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의 유명한 영화감독이었던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행복을 삶의 목적으로 보는 견해를 다음과 같이 정면에서 거부한다. 


 러시아에서는 작가 코롤렌코를 즐겨 인용하는데, 그에 의하면 "새가 날기 위하여 태어나듯이 인간은 행복을 위하여 태어났다"고 한다. 이 같은 주장처럼 인간 존재의 본질을 멀리 비껴가는 주장은 없다고 생각된다. 행복이라는 개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하여 나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만족을 의미하는가? 조화를 의미하는가? 인간은 항상 불만에 가득 차 있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어떤 실현할 수 있는 과제의 해결을 얻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인간됨은 손쉬운 만족이나 안락을 추구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데 있다는 얘기다. 너무 진지하고 너무 무거운가? 타르콥스키에게 행복은 큰 의미가 없다. 혹 행복의 긍정적인 의의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마 무한을 향한 도정에서 우리를 잠시 휴식케 하는 쉼표와 같은 역할로서일 것이다. 타르콥스키가 추구하는 것은, 또 인간이라면 궁극적으로 마땅히 추구해야 한다고 그가 생각하는 것은, 어떤 기성의 가치가 아니며 고정될 수 있는 어떤 상태가 아니다. 짐작건대, 타르콥스키는 고정된 행복이란 변화와 발전이 없는 존재에게만 허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52-53) 




 '고정된 행복' 오늘의 밑줄 긋기에서 밑줄 두 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