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아주 작은 새끼모기에게 얼굴이 물려 일찍 일어났다. 단톡방에서 기사를 읽었고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팬심으로 그를 만나다가 어느 순간 친구가 되어버렸더라고 친구가 알려주어 그래서 건너건너 보았더란다. 노래보다 별로구나 하고 나는 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시인을 만나고 돌아와 시보다 사람이 별로더라 싶어 실망을 하고 소설가를 만나고 돌아와 소설보다 사람이 별로네 싶어 또 실망을 하고 그냥 책으로만 접하는 게 짱이다 그런 순간들이 쏟아졌다.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더 좋아져야 할 텐데 그러기는 쉽지 않은 법이니까 그게 어떤 식으로 그렇게 사다리를 타게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괴로울수록 소설을 읽는다. 책을 읽고 조금 더 견고하게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한다. 아침에는 숨이 가빠져서 소설을 읽었다. 함께 읽는 책도 쌓아놓았다. 그제야 좀 숨쉬기가 편해졌다. 겨울이 갑자기 눈 앞에 온 거 같아 새벽 으스스스 떨면서 보일러를 돌리고 커피를 내리고 쿠키를 와그작 씹었다. 괴로울수록 읽자. 등교할 딸아이 입힐 스웨터를 서랍에서 꺼내어 탁탁탁. 





 


제인이 한 손을 흔들더니 한숨을 쉬었다가 좌석에 등을 기대고는,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난 거기서 일하는 게 좋았어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제인은 특히 십대 소녀들을 좋아했다. 어리고 실수투성이에 피부가 반들반들하고 겁도 많은,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껌을 딱딱 씹어대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가만 복도를 걸어다니는 십대 소녀들을 제인은 정말로 좋아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걸 알았다. 심한 생리통으로 양호실에 온 소녀들은, 아파서 입술이 바짝 말라버린 채 잿빛이 된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있었다. "우리 아빠는 내가 엄살부리는 거래요." 이런 말을 하는 소녀들이 적지 않았다. 그 말에 얼마나 가슴 아팠던가. 소녀로 사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 일인가! 그녀는 때로 오후 내내 양호실에 있다가 가도록 허락하기도 했다. - P233

"자기는 위험을 감수하는 스타일이 아니지?" 리디아 부인이 새로 한 눈으로 제인을 빤히 보았다. 늙은 여자의 얼굴에서 열여섯 소녀의 눈이 던지는 시선에는 사람을 심란하게 만드는 데가 있다.
"아니지." 제인은 동의하면서도 어렴풋이 모욕당한 기분이 들었고, 밥이 자신의 팔꿈치를 살짝 잡자 남편도 이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는 걸 느꼈다. - P237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지."
"씨팔." 말린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울먹이며 말한다. "선생님, 괜찮으시다면 저 그냥 씨팔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럼 씨팔이라고 해." 그 말을 입에 담지 않는 올리브가 말했다.
"씨팔." 말린이 내뱉었다. "씨팔, 씨팔, 씨팔." - P322

"나는 키터리지 선생님이 어느 날 했던 그 말이 늘 기억에 남아 있어. 배고픔을 두려워하지 마라. 배고픔을 두려워하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얼간이가 될 뿐이다." - P352

때때로, 지금 같은 때, 올리브는 세상 모든 이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걸 얻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한 그것은 점점 더 무서워지는 삶의 바다에서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이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담배 피우는 앤을 바라보며 생각하건대, 그런 안정감을 갖는 데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아이가 필요했다면 사랑으로는 불충분했던 게 아닐까?- P378

"아내가 12월에 죽었어요." 그가 말했다.
올리브는 강만 바라보았다. "그럼 댁도 지옥이겠구려." 그녀가 말했다.
"지옥이요." -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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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04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들도 분명 있죠. 있습니다, 수연님. 그런 사람들 덕에 우리는 계속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테고요. 쳐낼 거 쳐내면서 미워할 거 미워하면서 살도록 합시다.

그나저나 다니엘 스틸 여전히, 꾸준히 읽으시네요. 다니엘 스틸의 소설 자체는 수연님 타입이 아닐 것 같은데 말예요. 전형적인 로맨스.. ㅎㅎㅎㅎ

수연 2020-11-04 11:42   좋아요 0 | URL
올리브 키터리지 다 읽었어요 락방님 아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지 암튼 넘 좋았어요.

다니엘 스틸은 어쩌다가 정말로 계속 읽네요;;; 내 스딸 아닌데 진짜 ㅋㅋㅋㅋ

blanca 2020-11-0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게 참.... 저도 만나보고 싶은 작가들이 있는데 그냥 마음으로만 간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무튼 스웨터‘ 너무 귀여워요.

수연 2020-11-04 11:43   좋아요 0 | URL
아무튼 스웨터 좋아요 블랑카님 읽어주세요!!!

공쟝쟝 2020-11-06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 실망할게 없지만 실망한다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