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인의 빅픽처 - 저성장 시대의 생존 경제학
선대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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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을 해 본적이 없다. 하루 먹고 살기에 급급한데 무슨 주식? 아마 앞으로도 할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이 책을 왜 읽었는가? 선대인이기 때문에 읽었다. 신자유주의를 찬양하는 자칭 경제학자라는 것들이 판치고 있지만 선대인과 우석훈. 이들이야말로 서민을 위한 경제학자들이다. (선대인과 우석훈이 함께 팟캐스트를 진행하다니!) 혹시나 어디선가 돈벼락이 떨어져 주식에 투자할 마음이 생긴다면 나는 이 책을 재독 한 이후 투자하겠다.

 

전문가나 애널리스트 말 믿고 투자하다간 쪽박차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침팬지보다도 멍청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버튼 멜키엘이 199810월부터 20024월까지 총 142회에 걸쳐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침팬지의 수익률은 10.2%였고 전문가의 수익률은 3.5%였다.

 

선대인은 웬만하면 투자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저성장 시대에 예전처럼 주식으로 대박을 터뜨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해야겠다면? 그가 추천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성장형 우량주에 투자하는 거다.

 

최근 4년간 주가 상승 종목을 조사한다. 상위 100개 종목 안에서 최근 2~3년간 꾸준히 주가가 오른 종목을 체크한다. 이중에 상위 30개 종목을 골라 눈 딱 감고 묻어 놓으면 1년 후 비교적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1년에 9.9프로, 복리로 따지면 3년 동안 32.2%의 수익률이다.

 

개인이 30개의 종목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선대인은 3~6개월 사이의 추세를 조사해보고 전반적으로 상승 모멘텀이 있는 15개 종목에 투자하기를 조언한다. 이럴 경우 주가 상승률은 어느 정도일까? 1년 동안 평균 주가 상승률은 47.1%에 달한다.

 

앞장에 설명한 내용들은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익히 상식적인 내용들 아닐까. 예를 들어 달러와 금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유가 역시 달러와 반대로 움직인다. (달러가 오르면 유가는 내려간다) 유가가 내려가면 어떤 주식을 사야 하나? 당연히 항공사 주식을 사야한다. 기름값이 떨어지면 비용이 줄어들고 실적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 (안 올리면 외국자본의 이탈 우려가 있다) 무턱대고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서민들은 두 배 이상의 이자를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금리가 오르면 금값은 떨이지고 철강이나 원자재 값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타이밍에 포스코나 현대제철에 투자하면 어떻게 될까?

 

전반적으로 조선, 자동차, 은행, 환경, 건설 등의 주가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

 

그렇다면 어디에 관심을 쏟아야 할까?

 

첫 번째로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 2024년이면 반도체, 자동차, 화학제품을 합친 시장 규모보다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에 믿음이 가진 않는다면 해외 기업들에 투자할 수도 있다.

 

두 번째 녹색산업. 탄소 배출권을 줄이기 위한 신재생에너지와 전기 자동차 등 관련 산업이 성장할 추세다. 풍력발전 기업 덴마크 베스타스, 중국 대형 태양광 생산업체 잉리그린에너지 등의 실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테슬라, 중국의 비야디, 넥스트EV와 같은 전기자동차 기업들도 주목해봐야 한다. 중국정부는 환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따라서 베이징수도그룹과 광대국제유한공사와 같은 환경기업들 실적도 급성장 중이라고 한다.

 

유가는 앞으로 오를까 내릴까? 선대인은 내릴 확률이 더 높다고 전망한다. 미국 셰일오일업체들의 기술혁신으로 채굴 기술이 월등히 발전한 것도 결정적 이유 중의 하나다. 저유가로 중동 산유국의 경기가 악화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규모 토목 및 플랜트 발주를 줄인다. 유가하락은 선박의 주문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건설과 선박? 투자할 것인가?

 

2050년에는 세계 경제 순위는 어떻게 될까? 1위 중국, 2위 미국 3위는?

인도다. 따라서 인도 경제 역시 주목해 봐야 한다.

 

중국 주가가 버블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세계 1위 드론 업체인 DJI와 같은 새로운 산업에서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 중이다.

 

기술기업도 눈여겨 봐야한다. 특히나 핀테크와 데이터 기술.

