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도시, 서울 - 당신이 모르는 도시의 미궁에 대한 탐색
이혜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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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8년 11월 9일 국일고시원 화재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책을 읽기 전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서로에게 탓만 하던 불유쾌함, 고시원의 건물주가 알고보니 어마어마한 강남의 부유층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던 정도. 한국일보 이혜미 기자의 르포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지옥고 아래 쪽방 2부 대학가 신쪽방촌_ 국일고시원 화재를 계기로 서울의 쪽방촌에 대한 기사를 쓰기로 결심하고 차곡차곡 모아놓은 기록들. 일명 쪽방을 '살아서 들어가는 관'이라고 한다. 사람이 거주하기에 불가능하다싶을 정도인 1.25평 공간에 다달이 내는 월세는 25만원에서 40만원까지.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힘들어 '살아서 들어가는 관'이라고 불리운다. 사상 최악의 거주지인만큼 겨울에는 한없이 춥고 여름에는 한없이 덥다. 가난에 구렁텅이를 파고 들어간다면 나오는 곳, 쪽방. 대다수 남성들이 머무른다. 열에 아홉이 남자들인 거주 공간에서 여자는 한여름에도 문을 열어놓을 수 없다. 무시로 술에 취한 남자들이 옷을 벗고 다니기가 일쑤인 곳에서 잠깐이라도 틈을 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누구나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쪽방촌에 들어가기보다는 정부가 운영하는 노숙인을 위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닫힌 방 안에서는 생각조차 닫힌 것이 된다." (E.H.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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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주민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병들어 사회에서 쓸모있는 인간들이라는 영역 밖으로 내몰린다. 대부분 가족들과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 독거인들이다. 그 수많은 쪽방촌에서 나오는 월세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가. 모두 부유층들이다. 사회의 꼭대기에 있다고 하는 이들이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돈을 한 푼까지 탈탈 털어가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 모든 고리들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책을 읽고난 후 2000년의 쪽방촌 기사와 2010년의 쪽방촌 기사를 찾아 읽어보았다. 사회에 자리를 잡기 전 돈 없는 이들이 잠깐씩 머물곤 하던 과거의 쪽방들, 과거의 사창가에서 일명 손님을 한 명씩 받곤 하던 쪽방들이 현재는 한 번 들어가면 영영 나올 수 없는 살아있는 이들의 무덤 같은 곳이 되어버렸다. 2020년 쪽방촌은 아직도 유지된다. 비단 서울이 아니어도 세계의 가난한 이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아보면 어김없이 쪽방촌이다. 그들의 열망은 하나같이 똑같다. 이 곳을 하루 빨리 벗어나 집다운 집에서 살아보는 것. 그들 중 꿈을 이루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본주의의 최첨단 속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고시원의 평당 월세는 15만2,685원. 서울시 8구 아파트의 평균 평당 월세는 4만6437원으로 고시원이 아파트보다 평균 평당 월세가 3.28배나 높다. 동시에 청년 3명 중 1명(37.1퍼센트)꼴로 일을 하고 있거나 구직 중인데도 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며 좁고 비싼 집에서 사는 걸 버텨야 하나요. 주거권 보장은 국가 책무입니다. 보증금 500만 원에 관리비 포함 70만 원의 월세를 내다보니 밥 먹을 돈도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생활비 반 이상이 월세로 나가 전 어느새 '하우스푸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20세, 대학생 천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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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 한양대 대학촌인 사근동은 신쪽방촌이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6평짜리를 10개 만드느니 5평짜리를 12개 만들어 월세를 더 받는 게 이득이다' 한달 월세를 50만원이라고 쳤을 때 한달 500만원이 수입원이 되는 것과 600만원의 차이는 꽤 크다. 주거자들의 혜택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단 챙길 때 잔뜩 챙기고 보자_가 하나의 모토다. 한양대는 우리나라에서 꽤 괜찮은 대학이다. 학생들이 가고싶은 대학. 학교에서는 기숙사를 짓고 싶지만 주민들과 끝없이 마찰이 일어난다. 영역을 침범하려는 이들이라고 여기는 걸까. 수많은 월세를 차곡차곡 모아 한몫 볼 수 있는데 감히 이곳에 기숙사를 짓겠다고! 그렇다면 목숨 걸고 싸울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는걸까? 한양대 신쪽방촌에 거주하는 전씨는 강남 아파트에 사는 이들의 마음을 내면화한다. 자신도 곧 차곡차곡 플랜대로 이곳을 벗어나 아파트로 들어가고 제대로 된 번듯한 집을 가질 것이라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마음,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마음, 내 땅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내 아파트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내 아파트의 한평 땅값을 어떻게 해서든지 올리겠다 하는 아파트 소유주의 마음, 똘똘 뭉쳐 어떻게 해서든지 아파트값을 지키겠다는 마음, 살아있는 동안 내가 이 건물을 갖고 있는 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월세를 받아 재산을 불리겠다는 마음, 재산을 한껏 불려서 내 새끼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픈 마음, 가능하다면 이 금싸라기 같은 건물을 고스란히 내 새끼들에게 물려주고픈 마음, 그래서 이 비정하고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만은 내 새끼들만은 피해를 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그런 것들 아닐까. 그 마음들이 모두 모이고 모여서 자본주의는 더 탄탄해지는 것이 아닐까. 페이지들을 넘기면서 영화 기생충이 저절로 떠올랐다. 여기는 우리의 공간, 선을 넘고자 한다면 목숨 걸고 용납하지 않겠다는. 그 선과 그 계단을 감히 넘어보겠다 하는 마음. 어떻게 해서든지 선을 넘고 나도 그 공간에 있어보겠다는 강한 의지. 대한민국 서울이 어떻게 '착취도시, 서울'이 되었는지를 그 너른 망을 따라가다보면 알 수 있게 된다. 

가난을 숨기는 게 미덕이 된 사회에서, 자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직시하게 만드는 질문은 불편하다. 이처럼 내밀한 고민과 스스로 마주하기도 쉽지 않다. 사근동 신쪽방에 사는 이들과 심층 인터뷰를 한 뒤, 가장 마지막 질문으로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물론 모두 불쾌한 티를 역력하게 냈다. '나는 지금 가난하지 않으며, 당장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버티는 중이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내면화한 까닭에서다. 여러 사람이 '정신승리'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그러나 이는 현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래 가능성을 전제하며 잔인한 착취 구조의 작동을 간과하는 것에 다름없다.

물론 전씨의 절대적 조건은 상위5퍼센트 안에 드는 조건의 청년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200만 원이 넘는 월급, 300만 원으로의 임금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정규직, 부모님이 마련해주신 보증금 4000만 원,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한양대 학사 졸업장 등.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런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신쪽방'이라는 열악한 주거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경제적 이익에 눈멀어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이나 윤리 없이 기숙사 신축을 반대하면서도 청년들의 고혈을 빨아 부를 축적하는 '신쪽방' 건물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고통받는 청년의 귀에 맴도는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 경구. 그리하여 버티고 정신승리하는 것은 청년 개인의 몫이다. 이 모든 연쇄 작용이 병든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세상이 얼마나 가혹하게 청년들을 각자도생과 자력구제로 내모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착취해 피라미드 한 층을 올라가는 누군가에 대해 얼마나 윤리적으로 무딘지를.

(190-191)





                       * 도서를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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