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슈틸(이라고 읽으면 안됩니다 대니얼 스틸이라고 읽어야 옳은듯)의 소설을 어젯밤 제대로 펼쳤다. 약 다섯 페이지 읽고 11월을 맞이하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친구와 다음 약속 날짜를 정하려고 보니 11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는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는 것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 편에 속하는데 너무 속이 상해서 이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한 까닭이 무엇인가 하고 어젯밤 곰곰 헤아려봤다. 딸아이가 해리 포터를 읽는 두 시간 동안 나도 집중해서 다니엘 슈틸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겨우 챕터 8장까지 읽고 패리스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하고 기다리던 와중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약 한 시간 동안 더 읽었다. 계속 사랑만을 외치던 패리스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아 나는 그가 정말 열나 싫어_ 라고 말할 때 아 이제야 이 여자가 정신을 차리는구나 싶어 가독성이 붙겠다 하는 순간 메모를 하기 위해서 멈춤.

11월에 넷플릭스를 하나도 시청하지 않았다. 결국 12월에는 넷플릭스 결제를 하지 않기로 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점에 도달했다. 나는 지독히도 내 시간을 훼방놓는 것들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정말 오랜만에 깨달았다. 관심과 사랑이 만일 집착으로 느껴진다면 그건 내가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실로 집착일 수도 있다고 여기니까 좀 무섭기도 하고. 지금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시간을 쏟고싶은 일, 내 공간을 함께 나눠주어도 전혀 거리낌이 없는 이들과만 만나고싶다. 그건 한편으로 독이 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생략한 채 무언가를 도모한다는 건 쉽지 않다. 조금 더 활동하고 싶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그저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도전해보고 실패해도 늦지 않아. 어젯밤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십대 초반의 노숙자를 보았다. 항상 나이든 노숙자들만 보았는데 주름살이 이제 막 자리한 팽팽한 얼굴을 보고 이제 겨우 사십이 되었을까말까 그렇게 보이는데 왜 저 나이에 노숙의 길을 택했을까 싶어 절망스러웠다. 노숙자의 표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샐러리맨 같은 표정이기도 했고. 재수를 할 무렵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 아 혹시 인생이 나를 미친듯 할퀴고 지나가면 나도 노숙자가 될 수 있는 거잖아 하는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 때가 있었다. 종로 한복판에서 노숙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 생각이 퍼뜩 났다.

어제는 누군가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나는 가지 않지만 준비를 도와주면서 드는 생각, 탄생과 죽음 정확히 그 한복판. 오늘 계획은 다니엘 슈틸 챕터 18장까지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들 옮겨 적기. 11장 구절 읽는데 작년에 스페인에 가려고 준비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날이 확 추워졌다. 정말 이렇게 추울 때 길거리 한복판에서 집이 없는 자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걸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보금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을 까닭들을 헤아려본다.

영어공부를 위해서 펼쳐든 소설책인데 의외로 건질 것들이 짭짤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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