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벅꾸벅 졸다가 완독했다. 간단하게라도 남기기, 짐가방 싸면서. 내용은 다니엘 스틸 언니의 다른 소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아주 고된 여정을 겪는 상류층 아줌마의 평범한 일상으로 시작된다. 아픈 아들을 오랜 세월 간호하느라 많이 지친 상태로. 남편은 한없이 차갑고 권위적인 나이 많은 은행가, 어여쁜 딸아이는 이제 얼추 커서 대학에 들어가고_ 아픈 아들을 돌보느라 자처해서 고립 생활을 하는데 얼마나 외로웠을지. 유일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남자사람친구가 없었다면 이자벨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알 수 없는 일. 친구에서 애인으로 이 패턴이 다니엘 스틸 언니 소설에서는 많이 보이는데 읽다가 문득 아무래도 이 언니 인생 이야기가 소설 곳곳에서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싶어서 이력을 살펴보니 예상이 맞았다. 차갑고 권위적이고 나이 많은 첫 번째 남편의 모습을 빌려와서 고르동을 창조한 게 아닐까 싶은. 사진에서 보다시피 화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처음부터 상류층 배경이 아니었을까 했는데 의외로 네 번째 소설이 소위 대박을 터뜨리면서 상류층 사회에 제대로 진입을 시작했노라고.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마어마하게 다작하신다고 하니 소설의 레벨과 무관하게 존경심이 일었다. 소설도 다작, 아이들도 다산, 결혼도 몇 번씩이나 하셨고 자식을 잃는 비극도 겪었고 그 와중에 단단하게 자신의 세계를 형성했다. 운이 좋았다고 심플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 자리까지 가기까지 그가 겪었을 인생의 무게를 소홀히 여기기란 예의에 어긋난다. 어느덧 다니엘 스틸 언니 소설도 아홉 권째 들어선다. 상류층 전업주부로서 행복하게 인생을 꾸려나가던 여인이 중년의 위기를 맞이하면서 겪는 이야기들은 대개 어른들의 이야기다. 로맨스는 소설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지만 다니엘 스틸 언니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언니들의 마음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전업주부들이 제일 많이 읽는 쉬운 소설가 중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는데 내가 독자의 입장에 서보니 알겠다. 


 얼마 전에 읽은 여성성의 신화에 등장하는 전업주부들 인터뷰가 겹쳐지는 대목도. 친구 사귀기와 재능 발굴하기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엄마 병원에 모시고 가서 소독하고 바람 쐬고 싶다 하셔서 병원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스벅에 가서 엄마 좋아하는 달달이들 잔뜩 앞에 놓고 한 시간 동안 수다. 엄마가 이렇게 아프고보니 역시 깨닫는 게 많아져, 넌 지금 그렇게 주저앉아서 세월아 네월아 보내면 안돼 수연아, 엄마 말 명심해서 잘 들어 하고 말말말. 마침 여성성의 신화도 다 읽었겠다 더 키스도 다 읽었겠다 내 안의 말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놓으니 엄마는 백퍼 네 편 하고 응답해주셨다. 홈드레스 입고 우아하게 남편과 자식을 보살피는 게 인생 최고의 꿈이라 여겼던 엄마가 일흔이 되어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자식이 많건 자식이 없건 그와 무관하게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확고하게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해, 섭섭한 게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각자 인생이 있는데 엄마도 짐이 되고싶은 생각은 없어, 자꾸 힘이 없어지고 아프니까 속상할 때도 많지만 불평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있다면 좋겠지만 서로 마음만 상할 뿐이니까, 엄마는 다시 건강 되찾으면 내가 하고싶은대로 다 하고 마음 편하게 죽고싶어 이제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지금 이 나이에 누구 눈치 보면서 있는 것도 못할 짓 같아,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나랑 다르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단단하게 엄마가 생각하고 계셔서 다행이다 싶었다. 건강은 첫째, 공부도 첫째. 줄 수 있는 것들이 많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걸 소홀히 여기는 건 아니지만 다른 형태로 사랑을 주는 것도 생각해보기, 더불어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이 지금보다 더 많다면 좋겠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시 짐가방을 싸면서 다지게 되는 것들.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걸 다니엘 스틸 언니의 입맞춤을 읽으면서 깨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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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2 2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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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3 12: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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