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바쁜 일주일을 보내고 이제 막 일상으로 복귀. 빨래는 두 바구니 가득 찼고 오랜만에 들어온 집에서는 비릿한 먼지내음이 한가득하다. 읽는 동안 1930년대에 집중했기에 더 그랬을 수도 있고 사람들 입에서 전쟁 이야기가 나오고 쌀값이 오른다는 불안감이 조성되고 북한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더 묘하게 고개가 기울여졌다. 읽는 동안 제일 강하게 나를 사로잡은 인물들은 정희와 여옥이었다. 여성에 대한 안일한 인식이 좀 안타까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좋아서 실상 소설 안에 등장하는 장면이란 정말 손꼽을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좋고 좋았다. 읽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다시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민생단에 대해서는 아는 것들이 거의 없어 조금 더 자료를 찾아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읽을 것들이 쌓여가는데 불안함이 많이 가신 걸 보니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돌아오는 길 맥주를 두 캔 사들고 왔다. 많이 사면 한꺼번에 다 마실까봐. 막걸리와 소주와 와인의 나날들이었다.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고 일은 거의 하지 않고 다만 나무 계단을 쓸고 닦는 동안에는 어렸을 때 살았던 방이동 집이 떠올라 스스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걸레를 들고 닦고 닦았다. 내가 나무를 이토록 좋아하는구나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어렸을 때 뛰어다녔던 방이동 집 마루바닥이 그대로 떠올라서일 수도 있고 국민학교라 불리웠던 학교에서 나무바닥을 반딱반딱거릴 정도로 닦는 그 느낌이 되살아나서일 수도 있다. 하도 그 기분이 좋아서 편백나무로 만든 침대도 계속 쓰다듬었다. 나무와 풀과 커피와 와인과 페이지들. 그리고 입에 단내가 날 즈음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몇몇 이들이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밀린 빨래와 밀린 청소와 밀린 공부와 밀린 풍경들이 한가득이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서 탈의실에서 입어보고 나오니 다들 허걱 하고 놀라더라. 살이 엄청 쪘다는 걸 심히 깨달았다. 다이어트 하고 입게 살까? 하니 조카딸도 딸아이도 여동생도 모두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 시장에서 펑퍼짐한 치마 한 장 있길래 오천원이라 냉큼 집어왔다. 검정이 나아 여동생이 그랬으나 초록이로 사왔다. 들판을 뛰어다니던 여옥이가 이런 치마를 입지야 않았겠으나 어쩐지 여옥이라면 초록이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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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6-20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빴군요. 안 보여서 궁금했슴니다.
요즘 김연수에 꽂히셨나 봅니다.
저는 오래 전 김연수 소설 하나 읽고 그래서 뭐라는 거야하며
소설 한 권 읽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읽으면 좋으려나? 내가 관심있어하는 1930년대로군요.ㅋ

저는 어느새 폐경기고 아니 완경기고 두고 하는 말이 하도 흉흉하여
여기서 더 이상 찌지나 말았으면 소박한 바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젊었을 땐 몸을 옷에 맞힐 수도 있겠지만 나이들면 옷이 몸에 맞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엔 디자인이 좋아 잘만 고르면 멋은 포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Vita 2020-06-20 17:1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그래서 뭐라는 거야_ 여기에서 빵 터졌어요. 스텔라님. 한참 웃었어요. 저도 좀 힘들어하면서 읽었는데 요즘 한글에 꽂혀서 뭐야 한글 왜 이리 완벽하심?! 근데 한국 소설 너무 오래 읽지 않아서 죄책감 밀려오더라구요. 마침 김연수 신작도 나온다 하고 하여 그 전에 읽었던 것도 다시 읽어보고 읽지 못한 소설도 다시 읽어보자 싶어서 읽고 있어요. 실은 이상의 집에 다녀오고난 후에 이상 사진을 몇 장 사갖고 와서 책상 앞에 붙여놓았다가 이래저래 맞아떨어져서 읽게 됐어요. 근데 생각보다 좋더라구요. 1930년대를 좋아해서 특히 더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저도 곧 완경을 앞에 두고 있어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열이 올랐다 떨어졌다 해서 힘들어하고 있는데 얼마나 살이 쪘던지 방심하고 있다가 깜놀했어요. 내 평생 다시는 55 사이즈를 못 입겠구나 싶으니 아쉽기도 하고 그런데 은근 살 붙은 거 신경쓰이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빼기 힘들듯 해요. 먹는 것도 너무 잘 먹고 ^^;;; 이러면서 저녁에 또 맥주에 어떤 안주를 만들어 먹어야 하나 궁리하고 있어요.

stella.K 2020-06-20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이상 생가 다녀오셨삼...?
사진 좀 올려줘요. 궁금 궁금!ㅋ
수연님도 1930년대를 좋아하는군요.^^

Vita 2020-06-20 17:39   좋아요 1 | URL
아 사진 별로 찍은 거 없는데 ㅋㅋㅋㅋ 이상 오빠 사진은 다음 페이퍼 쓸 때 올릴게요 ㅋㅋ 언제 처음 그렇게 관심 있나 싶었나 보니까_ 이지민 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읽고난 다음부터인 거 같아요. 좋아한다고 하지만 잘 알지는 못해요 -_-;; 아 부끄럽다

stella.K 2020-06-20 18:24   좋아요 1 | URL
아, 모던보이! 그거 전 영화로 봤어요.
나름 재밌게 봤는데...
저도 잘 몰라요. 그냥 어느새 끌렸다는 정도.ㅠㅋ

Vita 2020-06-20 21:26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 봤는데_ 원작이 더 좋았던 걸로 기억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