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좋은 걸 보면 생각나는 이들이 있다. 해와 달처럼. 까마득해서 모든 걸 잊었지만 그럼에도 반짝거리고 아름다운 형태로 누군가의 몸을 꾸몄으리라 누군가의 시선을 만족시켰으리라 누군가의 영혼을 위로했으리라 떠올리면 그 시대가 언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음반을 사겠다는 애인과 색연필을 사겠다는 딸아이 따라 잠깐 광화문에 다녀왔다. 너무 많은 책들이 있어서 차마 어느 한 권을 선택할 자신이 없어서 오늘은 그냥 구경만 했다. 줌파 라이리의 책이 표지만 바뀌어서 새로 나왔다. 읽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펼쳐보니 읽었던 것도 같아서 언제 읽을지 알 수도 없는데 싶어서 그냥 매대에 올려놓았다. 니클라스 루만의 사랑연습을 박물관 안에서 조금씩 베어물어서 다 읽었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역시 재미없어서 켁.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달걀과 닭도 조금씩 베어물듯 읽어서 재미없는 부분은 패스하고 다 읽었다. 이 언니는 드글거리는 욕망 때문에 결국 안정된 분홍빛 왕관을 드레스 위에 내려놓고 길을 나서고말았구나 싶어서 저릿거렸다. 욕망은 거대했고 욕심도 어마어마했고  술과 담배를 사랑했고 담뱃불 끌 생각 못하고 깜박 잠들었다가 활활 불타는 침대 위에서 둘째 아들에게 발견되었다. 일어나서 그녀가 맨처음 한 짓은 침대 위에서 나와 쓰던 원고를 챙기려고 했던 거였다지. 문득 언니랑 며칠 전에 이야기 주고받았던 목숨 걸고 운운 그 말이 떠올랐다. 사랑은 좋지 않은 것이다. 사랑의 달콤한 면만 흡입하고 내다버리지 못하고 사랑 자체에 함몰된 그녀를 탓하기엔 내 지난 사랑의 역사가 비참해서리 뭐 또이또이지만 이 언니 대체 별자리 뭐니 하고 기어코 찾아보았다. 내 운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 도덕적 공동체 - 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사람과 인간의 다른 점이다. 이 두 단어는 종종 혼용되지만, 그 외연과 내포가 결코 같지 않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개체가 인간이라면, 그 개체는 우리와의 관계 바깥에서도 인간일 것이다. 즉 우리가 그것을 보기 전에도,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고유한 특성에 의해 이미 인간일 것이다. 반면에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 P3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0-10-11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달걀과 닭 너무 어렵던데 수연님이 써주신 일화는 훅 들어오네요. 난 저러고 살지 말아야지...(하면서 맥주캔들을 슬며시 내다버린다)

Vita 2020-10-11 10:43   좋아요 1 | URL
재미난 곳만 읽어요 유열님, 외교관 부인이었다는데 살림도 다 가정부가 해줬다는데 아이들도 사랑했다는데 남편에게서도 사랑 많이 받았다던데 글 쓰다가 결국 외교관 부인 노릇 못해먹겠다 하고 집을 뛰쳐나와 이혼하고 애 둘 데리고 글 쓰면서 돈 벌면서 전전긍긍 살다가 나중에 병 걸려서 돌아가셨더라구요. 그 인생 맥락에서 보면 자기 이야기 많이 써놨던데 소설 안에. 소설 읽으면서도 난 계속 이게 자기 이야기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역자 후기 읽으니 거기 언니 인생사 이야기 나오더군요. 좀 난해할 때는 난해한데 그래도 언니 글 좋아서 난 다음 책은 사서 읽어볼까 하고 있다오. ^^

moonnight 2020-10-11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활활 불타는 침대 위에서 둘째아들에게 발견-_- 아이에겐 엄청난 트라우마가 남을 것 같은데=_=;;;;;; 담배는 안 피우니 그나마 다행입니다(라며 음주에 면죄부를;;;)

그나저나 작가분 엄청난 미모로군요! 흑백영화 배우 같아욧!♡♡♡

Vita 2020-10-11 10:45   좋아요 1 | URL
응 그러니까요 ㅠㅠ 더구나 원고 때문에 그 불길 속에서 안 나오려고 했다니까 그게 더.....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화염 속에서도 어마어마하게 다쳤는데 얼굴은 안 다쳤대요! 마치 동화 같지 않아요?! 워낙 아름다워서 영화배우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