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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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발언하는 건 언제나 위험한 일이자 멍청한 일이다. 특히나 남성으로서. 뭐라고 말하건 욕먹기 참 쉽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라면 침묵이 금이다. 본전도 못 찾는다. 페미니즘 책에 대한 독후감 역시 안 쓰는 게 쓰는 것 보다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이 근질거려......

 

이 책을 읽고서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이 이렇게 넓었나 새삼스레 놀란다. 거의 모든 담론들이 페미니즘에 수렴된다. 젠더, 인종, 계급, 자본주의, 식민주의, 결혼, 육아, 가사노동, 사랑, ......

 

이 나라에서 벨 훅스는 너무 일찍 도착한 게 아닐까? 한 이십년 후라면 모를까. 내가 이 책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건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이...... 부디 페미니즘이 한층 개화한 이후인 2029년이라고 상상하고 읽어주시길.


페미니즘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선진국이라면 다르겠지만 벨 훅스의 페미니즘 내부 비판을 받아들이기에 이 땅의 페미니즘은 아직 꽃 한 번 피워본 적이 없다. 과연 한국에서 인지도를 갖춘 페미니스트는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국 페미니스트 내부 진영에서 벨 훅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혁명적 페미니즘을 가장 잘 포용한 곳은 학계였다. 학계에서는 혁명적 페미니즘을 이론으로 정립해 발표했지만, 정작 대중은 이 이론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결국 이 이론은 우리 중에서도 학식이 뛰어나고, 교육 수준이 높고, 대개 경제적으로 윤택한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특권층의 담론으로 자리잡았으며 그런 경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따지고 보면 대중은 이런 책에 담긴 메시지를 거부한 적이 없다. 그게 무슨 메시지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p32.

 

주디스 버틀러 책을 읽다 너무 어려워 던져버린 적이 있었다.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주디스 버틀러를 읽어야 한다면 나는 포기하겠다. 페미니즘이 나라를 불문하고 주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그들만의 언어로 말해진다면 과연 일반대중들이 페미니즘을 자신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당장 윤김지영의 <헬페미니스트 선언>만 하더라도 읽기 수월한 책이 아니다. 페미니즘이란 간단히 말해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장내려는 운동이 아닌가? 그런데 현대 페미니즘은 너무 어렵다. 페미니즘은 근본적으로 삶의 방식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렇게 현란한 수사가 난무해야하지? 페미니즘이라는 유리병에 든 편지는 청소 노동자 여성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을까? 편지라고? 이건 암호문이 아닐까?

 

계혁적 페미니즘은 그들에게 계층 이동의 수단이었다. 그들은 일터에서 남성중심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났고 좀더 주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성차별주의가 여전히 만연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기존체계 내에서 최대한 자유를 누리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이 거부한 궂은일은 착취당하는 종속된 하층 계급 여성들이 떠맡을 터였다. 그들은 노동자 계급과 가난한 여성들의 종속을 수용하고 오히려 이와 결탁함으로써 기존 가부장제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성차별주의와도 동맹을 맺은 셈이다. p32

 

지난날 이 땅의 운동권들은 기득권에 부역하여 권력과 명예, 부를 움켜쥐었다.

과연 이 땅의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을 수용할 수 있겠는가

 

계급권력을 가진 여성들이 기회주의적으로 페미니즘을 이용하고 한편으로 페미니즘 정치의 기반을 약화시켜 궁극적으로 그들을 다시 종속시킬 가부장제의 유지를 도왔다면 그들은 페미니즘만 배신한 게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배신한 셈이다. 페미니스트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계급 문제로 되돌아가 거기서 다시 연대를 위한 토대를 쌓아야 한다. p108

 

계급 문제를 외면한 페미니즘은 자칫 특권층 여성들의 티파티 모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특권층 여성들이 말하는 평등은 나도 금융 자본가와 평등해지겠다는 것이지 공장 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미국 페미니즘 지도자들이 자국 내 젠더 평등의 필요에 대해 처음으로 목소리를 드높였을 때, 그들은 비슷한 운동이 전 세계 여성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자신들이 해방되었기에 이제 자기네보다 운 없는 자매들, 특히 3세계여성들을 해방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신식민주의적 온정주의는 보수건 진보건 백인 여성들만이 페미니즘의 실질적인 대변자가 되게끔 유색인종 여성들을 일찌감치 뒷전으로 보내버렸다. p114

 

벨 훅스는 흑인이다. 저자는 혁명적 페미니스트로서 주로 - 특권층 백인 여성들로 이루어진- 제국주의-자본주의-백인우월주의-가부장제와 결탁한- ‘개혁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입장이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대개 엘리트 계급이다. 서울- 고학력- 부르주아. 과연 한국 페미니즘은 특권층 백인 여성들처럼 시혜적 페미니즘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일터에서 여성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여성이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하고 계급을 막론하고 구직자 여성들의 취업을 도우려는 노력과 더불어서 페미니즘 운동의 핵심 의제를 이루었더라면,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의 관심을 아우르는 운동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출세에 혈안이 되어 여성의 고임금 전문직 진출에만 관심을 쏟아 대다수의 여성들을 페미니즘 운동에서 멀어지게 했다. 또한 페미니즘 활동가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한 부르주아 여성이 증가했다고 해서 여성 전체가 경제력을 획득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꾸 외면했다. 그들이 빈곤층과 노동자 계급 여성들의 경제 상황을 제대로 살폈다면, 여성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계급을 불문하고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여성들이 증가하는 추세도 포착했을 것이다. p128

 

벨 훅스는 끊임없이 가부장제-자본주의와 결탁한 백인 특권층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외면한 계급, 인종의 문제를 페미니즘 내부 담론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그녀는 가정 폭력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이 주도한 가정 폭력의 문제를 도외시하지도 않는다.

 

개혁주의 페미니즘 사상가들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어떻게든 부각하기 위해 여성을 언제나 그리고 유일한 피해자로 묘사하곤 한다. 아동에게 지독한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 중 여성이 많다는 사실에는 제대로 주목하지 않는 데다, 이것이 가부장제 폭력의 또 다른 형태임을 외면한다. p152

 

그러니까 벨 훅스의 이런 관점들이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불편하지 않을까?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이 가하는 차별에만 논의를 집중하는 반면 벨 훅스는 여성이 저지르는 차별 역시도 페미니즘 담론으로 수용하려 한다. 학계를 기반으로한 페미니스트 입장에서는 벨 훅스는 영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아닐까. 심지어 벨 훅스는 남성을 적으로 돌리는 페미니즘마저 비판한다.

 

벨 훅스가 보기에 남성이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남성중심주의가 문제다. 단순한 성 이분법이 아닌 제도의 문제로 살펴볼 때, 여성 역시도 성차별주의가 유지되고 영구화되는데 동참하고 있을 수 있다. 아들을 못 낳는다고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는 여성이지만 성차별주의자며 가부장제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가.

 

페미니즘 운동 내의 반남성 분파는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남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그런 남자들 때문에 모든 남성은 억압자라거나 모든 남성은 여성을 혐오한다는 자신들의 주장이 힘을 잃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억압자/피억압자라는 단순한 범주화로 남성과 여성을 극단적으로 갈라놓음으로써 손쉬운 계급 상승과 가부장제 권력 배분을 노렸던 페미니스트들의 이익과 합치했다. 이들은 모든 여성을 피해자로 재현하기 위해 모든 남성을 적으로 간주했다. 남성에 대한 적대는 일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계급 특권과 계급 권력을 향한 욕망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수단이었다. 모든 여성들에게 남성을 거부하라고 요구했던 이 활동가들은 여성이 남성과 공유하는 돌봄의 유대도, 성차별주의자인 남성이 여성을 묶어두는 경제적, 감정적 결속도 직시하려 들지 않았다. p164

 

기존의 가부장제에 충격을 가하기 위해 남성혐오 페미니즘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메갈.

