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잠들기 전에 이클립스를 읽다가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는 딸아이를 발견하고 아가 왜 우니? 물어보니 엄마, 내 인생의 인생작을 만났어. 벅차서 눈물이 저절로 나오네. 오. 하는 반응을 보이니 막 웃더니 아니 눈 아파서 우는거야. 더 읽고싶은데 내일 학교에 가야하니까 오늘은 그만 잘래. 트와일라잇 시리즈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웹툰을 끊었다, 딸아이가. 정신을 잃고 웹툰을 폰으로 보는 모습 보고 열통 터졌다가 그냥 꾹꾹 눌러참았는데 스테프니 메이어에게 고맙다는 카톡을 보내고싶어진다. 다음 페이지를 읽어야 하니까 로맨스 웹툰을 볼 시간이 없는 것. 열한살 꼬마의 인생작이라_ 하고 딸아이가 자는 모습을 확인하고 책상에 불을 켜고 앉아 딸아이가 소중하다는듯 꽂아놓은 트와일라잇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다. 한 시간 휙 지난 거 확인하고 내일을 기약하고 나도 잠자리에. 뱀파이어 꿈을 꾸지 않고 아빠 꿈을 꾸었다. 아빠가 모습을 직접 드러내지는 않았는데 막둥이를 통해서 이거 누나한테 꼭 전해주라고_ 그리고 아빠의 필체로 적힌 글자를 바라보았다. 꿈속에서 아빠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아주 먼 나라로 여행을 간 걸로 설정이 되어있어서 아 보고싶다 아빠 하고 꿈속에서 생각했다. 죽음을 너머 만남을 기약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이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는 만남을 기약하는 게 가능한 일이니까 꿈속에서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아빠에게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등교하는 딸아이를 챙겨주고 커피를 내려 조금 더 읽고 빨래를 널기 전에 메모. 근데 좀 웃겨서 키득키득거린다. 마흔셋 로맨스에 빠져서 다니엘 슈틸이랑 트와일라잇 읽고 있으니까 그냥 좀 막 웃겨서. 아무 생각없이 다른 이들의 사랑 행적을 쫓아간다는 게 노천 온천탕에 앉아 이름 알 수 없는 새소리를 듣는 기분이다. 나 열한살 인생작 뭐였지 돌이켜보니 나는 올리버 트위스트 축약본이었나 가물가물하다. 빨래 다 널고 청소 다 하고 내일은 미세먼지 잠잠해진다고 하니 환기시키고싶은 마음 꾸욱 눌러참고 요가 삼십분 하고 라떼 만들어서 뜨끈하게 트와일라잇에 빠져보겠습니다. 일하고 있는 애인에게 책이랑 커피 사진 찍어서 전송했다. 답톡_ 마흔셋 아줌마와 열한살 아가 취향이 비슷하십니다. 맞아, 거울을 보면 낯설기 그지없어. 열다섯 아이가 무슨 저주를 받아서 마흔셋으로 순식간에 변해버린 그런 느낌이야. 하고 까똑.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화장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울을 전혀 쳐다보지 않는 순간들이 쌓여간다. 아 그리고 거울 속 주름살 헤아리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얼마 전 대중탕에서 마르그리트 뒤라스 언니와 완전 똑닮은 할머니 만났다. 신기해서 계속 몰래몰래 훔쳐보았다. 





 



세 가지는 아주 확실했다. 첫째, 에드워드는 뱀파이어였다. 둘째,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그의 일부는 내 피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셋째, 나는 돌이킬 수 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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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19-12-11 1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요즘 아이들은 책도 빠르군요^^;; 저 열한살 때 인생작은 끝없는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ㅎㅎ

수연 2019-12-11 19:19   좋아요 0 | URL
모두 다 각자의 성향이 있는 거 같아요. 저희집 아가는 이제 곧 사춘기 시작인지라 로맨스 웹툰 어마무시하게 보던 중이었는데 그 욕구를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대체해준듯 싶어서 ^^ 감사해요. 내년이 되면 또 내년의 인생작이 등장하겠죠. :)

stella.K 2019-12-11 14: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나이 때 <빨간 머리 앤>이었는데...
인생작이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땐 그런 말도 없었거든요.
그냥 좋은 책. 간작하고 싶은 작품했는데...

그런데 수연님은 아가라고 부르시는군요. 그냥 좋아서요...^^

수연 2019-12-11 19:20   좋아요 1 | URL
저는 빨간 머리 앤_ 만화로 엄청 봤던 거 같아요 주말 아침마다 엄청 기다려하면서. 저 아가라는 말 좋아해요 그래서 아가아가 애기애기 이런 말 자주 합니다 ㅋㅋ 근데 호칭이 그 사람을 만든다고 이모님이 막 뭐라 하시더라구요, 왜 다 큰 애한테 아가아가 라고 하냐고 -_-;;; 흑흑

단발머리 2019-12-11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에 저말고 저 책을 좋아할만한 아이는 저 시리즈를 다 읽었으나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난 정말 수연님의 미니어처를 꽈악 안아주고 싶을 따름입니다.

수연 2019-12-11 19:21   좋아요 0 | URL
저는 아무 기대 없이 펼쳤는데 빠져들고 있네요 중반부 접어들면서부터 ^^;; 이거 읽다가 다른 책 읽기 미루고 있는중입니다 ^^

moonnight 2019-12-11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혀 관심 없다가 티비에서 보여주는 트와일라잇 영화를 무심코 보다 그만 홀딱^^; 그 후 책을 사서 전 시리즈를 허겁지겁 밤 새워가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오랜만에 느꼈던 두근거림이었어요. 호호^^
따님도 수연님도 참 사랑스러워요♡♡

수연 2019-12-12 10:09   좋아요 0 | URL
처음에는 분명 아 아가들의 사랑 이야기구나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읽었는데 중반 지나니까 그때부터 빠져들고 있어요. 시리즈 다 읽고 원서로도 읽어보고 싶어져서 1권 원서 벌써 사왔어요 문나잇님 ㅋㅋㅋ 오늘은 뉴문과 종일 지내볼까 하고 있어요 ^^

카스피 2019-12-12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와일릿 시리즈가 마국에선 10대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알고 있는데 뭐 수연님 따님도 11살이라고 하니 틴에이저이므로 읽을만 하겟네요^^

수연 2019-12-13 09:47   좋아요 0 | URL
애매모호한 열한살이네요 ㅋㅋ 근데 틴에이저 소설인데 사십대 아줌마도 물개박수 치면서 읽고 있어요~

blanca 2019-12-15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도 트와일릿 시리즈 우리 열세 살 웹툰 중독 딸에게 권해 볼까요? 인생책이라니 너무 귀엽고... 저는 약봉지에 떡하니 사십 대라고 적혀 있는 걸 보면 이게 내 나이인가? 이게 실화인가? 싶어 순간 멍해집니다. ㅋㅋ 삼십 대는 적응이 좀 되는데 사십 대는 왜 이리 낯설게 느껴질까요?

수연 2019-12-16 21:34   좋아요 0 | URL
트와일라잇 시리즈 강추합니다. 저도 잠시 쉬었다가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요 블랑까님~ 음 저는 내년부터 나이 이제 안 세려구요 ㅋㅋ 그냥 마흔셋이라고 계속 우기려고 해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저 곧 마흔넷인데요 계속 이렇게 말하고 다니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