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사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나다닐 땐 나다니고 보고싶은 이들 얼굴도 보고 그러고 산다. 그런데 동생이 아프다고 해서 아침부터 우울하다. 제부는 손발이 저릿저릿거리다는데 왜 그런가 하고 찾아보니 갱년기 증상일 수도 있다고 한다. 나보다 한 살 어리니까 그치 우리 귀여운 제부도 갱년기구나 싶다. 아침에는 세수를 하다말고 옆머리에 하얀색으로 반짝반짝거리는 은발 두 가닥을 발견했다. 머리 묶으면 바로 잘 보이는 위치인지라 더 반짝반짝거리던데 이걸 뽑아 말아 하고 갈등을 하다가 이렇게 한 가닥씩 뽑다가는 옆통수 다 훤해지겠다 싶어서 그냥 참았다. 갱년기 증상으로 인해서 몸이 확 맛이 가는 걸 느낄 수 있노라고 여러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어지간히 운동 안 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걷거나 체조라도 20분씩 하려고 애를 쓴다. 애써야지 합니다. 아니면 결코 하지 않으려고 하는 몸을 가진 것이다. 전자책 연달아 이틀 읽었다고 눈이 완전히 뽀개지려고 해서 아 노안이란 무서운 거로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다. 대여섯 시간 연달아 책 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나던 시절은 이제 영원히 빠이빠이야. 그리고 미친듯 읽은 것은 요가 관련서였다. 아마도 익숙한 산스크리트어가 자주 나와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던듯. 아 저 산스크리트어 하나도 몰라요 당연히. 하지만 고등학교때 오쇼 라즈니쉬 책 다 읽었던 게 있어서 그런가 막 그때 빠져들었던 그 느낌 받으며 아 이렇게 허망한 세월 같으니라구 아직도 이 마음은 열일곱 그때와 변함 없거늘 몸이 아주 맛탱이가 팍팍 가는 게 느껴진다. 스스로의 몸을 잘 보살펴야 한다. 네 몸은 네 것만이 아니기에 너 하나의 몸이 무너지면 네 몸에 기대는 모든 이들의 중심이 흔들린다. 그러니 네 주변을 잘 보살피기 위해서 네 몸 하나 건사하는 건 결코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 엄마가 말하는 게 무언지 알겠지? 하는 엄마 말씀.



 아는 친척 할머니는 뱀띠인데 지금 92세. 홀로 계신다. 얼마 전에는 할머니의 사위 즉 내게는 먼 이모부가 오랜 대장암 투병을 끝내고 돌아가셨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그 누구도 알리지 않았다. 아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손주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며느리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할머니는 스스로의 가슴을 마구 치면서 왜 나는 아직까지 살아있는 거냐, 나는 왜 아직까지 멀쩡해서 이렇게 내 새끼들을 먼저 보내는 형벌을 받아야 하는 거냐고 열 손톱으로 스스로의 가슴을 갈퀴처럼 긁어대셨다. 가장 예뻐하던 사위마저 먼저 저 세상으로 갔다는 걸 그 몸으로 감당하시기는 힘드실 거라고 여겨 알리지 않았다. 왜 요즘 우리 사위는 전화가 없는가 왜 요즘 우리 사위 얼굴을 보기가 힘든가 하고 계속 찾으신다고 한다. 수많은 자식들이 있음에도 그렇게 홀로 계시는 모습을 가끔 마주하면 살아가는 건 무엇인가 하고 궁금해진다. 사람과 장소와 환대가 마주하지 못할 경우에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비탄에 빠져들게 되고 지옥을 마주하게 된다.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지만 여전히 뇌는 돌아가고 눈은 멀지 않는다. 가슴은 뜨겁고 젊은 시절 열렬한 산책 마니아였기에 두 다리는 아직도 거뜬하다. 모든 책들이 말하는 게 사람과 장소와 환대라는 깔때기로 모아진다. 모든 마주하는 풍경들 역시 그러하다. 여기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장소가 만들어지고 그 장소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따스하면서도 서늘한 환대가 존재하기 마련인지라 그렇게 원은 뜨끈해진다. 환대가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사람들은 서로 느슨해지고 서로와 함께 있기를 저어하며 머나먼 곳으로 시선을 둔다. 그러면 사람들 사이가 헐거워져 장소는 금방 파기된다. 여러가지 형태로 살아오면서 그러한 모습들을 안에서 밖에서 마주했구나 알았다. 



 이사 준비를 한다. 이사를 가기 전에 겨울이 오기 전에 할머니를 만나러 가야겠다. [사람, 장소, 환대]를 다 읽고난 후 요가 서적을 몇 권 읽고난 후 맨 처음 든 생각이다. 그 모든 고통과 그 모든 기쁨이 어느 한켠에 모래성처럼 쌓였다가 스르르 무너져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나날들이 올까봐 이 할미는 그게 제일 무서워, 시설로 들어가는 것도 무섭지는 않은데 그 시설 안에서 내가 사람 대접도 못 받고 이리저리 내 몸이 통나무처럼 굴려지겠구나 생각하면 이 할미는 그게 제일 무서워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것이냐 하고 할머니는 말했다. 안락한 시설로 들어가 다른 사람이 해주는 밥 편히 먹으면서 시설에 있는 친구들이랑 행복하고 즐겁게 놀면 얼마나 좋겠냐고 아이들은 말하지만 그렇게 죄책감을 덜고싶은 마음도 모두 다 알지만 이 할미는 이 나이 되어 생판 모르는 낯선 공간에서 낯선 이들에게 애 취급 당하면서 서서히 바보가 되어가는 게 싫어. 허물어져가는 이 집에서 나 혼자 끙끙거리며 외로워 죽을 거 같아도 멍하니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도 여기 이렇게 있는 게 제일 마음 편해. 언제 어떻게 갑자기 혼자 쓰러져도 괜찮아. 이 할미는 살만큼 살았고 너무 많은 고통을 겪어서 당장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어. 그런데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노라고 아이들한테 마지막까지 짐이 되나 싶어. 원망도 하지 저렇게 다 키워놓았는데 나 하나 보살펴주겠노라고 자기네 집에 데려가는 애가 단 하나도 없어. 그래도 괜찮아. 다 내가 그리 키운 거야. 보물단지 대하듯 물고빨고 예뻐하면서 내 사랑 듬뿍 받은 것들이 다 제 앞길 챙기느라 그러는 거니까 이 할미는 괜찮아. 그 말들. 그 말들. 그 장소와 그 환대와 그 사람이 모두 어우러져 행복한 웃음꽃을 피운 게 바로 얼마 전이었을 텐데 무엇이 그 장소와 그 환대와 그 사람들 모두를 멀어지게 한 건가 하고 묻는다. 사람이 사람 챙기는 게 제일 어렵다. 그러려고 태어난 거지만 스스로 몸도 마음도 챙기기 어려운 시대인지라 누구 탓 하는 것도 어렵구나 했던 선배 말도 떠오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멜롱ㅇ 2021-02-1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수연 2021-02-17 18: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멜롱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