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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평점 :
2010년 <뉴욕 타임스> 도쿄지국장인 마틴 파클러는 끝없는 불황, 비좁은 취업문, 부조리한 사회제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이 왜 저항하지 않는가 물었다. (나 역시 한국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저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대답은 간단하다.
“왜냐하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사토리 세대라 불리는 일본 20대의 75프로가 “지금 나는 행복하다”고 응답했다. 도대체 왜 그들은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사토리 세대는 유니클로나 자라에서 옷을 사고 맥도날드에서 런치세트와 커피를 사 먹고 집에서는 유튜브를 보거나 스카이프로 친구와 채팅을 즐기거나 화상채팅을 한다. 가구는 니토리나 이케아에서 사고 밤에는 친구 집에서 모여 식사와 반주를 즐긴다.
사토리 세대는 80년대가 부럽지 않다. 80년대에는 tv 및 전자제품의 가격도 비쌌고 플레이스테이션도 없었고 닌텐도도 없었으며 인터넷도 없었고, 핸드폰도 없었다.
행복한 젊은이의 정체는 ‘컨서머토리’라는 용어로 설명이 가능하다. 컨서머토리란 자기 충족적이라는 의미로, ‘지금 여기’라는 신변에서 가까운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감각을 말한다.
사토리 세대의 컨서머토리한 삶의 방식은 과연 바람직한걸까. 지금의 상황을 긍정하는 사토리 세대의 이면에는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다는 체념의 정서가 깔려있다.
전후의 단카이 세대는 국가를 복원하려는 목적의식이 있었고, 이후 전공투 세대는 체제의 모순에 저항하기 바빴다. 거품 경제가 붕괴되고 장기 불황에 접어든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은 목적의식이 없다.
일본을 민주국가라고 볼 수 있을까. 한국과 마찬가지로 무늬만 민주국가일 뿐이지 체제의 모순과 공직자의 비리는 심각하다. 예전에 장강명의 <표백>을 읽고 어찌나 분노했던지. ‘완벽한 사회’라고? 이 나라가 완벽하기에 자신들은 할 일이 없단다. 미친 거 아닌가. 몇 일 전 세월호 관련 시위에 경찰은 차벽을 세워놓고 무력으로 시위 참가자들을 연행했다. 온갖 불의가 백주대낮에 행해지고 있는 이 썩어빠진 나라가 완벽하다니!
내가 보기에 일본 20대가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경제력이다. 일본에선 정규직이나 프리터의 임금이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대다수 젊은이들이 부모세대와 같이 산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우석훈의 <불황10년>에 따르면 일본 젊은이들의 저축율은 2013년 기준 35%다. 일본 젊은이들이 컨서머토리한 삶을 산다지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결코 완벽하지 않다.
체념하기엔 너무 이르다.
한 번 뛰어보고 포도를 먹지 못한 여우는 ‘저 포도는 실거야’하고 자족하고 돌아갔다.
체념을 행복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사토리 세대’란 말은 우리 나라의 ‘열정 페이’만큼이나 기성의 권력자들이 유포한 말이 아닐까. ‘사토리’란 일시적인 깨달음을 뜻한다. 그들은 깨달은 자들이 아니다. 우물 안에서 자족하는 개구리에 불과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