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초가 되도록 일하고 자신의 심장 박동에 귀를 기울인다. 시멘트는 아껴야 한다. 시멘트는 잘 살펴야 한다. 시멘트는 젖으면 안 된다. 시멘트는 날아가면 안 된다. 그러나 시멘트는 흩어지고, 자기는 헤프면서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인색하다. 우리는 시멘트가 원하는 대로 산다. 시멘트는 절도범이다. 우리가 시멘트를 훔친 게 아니라 시멘트가 우리를 훔쳐갔다. 뿐만 아니라 시멘트는 적개심을 키운다. 시멘트는 흩어지며 불신의 씨를 뿌린다. 시멘트는 간교하다. (42) 



  아주 잠깐씩 읽고 덮고 다시 읽기, 그러다가 마주한 문장들. 오래 전에 읽었던 아파트 공화국 겹쳐서 밑줄 긋고 또,  




  깊숙이 기운 몸 붉게 웅크려

  반달은 저물 양

  하늘을 떠가네 


  나는 조용한 입속말로 내게 그 글귀를 선물했다. 잇새에서 시멘트가 버석거리고, 말은 금방 부서졌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종이도 아껴야 하지만 잘 숨겨야 하기도 했다. 글씨가 적힌 종이와 함께 붙들리는 날에는 당장 감금실로 끌려갔다. 너무 좁아 서 있을 수밖에 없고, 오물 냄새가 진동하고, 독충이 우글거리는 지하 십일 층의 콘크리트 갱도 그 위로 철망이 덮여 있다. 

 발을 질질 끌고 숙소로 돌아오는 저녁이면 나는 자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시멘트는 점점 줄어든다. 그렇게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나도 시멘트로 만들어졌으니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난 사라질 수는 없는 걸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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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1-23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시멘트도둑을 언급하시니 얼마전 기사가 난 진짜 시멘트도둑 성신양회가 생각나네요^^;;; 수연님 설 명절 잘 보내셔요^^

수연 2020-01-23 23:35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