그러나, 페미니즘이 멀리 가기 위해선 모든 남성을 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과연 바람직할까. 기득권을 움켜쥔 일부 페미니스트에겐 벨 훅스만큼 재수 없는 여자도 없을 것 같다. 남자보다도 싫을 듯.

 

기존의 페미니스트는 이 책을 일종의 예방 주사라 생각하자.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백인 특권층 페미니즘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벨 훅스에 대해 분노한다면 벨 훅스가 자신이 은폐한 어떤 것을 폭로했기 때문이 아닌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땅에서 벨 훅스는 너무 일찍 왔다. 사실 우리는 벨 훅스를 논할 때가 아니다. 한국 전쟁 전후로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지 않았다. 단지 먹을 게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작금의 우리에겐 부족할지언정 페미니즘이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때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메갈을 비난하기엔 너무 이르다. 지금으로선 메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만일 페미니즘이 무르익은 시기가 온다면...

 

나와 같은 나쁜 페미니스트입장에서 벨 훅스의 페미니즘은 그 누구보다도 중용의 페미니즘이라 할 만하다. 남성을 외면하고, 가난한 자를 소외시키는 페미니즘은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 이분법적인 페미니즘은 그야말로 유아적이다. 남성 가부장제도 문제지만 여성 가부장제 역시 문제다.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가 성을 초월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페미니즘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계급 상승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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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1-12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자임에도 아직 이 분야의 책은 하나도 못 읽고 있습니다.
아, 작년에 한 권 읽었나? <여혐민국>
솔직히 그 책은 좀 생각 보다 별로였습니다.

마태우스님 책을 읽다 그런 말이 나오더군요.
어떤 것이 문제라면 그 분야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지금은 어느 때 보다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 타임에 시이소오님이 페미니즘 얘기를 해도 적어도 앞에서 대놓고
누가 뭐랄 사람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2029년 멀리 내다 볼 필요없습니다.
이제 남자가 페미니즘을 얘기하면 엄지 척 할 시대가 곧 도래할 겁니다.^^

시이소오 2017-11-12 19:17   좋아요 0 | URL
잘못 이해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러사람들이 눈치보지않고 발언하기 편한 사회가 된다면 페미니즘도 지금보다 더욱 더 대중화되지 않을까요?




cyrus 2017-11-12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티 프리단은 《제2의 단계》를 발표한 이후로 남성을 공격하는 페미니즘에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어요. 페미니스트들이 프리단을 비난했어요.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는 번역됐는데, 《제2의 단계》가 번역되지 않았어요. 저는 그 이유가 궁금해요. 베티 프리단처럼 남성을 적으로 돌리는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국내 페미니스트들이 이 책을 외면하는 것일까요? 《제2의 단계》가 페미니스트들의 지적을 받는 책이더라도 국내에 소개됐으면 좋겠어요. 사실 《여성의 신비》 한 권으로 베티 프리단의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데 부족해요.

시이소오 2017-11-12 21:26   좋아요 1 | URL
벨훅스도 한국 페미니즘 진영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너무 어렵네요 ㅠㅠ

cyrus 2017-11-12 21:28   좋아요 0 | URL
네. 요즘 저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페미니즘을 이해하려면 페미니스트들의 삶도 알아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페미니스트들의 삶을 소개한 책이 많지 않아요.

시이소오 2017-11-12 21:30   좋아요 2 | URL
저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돼야겠습니다^^

아무개 2017-11-13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인특권계급에 해당하는 여성계급이 한국에도 존재하는지 의문입니다.
유승민의원 선거유세때 따님이 일베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성희롱을 당했지요.
박근혜전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정유라 역시 권력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을 향한 시위구호는 이년저년이었구요.

벨 훅스의 교차성페미니즘은 현재 한국에서 오염되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내의 교차성은 연대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수많은 페미니즘의 결을 한곳으로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어떤 학자의 한두권의 책으로 페미니즘을 정의하기도 힘들고
이책저책 읽다보면
그래서 뭐 어쩌란건가 싶기도하고 계속 헤메고 있는 느낌이에요. . . .





시이소오 2017-11-13 20:47   좋아요 0 | URL
한국엔 없을수도 있겠네요. 저 역시도 계속 헤매는중이라^^;
 
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 지음, 나일등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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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발견이 우치다 타츠루였다면 2017년의 발견은 단연 사이토 미나코다. 이 책 한권만으로 발견이라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깊고 넓고 선명하다. 아직까지 독후감을 쓸 만한 정신적, 육체적, 시간적, 공간적 여유 따위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입이 근질근질거려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책에는 8명의 일본 작가에 대한 사이토 미나코의 작가론론이 실려있다. 네 작가는 익히 친숙하고 좋아했던 작가고 나머지 네 작가는 잘 모르거나 아직까지 읽어본 적이 없는 작가다.

 

다와라 마치, 하야시 마리코, 우에노 지즈코, 다나카 야스오는 나로선 전인미답의 지역이다. (우에노 지즈코를 아직 읽지 못했다니!) 사이토 미나코의 작가론론을 읽고서 네 작가 모두 읽고 싶어졌다.


 

좋아했거나 싫어했던, 혹은 자주 읽었던 작가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다치바나 다카시다. 사이토 미나코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각도로 이들을 분석하는데 그녀의 논리는 꽤나 매력적이다. 한 명씩 건드려볼까 

 

무라카미 하루키

 

네지메 쇼이치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다방 주인 문체라고 말했다. 공감이 가지 않는가. 하루키 소설에는 마실 것(맥주나 위스키)과 먹을 것(샌드위치, 스파게티), 기분 좋은 음악(스탄 게츠, 째즈, 클래식)이 끊임없이 흐른다. 그러나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다방 주인 문체가 아니다. 이번에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으면서 이전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걸 느꼈다.

 

어라, 이거 수수께끼네.’

 

새삼스레 내가 깨달은 건 하루키 문학이 퍼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무려 15년 전인 2002년에 씌어졌다. 그럼에도 하루키 문학이 퍼즐임을 정확히 지적한다.

