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롤 주의, 북풀 실행 결사 반대합니다.
P116. 만일 내가 숲속의 무성한 나무들과 교감을 하면 내 마음은 그 나무들만큼 넓어진다. 파란 하늘을 보고 내 마음이 맑아진다면 파란 하늘도 역시 내 마음이다. 내가 남의 말에 공감한다면 그 역시 내 마음이다. 이처럼 마음은 두뇌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마음이 닿는 곳까지 무한하게 확장된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셸드레이크 교수도 한 목소리를 낸다.
“당신이 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나무에까지 이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그 사람의 마음과 교감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두뇌 속에 갇혀 잇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이처럼 마음은 무한하게 퍼져 나간다. 마음은 빛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를 이용해 성적을 높일 수도 있다. 알래스카 대학의 마하니 교수는 성적부진으로 고민 중인 한 학생에게 ‘수학과 나는 하나다’, ‘서양문화사와 나는 하나다’라고 반복적으로 되뇌어 보도록 했다. 그 결과 평소 C, D 학점이었던 그 학생의 성적은 A, B 학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수학과 나는 하나다’라고 생각하면 ‘나’의 공간이 수학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단지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수학을 나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책과 나는 하나다” 반복하자. )
P118. 시력을 잃고도 일상생활을 훌륭히 해내는 키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사물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하고 궁리했다. 그러다가 소리를 내면 메아리처럼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서 주변의 사물을 향해 조금씩 소리를 보내보기 시작했다. 혀와 입천장 사이에 진공을 만들어 “딱딱” 소리를 내면 사물에 부딪쳐 되돌아왔다. 되돌아오는 소리에는 사물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소리도 빛처럼 에너지의 물결이에요. 이 물결이 주변의 사물에 부딪혀서 되돌아오죠. 그 물결 속에는 사물의 위치, 크기, 높이, 재질 등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P120. ‘이스트게이트 센터’는 다른 건물에 비해 전기는 90%, 물은 80% 덜 쓴다. 인간의 생각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이 건물을 지은 건축나는 피어스다. 그는 누구한테서 이 놀라운 건축술을 배웠을까? 흰개미한테서 배웠다. 아프리카의 낮 기온은 40도 넘게 치솟지만 밤엔 0도 가까이 떨어진다. 이렇게 기온차이가 크면 흰개미들은 번식하지 못한다. 왜? 여왕개미는 하루 평균 3만 개의 알을 15년간 매일같이 낳는다. 그런데 알이 부화하기 위해서는 개미집의 내부온도가 30도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돼야 한다. 여왕벌의 먹이를 적당히 발효시키기 위해서도 역시 30도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돼야 한다. 하지만 땅 밑의 개미집엔 무려 2백만 마리의 개미들이 몰려 산다.
공기가 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기를 정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땅위에까지 개미집을 연장시킨다. 최고 9미터 높이의 개미집도 있다. 개미집 한가운데엔 큰 굴뚝이 있다. 낮에는 이 굴뚝을 통해 내부의 탁하고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온다. 하지만 개미집 꼭대기는 막혀있다. 그럼 탁한 공기를 어떻게 내보낼까? 개미집 벽에 무수히 많은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려 있다. 이 구멍들을 통해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고 탁하고 더운 공기는 밖으로 빠져 나간다. 구멍에 유입되는 바람의 힘으로 신선한 공기는 개미집 아래까지 내려간다. 그렇다면 밤에는 어떻게 기온을 30도로 유지할까? 벽에 송송 뚫린 구멍들을 막아서 벽에 저장된 태양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p184. 내가 견디기 힘들어했던 건 시끄러운 소리에 초점을 맞춰놓고 그 소리와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소리가 싫어지자 싫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꾹꾹 짓눌러놓았다. 그러다 보니 짓눌린 생각은 탈출구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발악을 해댔다. 그럼 나는 더욱 짓눌렀다. 자연히 나는 점점 더 힘들 수밖에.
‘시끄러움은 내가 선택한 것이었구나!’
시끄러운 소리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시야를 넓혀 텅 빈 공간의 고요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그러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 이렇게 조용한걸!’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시끄러운 소리가 점점 커졌다. 거꾸로 텅 빈 공간의 고요에 초점을 맞추자 고요함이 점점 깊어졌다.
