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20대 시절 내가 나와 남자들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 애쓰며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들이 성취한 것에 무임승차해 대리로 포상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내 내부에도 불꽃이 있었지만 혼자서는 그것을 어떻게 태워야 할지 몰랐고, 섹스와 사랑에 공격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과 적극적으로 세상을 사는 태도를 혼동했다." (042)


 "60대에 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이 길을 20대에 출발했더라면 겪었을 경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 때에 따라 내 나이를 느끼기도 하고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강의실에서 학생들 사이에 앉아 수업을 듣거나 질문을 던질 때면 나는 스물네 살인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학생이다. 스터디그룹에도 들어가고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개념 하나를 놓고 씨름하기도 한다. 그러다 이따금씩 유리문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 그렇다. 아참, 당신은 우리랑 술 마시러 가지 않을 거죠. 원샷이나 비어퐁 게임도 안 할 거고, 왜냐면 그런 거 안 하시잖아요. 이런 말도 듣는다. "와, 강의 첫날인데 교수님이 벌써 당신을 아네요." 그럼 나는 말한다, 내가 교수와 동년배이기 때문이라고. 내가 한 인생 경험은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내게 아주 멋진 계산기가 있는데 꼭 필요하다고 해서 구매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없어 옆 사람에게 물었다, "이거 사용 방법을 모르겠어요. 가르쳐줄 수 있나요?" 나의 성공은 부분적으로는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직관적인 테크놀로지 사용에는 좀 뒤떨어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만큼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상처 입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한다. 이 또한 내 성공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63-64)

  


 "그동안 남성은, 혹은 백인 남성은 오로지 자유만을 배웠다. 이것이 이 나라의 망할 정신이다. 서부로 가라, 자유로워져라, 국가와 함께 성장하라. 미국 역사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라면 '서부로 가라'의 실상이 매우 달랐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 상징성은 남아 있다. 한편, 여성은 여성의 가치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남편과 아이가 없다면 사회를 위해 소용되는 데 있다고 배웠다. (너무나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선택에는, 그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출산과 육아가 아닌 어떤 다른 방법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헌실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포돼 있었다.) 여성은 속박을 원한다고 배워왔다. 미디어 산업 전체가, 그리고 지난 세기 미국 광고업계 상당수가 이러한 전제를 기초로 했다. 우리는 다른 선택은 실패이고 위험이라고 배웠다. 남성은 모험을 하지만, 모험하는 여성은 도주 중인 것이 틀림없으며 대개는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071)



 "나이들어가는 일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은?