 

경제위기를 겪었음에도 미국은 여전히 경제적인 패권 국가다. 향후 미국에 여전히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는 미국의 선진산업 때문이다. 바이오 산업, 로봇 공학, 등등

 

선대인은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 전망한다. 환차익을 노리기보다는 환 리스크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상대적으로 환율이 약세를 보일 때 분할 매수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증권사가 추천하는 종목들은 과연 믿을만한가? 선대인 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사라고 추천한 종목 중 주가가 떨어진 종목이 더 많았다. 그들이 개미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할 리가 없다. 따라서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고 싶다면 스스로 공부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침팬지보다 멍청한 애널리스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양심적인 멘토를 찾아

빅 픽처를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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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6-03-20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너무 잘 정리해 주셔서 책을 살 필요가 없게 만드셨네요. ^ ^

시이소오 2016-03-20 07:53   좋아요 0 | URL
주식 투자 하신다면 사서 보시는 게 더 도움이 되실거에요^^

깊이에의강요 2016-03-20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9퍼센트를 위한 편파 멘토^^

시이소오 2016-03-20 09:42   좋아요 0 | URL
ㅋ 한 문장으로 정리해 주셨네요. 깔끔해요 ^^
 
팩트체크 - 세상을 바로 읽는 진실의 힘 팩트체크 1
JTBC 뉴스룸 팩트체크 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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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티비가 없다. 브라운관을 부셔버렸더니 TV가 안 나온다.

따라서 JTBC <팩트 체크>를 본 적도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이 읽어서인지 <팩트 체크>는 기대에 못 미친다. 그렇지만 공중파 방송들이 재벌,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한 현실을 고려해보자면 JTBC <팩트 체크>는 그나마 양심을 지닌 언론에 대한 한 줄기 희망의 빛이다.

 

<팩트 체크>에 따르면 9.11 이후, <9.11 조사위>18개월 동안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200명의 사람을 만났고, 12차례의 청문회를 열었다. 부시 대통령, 딕 체니 부통령, 국방장관, 국무장관, 등등 전, 현직 고위 정부 인사가 모두 증언대 앞에 섰다.

 

반면 한국의 세월호는?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방해로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세월호가 지겹다는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뭐가 지겹다는 걸까? 왜 사건이 일어났는지, 왜 국가가 구조를 방기했는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데 뭐가 지겹다는 걸까? 지겨울려면 무언가가 이미 결론이 나야 하는 거 아닐까?

 

담뱃값 인상, 정부의 말대로 국민 건강을 위한 조치였을까? 새누리당 김진태 위원은 담배 피울 때마다 흉측한 그림을 봐야 하는 것은 흡연권, 행복 추구권 침해다라고 말했다.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담배에 경고 그림을 올리지 말자는 주장이다. (의원님, 국민의 행복 추구권을 위해 아가리를 다물면 안 되겠니?)

 

대기업의 현금 보유액이 줄어들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장하성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의 자료를 보면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은 계속 증가세다. 국민 GDP3만 달러에 육박한다는데 왜 너도 나도 생계에 위협을 받는 걸까?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몫을 자본가들이 제대로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 위기가 과잉복지라고 말한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의 주장, 팩트일까? 새빨간 거짓말이다. 복지로 국민들이 나태해진단다. 그리스 연간 평균 노동시간 2037시간이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그리스 경제 위기의 원인을 유로화 화폐 통합으로 보았다. 더구나 그리스 경제위기를 부추긴 건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무능 때문이었다.

 

과잉복지? 한국이? 2014년 한국의 GDP대비 복지 지출은 10.4프로 불과하다. OECD 평균 수준인 25퍼센트에 도달하려면 40년이 걸린다는데 과잉 복지라고?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준구 교수는 과잉복지 논란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4대강이나 자원 개발에 몇십조 원을 쏟아부은 정부가, 무상급식 2조원이 아깝다고 호들갑 떠는 모습은 가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학살이후 대국민담화에서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정작 입법 과정에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법안 통과를 막아버렸다. 기본권에 위배된다나.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관피아 방지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그런데 고위공직자들은 피해가고, 애먼 하위직 공무원만 잡는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안 들리는 이유를 그동안 나는 저작권 사용료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팩트가 아니었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였다. 하긴 주머니도 허하고 마음도 허한 사람에게 캐롤 들려 준다고 눈 보고 꼬리치는 개 마냥 기분이 좋아지진 않겠지.

 

공중파 방송, 뉴스, 조중동같은 신문들은 이제 더 이상 팩트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짓을 팩트로 조작하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각자가 팩트를 체크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부자와 대기업을 위한 당에 투표한 결과다.

국민을 위한 지식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든지 (예를 들어 경제학이라면 선대인이나 우석훈)

책을 읽던지, 그것도 아니면 생각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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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03-19 0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실에 눈을 뜨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는지 알아야 할 텐데요. 가난한사람들이 부자들을 위한 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요ㅠ?