(도서관에 학생들이 많다. 학생들은 무신경하게 책의 페이지들을 넘긴다. 이상하게도 내 옆에 앉는 학생들마다 신경질적으로 끊임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었다. 노트에 ‘왜 내 옆에 앉는 학생들마다 시끄러울까’라고 적은 다음날 이 책을 읽었다. ‘아, 시끄러움은 내가 선택한 것이었나?’ 그런데 왜 여전히 시끄러울까? 깨달음은 물 건너 간지 오래다. )
p188. 텅 빈 공간은 만질 수도 있다. 양 손바닥을 벌려 서로 가까이 했다 멀리했다 해보라. 손바닥 사이의 공간이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밀면 밀리고 끌어당기면 끌려온다. 컬럼비아대의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은 “ 공간은 구부릴 수도, 비틀 수도, 물결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p191. 런던 대학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 박사도 “크게 보면 우주는 하나의 마음이다”리고 했다. 인간은 무한한 마음이 쪼개진 조각들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물리학자 휠러 박사도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우주의 작은 마음조각들이다”라고 했다.
p204. 맨 왼쪽의 작은 슬릿 (가늘고 긴 구멍)을 통해 빛 알갱이들을 발사해보자.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MIT 물리학자 르윈은 레이저 광선을 사용한다. 슬릿을 통과한 레이저 광선의 빛 알갱이들은 벽면에 가운데 사진처럼 슬릿 모양의 타원형 자국을 남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럼 슬릿의 폭을 점점 더 가늘게 좁히면? 자연히 벽면에 생기는 빛 알갱이들의 자국 모양도 맨 오른쪽처럼 점점 더 좁아진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슬릿의 폭을 더 이상 좁힐 수 없을 때까지 좁혀나가면? 돌연 기철초풍할 일이 벌어진다.
“어, 빛이 더 이상 좁아지는 게 아니라 갑자기 확 넓어지네!”
P208. 야구공을 콘크리트 벽을 향해 던지면 튀어나온다. 그럼 빛 알갱이를 벽에 발사하면 어떨까? 처음엔 튀어나온다. 하지만 잠시 후 벽 반대편에 홀연히 나타나는 알갱이들이 생긴다. 어찌 된 일일까?
“알갱이가 어떻게 벽을 꿰뚫고 반대편에 나타났지? 귀신이 곡할 일이네?”
이처럼 빛 알갱이는 어떤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도 아무 상관없이 생각하는 곳에 나타난다. 마치 터널을 통과하듯 말이다. 이것이 이른바 ‘양자 터널’ 효과다.
P213. 그렇다. 1990~1994년 사이 입원했던 환자들을 위해 6~10년이 지난 2000년에 기도한 것이었다.
“2000년에 기도한 효과가 1990년 초에 나타났다고?”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분명하다. 1990년대 초 환자들의 기록을 조사해보니 기도를 받은 환자들이 하나같이 열도 떨어졌고, 입원기간도 짧았다.
P214. 캘리포니아대의 물리학자 커트너는 혀를 내두른다.
“혼비백산할 일이죠. 이미 물결 형태로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한 알갱이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느 한쪽 슬릿만 통과한 것처럼 행동하다니. 원래부터 고체였던 것처럼 행세하는 거죠. 알갱이들이 실험자의 마음속 생각을 미리 읽고 행동한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P218. 그(팔 다리가 없는 닉 부이치치)는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진다. 청중들은 숨을 죽인다. 그는 이마를 바닥에 대고 목과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일어서려고 한다. 하지만 실패다. 다시 시도하지만 역시 실패다. 허우적거리기만 하고 도저히 일어서지 못할 것 같다. 돌연 그는 엎어진 자세로 고개를 들고 말한다.
“여러분은 100번 시도해서 100번 실패하면 그냥 포기하나요? 100번 넘어진다고 해서 그게 끝인가요? 저는 수천 번, 수만 번 이렇게 넘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한 번, 또다시 한 번 시도했어요. 그러다 마침내 벌떡 일어서는 방법을 깨우쳤답니다. 자, 보세요!”
그는 책과 전화기에 이마를 대고 아까처럼 목과 허리를 곧추세우더니 벌떡 일어섰다.