 

게임 해독 열풍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발전해버립니다. 게임의 소문을 듣고 몰려든 손님들은 냅킨 한 장부터 테이블 다리에 이르기까지 하루키 랜드에 있는 거의 모든 기기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p25

 

방법적으로는 챈들러, 테마 그 자체로는 피츠제럴드 (마쓰자와 마사히로)’, ‘ 무라카미 하루키와 킹은 매우 닮은 감정의 질을 가지고 있다. (가자마 겐지)’ ‘도스토엡프스키의 <분신>(요코오 가즈히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낙엽>이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노야 후미아키)’ ‘들뢰즈/가타리(스즈무라 가즈나리)’,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무라카미 게이지>

 

그는 이곳저곳에 먹이를 뿌려놓는다. 몇 가지 진짜 수수께끼, 즉 테마 주변부에 2차적인 수수께끼를 뿌려놓는 것이다. 게으른 독자나 장거리 달리기에 소질이 없는 독자 또한 그 먹이에 이끌려 먹이를 쪼아 먹는 사이에 골에 도달해버리고 만다. 게다가 그 2차적 수수께끼는 지적 스노비즘을 자극하는 역할도 한다. 거기에 보기 좋게 걸려든 독자는 수수께끼 풀이에 모든 열정을 쏟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만큼 수수께끼 풀이, 해독 사전을 낳은 작품도 드물지 않을까. 비평가들조차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2차적 수수께끼의 해독에 열중한다. - 노야 후미아키 p28

 

사이토 미나코는 하루키 문학이 사실 게임 소프트 웨어 그 자체라고 말한다. RPG 게임. 뭐 그리 대단한 발견은 아니다. 켐벨의 영웅의 여정을 따르는 모든 소설 및 영화는 RPG니까. 또한 그녀는 1990년대 후반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박한 시대로 회귀했다고 진단한다. 그녀는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해 뭐라고 썼을까? 혹시 게임시대의 부활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내가 푼 <기사단장 죽이기>의 수수께끼 하나만 언급하자.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맨시키가 자신의 딸로 추정되는 마리에와 대면하는 장면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가 데이지와 재회하는 장면에 대한 패로디 혹은 오마쥬라는데 열 손가락 전부 다 건다. (그런데 이정현은 장 언제 지지나?)

 

사이토 미나코는 하루키에 대한 글을 끝마치며 하루키 랜드는 시종일관 보쿠라는 일인칭으로 상징되는 남자 아이들의 세계였다고 지적한다. 공감 백만배다.

 

왜 하루키 소설에 의미도 없는 섹스 장면이 난무하는가? 섹스 장면조차 없다면, 소설이 너무나 유치해지기 때문이다. 거의 동화 수준이다. 어쩌면 하루키가 사용하는 어른들의 기호(섹스, 맥주, 위스키, 스파게티, 클래식, 째즈 등)들은 소년 하루키를 은폐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그래서 팔리는 걸까. 소년이 아닌, 소녀가 아닌 진짜 어른은 얼마나 될까. 사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소년, 소녀가 살고 있지 않은지.

 

퍼즐로서의 하루키 문학을 풀기 위해선 하루키 전작 및 그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 예를 들어 스티븐 킹,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첸들러 전작을 해야 하는데,

어찌할까.

 

이미 일본엔 하루키가 쓰지 않은 하루키 단행본만 오십 여권 된다는데.

아무튼 빠른 시일 안에 기사단장 죽이기 공략법페이퍼를 써야겠다.

 

 요시모토 바나나.

 

1988년은 하루키 시대의 개막이었다. <노르웨이의 숲>이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다. 그 다음 해인 1989년은? 바나나 열풍의 해다. 바나나 소설 다섯 권과 수필이 단기간 동안 이렇게나 미친 듯이 팔려나갔다니. 키친 130만부, 물거품/성역 90만부, 슬픈 예감 80만부, 티티새 140만부, 하얀 강 밤배 70만부, 파인애플링 50만부. 대충 계산해서 신인 작가의 책이 단시간에 570만부가 팔려나갔다.

 

일본에서 바나나를 읽는 독자층은 10~ 20대 여성이 90%였다고 한다. 사이토 미나코는 바나나가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코발트 문고의 계보를 잇는 작가라고 말한다. 즉 바나나 문학은 소녀 문학이다. 그런데 30대 시절의 나는 왜 그렇게 바나나를 좋아했던 것일까. 변태 아냐?! 하긴 뭐, 브론테 자매의 <폭풍의 언덕>이나 <제인에어>도 좋아했으니. 내 가슴 밑바닥엔 소년보다 소녀가 살고 있었던 걸까

아마도 내가 바나나를 좋아한 이유는 바나나 소설 특유의 그리움의 정서 때문이 아니었을까.

 

무라카미 류

 

사이토 미나코는 류의 소설에 대해 사람을 조잡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니까 류의 소설을 읽으면 사람이 조잡해진다는 거다. 그런 힘을 가진 소설이 있다니!

 

일본에서도 류와 하루키를 비교하는 글들이 난무했었구나. 예를 들면 이런 비평.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으면 내성적으로 되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 하루키는 마리화나 같은 효과를 준다. 반면에 무라카미 류를 읽으면 강렬한 쾌락을 느낀다. , 류는 각성제라고 할 수 있다‘ - 가메와다 다케시.

 

나 역시도 하루키 문학을 마약이라고 평했기에 마취제/각성제의 비교가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사이토 미나코는 이해는 하지만 한심한 코멘트라고 평가한다.

 

제가 이런 비교론을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만약 류나 하루키 둘 중 하나의 이름이 무라카미가 아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만약 사온지, 이주인, 무샤노코지 같은 이름이었다면 그래도 이런 비교론이 성립했을까요? p240

 

. 미나코의 말처럼 만약 이름이 달랐더라면 애초에 두 작가를 비교하기나 했을까. 늦게나마 이 책을 통해 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생물학 차원에서 보자면 여자에게 지혜는 없다. 지혜라는 것은 부성이라는 환상을 업고 있는 남자에게만 있는 것이다. / ......바보같은 여자일수록 귀엽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그도 그럴것이, 여자가 생리가 아닌 로직(지혜)에 의지한다면 아이를 낳지 않을게 분명하지 않은가.

 

- 무라카미 류, <모든 남자는 소모품이다> p243

 

류도 꼰대였다니! 이 글에 대한 야마다 에이미의 촌철살인의 비평은 이렇다.

 

.......그러나 이 말들에 숨겨진 의미 같은 것은 없다. 약한 남자는 어떻게 설명해도 그저 약할 뿐이다. 여자는 위대하다고 말하면서 자기 긍정의 요소를 찾으려고 해도 그런 것은 뻔뻔스러울 뿐이다. / 긍정적 언어도 마찬가지다.....무라카미 류는 의미 없는 말에 의미를 부여해서 독자를 지치게 하는 데 탁월하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허풍쟁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 야마다 에이미

 

사이토 미나코는 야마다 에이미가 문고 해설 역사에 남을 훌륭한 해설을 했다고 평한다.

 

그녀는 나는 이 책을 매우 싫어한다.”, “그의 몇몇 훌륭한 소설에까지 촌스러운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최악의 수필집이라고 생각한다며 무라카미 류가 너무 오랫동안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작가타이틀을 달고 있었던 탓에 망가진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합니다. p244

 

더불어 사이토 미나코의 류에 대한 비평.

 

현실(논픽션)보다 허구(픽션)의 분량이 많아질 때 무라카미 류의 이야기 세계는 리얼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픽션이라는 무장을 풀고 허구의 분량이 적어질수록 류 월드는 무참한 파열을 보입니다.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무라카미 류의 수필에는 사람을 설득시키는 힘이 없고, 논픽션으로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은 더더욱 없습니다. p242

 

비난이자 칭찬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든 무라카미 류든 결국 둘 다 어린아이에 불과한 것이구나.

 

 다치바나 다카시

 

그동안 나는 다치바나 다카시를 완전히 오해했다. , 꼰대였어. 내가 다 부끄러워.

