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학교는 지배 세력의 이념을 교육하는 곳이기에 교사들에게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시민권을 주지 않는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현실이라는 말만큼이나 억압적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요구할 때, 누구 또는 무엇을 기준으로 중립을 요구하는 것인지 물을 줄 알아야 한다. 그 기준은 말할 것도 없이 권력이다. 따라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권력의 요구에 따르라는 것으로, 그 대부분은 요령을 체득한 비겁함의 다른 이름이다. 현실적인 힘의 작용 앞에서 적절히 보신하면서 명분을 챙기는 태도에 가깝고 그것은 자유인의 대척점에 있다. 교사들 중에는 학생인권이 교권과 충돌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교권과 학생인권은 제로섬게임의 관계가 아니며, 우리 근대 교육이 군국주의 일제 강점기에 뿌리내린 역사를 인식하지 못한 데서 온 단견에 지나지 않는다. 교사들이 자기 일터인 학교에서 주인 되기를 바랄 때, 먼저 해야 할 일은 권위적, 관료적 공간으로 남아 있는 학교를 민주적 공간이 되도록 하는 일로서 학생인권 신장과 같은 선상에 있다. 내가 존중받을 때 남을 존중하게 되듯이, 내가 복종할 때 남에게도 복종을 요구하는 법이다. 억압에 맞서기보다 복종을 내면화한 교사일수록 교권을 앞세워 학생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게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교사라면 응당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싸워야 마땅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사도 정치적 동물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정치적 시민권이 없는 교사가 학생들을 주체적인 민주시민으로 육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는 교사들은 물론 교육의 모든 주체들에게 1976년 독일에서 '정치교육에 대한 방향'을 주제로 좌우 정치교육학자가 토론한 후에 정립한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살펴보기를 두 손 모아 권한다. 독일인들은 학생들에 대한 정치교육과 관련하여 다음 세 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첫째, 교화 금지 - 학생들에게 지식이나 이념의 주입과 같은 강제적 교육을 금지한다.

둘째, 논쟁성 유지 -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이 되는 것은 수업 속에서도 논쟁성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이해관계 인지 -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이해 관계에 따른 정치적 안목을 기르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 참여 역량을 기르게 한다.

잠시 바보 같았던 내 모습을 솔직히 드러내자면, 나는 이 원칙의 내용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눈물이 복받쳐 오르는 걸 제어할 수 없었다. 첫째, '교화 금지'는 학생들에게 지배 이념을 강제로 주입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그것은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 금지다. 둘째, '논쟁성 유지'는 나에게 정치적 동물인 학생들의 사유세계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준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셋째 '이해관계 인지'는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 있으며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의미였다.

우리 학교는 독일 학교의 완벽한 대척점에 있다. 첫째, '교화 금지'와 정반대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가 강력하게 이루어지며, 둘째, '논쟁성 유지'와 정반대로 중립을 지키라는 그럴듯한 주장으로 권력이 요구하는 것 이외에는 침묵을 강요하며, 셋째, '이해관계 인지' 역시 정반대로 학생들의 정체성은 철저히 무시한 채 객관적 사실만 숙지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학생들이 정치적 견해를 갖거나 정치에 참여하도록 이끌기보다는 탈정치화로 이끈다.

몇 년 전에 전교조 조합원인 사회 교과 교사들이 노동과 노동자에 관해 고등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조사했다. 학생들은 노동을 "하지 않을수록 좋은 것"의 첫째로 꼽았고, 나중에 노동자가 되리라고 전망한 학생은 단지 5퍼센트에 불과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다수 학생들은 노동자가 될 터인데, 노동에 대해 하지 않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 단지 5퍼센트만이 노동자가 되리라고 예상하는 학생들... 이미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의 소유자들 것이다! 대다수 학생들이 '조물주 위 건물주'를 희망하고 있다. '노동 없는 부'가 왜 문제가 되는지 묻기는커녕 그것을 지향한다. '일베' 현상은, 효율과 경쟁의 이름으로 탐욕까지 가치화한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식, 예비 노동자로서 가질 수 있는 자존감이 전무한 학생들이 욕망을 마음껏 실현할 수 없는 데서 느끼는 박탈감과 일탈된 인정 욕구가 결합되어 나타난 괴물적 현상이다. (158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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