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 사회는 공적 가부장제의 진전과 여성운동의 성과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는 시기였다. 그와 함께 영페미니즘 운동을 비롯해 여성운동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IMF 이후, 노동시장이 남성 중심적으로 재편되면서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성들과 그 목소리에 대한 백래시가 시작된다.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나 가족과 같은 전통적 가치들에 기대는 풍조가 되살아나고, 이는 여성에게 다시 모성을 강조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백래시의 밀레니엄'이 열렸다. 2000년대 초 '건강가정기본법'이 만들어지고, 낙태가 여성의 죄로 재지정되었으며, 불임률의 증가와 더불어 떨어지는 출산율은 음란하거나 이기적인 여성들의 책임이 되었다. 슈퍼우먼 콤플렉스라는 1990년대의 신조어는 이제 여성들의 과로를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근거가 되었다. 미국의 반격 세력들이 페미니즘이 "여성의 번아웃"을 초래했고 페미니즘으로 인해 "출산을 연기하는 직장 여성들 사이에서 '불임 유행병'이 크게 번지고" 있으며, 그렇게 "자식 없이 불행한 싱글 여성 세대를 양산했다"(46-49)고 비난했던 것과 놀랍도록 유사한 패턴이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의 고통과 과로는 페미니즘의 실패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기획의 산물이라 보는 게 더 정확하다. 팔루디의 말처럼, 여성들의 비참과 불행은 페미니즘 탓이 아니라, 페미니즘이 충분하지 않은 탓일 뿐이다.  (14) 




 
























  남성 페미니스트는 가능하다. 아니, 그건 이 망가진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정체성이다. 벨 훅스의 말을 당신에게 전한다. "더 가까이 오라. 페미니즘이 당신의 삶과 우리 모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지켜보라. 더 가까이 오라. 와서 페미니즘 운동이 진정으로 어떤 것인지 직접 살펴보라. 더 가까이 오라. 그러면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임을. (72)



 '여성 일베'도 다르지 않다. 이 말은 한국사회에서 혐오가 만연해지는 맥락을 단순화하고 일베가 표상하는 사회의 모순을 남녀 간 성 대결로 간단하게 바꿔버린다. 혐오의 문제를 남녀의 성 대결로 치환했을 때 '손 안 대고 코 푸는 자'들은 누구인가. 여성과 남성 사이의 임금 격차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는 자본가들에게나 이득이고, 복지를 '가사'라는 이름의 여성 무급 노동으로 해결하는 것은 책임을 최대한 가볍게 하려는 정부에게나 이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와 싸워야 할지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사유의 게으름이야말로 혐오와 싸우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78) 


 

 버틀러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다나를 노예제가 가장 혹독했던 1800년대로 보내 그 시대를 경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국에서 '흑인됨'이란 무엇인지, 그 역사성을 탐구한다. 하지만 버틀러가 이런 이야기를 쓴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는 가정부 일을 하셨고, 나는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킨}을 쓴 이유는 이런 기분을 풀기 위해서였다. 결국 나는 그녀가 한 일들 덕분에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사람들이 그들의 부모가 삶을 빠르게 개선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모를 부끄러워하거나, 혹은 좀 더 맹렬하게 부모에게 화가 나 있었던 1960년대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날의 사람들을 노예제 시대로 보내고 싶었다." 

 버틀러가 말하는 "1960년대에 일어났던 일"이란 미국에서 흑인민권운동이 꽃을 피웠던 시기, 민권운동가들이 노예의 삶을 살았던 윗세대에게 쉽게 격분하곤 했던 것을 의미한다. 어떤 민권운동가들은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부모세대를 진심으로 원망하고 저주했다. (213-214) 



 에코 페미니스트인 마리아 미즈가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라는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어머니와 암퇘지'라는 일화다. 1945년 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농부의 딸이었던 미즈는 독일 아이펠의 서쪽 마을에 살고 있었다. 당시 마을은 먹을 것과 온정을 구걸하는 독일 패전병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저녁 수프를 끓이고 감자를 삶아 그들을 거둬 먹였다. 미즈의 다섯 오빠는 모두 집을 떠나 참전 중이었다. 

 패색이 짙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좌절했다. 더 이상 아무도 씨를 뿌리지 않았고, 집마다 암소와 돼지는 다 도살당했다. 모두가 무기력하게 종전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미즈의 어머니는 암퇘지 한 마리를 이웃 마을의 수퇘지에게 데려갔다. 마을 사람들은 어차피 다 망하게 생긴 마당에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어머니를 비웃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비웃음에 이렇게 답했다. "삶은 지속된다." 

 5월이 되자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전쟁이 끝났다. 다섯 오빠는 집으로 돌아왔고, 미즈네 암퇘지는 열두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마을에 살아남은 유일한 새끼 돼지들이었다. 어머니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다섯 아들과 가족을 위해 새끼 돼재를 생필품과 맞바꾸었다. 

 이야기의 끝에 미즈는 이렇게 질문한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었지만, 과연 이 삶이 저절로 계속된 것이었을까?" 이어서 덧붙인다. "어머니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신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며 기도만 하고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삶을 지속하기 위서는 행동해야 하고, 항상 자연과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삶을 지속하기를 원한다면 삶에 대한 책임도 같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와 여성들은 일상생활의 책임을 어깨에 짊어져왔다." 

 기대와 희망이 무너져 내린 광장의 폐허를 돌아보며 세상이 망했다고 한탄하면서 시류에 떠밀려가는 것은 언제나 쉽다. 무엇보다 어렵지만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일은 당장 잡아먹어도 부족할 돼지를 부득부득 먹이고 키워내는 일이다. 전쟁 같았던 2018년을 마무리하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이는 2019년을 맞이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삶을 위해 돼지를 키우는 그 마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23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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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5-12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의 속도라면 제가 4년 동안 읽은거를 수연님이 4달 안에 주파할 정도여서, 매우 기쁘고 엄청 기대됩니다.
우리 수연님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가려 하는가.

Vita 2020-05-12 14:53   좋아요 0 | URL
4개월은 무리입니다 단발머리님 크크크 저 귀촌할지도 모르는데 ㅋㅋㅋㅋㅋ 어디로 가려 하는가 에서 귀촌_이라고 답하고 혼자 빵 터졌어.

비연 2020-05-12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정녕 <백래시>를 일으신? 이런.. 제 책장에 꽂힌 <백래시>가 웁니다. 으헝...

Vita 2020-05-12 14:53   좋아요 0 | URL
이제 막 펼쳤어요 비연님, 같이 읽어요요용!!

블랙겟타 2020-07-23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킨>을 어디서 추천해서 읽어보려고 알라딘으로 검색해보았더니 2달 전 수연님의 글을 만나게 되었네요. 이렇게 예상치 않게 아는 분의 글을 만나게 되면 되게 반가워요 :D
당시엔 이 페이퍼를 못보고 이제 봐서 조금 늦은 감이있지만요..;;
곧 읽어봐야겠어요. 이 책 ㅋㅋㅋ

Vita 2020-07-23 15:49   좋아요 1 | URL
전 이때 못 읽었어요 겟타님 ㅋㅋㅋㅋㅋ 그래서 이제 다시 읽으려구요. 우리 곧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