 

우먼 리브는 일부일처제가 여자의 성적 욕구를 봉쇄한다고 비난하지만 이는 그녀들이 정신적 불구임을 공표하는 것과 같다. 정상적인 여성의 성 심리에서는 여성 스스로가 일부일처를 원한다는 사실이 모든 심리학적 데이터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음란한 여자, 여러 남자를 원하는 여자는 예외없이 냉감증, 불감증이다. 오르가슴 부전이 님포마니아와 우먼 리브를 낳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이 진정으로 해방되길원한다면 오르가슴을 느끼게 해주는 남자를 하루빨리 찾아야 할 것이다.


- 다치바나 다카시 <시대와 상황의 병리학> p210

 

한마디로 여성이 자유롭고자 한다면 오르가슴을 느끼게 해주는 남자를 만나라?

그렇게나 많은 책을 읽은 다치바나 다카시는 어쩌다 이렇게 상상불가의 덜떨어진 말을 내뱉고 만 것일까. 다치바나 다카시는 소설 따위는 읽지 않는다고 거만하게 말하곤 했다. 혹시 소설을 읽지 않아서 공감능력이 완전히 0에 수렴하게 된 것일까. 다치바나 다카시는 지식의 편의점일까 지식의 야바위꾼일까.

편의점이든 야바위든 꼰대임은 분명하다.

 

결론.

소녀 하나, 소년 둘, 꼰대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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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10-2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방주인문체... ㅎㅎㅎ 확 와닿네요..

시이소오 2017-10-28 11:55   좋아요 0 | URL
그렇죠? 화~악 이해되죠? ㅎㅎ

akardo 2017-10-28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년 둘은 좋은데 꼰대 하나는 앞으로도 찾아 읽지 말아야겠네요. ㅎㅎ이 책 재밌겠어요.

시이소오 2017-10-28 14:51   좋아요 0 | URL
‘소년이면서 꼰대‘가 하나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ㅎ

akardo 2017-10-28 15:01   좋아요 0 | URL
꼰대의 정도를 보고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류가 좀 꼰대같긴 한데 픽션은 나름대로 흥미로워 놓을 수가 없다는 게...ㅎㅎ그냥 열심히 소설만 썼으면 하네요. 다치바나 책은 애초에 그런 부류 책은 흥미없어 안 읽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지만.

시이소오 2017-10-28 15:03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류책은 소설만 읽으면 되겠어요 ㅎㅎ

별이랑 2017-10-2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 님의 ‘기사단장 죽이기 공략법‘ 기대하겠습니다.
지나치게 높은 몸값에 소심한 저는 반발이 생겨 아직 읽지 않은 글이기에....

시이소오 2017-10-28 18:07   좋아요 0 | URL
제대로 된 공략법을 쓰기위해선 하루키 전작이 필수일터인데, 시간관계상 ‘최소 공략법‘이 될듯 하네요 ㅠㅠ

cyrus 2017-10-30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소설 읽기를 단호하게 반대한 입장이 꼰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죠. 국내에 나온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들은 그가 쓴 책의 10, 20%입니다. 그리고 출간 연도가 오래됐어요. 그의 독서관이 몇 십 년 전에는 인정받았지만, 시대가 지나면 한계가 드러납니다.

시이소오 2017-10-30 19:47   좋아요 0 | URL
다치바나 다카시 책을 읽고 소설을 읽지말아야할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고보니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AgalmA 2017-10-3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성제‘는 좀 약한 듯. 무라카미 류는 ‘다튜라‘죠.
(‘무엇때문에 인간이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는지 아느냐? 파괴하기 위해서다.
파괴의 충동이 물건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다. 파괴할 수 있는 자는 선택받은 인간이다.
너역시 그런 무리에 속한다. 권리가 있어. 부숴 버리고 싶거든 주문을 외워라
다튜라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지면 다튜라다.‘라고.
그러나 이 도시에 살고 있으면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워야 하지 않을까. - 《코인로커 베이비즈》중)

쇼펜하우어 기타 등등 하고 많은 철학자, 지식인들도 여성 비하 편견들 보여줬는데 다치바나 다카시라고 새삼스럽지도 않네요ㅎ;

˝소녀 하나, 소년 둘, 꼰대 둘˝ 이 글에서 많이들 잡혔네요ㅎㅎ;

시이소오 2017-11-08 22:03   좋아요 1 | URL
ㅋ 엉뚱한곳에 댓글을 달았네요. 죄송합니다ㅠㅠ

제가 잡았다기보다는 저자인 사이토 미나코가 잡아냈죠 ㅎㅎ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피에르 아도 지음, 이세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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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라고 하기엔 너무 짧다. 제대로 쓰고 싶지만 이미 책을 반납해서.

 이 책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짧게나마라도 끄적거리니 부디 양해해주시길) 


    

, 철학전공자 맞나? 피에르 아도를 모르고 살았다니. 다 읽고 나서 간만에 책을 사고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철학은 난삽한 말장난이나 말잔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철학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철학은 삶의 방식이었다. 중국문화권이었던 우리로서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이 전혀 낯선 개념이 아니다. 이 책은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읽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정한 문체로 씌여졌다. 역자의 과도한 역어는 옥에 티다. (정리적이라고? 그게 의미가 통하는 역어라고 생각하나? 머릿속으로 정리 안 되면 제발 어설프게 번역하지 말라구!)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신적 활동에 온전히 바쳐진 삶테오리아라고 불렀다. ‘테오레티크한 삶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께 추천한다. 이 책을 읽은 이후 어쩌면  매일 매일을 예기치 않은 선물인 듯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부디 그대 자신만의 삶을 쉬지말고 조각해 나가길. 나 역시.  

 

하루 동안의 모든 행위를 가늠하기 전까지는

네 풀어진 눈에 잠이 내려앉게 하지 말라.

어디서 실패했나? 무엇을 했나? 어떤 의무를 빠뜨렸나?

이렇게 시작하여 계속 성찰하라. 그 후에

잘못 행한 것은 비난하고 잘한 것은 기뻐하라 P332

 

우리는 매일매일 영혼에게 전말을 밝힐 것을 요구해야 한다. 섹스티우스는 바로 이렇게 했다. 그는 하루를 보내고 밤의 휴식을 위하여 일단 방에 들어가면 자신의 영혼에게 질문을 했다. <오늘 어떤 악을 치유했는가? 어떤 악덕과 싸웠는가? 어떤 면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하루의 행위를 온전히 살피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겠는가? 자기 자신을 살핀 후에 취하는 수면보다 더 좋은 것이 있겠는가? 정신이 칭찬을 받거나 경고를 받을 때에, 또한 자기 자신의 관찰자이자 은밀한 재판관이 되었을 때에 그 정신은 얼마나 자유롭고 심오하며 평안할까! P334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대 자신에게 물어보라 <편견 없이 공평하고 근심 없는 상태에 이르려면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육체인가? 소유인가? 평판인가? 아니, 이런 것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나는 이성적인 존재인가?> 그렇다면 그러한 존재에게는 무엇이 요구되겠는가? 그대의 행동을 마음속에 떠올리라.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들 중에서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우정, 사회적 의무, 마음의 좋은 자질들에 반하여 저지른 일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 중에서 내가 망각한 의무는 없는가?>P336

 

만약 아직까지 그대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다면 아름답게 되어야 할 조각상을 새기는 조각가처럼 행하라. 그는 그 조각상에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날 때까지 이 부분을 깍아내고 저 부분을 갈아내며 어떤 부분은 매끈하게 하고 어떤 부분은 깨끗하게 한다. 그대도 이와 마찬가지로 넘치는 것은 모두 제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어두운 것은 밝아지도록 정화하여 덕의 신성한 빛이 그대 안에서 발할때까지 그대 자신의 조각상을 쉬지 말고 조각해 나가라. P319

 

잠자리에 들 때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자. <나는 살아냈다. 나는 운명의 여신이 내게 정해 준 길을 걸어왔다> 만약 어떤 신이 우리에게 내일을 허락한다면 그 또한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아무 불안도 없이 내일을 기다리는 자는 행복으로 충만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평온한 소유를 누른다. <나는 살아냈다>라고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매일매일을 예기치 못한 선물로 여기며 일어난다.

