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를 벗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 그 가치에 대해서.

드라마 같은 이야기야, 하지만 살아가야 하니까 거기에 얽매여서 영혼을 고통받게 해서는 안돼. 그러다 금방 죽을 때가 될 테니까. 잠깐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거라고 여겼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곧 관뚜껑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속 터져 죽을 거 같냐. 모두가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누가 그걸 모르나, 어른이 되고보니 언제나 발목을 잡는 일들은 갖가지 형태로 생기고 어쩌면 그게 인생인지도 모르지. 어른이 되기도 전부터 그런 일은 언제나 있어왔고 어른이 된다는 건 그걸 어떤 식으로 해결해나가느냐 그 태도에 달려있는 거겠지. 해결하려고 한 일이 오히려 더 큰 불행을 일으킬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을 놓는다고 해서 기적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 않나. 언제나 점선처럼 생겨나는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 대해서 미리 고민하지마, 설령 그런 불행이 일어난다손 치자. 거기에서 벗어날 길은 다양해. 존재하지도 않는 불행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마. 완벽해지려고도 하지마. 네가 꿈꾸는 완벽한 삶이라는 게 있겠지. 거기에서 조금 벗어날라치면 그런 낌새가 느껴지면 불안한 건 아닐까 싶은데. 인생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 우리가 지구의 반대편에서 이렇게 통화를 하게 될 시간이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알아. 네가 말하는 그런 게 무엇인지 나도 다 알아. 겁내지마. 한번 움츠러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져.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완벽한 인간은 없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얼음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바로 어제 있었던 일 같지만 눈을 몇 번 깜박거리다보니 우리는 어느덧 갱년기야. 눈을 몇 번 더 끔벅거리다가 눈동자가 흐릿해지고 속눈썹이 새하얗게 변하고 방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허공을 멍하게 쳐다보게 될 거야. 그런데 뭘 두려워할 수 있겠어. 뭘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어.

전화통화를 끊고난 후에 왜 그렇게 마음이 편한가 물어보고 알았다.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 말의 처음과 끝에 있어서 판단의 기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시샘과 부러움과 질투와 동정의 형태 없이 무구하게 이야기를 듣고 반응을 하는구나. 다정함의 흔적은 선을 넘지 않겠다는 확고함과 더불어 믿음을 주는 것이고. 만나면 허그해줘야겠다. 왜 이제 나타났니 하고.



뭘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어.

친구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오늘 스트레스 지수는 제로다. 완벽한 하루 따위 없다. 하고 독일어 공부 세 시간만 더 하면 완벽한데......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첫 베스트셀러 [연인]을 출간했을 때 그녀는 일흔 살이었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문학 분야 최고 영예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 평생 알코올의존증으로 고생한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소환해 이 소설을 썼고, 큰 명성을 얻었다.

마르그리트는 1914년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불렸던 베트남의 사이공에서 프랑스어 교사였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불과 몇 년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와 그녀, 두 오빠는 궁핍한 상황에 놓였다. 어머니는 훗날 어찌어찌 돈을 모아 작은 농장을 사지만 마르그리트의 어린 시절은 고난과 빈곤, 가정폭력으로 얼룩졌다. 10대 초반 그녀는 나이가 훨씬 많은 부유한 중국인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게 되는데 그 경험을 소설화한 것이 [연인]이다. "내 삶에서 아주 이른 시기였지만 너무 늦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마르그리트는 사이공을 떠나 프랑스의 소르본에 입학했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은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 30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해 소설, 에세이, 시나리오 등을 발표했다.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의 시나리오는 그녀가 마흔다섯 살이던 1945년에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성인이 된 후 마르그리트는 평생 알코올의존증으로 고통받았다. "한 시간마다 와인 한 잔"이라고, 훗날 그녀는 고백했다. 예순여덟 살 때 간경화 진단을 받고 힘겹게 술을 끊었다. 이 힘들었던 회복기를 거친 직후 쓰기 시작한 작품이 [연인]이다. 닷새 동안의 혼수상태, 기관절개수술, 그 외 여러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후에도 여러 편의 소설을 더 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다 1996년, 여든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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