시이소오 2016-03-19 09:03   좋아요 0 | URL
저도 참 그걸 모르겠네요 ^^; 제 주변엔 부자당 지지하는 가난한 사람들도 없구요 ^^;

eL 2016-03-19 13:38   좋아요 2 | URL
역시 꾸준한 교육 밖에는 답이 없지 않을까요..? 가난한 사람들은 실제 선거에서 더 보수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는데, 아마 상황이 더 나빠지는걸 두려워해서 지금만큼만이라도.. 하는 맘이 아닐까싶은.

늘 안타까운건 소득이 낮을수록 책을 읽고 강연을 다닐 시간적여유도 물질적여유도 없어서 악순환이 되는것 같아요. 관련테마의 논의가 더 낮은자세로 문턱을 낮추며 다가가야할 것 같아요. ㅠ_ㅠ)ㅇ˝ 불끈

시이소오 2016-03-19 13:43   좋아요 1 | URL
to el님 티비는 또 열심히들 보시니, 참 답답하네요 ^^;

2016-03-19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3-19 11:31   좋아요 1 | URL
답답하죠. 남의 집 티비를 부셔버릴 수도 없구요 ^^:

깜장앨리스 2016-03-19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언론 장악이 이리도 무서운 것인지 요즘 들어 절실히 느끼는 중입니다.

시이소오 2016-03-19 12:56   좋아요 0 | URL
경계를 게을리하면 그런가 싶어져요^^;

깊이에의강요 2016-03-19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울어진 운동장 ㅠ

시이소오 2016-03-19 19:52   좋아요 0 | URL
이 비유가 어디서 나왔었죠?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깊이에의강요 2016-03-19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권이 질때마다 하는 얘기요 ㅋㅋ

시이소오 2016-03-19 20:07   좋아요 0 | URL
오, 글쿤요. 깊이에의 강요님 은근 깊이가 있으세요^^

깊이에의강요 2016-03-19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아시면서 놀리시는거
같지 말입니다 ㅍ^^

시이소오 2016-03-19 20:47   좋아요 0 | URL
전 정말 모르지 말입니다. ^^
 
시민의 교양 (반양장) - 지금, 여기, 보통 사람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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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출판계의 블루칩은 단연 채사장이었다. <지대넓얕>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시민의 교양>역시 기대를 저 버리지 않는다. 내가 만일 독재자라면 국민들을 붙잡아 삽을 들게 하는 대신 채사장 책을 읽히겠다.

 

<시민의 교양><지대넓얕>의 확장편이라고 볼 수 있지만 후반부의 교육, 환율, 인구 편은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내용들이다.

 

엄기호, 하지현의 <공부중독>에서 상위 10개 대학의 합격률은 전체 4.5퍼센트였고 <시민의 교양>에 따르면 인 서울대학의 합격률은 상위 8퍼센트다. 이걸 수입과 비교해보면 상위 10%의 수입은 한 달 330만원이다. 이에 비해 중간 50%의 소득은 연간 1,070만원, 한 달에 90만원이 채 안 된다.

 

, 상위 10%에 끼어야만 이 나라에선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다. 평균 50%에 끼면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가 없다.

 

채사장은 경쟁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을 개인이 극복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학생들이 의무 교육을 통해 경쟁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을 내재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간에 위치한 보통의 사람이 한 달 90만원 벌어야 하는 사회가 과연 정의로운 사회일까?

 

오연호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보면 덴마크 사회, 덴마크 학교는 나름의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인으로 보기엔 유토피아에 가깝다. 특히나 덴마크 교육은 부럽기 그지없다. 덴마크는 매번 OECD 학생 행복도 조사에서 매번 상위권을 기록한다. 덴마크 학생들은 경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덴마크 고용률은 75%.

 

바야흐로 전 세계적인 저성장 시대다. 인플래이션기에는 물가가 상승하고 실질 임금은 감소하고 서민들의 부담이 커진다. 자본가나 대기업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이익이다. 환율 상승으로 수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가 인플래이션 정책을 추구하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정치권과 기업은 부족한 내수시장의 상황을 이유로 지속적인 고환율 정책을 요구한다. 한국에서는 소비가 줄어드는 추세다 왜? 소비를 담당할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6.25 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1963년까지의 9년간 태어난 사람들을 1차 베이비붐 세대로 분류한다. 2016년 기준으로 50대 중반부터 60대 초반에 속하는 세대다. 그리고 2차 베이비 붐 세대는 1968년부터 1974년의 7년. 현 4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의 세대다.