서둘러 살아라. 하루하루를 하나의 완성된 삶으로 여기라.

매일매일 자기 삶을 완성하는 자는 영혼의 평정을 누린다.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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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10-08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연휴 잘 보내셨나요?^^: 하루 남은 연휴 잘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시이소오 2017-10-08 20:37   좋아요 2 | URL
긴 연휴덕분에 돈은 못벌었지만 책은 좀 읽었어요. 겨울호랑이님도 연휴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랄께요^^

아타락시아 2017-10-08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책은 저에게 너무 어려워요.^^

시이소오 2017-10-08 21:22   좋아요 0 | URL
이 책 정말 어려운 책 아닙니다. 소요하듯 읽으시면되요 ^^

모래별 2017-10-0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읽고 싶네요. 좋은 소개! 감사합니다. ‘철학은 삶의 방식이다’ 이 말, 참 소중하네요.

시이소오 2017-10-08 22:06   좋아요 0 | URL
동양철학이 그러하듯 서양철학도 태동기엔 삶의 방식이었는데 현대엔 삶과는 유리되어 담론만이 남았네요.
담론보다 중요한건 실천이겠지요. 부디 소중한 체험되시길 ^^

단발머리 2017-10-0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개해 주신 책의 제목은 평범하고 정직해서 큰 관심을 받기 어려울것 같은데, 페이퍼의 제목이 넘 근사해서 기대되네요.
매일 매일을 예기치 않은 선물인듯 살아가기^^

시이소오 2017-10-08 23:49   좋아요 0 | URL
기대에 부응할거라 믿습니다. 단발머리님의 내면은 충분히 아름다워 더 이상 조각할 곳이 없겠지만요 ^^

단발머리 2017-10-08 23:5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훌륭한 댓글에 캡쳐 들어갑니다^^

시이소오 2017-10-08 23:53   좋아요 0 | URL
모름지기 아름다운 분에겐 그에 걸맞는 아름다운 댓글을 달아야 하는 법이죠 ^^

나비종 2017-10-09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태어나고 매일 죽는 듯이, 프랙탈같은 삶이로군요.
‘조각‘한다는 개념이 마음에 듭니다. ‘소조‘처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덜어낸다는 점에서요. 무소유를 추구(만^^;;)하려고 노력하는 중이거든요.
정신적 활동에 온전히 바쳐진 삶은 어떤 느낌을 줄까 상상해봅니다. 이 책, 관심이 가는데요?^^

시이소오 2017-10-09 01:59   좋아요 0 | URL
흐흐흐. 저는 나비종님이 이 책을 좋아하실거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나비종 2017-10-09 02:02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확신의 근거가 무척 궁금해집니다만ㅎㅎ

시이소오 2017-10-09 02:46   좋아요 0 | URL
바우만을 읽고 싶어하신다면 이 책도 좋아하실겁니다^^

나비종 2017-10-09 03:13   좋아요 0 | URL
<고독~>의 그 바우만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시이소오 2017-10-09 03:16   좋아요 0 | URL
지그문트 바우만 말고 다른 바우만은 잘 모르는데요 ㅎㅎ

나비종 2017-10-09 03:24   좋아요 0 | URL
다른 바우만이 또 있나 찾아봤거든요.^^; 생소한 독일 철학자가 나오길래 혹시 그 인간인가 싶어서요.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책 소개만으로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이 책도 좋아질 것 같습니다.ㅎㅎ

시이소오 2017-10-09 12:06   좋아요 0 | URL
저에게도 지그문트 바우만은 평생 읽고싶고 본받고싶은 어른이죠^^

moonnight 2017-10-0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지 않다고 말씀하시지만, 어려워 보여요. 시무룩ㅠㅠ

시이소오 2017-10-09 12:08   좋아요 0 | URL
야구 규칙보다 쉬울거에요 ㅎ
 
의식의 기원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28
줄리언 제인스 지음, 김득룡.박주용 옮김 / 한길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블로그에 이 책의 조회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무슨 이유때문일는지.

 

다른 지면에서 말했지만 요즘 나의 관심은 의식이다. 의식이 도대체 뭘까. 이 책의 주장은 다소 충격적이다. 여태까지 우리가 이해했던 의식에 대한 관점들 대부분이 기각된다. 줄리언 제인스는 의식이 사유에 꼭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실험은 이렇다. 다른 양의 물이 채워진 물잔을 앞에 놓아둔다. 물잔을 들고 있는 나를 의식하면서 물잔을 들어보자. 자 두 개의 물잔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운가. 저자에 따르면 어떤 물건이 다른 물건보다 더 무겁다는 판단 행위는 의식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사유과정은 의식되지 않는다.

 

의식은 이성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창의적 생각이 일어날 때는 어떤 단계들이 있다. 첫째 의식적으로 문제와 씨름하는 준비 단계가 있고, 그 다음에는 아무런 의식적 집중을 하지 않은 채 놔두는 부화단계, 마지막으로 조명 단계로서 추후에야 논리적으로 정당화되는 단계가 있다. 가우스, 푸앵카레, 아인슈타인의 사례처럼 어떤 아이디어는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현 듯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의식은 그럼 어디에 있는가. 머릿속에? 심장 위에? 의식이 신체 밖에 있는 것 같다고 호소하는 다양한 이상 심리사례들이 있다. 유체이탈이 그러한 예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의식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상상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의 논의를 따르자면 도대체 의식은 존재하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의식의 특징

 

1. 공간화

 

누군가 지난 100년을 생각해보라고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까. 우리는 대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정신-공간에서 사유할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의식은 언제나 하나의 공간화다.

 

2. 발췌

 

의식에서 우리는 어느 것을 있는 그래도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식 속에서 보기는 실제 행위의 한 유사로, 실제 행위에서 우리는 어느 한 순간에 사물의 오직 한 부분만을 보거나 한 부분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의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 사물을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알게 된 그 사물의 여러 측면들 가운데 가능한 한 모든 것에서 발췌를 수행한다....실제는 우리는 결코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서 만든 발췌를 의식하는 것이다.

 

3. 유사 (I)

 

유사 는 우리가 실제로는 하지 않는 것을 하고’, ‘상상속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다닌다’. 우리는 상상의 세계에서 행동하고 있는 상상의 자아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상상의 결과에 근거하여 결심을 내리게된다.

 

4. 은유로서의 ’(Me)

 

우리는 상상의 자신 내부에서 상상의 경치를 내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몇 발자국 뒷걸음치기도 하고 어떤 개울에 엎드려 물 한 모금을 마시기도 하는 자신을 볼 수도 있다.

