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오랜만에 친구들과 동네에서 맥주 한잔 했다. 명절 전이지만 젊은이들은 특별히 거리에 나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에 머무르는지 한적했다. 파스타는 맛집이라 기대했으나 내가 만든 것보다 못했다. 이렇게 맛없게 만들다니, 소곤거리니 오빠들은 모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이것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어? 물어보았다. 아 그러고보니 이 사람들에게 내가 파스타 한 접시도 대접을 못했구나 싶어 눈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나중에 만들어줄게, 라는 공수표는 날리지 않았다. 나중에 만들어줘야겠구나, 우리 오라비들, 와인 홀짝거리면서 맛없는 파스타 멕여서 미안했다. 우리는 모두 읽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인지라 그런가 잠깐 곰곰,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으니까_ 그래도 읽는 것도 계속 하긴 하니까 우리끼리 그렇게. 읽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지 않아 다른 일도 해봤지만 결국 돌아갈 곳은 여기밖에 없다는 생각은 이제 화석처럼 굳어졌다. 두 눈이 사라지고 뇌가 통째로 저 머나먼 우주로 유영하기 전까지는 계속 읽을 도리밖에 없다, 이건 운명이니까. 이런 생각을 어제 와인을 마시고 소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고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했다.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 취하지도 않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와인을 하나 편의점에서 사들고 갈까 하다가 참았다. 물을 겁나게 많이 마시고 샤워를 하고 숙면을 취하고 아침 벌떡 일어나 편집장 이은혜의 책을 해장커피 마시면서 다 읽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아서 나중 다시 읽어야겠다. 읽고 편집하고 책으로 내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로구나 깨달았다. 나 같은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겠구나 끄덕끄덕. 읽을거리들은 넘쳐나고 그 와중에서 채 1000권도 안 읽힐지도 몰라 라는 생각을 하면서 훌륭한 책을 편집하는 일이란 나 같은 유리 멘탈에게는 쉽지 않을듯. 따지고들자면 유리멘탈 아닌 인간이 세상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다. 책에서 글쓴이 역시 유리 멘탈 이야기 하니. 이십대 후반 출판사에 입사하고픈 마음에 다녔던 서울북인스티튜트 시간도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쪽으로 가지 않아 다행이다 싶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야 더 커졌겠지만 더 많이 읽기도 했겠지만 들어갔다가 쉽사리 나왔을듯 싶어서. 조금 더 많이 깊이 있게 읽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던 와중에 읽어서 조금 더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되었다. 페이지 사이로 흘러가는 활자들을 향한 애정이 짙어졌다. 계속 그 자리에서 더 좋은 책들을 만들어주기를. 여기 나날이 시력이 약해져가는 한 독자는 계속 읽고 읽을 자신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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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9-30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만든 것보다 못했다!!!!
이 문장이 진짜 눈에 띠용!@@
추석 잘 보내세요, 수연님!

수연 2020-09-30 17:37   좋아요 0 | URL
아니 실상 맛집이라서 기대했는데 파스타값은 호텔보다 비싼데 맛이 없더이다 ㅋㅋ 그 재료로 했으면 누구나 해도 맛있었을 텐데_ 암튼 실망이었어요. 해피 추석 단발머리님. 우리 나중에 파스타 먹읍시다! 와인에다가! (그대는 포도주스!!)

moonnight 2020-09-30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스타에 와인 부러워요♡ 코로나 이후로 밖에서 술 딱 한 번 마셨었네요(막창에 소주ㅎㅎ;) 그 땐 코로나 끝나가는 줄 알았는데 말이죠ㅠㅠ; 해장커피 마시면서 다 읽으신 책을 저도 보관함으로^^

수연 2020-10-01 08:47   좋아요 0 | URL
파스타에 와인 좋았는데 파스타가 맛이가 없어서 아쉬웠어요 와인도 솔직히 직원분이 셀렉해주셨는데 솔직히 그닥;;; 저도 오랜만에 친구들 만난 거라서 좋았어요. 바깥 공기 진짜 오랜만에 ^^ 달밤님 굿 추석!

syo 2020-09-30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스타를 잘 하신다구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후후후.

수연 2020-10-01 08:4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나보다 다른 분들이 더 파스타 잘하실 거 같은데!!!!

han22598 2020-10-01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장커피라니...! ^^ 알콜이 들어간 다음날 모닝 커피가 더 맛났던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였군요 ㅎㅎ

수연 2020-10-01 08:49   좋아요 0 | URL
네 속을 알싸하게 풀어주죠 후훗, 오늘은 술 좀만 마시고 내일 해장커피 또 마실듯 해요, han22598님도 해피 추석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