 

이 베이비 붐 세대는 모든 부분에서 팽창을 가져온다. 한편 이 다음 세대는 모든 부분에서 수축을 경험한다. 수축기인 현 시대의 소비 주체에겐 안정된 일자리가 부족하고 임금도 낮다. 한 마디로 부모 세대의 부동산을 구매할 형편이 안 된다. 그러면 부동산 가격 하락은 피할 수 없다. 부동산의 하락은 자산의 축소다. 따라서 소비심리는 저하된다. 소비의 위축은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디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통화량을 늘릴 것이다. 통화량이 늘어나면 통화 가치가 낮아지고 환율을 상승시켜 수출은 늘어나고 수입은 줄어든다. 수출 중심 대기업은 살아남겠지만 내수 시장은 침체되고 개인 경제 상황은 악화되는 가운데, 수입 가격 상승으로 물가만 상승하는 스테크플레이션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자본가와 노동자의 소득 격차는 점점 더 심화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시장의 자유인가? 정부의 개입인가?

 

시장의 자유를 추구한다면 세금과 복지는 낮아진다. 투자가와 사업가의 이익은 극대화 될 것이다. 따라서 빈부 격차는 점차 심회될 것이다.

 

정부의 개입을 선택한다면 빈부 격차는 완화되고 세금의 주체는 소수의 부유층이 될 것이다. 직업에 있어서는 임금 노동자의 이익이 우선될 것이다. 국가는 생산 수단의 개인소유를 제한함으로써 자본가에 의한 부의 독점을 막고, 적극적인 복지를 통해 노동자의 삶을 개선할 것이다. 소득 격차는 줄어들고 고용 안정성은 높아질 것이다.

 

시민은 이러한 양 갈래의 길에서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다. 투표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한 정당에 투표하는 걸까?

부자들이 장악한 교육, 언론에 의해 세뇌되고 있어서일까.

 

어용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낙수효과? 물벼락 맞을 소리 하지도 마라.

자본가의 수입이 늘어난다고 고용이 느는 시기는 끝났다. 자본가들은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기꺼이 아프리카 말리까지 찾아간다. 그것도 아니면 인간을 로봇으로 대체하면 끝이다. 전체 파이가 늘어난다고 노동자의 몫이 커지진 않는다.

 

무조건 박근혜라고 믿는 어르신들이 있다면 채사장 책을 셋트로 사다드리자.

 

다음으로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하나의 경제체제를 선택하고, 이를 반영하는 하나의 정당을 지지해야 합니다. 나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정당을.

신문을 접고, 티브이를 끄고, 타인의 말에 휩쓸리지 말고, 나의 현실을 직시한 후에 정말 나에게 이익이 되는 세계가 무엇인지 현명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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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밤. 그리고 380만 년의 영원


p256. 960년에는 은자 베르나르라 하는 수도사가 이제 곧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설교하며 돌아다녀 또 소동이 일어납니다. 960년에는 프랑스 로렌 지방에서 이 세상의 종말이 바야흐로 가까워졌다는 소문이 민중들 사이에서 삽시간에 퍼져나가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이번에야말로 1009년에 세계가 멸망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도 독자적으로 계산하여 1033년에 인류가 망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p257. 문학이 끝났다는 말도 고래부터 한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위대한 극작가이자 시인인 실러조차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신인작가도 새로운 문학작품도 완전히 엉터리다, 모방이나 속악한 것뿐이다, 이제 문학은 죽었다, 고 말이지요. 괴테도 똑같은 말을 하는데, 하지만 뉘앙스가 약간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이 세계는 속악함으로 흘러가버렸다, 나는 이제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시대의 마지막 한 사람일 것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문학이 끝났다, 순문학은 끝났다, 근대문학이 끝났다, 하는 이야기는 수백 년, 수십 년이나 반복해서 말해오는 것입니다.

 

그 후 독일 문학이나 독일 철학에서 누가 나왔는지 아시죠, 횔덜린, 헤겔, 셸링, 클라이스트, 노발리스, 하이네, 슈티프터, 니체, 릴케, 첼란......끝이 없습니다. 경탄할 만한 재능이 무수히 나왔습니다.


p259. 그런데 그리스인들이 쓴 책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정도일까요? 천 권 중 한 권입니다. 많이 잡아도 두 권을 넘지 않습니다. 99.9퍼센트는 사라졌습니다. 사멸한 것입니다. 남은 것은 단 0.1퍼센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 문학은 패배했을까요? 괴멸한 것일까요? ....0.1 퍼센트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도 99.9퍼센트의 사멸을 넘어 그리스 문화는 이슬람 문화를 키우고 유럽을 창출했으며, 우리 세계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p260. 다만 확실히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자가 탄생한 지 아직 겨우 5000년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5000년 동안 90퍼센트의 사람들이 완전한 문맹이었습니다.

 

p268. 그 후 19세기가 되면 출판 종수가 급락하는데, 그것은 또 왜일까요? 1805년에는 유럽에서 4081종이었던 서적의 출판 종수가 1813년까지 2233종으로 뚝뚝 떨어집니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혁명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 전야, 독서에 대한 열광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변절, 프랑스 황제에 대한 대관으로 프랑스혁명이 어떤 의미에서 좌절합니다.