 

5. 이야기 엮기

 

의식에서 우리는 우리를 대신하는 자아가 항상 우리 삶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을 본다....우리 행동에 원인을 부여하거나 왜 우리가 특정한 일을 행했는지 말하는 것 등은 모두 이 이야기 엮기의 한 부분이다.... 의식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우리를 보게 되면 언제나 그것을 설명할 태세가 되어 있다. 도둑은 자기의 행위를 가난 때문에 일으킨 행위라고 서술할 것것이며, 시인은 자기 행위를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과학자는 진리 때문이라고 서술할 것이다. 의식 속에서는 목적과 원인이 행동의 공간화 속으로 혼란스럽게 뒤엉키며 짜맞추어진다.

 

6. 조정 (concillation)

 

동화assimilation란 지각된 대상의 정체가 다소 불분명할 때, 그 대상을 이전에 학습한 어떤 도식에 부합하도록 하는 자동적 과정을 일컫는다. 새로운 자극은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우리의 개념이나 그 개념에 관한 도식으로 동화되어버린다. 우리는 결코 사물을 순간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보고나 듣거나 만지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세계를 지각할 때 이전 경험으로의 이 동화과정은 언제나 지속된다. 우리는 사물을 이미 학습된 도식에 근거하여 인지 가능한 대상으로 묶는다. 이 의식화된 동화가 조정이다. 이야기 엮기가 사물을 묶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듯이, 조정은 사물을 묶어 의식적 대상으로 만들어낸다.

 

줄리언 제인스는 우선적으로 의식의 특징을 위와 같이 제시한 이후에 의식에 대한 대담한 주장을 펼쳐나간다. 그에 따르면 의식은 언어 이후에 나타난 것이다. 저자의 주장이 다소 황당할지언정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하는 고고학, 문화학, 역사학의 자료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하다.

 

저자는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겐 일반적으로의식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었을까

단지 목소리가 있었을 뿐이다.

 

양원적 정신

 

저자는 이 미케네인들의 정신 구조를 우리의 주관적, 의식적 정신과 구별하여 양원적 정신(bicameral mind)이라 부른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환각적 목소리에 복종한다. 양원적 정신에 유사한 현상은 정신분열증 환자의 환각이다.

 

저자의 실험에 따르면 실험 참가자들에게 우반구 베르니케 영역을 자극하면 많은 참가자들이 목소리혹은 음악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양원적 정신에서의 신의 목소리를 의식이 대체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신의 목소리를 의식이 대신했던 것일까.

 

ka카와 ba

 

저자는 고대 이집트의 정신구조를 카와 바로 구분한다. ka카는 흔히 정신, 혼령, 원령, 생명력, 자연, 행운, 운명 등으로 번역된다. 저자는 카의 용법을 분석하여 - ‘나는 그의 카가 원하는 일을 했다’, ‘내 카는 왕의 것이다’- 카를 음성인격으로 해석한다.

 

그에 반해 ba바는 귀신이라고 부르는 것에 가까운 것으로 시각적 환각으로 나타난다.

 

의식의 원인

 

국가들 간의 교역이 증대대면서 신적 권위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문자의 발명으로 신의 목소리를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신과 인간의 협력관계는 점차 느슨해졌고 예상치 못한 자연 재해는 신의 권위를 무색케했다. 예를 들어 기원전 1180년과 1170년 사이에 발생한 화산 분출은 키스로스, 나일 강 삼각지, 이스라엘 해안을 포함한 지중해 전역을 강타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단 하루 만에 난민으로 전락했다. 이로써 거대한 이주와 정복 전쟁이 시작된다.

 

양원 정신의 붕괴

b.c 2000년 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석판의 내용을 해석하면 아래와 같다.

 

나의 신은 나를 버리고 사라지셨다.

나의 여신은 나를 돌보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다.

내 곁에서 걷던 선한 천사도 떠나버렸다.

 

양원적 정신은 붕괴되었다. 신들은 인간을 떠나버렸다.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인간은 점술, 제비뽑기, 복점 등을 통해 신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

 

그리스에선 최초로 영혼이 발명된다. 사이키는 일리아스에서 단지 생명력만을 뜻했다. 그러나, 이제 사이키는 단지 생명이 아니다. 생명이 멈추고 난 뒤에 존재하는 무엇을 일컫는 말이다. 헤로도토스는 피타고라스가 이집트에서 배워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무튼 사이키가 영혼이 되면서 죽음, 또는 시체를 뜻했던 soma는 이제 신체를 뜻하게 된다.

 

저자는 이제 카비루를 탐사한다. 기원전 8세기 <아모스서>에서는 정신, 생각하다, 느끼다, 이해하다 혹은 이와 유사한 어떤 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후 기원전 2세기의 작품인 <전도서>에서는 의식의 두드러진 특징들이 나타난다.

 

창세기의 엘로힘Elohim은 복수 명사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인 엘로하(elohah)의 복수형이다. 저자에 따르면 엘로힘은 양원정신의 음성 환상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다. 창세기는 양원정신의 붕괴에 관한 신화로 볼 수 있다. “너희는 엘로힘처럼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뱀이 약속하는 것은 오직 주관적, 의식적 인간의 역량이다. 선악과를 먹고 그들은 자기가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자기관찰적 시각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나바하는 자 나비임. 그리스어 예언자에 해당하는 말로 잘못 번역된 히브리어 나비는 흐름과 밝아짐에 관련되어 있는 어원군에서 나왔다고 한다. 나비는 은유적인 의미에서 흘러나오는 자또는 언설이나 환상이 용솟음치는 자. 그들은 과도기적인 사람들로서 부분적으로는 주관적이고 부분적으로는 양원적이었다.

 

현대에 들어 양원성의 가장 직접적인 잔재는 신탁이다. 그리스의 신탁은 양원정신이 붕괴된 이후 무려 1,00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신탁에서 여사제는 신들림 현상을 보여준다. 여사제들은 시와 노래로 신탁을 말했다. 시적 영감 역시 일종의 신들림이다.

 

보다 최근의 최면, 정신분열증에서의 환각 역시도 양원성의 잔재로 해석할 수 있다.

 

 

줄리언 제인스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의식은 모두 언어는 아니지만 언어로 생성되고 언어로 접근된다.”

 

그의 주장에 어떤 반론이 가능할까. 언어의 매개 없이 의식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는걸까.

 

처음에 그가 제시한 예로 돌아가보자. 두 개의 물컵이 있다. 어느 쪽이 무거운가? 그에 따르면 이런 판단을 내릴 때 의식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은유 표현을 고를 때 의식은 작동하는가? 의식의 특징이 정신- 공간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언어 역시 정신-공간 안에서 표상하는가?

 

제인스는 양원적 정신의 형태로서의 신의 목소리를 의식이 대체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 대체했다고 볼 순 없을까. 우리가 행동하기 전 0.5초 전에 뇌활동이 발생한다. 우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뇌 활동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무의식의 작동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또한 의식이 우리 안에 있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그렇다면 의식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학자들 주장처럼 의식이 단지 뇌의 활동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의식의 기원>은 의식에 관한 손에 꼽히는 흥미로운 책이 될 것임에 분명하지만 여전히 의식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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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2017-03-0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조회수가 늘어난 이유는 팟캐스트 지대넓얕에서 김도인씨가 주제로 다뤄서 그렇습니다ㅎㅎ

시이소오 2017-03-02 09:41   좋아요 1 | URL
아. 그런일이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수평선님. 저도 들어보고 싶네요 ^^

samadhi(眞我) 2017-03-03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아가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이 잘못. 가짜라는 말과 통하는 듯도 합니다.

