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고 책을 읽고 책을 팔고 갖고 있던 책을 한 권씩 가져오고 그 중에 다시 읽지 않을 게 백퍼센트 확실한 건 그대로 제자리에 꽂아두고 도서관을 다시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여름이 제대로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시, 책으로_ 읽지 않았다면 백퍼센트 후회할 뻔 했다. 다시 이정표를 찾아 서서히 길 밟기를 시작하고 있으니까. 딸아이 피아노 학원 데려다주는 길에 물었다. 아가, 새로 다니는 미술학원은 어떻든? 그러고 보니 두 달째. 근데 너무 반응이 심드렁해서 이번에 마음먹고 물어보았더니 일주일 세 번 나가는데 두 시간씩 하고 오는데 두 시간 동안 마음대로 그리기, 재료도 마음대로, 살짝살짝 마무리 터치해주고 전에 다니던 학원이랑 비교해보면 재미없지만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그린다는 거 자체에 만족. 구체적으로 이야기듣고난 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에미 마음. 다른 학원 알아보자. 해도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걸 보니 진짜 아닌듯. 공간이 그 사람을 보여준다는 말. 사실 학원이 너무 개판인데 왜 예쁘고 젊은 처자가 자신의 공간을 이렇게 방치하는 걸까 아무리 봐도 홍대 미대 나온 여자로는 솔직히 보이지 않는데 하면서도 보내놓고 결국 후회. 선생님이 학원 치우는 거 본 적 있니? 하니 아니. 너 없을 때 치우실 거야, 아마도. 말은 그렇게 해놓았지만 지난 번 과자 사들고 가보니 꾸덕꾸덕 바닥에 먼지 보고 솔직히 이 학원 계속 보내야 할까 갈등했다. 난장판이라면 이 몸도 결코 빼놓을 수 없지만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이렇게 다 보이는데_ 


 피아노 학원 들여보내놓고 빠리바게트 들어가서 아이스아메리카노 시켜놓고 책 읽고 스페인어 공부 하고 60분 흘러 장 보고 아이랑 만나서 귀가하던 중 논술학원 발견, 논술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공간이 너무 어여뻐서 한 번은 들어가고싶었는데 딸아이도 같은 마음인지라 들어가서 책 구경하고 선생님이랑 이야기 한 시간 넘게 하고 결국 등록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많은 책들을 쓰윽 훑으면서 진지했다 거짓말이었을까 어쩌면_ 나도 몰래 중얼거렸다. 책을 사랑한다고 여겼고 책을 진지하게 읽는다고 여겼고 책 없이 살지 못한다고 여겼는데 어쩌면 모두 거짓말이었을까 하고 전혜린 수필집 읽고 나 홀로 반성했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읽고 쓰는 즐거움을 손톱만큼이라도 발견한다면 좋겠어요, 논술학원 선생님에게 이야기했다. 한켠에서 책 읽는 아이들 얼굴이 밝았던 것도 한몫했다. 요즘 누가 책 읽나 다 스마트폰 보고 있지_ 책을 진지하게 대하고싶은 마음이 드는 건 처음이다. 같이 독서모임 몇 번 했던 벌새님은 책을 정말 진지하게 대하고 애정을 갖고 있어서 곁에서 바라만보는 것으로도 자극 많이 받았다.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쓰고 책도 많이 읽는다. 근데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왜 그랬을까, 아쉽다. 지금 공부하는 거 얼추 노선 정리되면 강남에서 하는 독서모임 참여해볼까 싶기도 하지만 아직은 왔다갔다. 서촌에 새로 책방이 생겼고 인문사회과학 노선으로 읽는 거 인스타로 훔쳐보면서 음 땡기는데 독서모임_ 그래도 왔다갔다, 서촌도 왔다갔다 하는데 강남까지는 솔직히 무리다. 근데 벌새님은 강남에서 부암동까지 왔다갔다 하셨어, 아 진짜 뒤늦게 왜 감동. 어쨌거나 정리 얼추 끝나고 인사드리러 가겠노라 하고서는 인사 아직도 못했다, 그러니 강남 가기는 가야한다. 이제 정말 마음 먹고 제대로 읽어보고싶다는 마음은 전혜린 문장들 읽고. 너무 빨리 저 세상으로 간 사람의 몫까지 결코 읽고 기록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해볼까 싶은 마음이 든다. 혜린이 언니 좋아. 겉멋이건 속물근성이건 무관하게 순수하게 좋다, 전혜린. 밥 할때 되었다. 나는 간헐적 단식 가능하지만 내 새끼는 하루에 다섯끼, 배고프다고 난리쳐서 바나나쉐이크 한잔 만들어 주었는데 다 먹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난리치는 걸 보니 내년에는 나보다 더 클 거 같은 느낌. 내년에 이사 가면 내 방이 생긴다. 정확히는 내 서재. 나 혼자만의 방. 책상을 아주 커다란 걸 갖다놓아야지. 나 혼자 쓰는 걸로. 책은 조금만 하지만 책상은 커다란 걸로. 전혜린 언니 사진도 액자에 끼워서 하나 올려놓아야지. 삼겹살 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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