P221. 때로는 인생이 장애물로 가득한 미로처럼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때 육안으로만 바라보면 아무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물질인 육안은 시야가 짧다. 반면, 마음의 눈은 물리적 한계를 초월해 모든 걸 다 본다. 시야가 무한하다. 위에서도 보고, 아래에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모든 방향, 모든 시점에서 다 본다. 정말 출구가 안 보일까? 만일 출구가 없다면 그건 설계가 잘못된 미로이다. 인생의 모든 시련도 마찬가지다. 벗어나지 못할 시련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영혼이 영적 성장을 위해 스스로 설계해놓은 시련이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혀 바라보면 인생의 가장 귀중한 기회가 최악의 시련을 가장해서 나를 찾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P243.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크릭은 ‘자유의지는 착각’이라고 말했다. “나, 나의 기쁨과 슬픔, 나의 기억과 야망, 나의 개체적 정체, 자유의지라는 것도 알고 보면 사실은 엄청난 양의 신경세포와 관련 분자들이 뭉쳐진 덩어리의 행동일 뿐이다. 쉽게 말해 나는 신경세포 덩어리에 불과하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선택을 이미 결정해놓았고, 우리가 이를 바꿀 수는 없다.”
P253. 커다란 고무 보자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 가운데에 무거운 큰 구슬을 놓아두면? 보자기 가운데가 휘어서 움푹하게 들어간다. 그런 다음 움푹 들어간 주변의 한 지점에서 작은 구슬을 옆으로 굴리면? 작은 구슬은 빙빙 돌면서 점점 큰 구슬 쪽으로 내려가게 된다. 이 움직임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큰 구슬이 작은 구슬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인다.
뉴턴은 사과가 지구로 떨어지는 이유가 중력때문이라고 했다.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력이 왜 생기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무려 250년쯤이나 지나서야 아인슈타인이 처음으로 그 문제에 의문을 품었다.
만물이 항상 중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무릎을 탁 쳤다.
“알았다. 저 사람은 중력 때문에 떨어지는 건 아니야! 중력이 없어도 떨어져. 공간이 그를 누르기 때문에 떨어지는 거야”
그는 공간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거운 게 누르면 공간도 휜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이유도 태양이 지구를 끌어당기기 때문이 아니다. 무거운 태양이 공간을 휘어놓기 때문에 지구는 그 휜 공간을 돌고 있는 것이다.
뉴욕대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 교수도 “ 공간이 태양을 향해 지구를 밀기 때문에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설명한다. 캘리포니아 공대의 천문학자 엘리스 교수도 “공간도 무거운 걸 올려놓으면 눌린다”라고 말한다. 공간이 내 몸을 돌아가게 한다면 공간이 다른 만물도 돌아가게 하는 게 당연하다.
P256.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물질을 크게 과장해서 본다. 우주 전체를 보면 99.9999퍼센트 이상이 텅 빈 공간이다. 태양이나 지구는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일정기간 존재하는 환영이다. 그 모든 환영을 품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텅 빈 공간이다.
텅 빈 공간에 흐르는 무한한 마음이 이 환영들로 하여금 완벽한 연기를 펼치게 한다. 내가 시야를 무한히 넓히면 나는 이 무한한 마음과 하나가 된다. 우주만물이 내 마음속에 들어온다. 이처럼 우주만물이 내 마음속의 환영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이해할 때 나는 비로소 우주만물을 움직이는 진정한 창조자가 된다.
“과학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주의 법칙 속에 마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이 마음은 사람의 마음보다 어마어마하게 월등하다. ” - 아인슈타인
“우리는 이 놀라운 힘의 이면에 의식적이고 지능적인 존재가 있음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이 모든 물질의 모태이다.” - 막스 플랑크
P261. 마음의 공간을 열어놓는 만큼 실제로 답을 얻을 확률도 높아진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소크 박사는 “어떤 문제에 대한 답도 이미 존재한다. 답이 드러나도록 옳은 질문만 하면 된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어떤 답도 무한한 공간 밖에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P267. 현대그룹의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은 <이 아침에도 설렘을 안고>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젊었을 적부터 새벽 일찍 일어났습니다. 왜 일찍 일어나느냐하면 그날 할 일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의 기분은 소학교 때 소풍 가는 날 아침 가슴이 설레는 것과 꼭 같습니다. 또 밤에는 항상 숙면할 준비를 갖추고 잠자리에 듭니다. 날이 밝으면 일을 즐겁고 힘차게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설레는 마음은 ‘이럴까, 저럴까’, ‘될까, 말까?’등과 같은 잡념을 품고 있지 않다. 오로지 문을 활짝 열어놓고 결실을 맞이하길 기다릴 뿐이다.
P272.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을까?
1. 문제가 이미 풀렸다고 상상한다. - 성공률이 가장 낮았다.