 - 나이드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자신의 힘이 젊음이 주는 것, 즉 아름다움에 근거한다는 그릇된 믿음 때문이다. 내 조언은 그런 믿음이 거짓임을 알라는 것이다. 그것은 늘 거짓이었다. 우리의 힘은 결코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있지 않다. 우리 힘은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가에 관한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하라." (100)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불안과 혼란이 가중되었을 때 더 그랬던 것도 같다. 보이는 것이 그대로일 때도 있었고 사람들이 잘못 볼 때에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다. 탈을 쓰고 행복한 척 웃는 게 지겨울 때는 단골 술집에 가서 독한 술을 두 잔씩 석 잔씩 마시기도 했다. 시선이 흐릿해지는 순간이 좋을 때도 있지만 그 흐릿함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갈까봐 두려워 입술을 꽈악 깨물고 과거로 시선을 회피하기도 했다. 친구들이 좋은 건 언제든 속을 내보여도 좋으니 그런 걸 테지만 나이테를 하나씩 둥그렇게 내 몸에 말아갈때 시선과 판단의 온기와 냉기조차 싫어서 더 안으로 파고들었던 것도 같고.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여겼다. 그리고 정확히 마흔이 넘어서면서부터 나이 많은 언니가 이야기한 것처럼 투명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게 참 싫을 거 같았는데 이게 딱 맞는 옷처럼 느껴져서 깜짝 놀랐다. 중년이 된 우리들이 가끔 서로에게 닿지 않는 위치에서 툭툭 속을 털어놓는 일이 좋다. 파트너 이야기를 하거나 가끔 파트너와의 육체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할수록 열에 일곱은 더 이상 육체 관계를 갖지 않는다, 연례 행사처럼 하기도 하지 농담을 말하는 것처럼 진실을 말하고 아이들 이야기를 나눈다. 육아는 생각 외로 고달프다. 중년이 된 우리에게도 아직 아이의 흔적들이 남아 있어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이기적으로 굴 때가 많고 내가 아이였을 때 느꼈던 그 무한한 외로움이 내 아이에게서 보여질 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도 한다. 다만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외로움이 구체적인 형태로 변할까봐 표현을 차마 하지 못했고 내 아이는 표현을 너무 구체적으로 잘 서술한다는 것. 그럼에도 책임은 나날이 흐를수록 더해져가고 나이드신 부모님이 언제 아플까봐 언제 큰 병을 얻게 될까봐 언제 돌아가실까봐 전전긍긍. 만나야 할 이들은 늘어가고 그게 공적이거나 사적인 테두리가 아니어도 억지로 만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더 힘이 생긴 것만 같은 느낌은 그 불안이 다른 식의 베일을 갖추고 있기에 그런 게 아닐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더 늘어가는 것도. 누구는 벤츠를 몰고 다니고 누구는 아우디를 몰고 다니고 누구는 여전히 버스를 타고 다니고 누구는 아직도 뚜벅이다. 나날이 자본의 안정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더 이상 반항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구름이 잔뜩 낀 하늘 아래 서서히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데 어딘가에서는 겨울 바람과 같이 매서운 바람이 불어 두꺼운 파카를 입고 바다를 향해 낚시줄을 던진다. 나이테가 서서히 몸을 향해 달려온다. 나이들어 멋진 이들은 여전히 이삼십대 같기만 하다. 아름다워 보기 좋지만 그건 어쩐지 비이성적으로 느껴진다. 아름다움을 싫어할 까닭은 없다. 그 아래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피똥 쌀 정도로 인내하고 고통을 겪을 테니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내 몸을 그렇게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찌그러지는 주름살이 너무 보기 싫다고 비싼 크림을 이모들이 갖다주어도 한 번 바르고 한 달이 지나는 동안 깜박 하게 된다. 화장품보다 책이 더 좋아, 책 사줘 하면 책은 주름살만 더 늘게 해, 그러니 그딴 걸 뭘 읽어 말하는 이모는 주름살이 하나도 없다. 예순 다섯인데. 화장품을 하나 사서 바르면 책도 한 권 사서 읽어주어야 해, 그래야 나중에 치매 안 걸린다 하하 웃으면 뭐라고 이년아! 버럭 하는 우리 이모. 나도 이모 따라 헬스장에 따라가 한 시간 동안 운동해봤지만 솔직히 예순 다섯인 우리 이모가 나보다 더 체력 좋은듯. 젊은 것이 고거 하고 헥헥거린다고 구박받았다. 반성합니다 하고 헥헥거리고 또 운동을 안 해요. 이번 생에 운동짱은 못하려나보다 체념을 살짝 하고 싶었던 찰나 [우리는 매일 새로워진다] 나이든 언니들은 못하려나보다 이딴 소리 하지 마, 말씀하신다. 하나를 얻게 되면 하나를 잃는다. 그게 바르게 느껴진다. 근데 운동도 하고 책도 읽어야 하다니요 볼멘 소리가 나오기도. 오늘은 페이지들을 조금 여유있게 뒤적일 수 있는 날. 아침을 먹으면서 아몬드의 곤 이야기를 했다, 딸아이와. 곤이는 영혼이 깨끗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이용만 당했던 건데 영혼이 얼마나 천사 같았으면 그렇게 이용을 당했는데도 나쁜 아이가 안될 수 있었을까? 엄마. 정말 대단한 아이 아니야? 나같았다면 진짜 악마 같은 아이가 되었을 텐데_ 작가가 그린 곤이의 깨끗한 영혼을 그래도 캐치했군 아 하고 토스트를 깨물다말고. 새벽 일찍 일어나 백래시를 좀 읽었고 여유가 된다면 에코페미니즘 진도를 좀 나갈 수 있을듯. 시간이 흐른다. 나이테가 서서히 몸을 감싼다. 더 많은 나이테가 몸에 생길수록 나도 거대한 나무처럼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나무 몸통에 손바닥을 갖다대고 물어본다. 두렵기도 하지만 무섭다고 마냥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몸짓이 더 이상 누군가의 관심을 끌 수도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으니 내가 할 일은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재빨리 정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인생을 누가 살아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왜 이렇게 뒤늦게 깨달은건가 한탄도 하지만 한탄만 하기에는 초침이 째깍째깍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라. 한없이 다정해지고 한없이 그득해질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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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6-02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과 책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참 좋습니다^^ 주름살과 흰머리, 예전과 달라진 체형이 한숨 나오긴 하지만-_- 어떻게 지나온 세월인데 생각하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고. 책이 함께 하니 그저 좋고..^^ 수연님 좋은 글 (감탄하며@_@;)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연 2020-06-03 11:02   좋아요 0 | URL
달밤님 말씀이 딱 들어맞아요. ˝어떻게 지나온 세월인데˝ 크크크_ 아침에 댓글 다니까 좋네요. 밤에 댓글 달면 어쩐지 막 센치해질 것만 같은데 ^^

제리맘 2020-06-08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 님의 글을 읽다가 아! 오늘같은 날은 미뤄놓은 책을 읽다가 죽다... 이러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겼습니다. 책이 고픈게 아니라 삶이 조금 고달픈거겠죠?
세탁기 소리, 일단 껐고 저는 오늘도 여전히 바쁨을 좀 미뤄봐야겠습니다.^^
날이 무척 더울 예정인가 봅니다.
정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__^

수연 2020-06-10 00: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리맘님, 소중한 시간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오늘은 정말 얼마나 덥던지 물을 온종일 들이켰습니다. 다정은 종일토록 이어지면 좋겠어요. 내일도 덥다고 해요! 에어컨 바람 조심조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