 

p269. 17세기라고 하면 코르네유나 라신, 라파예트 부인의 시대입니다. 프랑스 문학의 한 융성기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1672년 파리의 식자율은 25퍼센트였습니다. 게다가 이 식자율이라는 게 사인을 할 수 있는가의 여부로 판정된 것이었습니다.

 

p272. 1850년대의 잉글랜드는 어땠을까요?가장 선진국이었습니다. 성인 문맹률은 30퍼센트였습니다. 1850년이라고 하면 디킨스가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출판한 해입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어떨까요? 40~45퍼센트였습니다. 어떤 책이 출판되었을까요? 우선 이해에는 발자크가 죽은 해입니다. <골짜기의 백합>1835년에 나왔습니다. 스탕달의 <파르므의 수도원>1839,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1857, 보들레르의 <악의 꽃>의 초판도 1857년에 나왔습니다. 이탈리아의 문맹률은 70~75퍼센트였습니다. 에스파냐의 문맹률은 75퍼센트였습니다.

 

좀 더 근사한 것은 러시아입니다. 1850, 러시아제국의 문맹률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90퍼센트였습니다. 최신 연구에는 95퍼센트라고 하는 문헌도 있습니다.

 

p273. 그렇다면 1850년 전후에 누가 무엇을 출판했을까요? 푸시킨이 1836년에 <대위의 딸>을 냈습니다. 고골 리가 1846년에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 톨스토이가 1852년에 <유년 시대>, 투르게네프가 1852년에 <사냥꾼의 수기>를 냅니다.

 

그 당시 러시아 인구는 4000만 명이었습니다. 대충 양보하여 10퍼센트인 400만 명이 도스토엡스키를 읽을 수 있었다....., ,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400만 명 밖에 자산의 사인을 할 수 없었다는 무리한 상황에서 <죄와 벌>같은 작품들을 차례로 쓴 것입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단적으로 9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읽을 수 없었습니다. 러시아어로 문학 같은 걸 해봤자 소용없었던 것이지요. 이런 파멸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쓸 수 있었을까요?

 

p275.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당연합니다. 문학이 살아남고, 예술이 살아남고, 혁명이 살아남는 것이 인류가 살아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외에는 없습니다. 왜 쓸까요? 왜 계속 쓰는 걸까요? 계속 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달리 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p276. 그리스인들이 99.9 퍼센트 소멸한 가운데 0.1 퍼센트에 승부를 걸어 승리한 것처럼 러시아인들도 이겼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0.1 퍼센트가 살아남는다면 이기는 싸움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적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0.1 퍼센트라도 놓치면 지는 겁니다.

 

p278. 우리 인류는 생겨난 지 20만 년이나 되었습니다. 문자를 발명한 지는 5000년이 되었습니다.

 

p279. 요컨대 대체로 75천년 전부터 35천년 전까지 넓은 의미에서 예술이라 불리는 행위가 거의 다 나왔습니다. 농경, 목축, 부의 축적에서 오는 경제활동이라는, 이른바 정주에 의한 문명은 12000년 전부터 9000년 전, 대체로 1만년의 역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술의 역사에 비하면 7분의 1의 역사밖에 안됩니다.

 

p282. 우리의 문학은 이 세상에 생을 얻은 지 고작 5000년밖에 안 된 젊은 예술이고, 아직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인 것입니다. 5000년은 20만 년의 40분의 1입니다. 여든 살 노인의 입장에서 보면 두 살배기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p283. 전대미문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전대미문이지만 과학적인 사실입니다. 세계의 종말은 이미 있었습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오지 않지만 말이지요. ‘대대적인 절멸이 있었습니다. 다섯 번이나요. 어떤 고생물학자에게 물어도 이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이 전원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이첩기), 트라이아스기(삼첩기), 백악기. 이를 빅 파이브라고 합니다.

 

p284. 생물 의 평균연령은 대체로 400만 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1년간 자연사하는 종은 400만 종에 한 종 꼴입니다.

 

p287 전쟁 전이 발레리라면 전후 프랑스 최대의 비평가라 불리는 모리스 블랑쇼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단적으로 “‘는 죽을 줄을 모른다라고 말했습니다. 왜일까요? 행동이라는 것은 뭔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며, 그리고 그것이 끝났다는 것을 확인해야 비로소 끝납니다. 결말을 지켜봐야 끝납니다. 그런데 죽는다는 행위는 그 결말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p2188. 블랑쇼는 사람은 죽을 수 없다라는 이 사고를 더욱 확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류는 멸망한다. 하지만 인류는 멸망하지 않는다.”