2. 현실의 부정적인 면만 생각한다. - 성공류이 두 번째로 낮았다.
3. 문제가 이미 풀렸다고 상상한 뒤, 현실의 부정적인 면과 대조해본다. - 성공률이 단연 최고였다.
그렇다면 세 번째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이유는? 문제가 이미 풀렸다고 상상하면 첫 번째 방법처럼 일단 마음의 공간이 열린다. 그런 다음 ‘근데 걸림돌이 있는데 어떻게 풀었지?’하고 부정적인 면을 들여다본면? 문제를 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보게 된다. 구체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의심이 끼어들지도 않는다. 이처럼 마음의 공간이 열린 상태로 문제를 풀면 긴장 상태로 푸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풀릴 수밖에 없다.
P275. 진심으로 현실을 바꾸고자 한다면 근원적인 진실을 이해해야 한다. 내 몸을 포함한 우주만물은 죄다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두뇌는 끊임없이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꾸만 허상에 속아 넘어간다. 그래서 아인슈타인도 “현실은 허상이다. 단지 대단히 끈덕진 허상일 뿐이다”라고 했다. 우주는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만들어낸 무수한 허상으로 가득하다. 무수한 평행우주, 무수한 지구, 무수한 나가 존재한다. 이론물리학자 미치오 카쿠 교수의 말대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다른 우주에 펼쳐진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보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가능성으로 잠재해 있다가 관찰자가 바라보는 순간 현실로 나타난다.”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이 무한한 공간 속에 실재로서 이미 존재한다. 단지 관찰자인 내가 시야를 넓혀 바라보지 못할 따름이다.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마음속을 들여다보라. 들여다보면 이미 깔려 있는 생각들이 사라진다.
P279. 노스웨스턴대의 신경과학자 융 –비만 교수도 창의성 문제를 직감으로 푼 사람들의 뇌파를 촬영해봤다. 그 결과 직감이 떠오르기 0.3초 전에 이미 두뇌에 고주파인 감마파 활동이 돌연 왕성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생각이 텅 비어버렸다는 얘기다.
“영감을 얻으려면 생각부터 멈춰야 하는군.”
P281. 영국 국영 BBC –TV는 이 그림을 2백만 명의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어떤 모습인지 알아맞혀보라고 했다. 거의 알아맞히지 못했다. BBC – TV는 곧 답을 알려주었다. 답은 “춤추는 남녀”였다. .....“거참 신기하네. 독일 시청자들에게는 답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실험을 주도했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셸드레이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은 머릿속에 국한되어 있는 게 아니다. 텅 빈 공간이 마음이다. 그래서 영국 시청자들에게 답을 알려주면 독일 시청자들은 텅 빈 공간에서 저절로 답을 보게 된다.”
P282. ‘플린 효과’라는 게 있다. IQ 테스트가 시작된 지난 1930년대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IO테스트 점수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현상이다. 후세는 선조들보다 IQ가 높다. 후세의 후세는 더 높다. ....세월이 흐를수록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MIT의 촘스키 교수마저 의아해하고 있다.
P283. 소나 양을 많이 키우는 미국이나 유럽, 호주엔 ‘캐롤 그리드’라는 게 있다. 자동차는 지나가도 소나 양은 못 지나가게 도로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쳐놓은 쇠막대기판을 말한다. 소들이 쇠막대기판을 밟으면 발이 쇠막대기판 사이로 빠져 고통을 겪는다. 첫 세대 소들은 쇠막대기판에 발을 디뎠다가 혼쭐이 난다. 몇 번 그러다가 ‘아, 여기는 밟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깨닫는다. 다음에 태어나는 송아지들은 어떨까? 놀랍게도 쇠막대기판을 밟는 횟수가 크게 줄어든다. 어미 소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 다음 세대 송아지들은 어떨까? 아예 밟지 않는다! 역시 어미 소가 가르쳐준 건 아니다. 스스로 알게 된 것이다.
P285. 쉘드레이크 교수는 두뇌는 정보의 송수신 장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텅 빈 공간에 저장된 정보를 송수신한다는 것이다. 마치 TV처럼 말이다. “TV에서 사람이 나온다고 TV속에 사람이 들어 있나요? TV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TV속에 소리가 들어 있나요? TV수상기는 공중에 떠 있는 그림과 소리 신호를 수신하는 기능만 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사람의 두뇌도 텅 빈 공간에 저장된 정보를 송수신하는 기능만 합니다.”
