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님, 당신은 귀족이십니다. 지위도 높으시며 재산도 많으십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그저 태어나신 일밖에 더 있습니까?" 


 보마르셰(1732-1799)의 희곡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주인공 피가로의 말이다. 여기서 피가로는 백작 집의 하인이다. 그는 거침없는 말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이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인이 어디 감히 귀족한테 비아냥거린단 말인가. 하지만 시대는 달라지고 있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1784년에 나왔다. 계몽주의가 비로소 꽃피던 시기였다. 

 이때까지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할 줄 몰랐다.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정해졌다. 귀족으로 태어나면 평생 귀족, 아버지가 농부라면 평생 농부의 인생을 사는 식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세상의 운명까지도 결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유럽 전체가 기독교를 따르던 시대, 성경에는 신이 세계를 만든 뒤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었다. 나락으로 떨어질 세상에서 구원받으려면 성경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했다. '인생 진도표'는 부모의 직업에 따라 결정되었다. 게다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매뉴얼'이 되어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왜 누구는 귀족으로 태어나 떵떵거리며 사는지를 따져선 안 된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세계는 이 모양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니 머리 굴리지 말고 주어진 대로 사는 게 속 편하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지고 있었다. 1500년대부터 과학은 눈부시게 뻗어 나갔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와 갈릴레이(1564-1642)는 성경을 뒤집는 주장을 내놓았다. 성경에 따르면 태양은 지구 둘레를 돈다. 반면 과학에 따르면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 그뿐 아니라 베살리우스(1514-1564) 같은 이들은 몸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직접 갈라 보았다. 이렇게 과학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눈부신 성과가 세상에 쏟아져 나왔다. 

 과학은 세상을 훨씬 잘 설명해 냈다. 사람들은 점점 성경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리고 스스로 따져 묻기 시작했다. "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우주는 어떤 방법으로 움직이고 있을까?" 등등을 말이다. 예전 같으면 감히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할 물음들이었다. 

 항해술 또한 사람들의 머리를 깨워 주었다. 유럽인들은 큰 배를 몰고 세상 곳곳으로 뻗어 나갔다. 그러자 피부 색깔과 사는 방식이 다른 이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그때까지도 유럽인들은 오직 기독교인들만이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착한 야만인'들이 정말 많았다. 꼭 기독교를 따르지 않아도 세상은 얼마든지 잘 돌아가고 있었다. 넓게 볼수록 생각도 많아지는 법, 삶의 방식에 하나의 정답만이 있다는 믿음은 점점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인쇄 기술은 사람들의 지식수준을 한껏 높여 주었다. 인쇄기가 나오기 전까지 책은 무척 비쌌다. 일일이 손으로 베껴 썼던 탓이다. 기계로 많은 책을 찍어 낼 수 있게 되자 책을 읽고 쓰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높으신 분들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게 된 덕분이다. (25-27) 



 감정에 흔들리는 이들은 어느덧 덜떨어진 인간 취급을 받게 되었다. 냉철한 이성은 사사로운 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혁명가들의 단호하고 차가운 표정을 떠올려 보라.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은 과연 아름다웠을까? 프랑스 혁명 때에도, 혁명가들은 동료들까지 서슴지 않고 처형했다. 합리적인 생각은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야만인보다도 더 끔찍하게 만들곤 한다. 

 그뿐 아니라 정신이 깨인 이들은 자존심이 높다. 그래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려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하려면, 내가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앞세워야 한다. 이래서 세상에는 희생양이 필요하다. 계몽된 사람들은 덜떨어진 야만인과 분명하게 다를 때 더 돋보인다. 유럽인들이 자기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무시했던 이유다. 

 유대인들은 또 어떤가. 2차 세계 대전 때는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이를 계몽주의의 당연한 결과로 본다. 계몽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작업은, 자기와 다르고 못한 이들을 분명하게 하는 과정과 함께 이루어진다. 나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을 앞세우고 싶을수록, 유대인들을 악하고 덜떨어진 부류로 몰고 갔다. 계몽주의 안에 '왕따의 씨앗'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32-33) 



 감기가 조금씩 몸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두루마리 휴지를 두 통 코 푸느라 다 썼다. 타이레놀 이알을 레몬수와 함께 꿀꺽 한다. 오늘은 도서관에 가는 날이다. 얏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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