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잡힌 삶을 사는 데는 습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앙심 깊은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습관을 옷처럼 입고 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요한 일보다는 사소한 일에 습관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다. 더 심각하고 흥미로운 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더 복잡한 일은 하루 더 기다리는 경우가 많지만 단순한 문제들은 바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습관을 통해, 그 현명한 도움을 통해 스스로를 아주 훌륭하게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습관은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우리를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숲속의 새나 산언덕 위의 여우는 사소한 것을 위해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들에게도 습관은 옷 같은 것이며 사실상 신체 생활의 구조 그 자체다. 생명 유지를 위해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하는 것이다. 짝짓기, 둥지 만들기, 가족 부양하기, 이주, 겨울에 더 따뜻하게 무장하기, 이 모든 일들이 제때에 정성을 다해 이루어진다. 이 일들에는 생명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장난스러움, 우아함, 유머도 들어 있지만 말이다. 또한 나무는 잎을 억제하지 않고 때가 되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돋아나고 스르르 떨어지게 한다. 물도 어느냐 마느냐를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 온도의 법칙에 맡긴다.

신앙심 깊은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서 무릎 꿇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도하며, 커피 한잔 하거나 긴급 뉴스를 듣거나 영화를 끝까지 보기 위해 기도 시간을 미루지 않는다. 습관이 그들의 삶이 된 것이다. 그런 정해진 기도 시간을 제약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에겐 그 시간이 내면의 삶을 살찌우는 기회다. 그 시간은 기도의 시간으로 정해지고 이름 붙여진 주님의 시간이다. 기도 시간에 그들은 안달복달하는 삶을 초월한다. 다름과 기발함은 달콤하지만, 규칙성과 반복 또한 우리의 스승이다. 신에게 집중하는 일은 무심히 행할 수도 없고 베니스나 스위스를 여행하듯 한 철에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거기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겠는가? 화려할 수도, 소박할 수도 있지만 정확하고 엄격하고 친숙한 의례가, 습관이 없다면 신앙의 실재에 (하다못해 도덕적인 삶에라도) 어떻게 도달할 수 있겠는가 (애매하게 말고)?

우리 삶의 양식은 우리를 보여준다. 우리의 습관은 우리를 평가한다. 우리가 습관과 벌이는 싸움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꿈들을 말해준다. 나는 헌신과 유머, 둘 다에 진지한 여우가 되고 싶다. 기나긴 겨울에 대비해 육중한 문을 닫는, 용감하면서도 순응할 줄 아는 연못이 되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빛나는 삶에, 순백의 행복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직은. (28-30)

나는 헌신과 유머, 둘 다에 진지한 여우가 되고 싶다.

기나긴 겨울에 대비해 육중한 문을 닫는, 용감하면서도 순응할 줄 아는 연못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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