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들기 전 커피 두 모금 마신 게 탈이 나서 새벽 세 시에 일어나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고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고 결국 잠을 설치고 딸아이 등교 준비를 하고 사과를 아삭아삭 베어물면서 오늘 뭘 할 지를 생각. 계속 다니엘 슈틸 책을 두 시간 정도 읽을 계획. 단어를 모르는 게 많아서 제대로 단어 정리를 하고싶다는 마음. 한겨울에 입던 패딩을 꺼내서 입히려고 보니 얼마나 자랐는지 낑겨서 결국 내 패딩 입혀서 등교시켰다. 소매가 좀 길어서 그렇지 몸통은 얼추 맞아서 엄마가 5키로 다이어트하고 네가 5센치 더 크면 우리 얼추 옷 같이 입을 수 있겠다 싶어서 쿡쿡 웃었다. 날이 차가워지면서 볼에 살짝 얹힌 기미를 제거하려고 했는데 내가 여기 살짝 낀 엄마 기미와 주근깨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빼지마 라고 해서 진짜 기미 제거하지 말아야 하나 하고 진심으로 갈등했다. 다니엘 슈틸을 읽으면서 알게 된 건데 휘둘리고 싶지 않다. 휘둘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볍고 낡아서 더 무게감이 없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밤에는. 더 가볍고 더 낡게 만들어 그 어느 곳에도 담기게 하지 마옵소서 하고 내 마음에 깃드려는 악한 것들을 물리쳤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친한 이웃분들이 댓글을 남기셨는데 그 중 센스짱, 더 가볍고 더 낡게_ 이건 기미를 빼지 않겠다는 뜻이고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뜻인가요? 빵 터졌다. 커피 마시다가 진짜 뿜을뻔. 


다니엘 슈틸을 읽다보니 좀 많이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에 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지만 아침밥을 먹으면서 나뭇가지 하나 뿐질러서 내 마법 지팡이 좀 만들어주면 어때 엄마 아 마법사 되고싶어 환장하겠다 하는 딸아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 책의 힘을 절감하게 된다. 세상과 나날들의 중심축이 되어주는 건 오롯이 해리 포터다. 만 10세 여자아이의 머릿속에는 오롯이 해리 포터만이. 반에서도 학원에서도 해리 포터를 읽은 아이들의 그룹과 아직 읽지 않은 그룹으로 나뉘어 읽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해리 포터 안의 용어들을 갖고 대화를 이어간다고. 알리스 머튼의 노 룻츠를 계속 들으면서 산책을 하는데 옛날 열망들이 오롯이 되살아나는 게 느껴졌다. 다니엘 슈틸을 읽으면서 이 통속적이고 아줌마용 소설이라는 핑크빛 책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다니는 동안 어린 시절에 열망하던 것들을 아직까지 몸 속 세포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좀 충격을 받았다. 결국 나는 이런 인간이 되고싶었던 거고 이런 인생을 꿈꾸었던 것이며 이런 풍경들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는 거 아닌가. 아 그랬던 거였구나 그랬던 거였어. 더 낡고 더 가벼이 만들어 그 어느 곳에도 담기게 하지 마소서. 그렇게 제발 플리즈 뽀르 파보르, 씰부뿔레, 빗뜨빗뜨. 


해리 포터 대체 언제 읽을겨? 대화가 안 통하잖아~ 오늘 아침 등교하면서 물어보길래 다니엘 슈틸 언니 책 다 읽고 바로 라고 약속을 해버렸다. 조앤 케이 롤링 작가님은 완전한 천재야, 세상에 이런 천재가 있을 수 있을까. 오, 사랑해요 작가님_ 하고 책을 읽다가 막 하늘을 보고 울부짖는 딸아이를 보면서 아 드디어 크는구나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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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1-20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하나만 놓고 보자면 저는 해리 포터에 노관심이라 읽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조카가 좋아하네요. 그래서 저도 처음부터 찬찬히 해리포터를 읽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모의 삶이 쉽지 않아요...

수연 2019-11-21 09:56   좋아요 0 | URL
저도 해리 포터 읽을 생각 전혀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해서 슬쩍 건드려보려고 해요. 겨울을 해리 포터와 함께 보내게 생겼어요. 이모의 삶도 화이팅.

단발머리 2019-11-20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 넘게 아이가 해리포터 이야기만 하는데도 같이 읽지를 못 했어요. 후회가 좀 되요.
제가 장담합니다.
1년 이상 해리포터 이야기만 해요.
두 분은 꼭 성공하시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수연 2019-11-21 09:56   좋아요 0 | URL
1권 읽어보고 읽히면 읽고 안 읽히면 패스하는 걸로 ^^ 근데 1년 이상 주구장창 이야기 들으려면 억지로라도 읽어야 하나 하고 갈등도 살짝 해봅니다 ^^;;

cyrus 2019-11-2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아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안 읽어봤어요... ^^;;

수연 2019-11-21 09:57   좋아요 0 | URL
나도 판타지 안 좋아한다고 여겼는데 어쩌면 엄청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싶었어. 사이러스 삼촌도 기회 되면 읽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