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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없지 않고 있는 걸까? ‘는 왜 태어난 걸까? 내가 있다는 것, 내겐 언제나 불가사의한 미스터리다. 나 하나가 있다는 것도 미스터리건만 나 외에 수십억의 타인이 또 있다. 나는 내 의식만을 갖는다. 타인들 역시 각자의 의식을 가질 것이다. 그런 사실들을 떠올릴 때마다 무력감이 밀려온다. 도대체 왜? 삶에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저자에 따르면, 네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허무주의, 회의주의, 초자연주의, 자연주의. 저자는 100여 명의 20세기 사상가들의 삶의 의미에 대한 각자의 대답을 담았다.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이 책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초자연주의 : 종교적 대답들

 

레프 톨스토이 : 의미의 위기와 신앙의 도약


 

톨스토이에 따르면 합리적 과학은 삶의 의미에 대해 답할 수 없다. 종교만이 답을 줄 수 있다. 소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신앙.

 

앤서니 플루 : 톨스토이와 삶의 의미

 

1963년에 발표한 에세이 <톨스토이와 삶의 의미>에서 플루는 톨스토이의 논증을 아래처럼 재구성한다.

 

만일 모든 것이 죽음으로 끝난다면, 삶은 무의미하다.

모든 것은 죽음으로 끝난다.

따라서 삶은 무의미하다.

만일 삶이 무의미하다면, 충족시켜야 합당한 욕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충족시켜야 합당한 욕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플루에 따르면 죽음이라는 사실에서 반드시 삶의 무의미성이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어떤 것이 중요성을 가지려면 영원히 불멸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삶의 유한성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데이비드 스웬슨 : 신은 바탕에 깔린 통일성

 

키르케고르 제자.

 

스웬슨에 따르면, 삶에서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삶을 대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스웨슨은 의미와 행복이 좋은 것들을 획득하는 것에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모든 사람이 발견할 수 있는 절대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삶의 근본적 의미, 삶의 존엄과 가치의 원천. 그것이 신이다.

 

루이즈 포즈먼 : 종교가 삶에 의미를 준다.

 

포즈먼은 고전적인 유신론이 참이라는 전제하에 이렇게 주장한다.

 

우주의 기원과 존속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

유신론은 우주가 선으로 가득 차 있으며 선이 악을 이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은 우리를 사랑하고 돌본다.”

유신론자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다.”

정의가 우주를 지배한다.”

모든 개인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은총과 용서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

사후의 삶이 존재한다.”

 

포즈먼 역시 유신론이 참인지 여부를 우리가 모른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유신론은 무신론보다 우월하다. 종교는 삶에 목적을 주고 도덕에 토대를 주기 때문이다.

 

라인홀드 니버 : 자아와 궁극적 의미의 추구


 

니버 역시 신앙을 합리화 할 길이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신앙은 인간적 자아의 궁극적 질문들에 답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을 가지는 쪽으로 우리 자신을 내던져야 한다.

 

필립 퀸 : 기독교에 따른 삶의 의미

 

퀸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퀸에 따르면 인생은 다음 조건들을 충족할 때, 완전한 의미를 지닌다.

 

인생은 긍정적이고 본래적인 가치가 있으며 삶의 당사자에게 전반적으로 소중하다.

인생은 하찮지 않고 주관적이고 소중하며 당사자가 이루려 애쓰는 목적들을 포함한다.

우리는 불멸의 영혼을 가졌다.

 

기독교도의 관점에서 세계는 완전한 의미를 지녔다.

 

존 코팅엄 : 초자연적인 의미

 

신이 없다면 객관적 도덕 원리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이 원리들이 없다면 삶은 무의미하다. 더 나아가 신이 없으면 우리는 도덕적 목표를 성취할 수 없을 것이며, 그 성취가 없다면 삶은 무의미하다. 마지막으로, 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우리의 도덕성은 충분히 고취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 신과 불멸이 없다면, 삶은 부조리하다

 

신이 없다면, 삶은 객관적으로 무의미하다. 그래서 무신론자들은 삶이 주관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말함으로써 삶의 유의미성을 가장한다. 신이 없으면, 도덕이 없고 모든 것이 허용 가능하다. 신이 없다면, 정의가 지배하고 악인이 벌을 받고 의인이 상을 받게 도리 불멸의 세계는 없다. 신이 없다면 삶은 목적이 없다. 그래서 무신론자들은 삶의 목적을 꾸며낸다.

 

토머스 모리스 : 파스칼과 삶의 의미

 

의미는 부여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과 죽음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삶의 의미는 외적이며 목적을 품은 신과 같은 행위자에 의해 부여되어야 한다.

 

윌리엄 제임스 : 우리가 신앙을 지녔다면 삶은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마지막 말은 이것이다.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삶을 살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믿어라. 그러면 당신의 믿음이 그 사실을 창조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심판의 날이 올 때까지는 당신이 옳다는 과학적 증명이 불분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신념에 찬 투사들, 혹은 그들을 그때 거기에서 대변할 존재들은 여기에서 계속하기를 거절하는 심약한 이들에게,, 이를테면 헨리4세가 큰 승리를 거둔 후 뒤늦게 나타난 크리용에게 건넨 인사말을 할지도 모른다. ”목매달아 죽게, 용감한 크리용! 우리는 아르크에서 싸웠고, 자네는 거기에 없었네.”

 

삶이 유의미하기 위하여 우리는 낙관적일 필요가 있으며 비가시적인 영적 세계에 대한 신앙을 가질 필요가 있다.

 

휴스턴 스미스 : 일반적인 종교적 관점에서 본 의미.

 

인간의 삶은 신의 무한성을 표현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유의미하다.

 

존 히크 : 종교와 우주적 낙관론

 

20세기 가장 중요한 종교철학자.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 인생의 의미는 우리가 우주의 본성이 무엇이라고 믿느냐에 달려 있다. 대규모 세계 종교들은 우주의 운행이 인간적 관점에서 볼 때 좋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우주의 궁극적 원리 혹은 지배자가 우호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교적 전제는 왜 삶의 의미와 무관한가?

 

종교적 주장들은 거짓일 수도 있다. 이것이 문제다. 종교적 믿음은 단지 희망뿐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종교는 해로울 수도 있다. 유엔 발표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덜 종교적인 국가들이 가장 살기 좋은 국가다. 여러 저자들에 따르면 종교의 진리성은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과 아무 상관이 없다. , 어떤 종교가 참이라하더라도, 의미 탐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종교적 주장들은 대개 아래와 같은 논증을 취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삶은 전적으로 유의미하다.

신이 존재한다

따라서 삶은 전적으로 유의미하다.

 

타당한 연역적 논증이지만, 두 전제가 모두 불확실하다. 저자는 보다 보편적인 설득력을 지닌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종교적 주장들을 배제하고 최소의 전제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삶의 의미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은 불가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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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7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8-27 12:22   좋아요 0 | URL
역시나 핵심을 찌르시네요. 이 책이 도달하는 결론들 중에 하나죠^^

yamoo 2016-08-27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에 <인생은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가>를 서점에서 봤는데, 제임스의 책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보다는 훨씬 별루더라구요~ 제임스의 책은 <심리학 원리>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이 짱이거 같습니다. 물론 제임스의 책을 다 읽어본 적도 없고, 읽을 요량도 없지만 말입니다^^

시이소오 2016-08-27 19:23   좋아요 0 | URL
제임스 책은 또 언제 읽을 런지. 산 넘어 산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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