 

p291. 우리들 호모사피엔스가 400만 년 산다고 하면, 우리가 탄생한 지 20만 년이 되었으니 앞으로 380만 년 정도는 남아 있습니다. 400만 년에 20만 년이니까 20분의 1이네요. 여든 살 노인이라고 보면 네 살에 불과합니다. 네 살치고는 상당히 잘하고 있습니다. 흔히 농담으로 말합니다만, 네 살 짜리 남자아이가 찾아와. “우리 세계는 끝났다. 역사는 끝났다.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바로 파멸의 위기 한복판에 있다.”라고 우쭐하여 빙글거리며 말했다면, 물론 물리적인 징계는 몹시 좋지 않은 일이겠지만, 웃으며 엉덩이를 살짝 꼬집어주지 않으면 교육상 좋지 않을 겁니다.

 

p291. 379만년 양보한다고 해도 앞으로 1만 년은 남은 셈이네요.....그렇다면 1만년 간 우리의 루터, 무함마드, 하디자, 아우구스티누스, 테레지아, 도스토엡스키, 조이스, 베케트, 버지니아 울프, ()들 같은 사람들이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요? 어차피 1만 년이나 있으니까 예술도 부처도 다시 올지도 모릅니다.

 

들뢰즈처럼 쾌할하게 철학이 끝났다고? 그건 첫 번째 황금시대가 끝났다는 것에 지나지 않아. 앞으로 두 번째 황금시대가 찾아올 거야라고 단언해도 되지 않을까요?

 

p293. 당신은 뭔가를 하고 그것이 의미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행해지는 것이다. “당신은 행해진다! 어떤 때라도!”라고 노래하듯이 그는 말합니다. 즉 우리는 우주의 거대한 생성의 일부이고 그 의미인것입니다. 이 방대한 우주의 생성 안에서 이리하여 우리가 말을 얻을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을 자아내가는 것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미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의미입니다.

 

p295. 자신이 한 일을 왜 발표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요? 그건 그 말 그대로입니다. 예술가에게 예술은 본질적으로 그 과정만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제작하고 lT을 때, 자신의 몸도 마음도 함께 부서지고 변용해가는 과정만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세상에 내놓고 평가를 받는다느니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느니 하는 것은 그다음 문제입니다.

 

p296. 명예욕을 위해서도 아니고 금전욕을 위해서도 아니라고 한다면, 왜 발표하지 않으면 안 되는걸까요? 그것은......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좀 더 말해볼까요? 베케트나 첼란이나 헨리 밀러나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나 ....발레리가 없었다면 저는 여기에 없을 겁니다. 니체나 푸코나 르장드르나 들뢰즈나 라캉이 있어주어 다행입니다. 그들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겁니다.....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좋을지 몰랐을 겁니다.

 

발터 벤야민이 말했습니다. “밤중에 계속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다.”라고요. 발소리를 들어버렸던 것입니다. 도움을 받아버린 것이지요. 그렇다면 누구의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발소리를 내는 것조차 거부당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발소리를 내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할 터입니다. 들려주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될 터입니다. 한 발짝이라도 좋으니까요.


p297.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초판으로 몇 부나 인쇄되었는지 아십니까? 700부입니다. 350부가 반품되어 태워졌습니다. 2판에서 대폭 증보 개정합니다만, 그 또한 비슷비슷합니다. 그중 한 권을 헌책방에서 우연히 산 사람이 바로 스물한 살의 프리드리히 니체였습니다. 그는 깊은 충격을 받아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를 쓰게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하겠지요.

 

p298. 그렇다면 철학사상 견줄 것이 없는 걸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최종부인 제4부가 몇 권이나 배포되었는지 아십니까? 출판사의 버림을 받아 자비로 40부를 찍었고 7부만 지인들에게 보냈습니다. 세계에서 단 7부입니다.

 

니체는 이런 의미의 말을 했습니다. 언젠가 이 세계에 변혁을 초래할 인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인간에게도 방황하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 밤에 문득 펼쳐본 책 한 줄의 미미한 도움으로 변혁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그 극소의, 그러나 절대 제로가 되지 않는 가능성에 계속 거는 것. 그것이 우리 문헌학자의 긍지고 싸움이다, 라고요. 이것이 미래의 문헉학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미래의 문헌학이란 대천사의 문헌학이다, 라고요.

 

말은 그것을 빠져 나옵니다.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그것이 들려옵니다. 낮게, 알아듣기 힘들지만, 그러나 확고한울림으로, 한밤중에. 그래요, 들려오고 말았으니까요.

 

p301. 그래도 패배가 두렵습니까? 내기에 지는 것이 두렵습니까? 그렇다면 역시 최후에는 그를 등장시키지요.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제 4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다 높은 인간들이란 니힐리즘에 도달하기까지 철저히 높은 인식 수준에 있어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고 설명해두기로 합시다. “그대들, 창조하는 자들이여,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잉태한다는 것은 자신의 아이를 잉태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한 조금 뒤입니다.

