궁을 먼저 만져보았다. 



 울면서 더듬더듬 이야기를 하다가 더 기가 막힌 건 재갈이 물려서 귀신이 되었는데도 말을 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구멍에 떨어지면서 남자들이 하는 말이 기억났다. 너희들은 재갈을 물렸기에 귀신이 되어서도 말을 할 수 없다. 너희들 억울한 걸 어디에다가도 말하지 못하리라. 그것이 허튼소리가 아니었구나. 악몽에서 깨어나고난 후에도 억울하고 분한 건 말을 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 누구도 너희들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 말은 입 밖으로 채 말이 되어 나오지도 못할 것이다. 그것은 저주였다. 토니 모리슨을 간밤 읽고 잔 영향이 컸다. 잠들기 전에 누가 나에게 재갈을 억지로 물리는 과정을 상상했다.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그 상황에 놓이지 않을 까닭이 없다. 그 누구에겐가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래도 소름이 꺼지지 않아 두 팔로 소름을 잠재우려고 쓰다듬었다. 사람은 사람에게 언제까지 그런 일을 행하고자 할까. 이 세상은 내게 어떤 곳인지 하염없이 밝고 아름답고 환한 곳일 수 있을지 그 모든 것들을 알면서도 나만의 세계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세상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지. 세상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걸 나는 어떤 식으로 깨우쳐야 하는지,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약하고 어린 아이들을 어떤 식으로 지켜야 할지 그걸 알아야 하는데 이 재갈을 어떤 식으로든지 빼야 할 텐데.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기 전 아이를 깨우고 과일과 샌드위치를 준비하면서 따뜻한 허브티를 잔에 담으면서 이런 꿈을 꾸었어 아가 하고 이야기를 하다 말고 주저앉아 쏟아지는 눈물을 내보냈다. 아이는 당황해서 울지 마, 울지 마, 엄마, 그건 그냥 꿈이야. 나쁜 꿈. 자신이 죽는 걸 보는 꿈은 좋은 꿈이래. 울지 마 울지 마 하는데 엄마가 죽은 건 괜찮은데 이걸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을 못하잖아, 재갈이 물려서. 그래서 그게 더 분해서 하다가 더 울어버렸다. 계속 등을 쓰다듬어주다가 딸아이가 물었다. 자궁이 빠진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엄마도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어서 몰라. 그냥 너무 힘들고 아프면 밑이 빠질 거 같다고 어른들이 그러던데 자궁이 빠지면 엄청 아프고 고통스럽겠지 하니까 스스로의 몸에 손을 대면서 이쯤인가 자궁이 있는 건_ 그래서 그렇다 그쯤인 거 같다 했더니 몸의 중심이 사라졌다는 거네, 자궁이 빠진다는 건. 그러더니 무서워 하면서 왈칵 내 품에 안겼다. 자궁과 재갈. 마땅히 세상에 드러내야만 하는 일과 세상에서 이제 사라져야 할 일들. 그런 것들을 연관지어 생각하며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민아, 자궁과 뇌. 그리고 여기 심장. 체 게바라를 막 다시 읽은 우리는 뭔가 다시 불타올라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면서 말을 나누었다. 자궁과 뇌, 심장. 여기를 단련시키도록 하자 아가! 갑자기 투지가 막 불붙어서....... 친구들은 정희진 샘 다 읽었노라 하는데 나만 토니 모리슨 언니 읽느라 뒤처졌다. 악몽까지 선물받았다. 미친듯 읽고 써라, 생각하고 친구들이랑 논하라, 그런 토니 모리슨 언니 말씀을 막 육성으로 들은 것도 같아서 이 악몽이 내게는 선물이로구나 깨달았다, 오늘 아침. 토니 모리슨 언니 육성 궁금해서 유툽으로 찾아보았다. 제가 이런 표현은 정말 잘 안씁니다만.... 개멋져. 우리 언니. 육성마저. 영어공부할 동기를 하나 더 부여받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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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19 1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슨 꿈을 저리 리얼하게 꾸십니까? 에휴~~ 토닥토닥
옆에서 위로가 되어주는 딸이 있으니 다행이네요. 자궁과 뇌와 심장을 단련하기 위해 저도 토니 모리슨을 읽어야겠네요.
빨리 악몽에서 깨어나시고 힘내세요.

수연 2021-04-19 18:34   좋아요 1 | URL
넘 리얼해서 나중에 소설로 써보려구요 ㅎㅎㅎㅎㅎㅎ 토니 모리슨 일단 저는 이번 기회로 쭉 읽어보고싶어요. 이런 언니랑 동시대를 살아갔는데도 미처 읽지 못했다는 사실에 벽에 머리를 박고 있습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1-04-19 1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렇듯 생생한 꿈이라면 깨고 나서도 잔상이 오래 남을 것 같아요. 읽으면서도, 전 너무 무서워서, 어뜩해! 를 연발하고 말았네요.
죽어서도 채워져있는 재갈이 무섭고요.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겠죠, 인간에게 재갈을 물린다는 건 ㅠㅠㅠㅠ
놀란 가슴을 다독여준 예쁜 아가가 고맙네요. 온라인이어서 고마워요. 아가야, 고마워!!!

수연 2021-04-19 18:35   좋아요 1 | URL
친구에게 전화해서 엉엉 울뻔 했습니다. 예쁜 아가가 단발머리 이모의 댓글 보고 댓글 직접 달려고 하는 거 제가 얼른 막았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고싶은 말이 뭐야? 엄마가 달아줄게! 하면서_ 이모 나중에 언니 수능 끝나고 언니랑 만나고싶어요_라고 전해달랍니다 휴우

2021-04-19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9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티나무 2021-04-20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궁 빠지는 그 느낌 대략 알아요.ㅠㅠ 안다고 쓰고 정말 그 느낌이 맞나 잠깐 생각....
꿈이 너무 무서워요... 저라도 울었을 것 같아요...
토니 모리슨 책 프랑스판으로 두 권 아니다 세 권 그 중 한 권은 한국판으로도 사놓고 아직 못 읽었... 한 권 2/3 정도만 읽고 덮어두었는데 답답해도 다시 펼쳐 끝까지 읽어야 겠다 싶네요. 횡설수설... 아까 처음 페이퍼 읽었을 때 저도 울었어요. 급 고백.

수연 2021-04-20 12:15   좋아요 0 | URL
저는 이게 꿈인 걸 몰라서 완전 패닉이었어요 언니 ㅠㅠ 토니 모리슨은 읽기 힘들어서 중간에 덮은 이들이 많다고 해요 유독. 저도 힘들겠지만 읽어보려고 해요. 울지 마요 언니 가까이 있었으면 안아줬을 텐데 :)

psyche 2021-04-21 0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끔찍한 악몽이었네요. 세상에...이런 꿈을 일어나서도 한참동안 생생하게 남아있더라고요. 그래도 엄마를 토닥여주는 딸내미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수연 2021-04-21 09:02   좋아요 0 | URL
언니 죽는 줄 알았다요 그날 ㅠㅠ 뭔가 계시인가 싶어서 곰곰 거대한 일을 해보자 하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