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에는 가는 선들이 몸체를 따라 선회하듯 지나간다. 바람의 자취 같기도, 별자리의 이동 같기도 하다. 아니면 강물이나 바닷물의 흐름 같기도 하다. 도공들이 물레를 돌리면서 토기의 몸체를 다듬던 손길이 남긴 흔적이긴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선은 지극히 서정적인 자연의 한 장면을 꿈처럼 안긴다. 약간의 요철 효과가 매끄러운 토기의 피부를 긁고 지나간다. 언어로 지시할 수 없는 색채들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토기 표면 자체가 거대한 우주 같고 마당 같아서 그 안에 너무 많은 이미지와 색채가 선회한다. 이 벅찬 둥긂 안에 깃든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28-29) 




 오래된 것들이라, 책을 집어들고 우리집에서 제일 오래된 골동품이라 하고 고개를 휘휘 둘러보아도 있는 거라곤 책과 옷가지 몇 개가 전부다. 곰곰 생각을 해보고 두 눈을 말똥말똥 커다랗게 뜨고 살펴보니 1939년에 만들어졌다는 이 책이다. 다 읽지도 못하고 솔직히 말하면 한 10여페이지 읽다가 집어던지곤 했지만 그래도 애정한다. 우리집에서 제일 오래된 분이기에. 골동품을 수집하려면 어느 정도의 공간과 안목이 필수이니 나 같은 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겠다. 대신 이렇게 읽어보지요. 위 문장들을 읽을 때 우물가에서 혹은 죽은 자들의 세계 너머로 항아리들을 왔다갔다 지고 옮겼을 여인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는 너무 많고많은 사연들이 있으나 그걸 타인들에게 옮길라치면 그렇고 그런 삼류 인생사밖에 되지 못했으리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너와 나라고 불리울만한 관계가 아니고서는 그렇고 그런 삼류 인생사 가십거리뿐. 무엇이 궁금해서 염탐하는 것이냐 하고 대놓고 물어보고싶었지만 그렇게 묻고 싶을 정도로 그와 나의 관계가 해맑지 않기에 또 어디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나보지, 하고 무시하면 그만이다. 정도껏의 자유 의지가 허용되는 범위가 있겠지만 그 범위를 누가 정하나 싶어서 웃음만 난다. 이해못할 종족_이라는 말을 듣고도 해맑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이해받고싶은 마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답니다, 하고. 그러면서 궁금한 거지, 그 해맑고 아름다웠던 여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항아리 밖에 가만히 귀를 대본다. 바람소리 달빛 아래 무섭지 않고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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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9-05-17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는데 수연 님 글 읽으니 읽어봐야겠구나 싶어요. 고마워요.

수연 2019-05-17 16:45   좋아요 0 | URL
박영택 선생님 글은 처음 읽어요. 읽으면서 조금씩 올릴게요, 고맙다 하시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