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후에도 혼자 내 방에 틀어박히지 않고 그 아가씨들과 어울렸다. 아가씨들은 내일 떠난다고 했다. 아가씨들과 친구인 예비 수녀님들 몇 명이서 잠시 짬을 내어 주전부리거리를 마련해 가지고 언덕방으로 와서 큰방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며 회포를 풀었다. 나는 여기 와서 텔레비전을 처음 본다. 그 동안에도 바깥 세상은 올림픽의 열광으로 날이 새고 지는 듯 들뜬 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소리뿐이어서 보는 둥 마는 둥했다.

그 중 어린 수녀님이 속세의 친구에게 하는 소리가 문득 내 관심을 끌었다.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 얘기였다. 남동생이 어찌나 고약하게 구는지 집안이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왜 하필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 비관도 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세상엔 속썩이는 젊은이가 얼마든지 있다, 내 동생이라고 해서 그래서는 안되란 법이 어디 있나?' '내가 뭐관대......' 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동생과의 관계도 호전이 되더라고 했다.

'왜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와 '왜 내 동생이라고 저러면 안되나?'는 간발이 차이 같지만 실은 사고의 대전환이 아닌가. 나는 신선한 놀라움으로 그 예비 수녀님을 다시 바라보았다. 내 막내딸보다도 앳돼 보이는 수녀님이었다. 저 나이에 어쩌면 그런 유연한 사고를 할 수가 있었을까? 내가 만약 '왜 하필 내 아들을 데려갔을까?'라는 집요한 질문과 원한을 '내 아들이라고 해서 데려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로 고쳐먹을 수만 있다면, 아아 그럴 수만 있다면. 구원의 실마리가 바로 거기 있을 것 같았다.

어려서 무서운 꿈을 꾸다가 흐느끼며 깨어난 적이 있었다. 꿈이었다는 걸 알고 안심하고 다시 잠들려면 옆에서 어머니가 부드러운 소리로 말씀하셨다. "얘야 돌아눕거라, 그래야 다시 못된 꿈을 안 꾼단다." 돌아누움, 뒤집어 생각하기, 사고의 전환, 바로 그거였어. 앞으로 노력하고 힘써야 할 지표가 생긴 기분이었다. 나는 내 속에 생긴 희미한 희망 같은 것을 보듬어 안고 그들이 헤어지기 전에 먼저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막상 혼자가 되고 나니 그게 아니었다. 바로 거기서 거기 같던 사고의 차이가 나로서는 절벽 끝에서 다른 절벽 끝을 향해 심연을 건너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125-126) (강조는 인용자)




요즘 나를 사로잡던 문제와 연관지어서 강조.

"얘야 돌아눕거라, 그래야 다시 못된 꿈을 안 꾼단다."

이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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