시이소오 2017-03-03 20:37   좋아요 0 | URL
역시 진아님 다우신 댓글입니다 ^^

samadhi(眞我) 2017-03-03 20:39   좋아요 0 | URL
헉. 저답다는 게 뭔지 ㅋㅋㅋ 괜히 키득거려봅니다.

시이소오 2017-03-03 21:30   좋아요 0 | URL
진아,의 측면에서 아로부터 유래하는 무언가는 다 거짓이 아닐까요? ㅎㅎ

samadhi(眞我) 2017-03-03 21:35   좋아요 0 | URL
아 제 아이디 말씀하신거구나 ㅋㅋㅋ 네. 나는 없다 뭐 그런 거죠. 내가 믿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허상이라는 것

시이소오 2017-03-03 21:41   좋아요 0 | URL
나가 없는데 나의 의식이 있을순없을테니까요 ^^

우빠사마 2019-03-20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어도단, 멸진정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예담 / 200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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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했으나 읽지 못한 한국 소설이 있다면? 여러 대하소설들이 머릿속을 스쳐가지만 장편 소설 한권을 뽑으라면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역시나 재밌군. 역시 박민규야’, 하고 읽어 갔다. 책을 덮고 나서는 만족감보다는 위화감이 들었다. 왜일까? 위가 꼬이는 듯한 느낌의 이유는 뭘까?

 

작가로서의 톨스토이는 경배하지만 인간으로서의 톨스토이는 경멸한다. 톨스토이는 인류에 대한 사랑

을 외치지만 자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박민규 역시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까? 박민규는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 못생긴 여자에 대한 사랑을 그린다. 그렇다면 작가는 못 생긴 여자를 사랑했었나? 혹은 사랑할 것인가?

 

세상의 모든 남자와 마찬가지로 저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또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한다 해도 잔인한 진실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 p415. 작가 후기.

 

작가의 고백대로 박민규는 못 생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작가가 그린 소설속의 주인공은 왜 못 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걸까. 못 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조차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야기를 소설로 형상화하는 게 과연 작가로서 할 짓인가작가는 자신의 주인공에 눈곱만큼도 감정이입하지 않는다. 그런데 독자인 우리(특히나 남성 독자)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을까.


가 못 생긴 여자를 사랑하게 된 동기가 있나?

 

.....없다. 물론 박민규는 잘생긴 아빠에게 버림받은 못생긴 엄마라는 밑밥을 깔긴 하지만, 그렇다고 못 생긴 여자들을 봐왔지만 나는 그녀처럼 못 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할 만큼의 국가대표급 못 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핍진성이 없다. 전혀 그럴듯하지 않다, 는 말이다. 아무리 판타지라도 작가가 창조한 세계 안에서 이야기는 납득 가능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판타지도 아니다.

 

영리하다고 해야할지, 비열하다고 해야할지.

 

눈을 맞으며 그녀는 서 있었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나는 첫눈이 오는 날 그녀를 만난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을 듯 포근히 내리는 눈, 반짝이는 <산토리니>의 크리스마스 조명 불빛, 벽난로에서 장작은 타닥타닥 타오르고, 빙 크로스비의 캐롤 송, 미술에 해박한 가느다란 목소리의 그녀......

 

독자에게 청순하고 지적인 그녀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놓고, 박민규는 3장에서야 그녀는 못 생겼다고 말한다. 어떻게 못 생겼는데? 알 수 없다. 독자인 우리는 못 생긴 그녀를 상상할 수 없다.

 

못 생긴 여자를 호의로 만날 수도, 동정으로 만날 수도, 연민으로 만날 수는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랑으로 만날 수는 없다. 그건 작가가 말했듯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잔인한 진실이다.

 

이 포크를 봐. 앞에 세 개의 창이 있어 하나는 동정이고 하나는 호의, 나머지 하나는 연민이야. 지금 너의 마음은 포크의 손잡이를 쥔 손과 같은 거지. , 이렇게 찔렀을 때 그래서 모호해지는 거야. 과연 어떤 창이 맨 먼저 대상을 파고 들었는지.....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하나의 창을 더듬어보게 돼. 손잡이를 쥔 손은 여전히 그 무엇도 알 수가 없는 거지. 알아? 적어도 세 개의 창 중에서 하나는 사랑이어야 해. ”

 

p122.

 

여성 독자의 절대적 지지를 얻은 박민규의 이 소설을 까는 건 짚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짓이라는걸 나도 안다. (여성 이웃분들의 반응이 두려워라.) 그러나,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여성 독자의 호감을 사기위해, 작가조차 진실이라 생각하지 않는 이야기를 진실인 듯 위장했다면 그건 위로기는커녕 경멸이고 능욕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온통 거짓이다. 위선이고 위악이다. 따라서 주인공 가 사랑하는 이름도 없는 못 생긴 여자의 캐릭터는 흐릿하거나 전형적이다. 이 소설을 유일하게 지탱해준 인물은 요한이다. 요한 빼고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겠는가? 그런 요한이 중반부터 중언부언한다. 전반부의 재기넘치던 요한은 온데간데없고 잔소리만 늘어놓는 노땅 요한이 등장한다. 그러자 박민규는 요한을 빼는 결정을 내린다. 그 결과 요한이 증발한 중반부터 이 소설은 급격히 무너지고 만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 p 418

 

작가가 생략한 문장을 되살리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못생긴 여자를, 나는 못하지만이 아닐까.

 

아무리 아름다운 문체로 씌여졌다한들 거짓된 작품이 감동을 줄 순 없다.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감동적이다. 장애를 지닌 조제에게서 도망치는 츠네오. 이런 츠네오를 욕할 자 누구인가? 조제를 떠날 수밖에 없는 츠네오의 심리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조제와 츠네오의 이별은 그래서 더 더욱 안타까운 게 아니었을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애초에 늪 위에 박은 말뚝이었다.

중반부터 무너져 내린 소설은 결론에서 완전히 붕괴하고 만다.

 

 

이 글은 독립된 이야기로도, 서로 연결된 하나의 이야기로 볼 수 있는 두 개의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두 개, 혹은 세 개의 이야기를 저는 겨우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이, 스스로의 이야기에서 성공한 작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 p 418

 

.....장난, 지금, 하는 거냐, 나랑!

정말로 박민규는 독자를 성공한 작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따위 결론을 내민 걸까?

 

거짓말이다.

박민규는 작가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채

결론을 독자에게 떠넘겨 놓고 구차하게 핑계를 댄 것뿐이다.

 

이 소설을 수식으로 정리해볼까?

<노르웨이의 숲> + <러브 레터> + 못 생긴 여자 - 섹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사랑하라고?

너나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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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2-17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명세라 언젠가는 읽어보리라 했는데
시이소오님의 평에 망설여지네요.
솔직한 리뷰 고맙습니다^^

시이소오 2017-02-17 09:30   좋아요 2 | URL
칼 맞을 각오로 썼습니다. ㅎㅎ

singri 2017-02-17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소님이 이렇다하시니 더 읽고 싶은 건 뭐때문인지 ㅋㅋㅋㅋ

시이소오 2017-02-17 09:30   좋아요 1 | URL
제가 혹평하면 다들 읽고 싶어하시잖아요. ㅋㅋ

고양이라디오 2017-02-17 13:14   좋아요 1 | URL
저도 청개구리 심보라서 그런가 왠지 더 궁금해집니다. 안티마케팅인가요ㅎㅎ?