 

그리고 그대들이 비록 큰 일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대들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일까? 그리고 그대들 자신이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인간이 실패했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좋다! 가자!

 

높은 종족에 속할수록, 완성하는 일은 드물다. 여기 있는 그대들,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충분히 완성되지 않은 게 아닐까?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많은 것이 아직 가능하다. 그대들 자신에게 웃음을 퍼붓는 것을 배워라. 웃어야 마땅한 것처럼 웃는 것을 배워라!

 

인간이 도달할 수 있어야 할 가장 먼 것, 가장 깊은 것, 별처럼 높은 것, 거대한 힘, 그 모든 것이 그대들 항아리 안에서 서로 부딪치며 부글거리고 있지 않은가.

 

때로 항아리가 부서지는 일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대들 자신에게 웃음을 퍼붓는 것을 배어라. 웃어야 마땅한 것처럼 웃는 것을 배워라.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실로 많은 것이 아직 가능하다.

 

p303 그렇습니다. 지금은 전야입니다. 이 전야가 깊어지는 가운데 우리도 사라지기로 합시다. 우리의 밤 속으로. 우리의 싸움 속으로. 우리의 승리하고 패배하는 환히 속으로.

 

p306. <야전과 영원>에 반응해준 이가 사상이나 비평 주변에서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현장에서 뭔가를 창조하고 끊임없이 운동하는 작가, 음악가, 미술가, 디자이너, 활동가들이었다는 역력한 사실은 어느 위대한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의 등뼈에 철심을 넣고 내 피에 유황을 부어넣었다.” ()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감히 피하기로 한다. 본문에서 은밀하지만 명백한 경애와 연대의 신호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제목은 파울 첼란의 <빛의 강박>에 실린 한 시구를 인용한 것이다.

 

p309 옮긴이의 말

 

혁명이란 폭력이 아니라 문학이다. 읽는 것과 쓰는 것, 그 자체가 혁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은 문학으로부터만 일어난다고 이 책에서 저자는 거듭 말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문학은 소설 같은 것이 아니라 더욱 넓은 의미다. 이때의 문학은 문자로 쓰인 모든 텍스트에다 춤이나 음악 등까지 포함한 것.

 

이 책은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책인데,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쳐 읽는다는 것이고, 책을 고쳐 읽는다는 것은 고쳐 쓴다는 것이며, 책을 고쳐 쓴다는 것은 법을 고쳐 쓴다는 것이고, 법을 고쳐 쓴다는 것은 곧 혁명이다. 그리고 읽고 쓰는대상이 종이에 쓰인 것에 한정된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극히 한정된 시공에서고 춤, 음악, 노래, 복식, , 회화, 영화 등 온갖 예술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p316. 저자에 따르면 책은 본래 읽을 수가 없다. 읽으면 미쳐버리기 때문이다. 알면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정도가 아니면 일류의 책이라고 부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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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이 미덕에 바치는 오마쥬


요나스 요나손 성석제 이기호

 

의아했다. 피에르 르메트르가 공쿠르 상을 받았다고?! 공쿠르상이 일본 나오키 상처럼 말랑말랑한 상이 아닌데?! 르메트르 소설 중 몇 권은 재미없어 읽다 말았고 그나마 끝까지 읽은 소설은 <알렉스>였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저 그런 미스테리? ‘끝에 가서 삑사리를 내서 그렇지 르메트르 보다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가 훨 낫지 않나?’

 

읽으면서 연신 놀라움에 휩싸였다. 이게 같은 사람이 쓴 거라고? 정말, 리얼리?!

이 정도면 가히 비상, 도약이라 할 만하다. 미스테리 소설만 쓰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마르케스 혹은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같은 소설을 쓸 줄이야!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어쩌면 읽기때문일까.

 

이 텍스트를 써가면서 나는 몇몇 작가들을 차용했다. 에밀 아자르, 루이 아라공, 제랄드 오베르, 미셸 오디아르, 호메로스, 오노레 드 발자크, 잉마르 베리만, 조르주 베르나노스, 조르주 브라상, 스티븐 크레인, 장루이 퀴르티스, 드니 디드로, 장루이 에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박토르 위고, 가즈오 이시구로, 카슨 매컬러스, 쥘 미슐레, 안토니오 무뇨스 물리나, 앙투안 프랑수아 프레보, 마르셀 프루스트, 파티리크 랑보, 라로슈푸코 등등

 

p669. <오르부아르>

 

1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는 전사자 국립 묘지를 만들기로 한다. 이 사업에 악마의 화신 같은 도니프라델 중위가 뛰어든다. 정부 고위 인사에게 온갖 뇌물을 먹여 사업권을 취득한 도니프라델은 오늘날 탐욕스런 자본주의, 대기업의 상징같은 존재다.

