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두려운 존재지만 그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키키 키린, 그녀가 한 말 중에 몇 가지 담아온다. 뇌가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탱탱하게 부풀어오르는 느낌이 나는 좋다. 공부를 다 하고난 후 머리는 언제나 터질 거 같고 욕지기는 치밀어오르지만 내 뇌 자체가 온전하게 한 생명체로 느껴지는 찰나의 순간들이 좋아서 막 웃음이 치밀어오른다. 밥을 먹고 과일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딸아이를 쓰다듬어주고 테라스에 앉아 서늘한 여름 바람을 느낀다. 나의 소중한 뇌를 쉬게 할 시간이다. 뇌는 쉬고싶어하지 않지만 억지로 쉬게 한다.


20

내 근본은 '바사라'와 게릴라예요.

나는 대표작이 없습니다. 대표작 없이 이대로 끝나는 거 아닐까 모르겠네요. 내 근본은 바사라(*상식이나 도덕을 깨부수는 행위를 의미하는 불교 용어)와 게릴라예요. 그렇지만 게릴라가 원점이라고는 해도, 이제 더는 몸을 던져서 뭘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죠. 불만이 있는 대로 끝나면 또 어때요? 이 또한 인생인데. (50-51)

55

나는 사람도, 한 번 망가져본 사람이 좋더군요.

나는 사람도, 한 번 망가져본 사람이 좋더군요. 가령 어떤 사건에 말려들어 망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말이 좀 그렇지만, 한 번은 자기의 밑바닥을 본 사람이 좋다는 거죠. 그런 사람은 아픔이 뭔지 알기 때문에 대화의 폭이 넓고, 동시에 넘어진 자리에서 변화할 수도 있거든요. (126-127)

60

인간 존재 자체가 골계입니다.

한편 사랑스럽지만 또 슬픈 존재죠.

인간 존재 자체가 골계입니다. 한편 사랑스럽지만 또 슬픈 존재죠. 곧 세대 교체 시기니까, 상황에 따라 몸을 사리면서 나아갈 생각이에요. 이제부터는 계속 저를 낮추고 낮추면서 스스로를 아끼고 싶습니다. (136-137)

115

삶이 끝날 때까지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이상은 있습니다. 집착을 완전히 버리고 어깨에 힘을 빼고 홀로 우뚝 서는 것이죠. 존재의 무게가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밖으로 드러나는 것 말고, 마음의 기량 면에서.

앞으로는 딸과 함께 살 겁니다. 돌보지는 않고, 도움은 받을 겁니다.

나만 생각하면 혼자인 게 오히려 편해요. 그래도 같이 살아야 딸이나 사위, 손자들이 내 죽음을 실감할 수 있죠. 계속 떨어져서 살면 그런 걸 잘 느낄 수 없어요. '사람은 죽는다'라는 걸 명확하게 알아야 제대로 살 수 있다고 봐요. 삶이 끝날 때까지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이상은 있습니다. 집착을 완전히 버리고 어깨에 힘을 빼고 홀로 우뚝 서는 것이죠. 존재의 무게가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밖으로 드러나는 것 말고, 마음의 기량 면에서. (25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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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07-03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앙‘ 도 생각나고, 최근 영화 ‘어느 가족‘ 도 생각납니다. 그 이전의 무슨 무슨 영화도 많이 생각나고.

키키 키린 처음에 마냥 친근하기만 한 이미지였는데 이상하게 몸짓 하나하나 눈빛 하나하나 계속 생각납니다.

수연 2019-07-04 15:15   좋아요 1 | URL
저는 예전에 봤던 오래 전 일본 영화 속 그 분이랑 참 닮았다 여겼는데 알고 봤더니 키키 키린이더라구요. 이런 태도가 좋더라구요. 제 안에 깃든 것들과 맞았을 때 이야기라서 더 공감했겠지만요.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조곤조곤 할 말 다 하고 살면 참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요. 나이가 드나봐요. 이렇게 나이들어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들이 젊고 매력적인 청춘들보다 더 청춘 같이 느껴지는 거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