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이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_ 사는 게 뭐 그런 거 아닌가 싶어서_ 바람 소리도 좋고 밖은 완전 푹푹 찐다고 해서 스페인 책방에 가려던 일정을 변경했다. 그래서 오늘은 집순이 모드입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내려서 꿀꺽꿀꺽 마시며 독일어 공부를 하다 말고 중얼거리고 싶어서 중얼중얼. 이러면 또 진도 따라잡기 힘들어서 독일어 선생님에게 미친듯 깨질 텐데_ 그냥 저도 인간이니까 딱 삼십 분만 더 놀게요, 나 홀로 죄책감에 또 중얼중얼. 온라인으로 운영하는 스페인 책방은 책이 거의 없어서 아무래도 좀 무리인데 하던 차 서울 동대입구 후문 쪽에 스페인 전문 책방_ 독립서점이 생겼다고 해서 가보려고 한다. 서울에도 스페인 전문서점 하나, 부산에도 한곳 생겼다는 소식을 학생들이 전해주었다. 내 스페인어 실력은 여전히 비루하기만 한데 나는 어쩌다가 학생들에게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아 이건 아니죠,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라고 해도 고집이 대단해서 그냥 포기하고 선생님~ 하면 네~ 학생님, 하고 대꾸를 한다. 서로 배시시 웃으면서. 이제까지 스페인어 기초 과정을 진행하면서 어찌어찌하다보니 스페인어라는 인연으로 만난 이들 대충 헤아려보니 100명이 훨씬 웃돈다. 신기하구나, 다시 중얼거린다. 그냥 스페인어가 좋아서 조금씩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 전문적으로 발돋움하려면 필요한 서류들을 구비하려고 하나씩 준비를 한다. 아 전 못할 거 같아요, 이건 아닌 거 같아요, 너무 부끄러워요, 이런 소리도 하지 않는다. 묵묵히 오늘도 나의 길은 이것 하나뿐인걸요, 죽을 때까지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 늙어서는 내 주변에 꼬레아노들보다 에스뺘뇰들이 더 많을듯 싶네요.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했는데 그게 정말 그려지더라. 이런 이미지화 작업이야 그냥 내 간절한 바람이려니 하지만 진짜 그게 눈 앞에 보이는 사진 한 장처럼 또렷하게 그려지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내가 스페인어를 만나서 느낀 모든 것들을 그대들이 그대로 느낀다면 정말 어떻게 이렇게 공부를 아니할 수가 있어?! 흑 하고 때로 우는 척 하면 모범생들은 죄책감을 마구 느끼며 아흑, 오늘은 정말 죽었다 깨도 할게요 공부! 하고 늦은 밤 퇴근하고 새벽 세 시에 공부를 해서 까똑을 보내온다. 스페인 드라마 보다가 오호랏, 예뻐요. 하고 나도 까똑을 보낸다. 아 이런 맛인가, 선생의 맛이라는 건, 싶기도 하고. 잘난 척, 재수없게 해봤어요.


 해보고 후회할래, 안 해보고 후회할래? 하면 나는 대개 모든 것들을 해보고 후회하겠어요, 쪽이다. 별 거 없더라, 인생사, 이런 소리는 죽기 전까지도 나오지 않을 거 같다. 그래서 외국어도 막 들이대는가보다. 이제 겁나는 게 없어, 만일 중국에 가서 살아야 한다면 2년 안에 중국어로 얼추 떠들어댈 수 있을듯, 이런 게 바로 자신감이라는 건가 싶다. 하지만 저 중국어 진짜 싫어해요, 그냥 정이 안 가네요. 그토록 싫어하는 중국어도 중국에 가서 살아야 하는 경우라면 공부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생긴 거라고 보면 정확하겠죠. 먹고 살려면 정말 피똥 싸듯 노력하면 안될 거 같은 일도 되더라_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저는 마흔 넘어서 솔직히 처음 깨달았어요. 누구 말대로 사주팔자가 좋아서 그냥 먹고 살아도 괜찮은 인생이려니 하고 정말 탱자탱자 놀면서 살았는데 살아있는 입에 거미줄을 칠 수는 없어서_는 아니고 미치지 않으려고 아니면 미칠까봐 겁먹어서 공부한 스페인어가 저를 이렇게 한 지점에 올려놓은 게 그냥 신기하긴 해요. 스페인어는 사랑입니다. 물론 스페인어를 대신할 매력적인 외국어가 엄청 깔린 게 맞긴 하지만. 어쨌거나 리스본에서 유학을 하고 계시는 학생분이 우리 포르투갈어 같이 공부해볼래요? 선생님 해서 아니아니, 지금 여기에서 더 늘리는 건 아닌 거 같아, 내 혀는 하나고 내 입도 하나고 내 귀도 두 개이고 난 아가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집도 치워야 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야하는데 아아 정말 마음으로는 해보고 싶은데 지금은 아닌 거 같아_ 했다. 근데 정말 마음이 흔들렸다, 순간. 그리고 6년 전 이탈리아어를 같이 공부했던 신부님은 지금 로마에 자리를 잡고 앞으로 오래 더 여기 있을듯 해요, 라고 하셔서 신부님! 제가 이탈리아어 다시 공부해서 로마로 갈게요! 했더니 아니 이탈리아어 몰라도 내가 이제 잘하니 그냥 오세요, 놀러. 라고 하셔서 아 같이 이탈리아어 알파베또 배우던 우리 사이가 이렇게 멀어지다니 아흑 하고 투정을 부렸다. 근데 신부님 왜 이렇게 살찌셨어요? 대체_ 그렇게 호리호리하시더니만_ 했더니 이탈리아잖아요 ㅋㅋㅋ 살이 안 찌면 이탈리아가 아니죠! 라고. 근데 이탈리아어보다 스페인어가 더 예쁘네요_ 라고 고슴도치 제 새끼 자랑질하듯 이렇게 뜬금없이 대꾸하니 신부님이 나보다 스페인어 더 잘하셔서 급우울했다. 신부님은 대체 못 하시는 게 뭔가요? 흥! 하니 못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하고 너스레를 떠시는 모습도 6년 전 꼬꼬마 신부님일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나 홀로 이모 미소 짓고 있다. 애니웨이, 앞뒤 문맥 무관하게 러셀의 자서전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펼쳐들었다. 근데 왜 러셀에게 이런 걸 써놓은거야?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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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06-25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연님 글씨체인가요 ? 저랑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저도 좀 딴소리이지만 내일은 소설 읽는 날입니다 :)

수연 2019-06-25 22:59   좋아요 0 | URL
소설도 좋지요. 저는 당분간 요 두꺼운 벽돌책으로 나날들을 보낼 거 같아요. 저 글씨 못 쓰는데 비슷하시다고 하니 기분 좋아요. 후훗. 프루스트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