 

관은 170cm에서 130cm까지 줄어든다. 전사자들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서는 관에 집어넣을 수가 없다. 전사자들 시체와 무덤 명패도 맞지 않는다. (유족들이 무덤을 파볼 것 같아!) 심지어 프랑스 군인의 묘지에 독일 군 시체를 집어넣는다. 이후엔 아예 시체없이 무덤을 흙으로 채워 넣기까지!

 

전쟁 중 도니프라델의 부하였던 미야르 알베르와 에두아르는 생계고에 시달리다 전사자 추모 기념비를 만들어 준다며 전국적인 사기를 친다. 과연 누가 더 사악한가?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과 풍자적인 문체 때문에 요나스 요나손이 떠올랐다.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의 노인> 보다는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한국 작가들 중에도 <오르부아르>나 요나스 요나손에 비견할 만한 작가들이 있다. 성석제와 이기호. 한국의 웃픈 현실을 이 두 작가만큼 제대로 보여주는 작가들이 있던가? 성석제로 치자면 아무래도 <투명인간>이 아닐까. 짐승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혹사당하는 만수는 <오르부아르>의 알베르를 떠올리게 한다









<오르부아르><투명인간>보다 더 가혹한 소재를 다루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작품은 단연 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 이 소설에서 알베르, 만수에 비견될만한 인물은 나복만이다. 더 바보같고 그가 당하는 고통은 더 처절하다.


최근에 이기호의 신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가 출간되었다.

부디 <오르부아르>만큼 대박 나시길.

 

(20대 때 불문과 다니는 친구는 테레사 수녀, 테레사 수녀라는 말을 못 견뎌했다.

“‘떼레쥐라고 해 줄래?”

 

어찌나 때리고 싶던지. 내가 불문과 가고 나서야 그 친구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제목 <오르부아르>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은건지 모르겠다.

의역을 한 것도 아니고 원제를 다 살린 것도 아니고.

근데, 이 바보 같은 제목이 왠지 소설과 잘 어울린다.

 

아무튼 에두와르와 알베르가 부디 다시,

천국에서 만나길

오흐부아, 라 오

 

 

밑줄 그은 문장

 

p264. 앙리가 보기에 세상은 두 종류로 구분되었다. 하나는 죽을 때까지 뼈 빠지게, 그리고 맹목적으로 일하면서 그날그날을 불쌍하게 연명해 가는 마소 같은 존재들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 엘리트들이다. 그들의 <개인적 요소들> 때문에 말이다.

p277. 그녀는 별로 질색하지 않았다. 어머니 쪽으로는 리무진적인 면을 물려받았지만, 평범한 편이었던 아버지 쪽으로는 수레적인 면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p294. 꼭 그녀의 아버지처럼, 정말로 한 켤레의 양말처럼 닮은 부녀였다.

 

p521. 라부르댕은 문장을 만들 때 오로지 음절을 고려하지, 그 안에 담기는 생각을 고려하는 적은 거의 없으니까.... 라부르댕은 일테면 원구형의 천치라고 할 수 있었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항상 멍청한 모습만 보이니까 말이다. 그에게선 아무것도 이해할 게 없고, 기대할 것도 없었다.

 

p550. 난 왜 갈보집들이 그렇게나 기독교적인 이름을 가진 거리들에 그토록 많이 자리 잡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아마도 악덕이 미덕에 바치는 오마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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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3-1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떼레쥐...ㅎㅎㅎㅎㅎ

시이소오 2016-03-17 10:13   좋아요 1 | URL
다시 생각해도 `떼레쥐`고 싶네요 ^^

깊이에의강요 2016-03-1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시이소오님 댓글보고 빵~
ㅋㅋㅋ

시이소오 2016-03-17 15:21   좋아요 0 | URL
웃으셨다니 좋네요
아주 웃긴 글을 쓰고 싶어요^^

깊이에의강요 2016-03-17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잘 쓰실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6-03-17 18:31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오르부와르 ~~흐흐^^

서니데이 2016-03-17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좋은 저녁 시간 되세요.
오늘도 제 서재에서 퀴즈 준비합니다.^^

시이소오 2016-03-17 19:22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도요. 퀴즈 보러갈께요^^

eL 2016-03-18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오르부와르가 Au revoir 였군요. 상상도 못했네요 ㅎ 저도 떼레쥐에서 빵 터짐 ㅋ

시이소오 2016-03-1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르부와르가 Au revoir 였어요. 이엘님, 오르부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