시이소오 2017-02-17 13:20   좋아요 0 | URL
to 고양이라디오님, 출판사들도 안티마케팅을 활용하면 좋을텐데요 ㅎㅎ

2017-02-17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7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7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7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7-02-17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낚였습니다 파닥파닥
그런데 너무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내용에도 너무 공감합니다...

시이소오 2017-02-17 12:25   좋아요 0 | URL
역쉬 제가 혹평하믄 읽고 싶어지시는군요. ^^;
레삭매냐님, 리뷰 기대할께요 ^^

고양이라디오 2017-02-17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리뷰 시원합니다. 오랜만에 청량감 느껴지는 리뷰 읽어서 좋네요^^ 박민규 작가의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세계사 브런치>의 작가 정시몬씨가 박민규씨를 좋아한다고 해서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혹평이라니. 그런데 그 혹평이 너무나 공감이 가고 논리적으로도 타탕합니다. 만약 저 소설을 영화화한다면 과연 못생긴 여주인공을 쓰는 감독이 있을까요? (못생긴 설정의 예쁜 배우가 아니라 진짜! 못생긴 배우요)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아마 관객들이 전혀 공감을 못할 것 같습니다.



시이소오 2017-02-17 13:23   좋아요 1 | URL
영화화 하려다 무산됐다고 하더군요. 여배우 캐스팅하기가 쉽지 않을듯해요. 블로그 이웃님 말씀처럼 특수분장을 하지 않는한. ㅎㅎ

stella.K 2017-02-17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갖고 있던 책이었는데
어느 길에 제가 중고샵에 팔았나 봅니다.
이렇게 쓰시니까 읽고 싶잖아요.ㅠ

하긴 박민규는 저랑은 잘 안 맞더라구요.
뭔가 생각은 기발한 것 같은데 사이다 같은 속시원한 구석이 없어서.
암튼 이렇게 쓰실 수 있는 시이소오님이 부러울 다름입니다.ㅠㅋ

시이소오 2017-02-17 14:23   좋아요 0 | URL
스텔라 케이님, 읽고 싶으시죠 ㅎ

저를 부러워하시다니? 스텔라 케이님의 혹평도 만만찮은 걸요 ㅎㅎ

stella.K 2017-02-17 14:27   좋아요 0 | URL
ㅍㅎㅎㅎㅎㅎ
아니 제가 뭘 어쨌다고...
전 진짜 혹평할 것 같으면 아예 안 하는데.
찢어버리고 말지...ㅋㅋㅋㅋㅋ

시이소오 2017-02-17 14:31   좋아요 1 | URL
ㅋ ㅋ ㅋ ㅋ ㅋ ㅋ ㅋ 그게 더 혹독하네요 ㅎㅎ 악플보다 잔인한건 무플이라죠 ㅋ

:Dora 2017-02-17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민규님은 외모로 보았을때 무척 튀고 싶은 기질 같아요

시이소오 2017-02-17 14:27   좋아요 1 | URL
글도 튀어나오게 잘 쓰죠. 그게 이 소설에선 득이 아니라 해가 된 경우라고 할까요? ㅎ ㅎ

:Dora 2017-02-17 14:33   좋아요 0 | URL
전 단편 하나만 읽었는데 그 작품은 좋았어요... 낮잠 이라고.. 2008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있는 거요~ 어쨋든 재능이 있는 건 맞나봄

시이소오 2017-02-17 14:35   좋아요 1 | URL
거의 10년전 작품을 기억하시다니, 대단하세요. ^^

:Dora 2017-02-17 14:43   좋아요 0 | URL
기억한다기보다 처음 접한 책입니다 ㅍㅎㅎ;;;

시이소오 2017-02-17 14:53   좋아요 0 | URL
저도 이상문학상을 해마다 빠트리지않고읽는편인데 기억이 안나네요 ^^;

치니 2017-02-17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는 이 책 앞의 열 장 읽고 더는 못 보겠다 하고 덮어버렸는데 의외로 좋다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시이소오 2017-02-17 14:36   좋아요 0 | URL
치니님은 오글거리셨나봐요. 1장이 심히 그런면이 있죠. ㅠㅠ

2017-02-18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7-02-18 15:23   좋아요 1 | URL
톨스토이가 잘한일도 많군요. 어릴때 톨스토이는 하녀들과 비/정상적으로 관계하기도 했는데 죽기전엔 섹스하지 말라고 설교하기도 했다죠.
애를 열셋이나 임신시킨 고추 난봉꾼이 할말은 아닌듯 ㅎ

AgalmA 2017-02-18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난, 지금, 하는 거냐, 나랑!˝ 이 문장 영화 대사 넣어도 히트칠 거 같은데요ㅎ 시이소오님 리뷰는 이런 맛깔 구어 때문에 더 재밌음요^^
세상에 제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작가가 너무도 많아 박민규 작가 책을 여러 권 읽을 정도의 여유가 없어서 저는 가뿐히 패스^^) 패스하는데 도움 주셔서 감사요/

시이소오 2017-02-18 17:27   좋아요 1 | URL
저 대사는 개콘에 나오는 대사죠 ㅎㅎ
재밌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ww 2017-02-25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여자인데도 혹평, 공감합니다. 주인공심리 빼고, 원래 이 사회의 세태와 미인만 사랑하는 분위기를 해설하는 다른 소설 구절들은 절실히 공감했어요. 평생 여자로부터 외면받는 남자들이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도 다를 것 없이, 평생 남자로부터 사랑받지 못할 여자도 있는것같아요. 세상 모든 인간들이 짝짓기를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짝짓기 잘할 수 있게 특화된 몇몇 남성과 몇몇 여성이 있을 뿐인 것 같습니당 ㅎㅎ

시이소오 2017-02-25 19:19   좋아요 0 | URL
저는 성격상 자신의 미모를 무기로 편해지려는 여자들에겐 너그럽지못해 주인공이 예쁜 백화점 여직윈을 막 대할때는 짜릿했습니다.


rati 2017-02-25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이 더 공감되네요ㅋㅋ 요한과 요한을 통해 시대를 설명 해 준 문장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뿐이였죠.
남자 주인공 보면서 하루키 소설들의 남자 주인공 많이 떠올렸습니다. 노르웨이의 숲. 저만 그렇게 생각한건 아니였네요ㅋㅋ

시이소오 2017-02-25 19:24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초반부 요한의 문장들은 재밌었어요. 중반부부터 얘가 미쳤나, 왜 이럴까 했더만 아니나다를까 정신병원으로 가더군요 ㅠㅠ

물결 2017-03-23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비슷한 감상을 가졌어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야기지만 사실 사랑에 빠졌을 때의 감정을 표현하는 묘사는 우리가 이상화하는 연애의 모습과 다르지 않거든요. 오히려 저는 전형적인 연애소설로 이 책을 추천하는 편인데 작가가 부러 힘주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시이소오 2017-03-23 06:05   좋아요 0 | URL
이상적인 연애를 그리고 있으니, 아무리해도 못생긴 여자는 상상이 안되거든요. ^^;

2017-05-05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 초반부터 얼척없어 던져버린 이 소설이 얼마나 오래 베스트셀러였는지. 그땐 좀 외롭군, 했는데 댓글들을 보니 아군이 많았네요 ㅋ

시이소오 2017-05-05 06:18   좋아요 0 | URL
저도 이렇게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을거라 전혀 예상치 못했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