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아베세데부터 가르친 현이라는 학생이 있다. 나를 뭘 믿고 내게 와서 프랑스어 좀 가르쳐주세요, 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함께 공부했다.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느리고 일 때문에 자주 결석을 했다. 그래도 8개월 넘게 꾸준히 함께 공부했다. 그게 벌써 2년 전 일이다. 현이가 프랑스 파리에서 작은 엽서를 보내왔다. 언니, 여기는 마치 동화 속 세상 같아요, 라고. 출장 겸 파리에 간 것이라는데 모든 걸 포기하고 파리에 정착하고싶다는 작은 바람도 전해왔다. 가능하다면 거기에서 오래 머물렴, 하고 카톡으로 답장을 대신했다. 페넬로프 바지외의 걸크러시를 읽는데 문득 현이가 떠올랐다. 현이는 페미니스트이고 사회운동가이고 유도 유단자이고 작고 섬세한 존재들을 보살피는 일에 끝없는 정성을 기울인다. 프랑스어를 배우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으나 지금은 꽤 작은 프랑스어 조각들을 공놀이 하듯 잘 말할 줄 안다. 함께 스터디를 하는 팀원들과 프랑스어 대화 연습을 할 때 버벅거리면서도 미안하다, 능숙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사과를 표했고 팀원들은 아니 아니 우리 다 프랑스어를 못하는데 무슨 하면서 손사래질을 쳤다. 그들은 참 예뻤다. 출장이 끝나면 멈췄던 프랑스어를 다시 공부하겠노라는 말도 전해왔다. 


 멈추지 않는 일, 편견에 머무르지 않는 일, 다른 사람들의 편견과 스스로가 지닌 벽을 작은 망치로 깨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여기 실려있는 모든 여인들과 현이의 에너지를 듬뿍 받았다. 인생이라는 걸 행복과 불행 기준에서 잠시 꺼내 다른 도표 위에 올려보자는 말은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행과 불행 사이 어딘가에서 걸음을 멈추는 것이 인생일 수도 있으나 어느 하나를 결단력 있게 마음속에 품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행도 불행도 함께 하기에. 세상사의 기준에서 나 자신을 빼놓고 내 인생을 빼놓기가 어불성설이지만 그 큰 틀에서 잠시 나와 인생을 꾸리는 일이 결과적으로는 세상사 조각이니까. 잠시 책을 놓고 샐러드를 준비하고 빵을 굽는동안 민이 재빨리 만화책이잖아! 하고 펼쳤다. 빵과 샐러드를 먹는 일은 아주 천천히, 걸크러시는 재빨리.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민이 왈, 여자로 태어난 게 자랑스러워! 언니들 모두 멋져! 빨리 2권 사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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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10-03 13: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가 혼자 있을 때 편견은 쉽게 깨지지 않아요. 그걸 스스로 깨뜨리는 일이 쉽지 않아요. 독서모임처럼 여러 사람을 만나면 편견을 깰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내 편견을 알아서 깨는 좋은 분들도 있어요. 그래서 독서모임이 있는 날엔 기분이 좋아요. 이런 분들을 자주 만났으면 좋겠어요. ^^

수연 2018-10-03 15:27   좋아요 1 | URL
응, 맞아, 네 말이. 그래서 자꾸 사람들을 만나고 듣고 그래야하는 거겠지. 요즘은 세상이 아름다워보이는 걸 보니 좋은 사람들 영향인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