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다 저 책을 읽다 그러다가 고양이가 다가와서 고개를 비비기 전에 내 솜털이 곤두서서 놀랐다. 고양이 털이니 솜털이라 할 수 없지만 쓰윽 다가오는 그 감촉에 털이 곤두서니 타인의 솜털들을 헤아리게 되었다. 빨래 세 번 돌리고 테라스 한가득 빨래를 다 널어놓으니 장광이었다. 아니 사는 식구가 몇이나 된다고 그 며칠 사이 빨래를 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빨래가 많나 싶어서. 최은미의 목련정전_ 단편을 읽고 딸아이에게 줄거리를 대략 이야기해주었다. 다 듣고난 딸아이 몸에도 솜털이 일어났다. 나 닭살 돋았어, 엄마, 내가 목련이 엄마라면 돌바닥에 머리를 쳐서 죽고싶을 거 같아_라고 과격한 표현 해서 놀랐다. 결국 모두 다 싸이코였던 거네. 목련이만 불쌍해. 딸아이가 말할 때 나무가 제일 잘못한 건가 아니면 목련이 엄마가 제일 잘못한 건가 아니면 집단 광기에 사로잡힌 마을 사람들이 제일 잘못한 건가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다정한지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끔찍한지 단편 안에서 계속 머리를 굴려본다. 죄는 자신이 저질렀는데 죗값은 딸아이가 받는다. 목련 엄마의 지옥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상상만 해도 몸서리쳐 고개를 휘휘 내저으면서 아는 불교 설화 이야기 하나 더 해줬더니 왜 이렇게 끔찍한 이야기만 많아 하고 눈살 찌푸림. 사는 거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불가에서는 이야기해서 그런 거 아닐까 싶은데 대꾸해놓고 그제서야 알았다. 왜 사는 거 자체를 고_라고 하는 건지 아 이제야 알았어. 흐름에 역행한다고 보는 거 아닌가 싶은. 알몸으로 태어나서 그 모든 과정들을 하나씩 체현하는 일이 어느 정도 수고로운지 이제는 좀 알 것도 같기에. 또 읽고 정리하고 그래야 하는데 어느덧 저녁을 할 시간이다. 겹쳐서 읽어서 그런지 일맥상통하는 구절들 있어서 메모해놓았다. 에코페미니즘 읽으면서 오천원짜리 치마 시장에서 샀다고 헤헤 하고 써놓았다. 아 멀었어 멀었어. 밑줄 치다말고 혼잣말. 맥주를 마시면서 오늘은 그만 쉬어야겠다. 독일어 단어 몇 개 외우면 자정이겠네. 앞으로는 매해 목련 바라볼 적마다 목련정전 떠오르겠다. 솜털 긴장.



 


능선으로 해가 진다. 나무의 그림자가 맞은편 산을 뒤덮는다. 하루의 빛이 사라지기 직전, 모든 것들이 가장 반짝이는 순간. 목련은 드디어 괄약근이 완전히 풀어지면서 움직임이 멎는다. 포개진 꽃잎이 저녁을 준비하는 오후의 막바지. 언덕 아래로 밀잠자리가 걷히고 구름이 새털처럼 풀어지며 하늘을 채운다. 귀를 후비는 괴성만이 능선을 타고 미끄러진다.
마을 어디에서나 나무와, 나무에 매달려 죽은 목련이 보인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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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초록 2020-06-22 0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잔인한 이야기였던 기억이... 소설도 지워내고싶은 이야기가 있더군요.. 귀를 씻듯이..

수연 2020-06-23 01:47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것처럼 하도 잔인해서 두 눈을 꼬옥 감고 싶을 때도 있긴 한데 오히려 저는 더 귀가 열리는 그런 느낌이에요. 읽을수록. 까닭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마음 속 어딘가 건드리는 구석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