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는 당시 철학계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고, 그 자신을 철학자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충실하게 스스로의 사유 행위로부터 만족감을 얻는 동시에 무엇보다도 사유 행위의 비판적 기능과 활동적 움직임에 깊은 신뢰를 보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이른바 '정통'인 남성 철학자의 계보에서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정치철학자로서 그는 또한 좌파 우파 모두에게 비판받았다. 하지만 그 자신은 그런 스스로의 위치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 같다. 

  사실 한나 아렌트는 철학자의 별 아래 태어나 철학자로 살았다. 그는 단독자로서 사유하면서 정치적으로 행위한 인물로, 세속이나 그 자신의 평가와 상관없이 이미 철학자였다. 또한 누구보다도 여성 철학자가 주류 철학계에서 인정받기를 고대했다. 

  일평생 자신을 문젯거리로 여기며, 20세기와 더불어 사유하고 개입했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다. 그가 신뢰한 이러한 '인간성'은 혼자 힘으로는 절대 획득되지 않는다. 인간성은 홀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자신의 삶과 존재 자체를 공공성의 영역으로 향하는 사람들만이 함께 성취할 수 있다. 동시에 아렌트는 '전체 인간'을 내세워 이성을 광기로 몰아세우는 집단적 애정과 헌신을 경계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평생 그 어떤 사람들이나 집단을 '사랑'한 적이 없다. 독일인이건 프랑스인이건 미국인이건 아니면 노동계급이나 그와 비슷한 어떤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 친구들만을 사랑했고, 내가 잘 알고 믿는 유일한 종류의 사랑은 개인을 향한 사랑이다. 



  한나 아렌트가 사유의 비판적 힘을 통해 확신하려 한 것은 '인간성'이다. 훼손된 질서를 회복하고 피해 입고 상처받은 사람의 명예와 품위를 복원하는 정의가 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인간성뿐이다.  (39-40)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이제 막 귀가. 사람들 한가득한 공간에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느끼지 못한 채 먹었다. 그 많은 체온들이 한 곳에 모여있으니 수십 대의 에어컨도 제 기능을 다할 수 없었던듯.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전에 삼십분 정도 여유 시간이 남아서 그 동안 읽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진한 브라우니를 흡입하고난 후에야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탁탁 터는 동안 아이들은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는 나를 조금도 경계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내게 밥을 주는 인간, 해롭지 않다, 아는듯. 옆집 남자는 세상 제일 싫은 게 고양이들이라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아내에게 말한다. 나 들으라고 테라스에서 쩌렁쩌렁 크게 말하는듯 싶다. 아이들이 보이면 호스로 물을 막 뿌려대며 훠어이 훠어이 꺼져버려_라는 소리를 한다. 나는 나대로 매일매일 먹이와 물을 챙겨준다. 그는 자신의 테라스에서 물을 막 뿌려대고 나는 내 테라스 한 켠에 사료와 물. 고양이를 좋아하는 인간과 싫어하는 인간이 나란히 옆집에서 산다.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해서 아가들아 얼른 집에 가, 빗님 오신다! 하고 창문을 열고 말한다. 테라스 안쪽으로 더 들어와서 테이블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계신다. 슈베르트를 마저 듣고 귀가하려는듯. 며칠 전에는 꿈을 꿨다. 저렇게 자그마한 아이들이 테라스에서 모두 호랑이로 변신해 잠자는 나와 딸아이를 지켜주고 있었다. 어흥 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달빛 아래 호랑이 네 마리가 앉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꿈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이야, 호랑이 네 마리가 지켜준다고 하면 정말 세상 두려울 게 없겠구나 하고 내심 기분이 엄청 좋았다.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하나 꺼내갖고 마시면서 파스타를 만들어야겠다. 놀러온 조카딸과 딸아이가 오늘 저녁은 파스타를 드신다고 하니. 오늘은 토요일. 더구나 여름방학이다. 길냥이 네 마리가 내 정신 안에서는 호랑이 네 마리로 인식되는듯. 제일 막내인 까망이는 꿈속에서 제일 체구가 커다랗고 새까만 털을 가진 호랑이로 변신했다. 한나 아렌트 영화를 볼 때도 그랬다. 저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한나 아렌트가 새하얀 털을 가진 한 마리 호랑이로 느껴졌다. 일기장에도 그리 적어놓았다. 호랑이를 닮은 한나 아렌트, 아니 한나 아렌트 언니 자체가 은발의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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