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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
김경 지음 / 이야기나무 / 2014년 10월
평점 :
‘우왕, 김경이 소설도 썼네.’
냉큼 집어 읽다 여주인공이 상관에게 쓴 사직서 부분에서 허걱했다.
이 책이 서민 박사 <집 나간 책>에 실렸던 게 그제서야 기억났다.
우와, 치맨가.
처음 소제목 ‘파스칼을 좋아하세요’에서 느낄 수 있듯 다분히 보통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사강을 떠올리는 분도 계시겠지만.^^;:) 또한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도.
꽤 오래전 어떤 분이 내게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를 선물한 적이 있다.
“도움이 되실 거예요.”
도움은 젠장. 이 책을 읽으며 아마 울었던가. (아, 묻지 마시라. 괴롭다.)
그러니까 김경의 첫 소설은 연애소설이다. 심지어 해피엔딩이다. 다국적인 연애질로 유명한 패션 에디터 여주인공이 ‘영혼이 아름다운 남자’인 화가를 쫓아다녀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는.
난 김경에 대해 잘 모른다. 정기 구독하는 경향신문 필자들 중 직설화법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했을 뿐. (책을 보아하니 그녀의 별명은 ‘경솔’이었던 듯. 경솔할만큼 솔직하다고 해서. 김규항도 좋아했는데,.... 아직도 김규항은 노무현, 김대중 욕하느라 바쁜가. ‘비판에 적당한 때란 없다’라고 말하는 거 보고 포기했다. 참 정의로우세요. )
김경이 패션잡지 편집부장이었던 것도 몰랐다. 화가 남편을 만나 편집부장도 때려치우고 경기도 평창에 손수 집을 짓고 산다니. 그러니까 이 소설은 거의 자전적 소설일 것이다.
김경은 사랑을 씨줄로 삼아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책, 음악들을 날줄로 엮어간다.
친절하게도 김경은 책 말미에 <취향리스트>를 정리해놓았다.
20대 때 지인들을 만나면 항상 이 문장을 들려줬다.
내가 왜 그때에 있지 않고 지금 있는지
내가 왜 저기에 있지 않고 여기 있는지
무한한 우주 공간의 침묵이 나를 전율케 한다.
대충 저런 문구였는데, 대충 ‘우리의 만남은 정말 전율스럽지 않니?’
뭐 그런 뜻을 전달하고 싶었더랬다. 아우, 나의 20대는 소름끼칠 정도로 유치했다.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문장이었다. 김경도 파스칼을 좋아했나보다.
20대 때 나 역시 <호밀밭의 파수꾼>에 환장했다. 김경도 좋아했다니!
자꾸 이러면 전화가 걸고 싶어진다는.
김경도 존 버거를 좋아한다.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에서 정세랑 작가는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는 남자라면 됐어’라고 말했다. (슬그머니 손을 드는 나. 저도 좋아해요^^ ) 나는 존 버거를 좋아하는 여자라면 얼마든지 기꺼이 햄버거를 먹으리라! (물론 나와 마주앉아 햄버거나 뜯어먹을 여자가 없다는 건 나도 잘 안다.)
와, 정말로 오랜만에 ‘구영탄’이란 이름을 들었다. 그런데 고행석 만화 안 좋아하는 남자도 있었나?
사랑과 책. 더 바랄 게 없다.
(여성분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김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패션잡지 기자에 파리, 맨하탄 같은 국제도시를 회사 돈으로 제 집 드나들 듯 할뿐더러, 브래드 피트처럼 ‘핏’좋은 외국 남자들의 접대를 받으며 맛있는 음식, 고가의 와인을 퍼마시며 놀아나면서도 결혼은 대화가 통하는 ‘영혼이 아름다운’ 화가랑 하다니! 한 미모하면서 게다가 똑똑하다. 내가 여자였더라면 정말 재수 없어 미쳐버렸을 것 같다.)
p.s. To 김경.
뭐,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46페이지에 ‘우리 미국’이라고 써있더군요.
아시죠? 토크빌은 프랑스 사람입니다. 그거 외에 딴지 걸 게 없어 아쉽네요.^^:;
밑줄 그은 문장
p5. 예술을 한다는 것은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일이다. 샤워를 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춰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 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던가! <나라 없는 사람> 중에서, 커트 보네커트.
p15.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신의 방 안에서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없다는 한 가지 사실에서 시작된다. (파스칼, 팡세)
p18. 결국, 샤넬과 에르메스일 수밖에 없는 거야. 연애는 수많은 ‘잇’백이나 이름 모를 백들과 하고 결혼은 샤넬이나 에르메스와 해야 하는 거지.
P21.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없으면 찾으러 나서야 한다. ’ - 스칼렛 요한슨
p32. 제가 ‘재탄생’이라는 표현을 쓴 건 랭보의 영향때문일 겁니다. ‘허튼소리’인가 하는 산문시에서 그랬거든요. 자기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사랑은 재창조해야 하는 것인데 여자들은 안전한 자리밖에 원하지 않는다고.
