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버크(미국의 문예비평가)
필립 리프(수전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남편)


 한없는 관념의 세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문득 무엇을 그렇게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 있다. 사이에서 모든 것들을 누리려고 하는 건 어쩌면 거대한 망상은 아닐까. 그런 질문을 설거지를 하다 말고 문득.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혹시 다른 인생을 꿈꾼 적은 없었던 걸까. 계속 왔다갔다. 수전이 옥스포드로 떠나는 페이지까지 읽었다. 난 다시 책 밖으로 나와 설거지와 빨래를 하며 저녁때 끼니를 뭘로 할지 냉장고 안을 살핀다. 




   리프의 머릿속엔 대가족이, 손택의 머릿속엔 대도서관이 있었다. (88) 











손택은 이날의 방문을 즐겁고도 불편한 것으로 묘사했다. 당대의 가장 유명한 소설가가, 영웅의 지성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지적 수준을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열네 살 소녀를 만나는 불균형한 상황을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만은 어리지만 조숙한 두 명의 문학애호가를 흥미롭게 여긴 것 같지만, 수전은 "사실상, 우리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손택은 자신의 우상을 실제로 마주 보고 앉아있을 때 시작된 일종의 각성, 문학의 허구는 실제 삶과 다르다는 깨달음을 묘사한다. "나는 내가 속하기를 열망해온 바로그 세계를 다스리는 왕의 알현실에 있었다. (…) 작가가 되고싶다는 말을 하겠다는 애초의 생각은 언감생심 떠오르지도않았다. (…) 내가 만난 남자는 틀에 박힌 말만을 반복했다. 그는 토마스 만의 책을 쓴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심경이 복잡했지만, 말문이 막혀서 뻔한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어긋난 만남이었다."- P66

수전 손택은 열여섯 살에 대학에 들어갔고, 열일곱 살에 결혼했으며, 열아홉 살에 어머니가 됐다. 너무나 맹렬하게 스스로를 밀어 붙여가며 성년기에 진입한 나머지, 마치 청소년기에서 되도록 빨리 벗어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긴 것처럼 보일정도였다. 삶이라는 프로젝트를 위한 기준이 확고했기에, 여느10대 청소년처럼 질문과 체험, 시행착오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대학생활 동안 손택이 따른 인생관은 대부분 이시기의 산물이었다. 여성에게 1950년대는 다름 아닌 사생활로 물러나는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일했던 많은 여성이 집으로 돌아가 이전 세대보다 더전통적인 방식으로 가정에 헌신했다.- P70

한 세미나에서 버크는 거의 1년 동안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승리victory』를 글자 하나, 장면 하나 건너뛰지 않고 꼼꼼히분석했다. 손택은 생을 마감하기 얼마 전에도 힘주어 말했다. "저는 아직도 버크의 가르침대로 글을 읽습니다." 버크의 꼼꼼한 강독의 목적은 의사소통의 극적이고 과장된 측면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인간 갈등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의 문학비평은 형식주의적이지 않았다. 그는 문학의 목적을 사회에 일종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삶에가치 있는 도움을 주고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손택 자신도 나중에 변화를 불러오는 언어의 힘을 믿게 됐다. 손택이 에세이와 문학에 접근하는 방법은 언제나 현재적 현상을 모호함이 없는 명료한 언어로 사고하고 설명해내는 것이었다.- P77

어린 대학생의 이국적인 외모는 독특한 옷차림으로 인해더욱 두드러졌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재주가 있었던 손택은 늘 청바지와 몸에 꼭 맞는 어두운색 스웨터를 입었다. 1950년대 초에 풀을 먹인 속치마와 허리를 죄는 거들이 일반적인 옷차림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건 여성이 입기에 창피한 옷차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관습적이지 않은 옷차림을 하고, 페티코트를 거부했던 수전은 동시대 여성들이 1960년대에 대대적으로 동참한 패션혁명을 앞서갔던 것이다. 필립 리프는 수전 손택이 난생처음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이었다.- P81

전통적인 가정을 꾸리자는 리프의 요구와 학생 신분의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역할에서 점점 더 벗어나고 싶어했던 수전의 욕구가 빚어낸 갈등은 1950년대 미국 가정의 구조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두 사람은 대화로 가득한 관계 속에서도 이갈등만큼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하지만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1951년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Le Deuxième Sexe』을 읽었던 손택은 자아실현을 위해 보부아르의 생각을 점점 더 공격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P87

『인 아메리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손택의 회상은 남편 리프와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 관계의 한편에는 젊고 조숙했지만 삶의 여러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여성이 있다. 그도 도러시아처럼 나이 많고 보수적인 남편의 연구활동을 위해 자신의 삶과 자아실현을 희생한다. 다른한편에는 남편 필립이 있다. 그는 프로이트에 관한 중요한 논문을 쓰면서 손택과 나눈 수없는 대화, 그리고 심지어 손택이조사하고 작성한 내용을 가져다 썼다. 실제로 당시 비평가와학계의 동료들이 프로이트: 도덕주의자의 정신은 두 사람의 공동 저작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리프는 학계의 인정을 손택과 나누려 하지 않았다.-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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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10-15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벌써 읽기 시작하신 건가요. 막 기대되네요.. 수연님 페이퍼 보니.

수연 2020-10-16 08:47   좋아요 0 | URL
스콧님은 벌써 다 읽으셨더라구요 ㅎㅎㅎ 막 읽을 정도로 괜찮은데 오늘도 다 못 끝낼듯해요. 그리고 어디선가 들리는 그의 목소리..... 얼른 여성주의도 읽어야지!!! 움찔 ㅋㅋㅋ

공쟝쟝 2020-10-15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왔다갔다, 서성서성, 그 안에서 찰나에서 느껴지는 느낌의 흔적들을 공유해주어 고마워요😣

수연 2020-10-16 08:48   좋아요 0 | URL
우리 다음에 만나면 소주 왕창 마실듯 ㅋㅋㅋㅋㅋㅋㅋ 왔다갔다 자아 찾기 넘 힘들어요 쟝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