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계속 살게 될 거 같지는 않다. 일단 너무 높기 때문에. 너무 높으니까 힘들어요. 아는 이들은 알지만 저는 뚜벅이라서. 이 많은 책을 천가방에 메고 언덕을 오르내릴 적마다 얼마나 힘든지 이젠 어깨도 덜그럭덜그럭 조금만 손글씨를 써도 손목도 덜그럭덜그럭 소리가 난다. 한 시간만 꼼짝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허리는 또 얼마나 뻐근한지. 아니 왜 몸이 쌩쌩할 때 공부를 하지 않고 나이 들어 이 고생인겨! 홀로 소리를 버럭 지르다가 오늘의 일정이 얼추 끝나가는 마당인지라 뜨거운 라떼 한잔 만들어갖고 테라스에 나와서 달무리 운 좋게 마주했다. 얼추 계약 기간이 완료되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 텐데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을듯 싶다. 집은 코딱지만하지만 왜 이곳으로 택했냐 하면 순전히 테라스에서 나무를 실컷 보고 뻐꾹뻐꾹 소리를 눈 뜨면 바로 들을 수 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하도 어여뻐서였다. 야경만 보자면 사시사철 술을 달고 살아야 하는 게 맞지만 이젠 몸 생각을 하는지라 그렇게 마실 수도 없어요. 서글프지는 않다. 이렇게 나이를 먹는 거니까. 조금만 타자를 쳐도 손가락 관절이 덜그럭덜그럭 그런 뼈를 가지고 있는 거지요. 오늘의 한 마디, 씨 노 다쓰, 노 삐다스 땀뽀꼬. 삐다스의 '다'에서 혀에 확 힘을 풀어줘야 하는 거 말 안 해도 알지요? 곧 두근거리는 공간이 마련되고 나는 그곳에 가서 일주일에 3일은 살게 될 거니까 바지런히 공부를 해야합니다. 이놈의 변덕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아까는 시장에서 아 그냥 로또 되면 엄마, 나 공부 안할까봐, 이 나이에 너무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거 같다, 하면서 이 오이를 사야하나 저 오이를 사야하나 어느 게 더 말랑거리나? 이 오이는 완전 뻣뻣하기 그지없네! 톡톡 만지면서 물어보니 엄마가 여기 오이 비싸! 저기 싼데 가서 사, 엄마 아는 가게가 훨씬 싸. 하시면서 연아, 공부는 평생 하는겨, 로또 되어도 해야 한다, 치매 걸리기 전까지는. 네가 이렇게 미친듯 공부하는 거 엄마는 너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 그리 좋다면서 더 열심히 해서 스페인 여자처럼 혀에 모터를 달아야 하지 않겠냐?! 라고. 난 외국어 공부 많이 해서 치매 안 걸려! 버럭 하고 싼 오이를 사러 이동. 그리고 문득 그렇지, 혀가 빳빳하게 굳기 전까지는 귀가 전혀 들리지 않기 전까지는 뇌세포가 하나라도 살아있을 때까지는 해야겠지, 이게 나으 운명이겠지, 하고 혼자서 중얼중얼. 어쨌거나 오늘은 오늘의 일정이 끝났으니 아 독일어 삼십분 남았다는...... 요것만 끝내고 엎드려서 쿨쿨 자야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어여삐 여기셔서 내일 제가 비록 하루를 더 먹어 더 늙게 되지만 제 뇌세포는 거꾸로 나이를 먹어_ 더 말랑말랑 더 빠릿빠릿하게 만들어주시옵소서, 하여 내일 오늘 논 것 이상으로 공부를 미친년처럼 할 수 있게 힘을 주소서, 에너지파워!! 아멘. (참고로 저 무교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9-06-18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마지막 기도 최근 두어 달 동안 제가 밥먹듯이 한 기도랑 너무 비슷한데요? ㅋㅋㅋㅋㅋ 참고로 저도 무교;;;;

수연 2019-06-18 22:31   좋아요 0 | URL
저는 올해 12월이 시험이라 그때까지 계속 저 기도문을 계속...... 늙어서 시험 보는 건 두렵지 않은데 떨어질까봐.......;;;;

2019-06-18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8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