P59. 존이 그러더군요. ‘문명과 도시화가 인간의 근원적 공간인 집을 와해시키자 영원히 떠돌게 된 우리에겐 오직 사랑만이 소중해졌다’고
P64. 그래서 레너드 코헨이 이렇게 노래했나? ‘모든 것엔 금이 가 있다. 빛이 거기로 들어온다.‘
P71. 샤토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보셨죠? 보르도에는 포도밭은 소유한 대형 양조장이 많은데 그걸 샤토라고 부르고, 부르고뉴에는 가내수공업 형태의 매우 작은 양조장이 대부분인데 그걸 도멘이라고 하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보르도를 ‘회사의 와인’이라고 하고, 부르고뉴를 ‘농부의 와인’이라고 합니다.
(명색이 조니워커 스쿨 졸업생인데 전혀 생소하다! 스쿨인데 술만 쳐 마셨으니!! )
P73. 그거 알아?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조국 폴란드를 떠나 파리로 온 쇼팽이 별천지 같은 파리의 밤을 처음 체험하면서 작곡한 음악이 바로 ‘녹턴’이라는 거? 그러니까 밤의 신비로움을 음악으로 옮긴거지.
P83. 카텔란은 비극을 안다고 할까요? 얼핏 어릿광대처럼 희극적으로 보이지만, 이 세상이 품은 온갖 ‘비극’에 연민을 품고 있는 아티스트라고 할까요? 그런 점에서 아류는커녕 되레 뒤샹을 뛰어넘는 작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84. 삶은 인간에게 무엇이든 줄 수 있고 또 인간은 삶에서 무엇이든 얻을 수 있네. 그러나 인간의 취향, 성향, 사람의 리듬은 바꿀 수 없어. - 산도를 마라이 <열정> 중에서.
같은 리듬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전 생애를 허비하기도 한다.
P99. 네르발이라는 프랑스 시인이 있었는데 파란 리본에 가재를 묶어 뤽상부르 공원을 돌아다녔어. 애완동물에 대한 기존 관념에 순응하기 싫었던 거지. 그걸 보고 사람들이 그를 괴물 취급했겠지?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어.
왜 개는 괜찮은데 가재는 우스꽝스러운가? 도대체 무슨 상관 인가? 나는 가재를 좋아한다. 가재는 평화롭고 진지한 동물이다. 무엇보다 개처럼 짖지 않고 사람의 귀중한 사생활을 갉아먹지도 않는다. (영화 <랍스터>도 네르발의 ‘가재’의 인용인걸까)
P119. 게다가 우리는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것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추상적인 감각을 대부분 잃어버렸어.
P125. 제가 웃긴 얘기해 줄까요? 말더듬이 협회의 표어가 뭔지 아세요?
‘우리가 말할 때 끄끄끄끄 끝까지 들어 줘’래요.
P129. 쇼펜하우어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어요. 신문 기자들은 오직 그날그날만을 생각하고 되는 대로 쓰기 때문에. 이들을 감시해 달라고 경찰에게 요청한 적이 있다고요.
P151.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중에서
P160. 천국을 바라거나 지옥을 두려워하는 자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 중에서
P168.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 중에서.
P186.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 커트 보네거트
P190. 너무도 우아하고 감각적인 편집 레이아웃으로 잡지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전설ㅈ거인 아트 디렉터,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그가 만든 <하퍼스 바자>의 어떤 페이지들은 지금 봐도 깜짝 놀랄만큼 신선하고 우아하다.
P191. 하긴 쇠렌 키에르케고르도 <유혹자의 일기>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놀라게 만드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고.
P211. 삶에 대한 자세는 본질적으로 순진무구함과 용기, 이 둘뿐이다. 나머지는 거기서 뉘앙스만 약간 다르다. 어리석음이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둘 중의 하나뿐이다. - 에밀 시오랑
P242. 최종 결정권자로서 개인적인 일로 마땅히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데드라인’에 당신은 7시간씩 부재중인 채 행방이 묘연했던 일이 있었지요. 하지만 당신은 어떠한 해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P267. 존 버거
죽는 날까지 오직 한 작가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영희는 기꺼이 존 버거를 선택할 것이다. 존 버거 전작주의를 지향하는 영희가 추천하는 작품은 <여기, 우리 만나는 곳>
P270. 산도르 마라이 와 열정
소설가 이신조는 ‘인생의 어느 밤, 산도르 마라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그랬다.
P271. 모조소년의 ‘La Rosa’
3호선 버터플라이의 <사랑은 어디에>
아마츄어 증폭기의 <금자탑>
p275. 알베르 카뮈의 <안과 겉>
나의 원천이 <안과 겉>속에. 내가 오랫동안 몸 담아 살아온 그 가난과 빛의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선 가난이 나에게 불행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빈곤은 나로 하여금 태양아래에서라면, 그리고 역사속 에서라면 모든 것이 다 좋다고 믿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p277 웨스 몽고메리.
웨스 몽고메리의 첫 번째 앨범 <The Incredible Jazz Guitar>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재즈기타 앨범으로 손꼽히고 오늘날 재즈기타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팻 맨스니나 조지 벤슨 같은 이들도 가장 존경하는 재즈 뮤지션으로 웨스 몽고메리를 뽑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