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빠. 오늘은 오빠 생일이야. 우리가 처음 만난 게 나 스물다섯때인데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어. 오늘도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이 혼자서 아침을 차려먹고 회사로 출근을 했겠지. 주말 부부가 되어 좋은 게 있어? 물어보았더니 성숙해진 거 같아. 내 손으로 밥 해먹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변기 청소하고 있노라면 전업주부의 감정도 느낄 수 있고 음 인간적으로 성숙해진 그런 느낌이야. 응, 좋은 거네. 진보했어, 칭찬해줄게. 겨울이 다시 오려고 하는 시기, 봄이 오는 걸 시샘해서 꽃샘추위라고 하지. 이 시간이 지나면 금방 다시 봄이겠지. 오빠는 이런 날 태어났구나. 우리가 그렇게 한데 어울려서 대학원에 다니고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 가정이라는 걸 꾸리기 전에 모두 한창 젊을때 매주 주말 모여서 소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고 헌책방에 돌아다닐 때 종로와 신촌에서 모였을 때 그때 서로를 찍어주었던 시간대가 지금은 마치 마법만 같아. 그들 모두를 사랑했지만 난 오빠가 제일 좋았어. 사람들 앞에서도 대놓고 이야기했지. 술에 취해서 난 우리 케이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고. 오빠의 글도 좋았고 오빠의 유쾌한 태도도 좋았고 사람들이 서로 싸울 적마다 말리는 것도 항상 오빠였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좋았고 시니컬하게 세상을 곧 버릴 것처럼 싸가지없이 이야기를 하는 나를 앉혀놓고 조용히 타이르는 것도 항상 오빠였지. 중년이 되어 우리가 기쁨과 슬픔을 제대로 된 형태로 표현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오빠는 그걸 표현하려고 애쓰고. 항상 읽고 쓰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여전히 책을 읽고 산더미같은 책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 어느 순간부터 오빠는 책 사는 일이 예전 같지 않아졌어 말하면서도 읽고 쓰고 있지. 수연아 오빠는 아직까지 읽고 쓴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술에 취해 그 말을 했을 때 20년 전 오빠의 문장들이 떠올랐어. 오빠의 문장들을 갖고 애인과도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기억도 나고. 애인의 글을 갖고 오빠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도 기억나고. 오빠와 애인 틈바구니에서 팔짱을 끼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두 남자들이네 방실거리며 사진을 찍혔던 것도 같은데 그 사진은 어디 있는지 기억나지 않아. 오빠가 20년 전 우리들이야 하면서 보내온 사진을 보니 나는 항상 웃고 있었네. 우리는 모두 어쩔 줄 몰라서 좋아서 웃고 있었네. 지우기 싫고 지울 수 없는 우리들 젊은 시절. 모두 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버렸어. 중년이 되어 날씬이는 뚱띵이가 되어버리고 누구는 주름이 엄청 많이 생겼고 누구는 머리카락이 벗겨졌고 누구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버리고 누구는 병에 걸려 약을 달고 살고. 언니오빠들은 모두 어떻게 지내는지. 이제 모두 각자 가정이 있고 자리를 잡아가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하고 곧 쉰이 되려는 이들과 곧 예순이 되려는 이들. 오빠, 항상 건강하고 오빠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우리가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되어도 계속 만나면서 살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어. 오빠는 항상 내게 빛나는 사람이니까. 사랑해. 케이. 행복한 하루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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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4-15 1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내 사랑> 화가 모드 이야기. 정말 재미있게 봤던 영화가 나와서 좋고, 수연님 글 읽으니 예전 생각 나서 좋고ㅎㅎ 다 좋네요 ~~왠지 술을 부르는 글입니다 ㅎ

수연 2021-04-17 13:02   좋아요 1 | URL
저는 영화 아직 못 봤어요 미니님. 영화 보려구요 ^^

붕붕툐툐 2021-04-15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추억여행 떠납니다~~

수연 2021-04-17 13:02   좋아요 1 | URL
우리에게는 찬란한 시절이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