P298. 스위스 과학자들이 사람들의 눈을 가린 채 음식을 먹도록 해보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평소보다 25퍼센트나 덜 먹었다. 눈을 감고 먹으면 음식의 맛이나 입안에서의 감촉 등을 제대로 음미하며 먹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음식을 제대로 음미하며 먹을수록 몸이 꼭 필요한 만큼 먹게 되는 것이다.
P302. <테니스의 내면 게임>의 저자 골웨이는 하버드대에서 수십 년간 테니스 코치로 일하면서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학생들에게 “자세가 틀렸어”, “그렇게 하면 안 돼”, “이렇게 해야 돼” 등 잔소리를 많이 할수록 실수도 더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테니스를 하다가 공이 라켓 한가운데에 맞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지요. ‘공이 잘 안 맞는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그럼 공이 더 안 맞게 됩니다. 뭘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공이 라켓의 어느 부분에 떨어지는 지만 그냥 관찰해보세요. 그럼 공이 저절로 라켓의 한가운데에 맞게 됩니다.”
P304. “공이 라켓에 맞는 순간 낮게 날아오는지, 높게 날아오는지, 평행하게 날아오는지 주의를 기울여 관찰합니다. 뭔가를 바꾸려 하지 말고 오로지 공이 어떻게 날아오는지만 관찰하세요.”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공을 못 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공을 100퍼센트 관찰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100퍼센트 공에 가 있다면 공은 100퍼센트 맞게 된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처음엔 반신반의한다. 하지만 그가 코치해주는 대로 하면 누구나 최고가 된다.
P308. 펜실베니아 대학의 벡 교수가 실시한 실험이다. “어항만 봐도 혈압이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곧 다시 올라가요. 반면, 어항 속의 물고기를 보면 혈압이 지속적으로 낮아져요.”
P313. 좋아하는 게 단 하나만 있어도 마음은 닫히지 않는다. 마음만 닫히지 않으면 어두운 생각에도 갇히지 않는다. 청소년기까지 외톨이로 살았던 아인슈타인은 이런 글을 남겼다.
“비록 나는 일상에서 전형적인 외톨이였지만, 진실, 아름다움, 정의를 추구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P318. <마음속 들여다보기>
내 마음속엔 지금 어떤 생각이 떠 있지? 하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들여다보면 사라진다.
다른 생각이 또 떠오르면 똑같은 방법으로 공간 속을 들여다본다. 그럼 또 사라진다.
생각이 사라지면 ‘다음 생각은 어디서 떠오를까’하고 주시한다. 텅 빈 공간이 지속된다.
P324. “우주는 자신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들이 들어 있는지 들여다보기 위해 물질 세계를 창조했다.”는 메시지이다.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도 “우주는 자신을 알기 위해 우리를 만들어냈다”라고 했다. 텅 빈 공간에 흐르는 무한한 마음이 환영의 세계인 우주를 창조했다면 분명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 목적은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들이 숨어 있는지 들여다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P330. 이 모든 생각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이 생각을 무한한 공간에 풀어놓아줍니다”하고 되뇌었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세 번, 네 번, 몇 번이고 반복했다. 텅 빈 공간은 모든 걸 보고 듣고 안다. 모든 말도 알아듣는다. 생각을 떠올리며 “이 생각을 무한한 공간에 풀어놓아줍니다.”하고 되뇌면 실제로 풀려나간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효과를 확인하고 싶다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어두운 생각의 강도를 1~10까지의 눈금으로 수치화시켜 바라보라. 예컨대 화나는 일이 자꾸 거세게 떠오른다면 ‘내 마음속에 지금 떠오르는 화의 강도가 얼마나 될까? 8 정도? 9 정도?’하고 가늠해 본다. 그리고는 “이 화를 무한한 공간에 풀어놓아줍니다.‘하고 되뇌어본다. 되뇌면 되뇔수록 화의 강도는 7,5, 4,2 등으로 점점 약해지다가 나중엔 0이 돼 버린다.
P337. 교수는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기 다른 방법으로 45초간 화나는 장면들을 되돌아보라고 말했다.
2그룹 “남의 관점에서 화나는 장면을 되돌아보세요. 화나게 했던 장면들로부터 몇 발짝 떨어져 제 3자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저런 감정이 왜 저 사람한테 생기는 거지?’ ‘저런 감정이 저 사람한테 생기는 이유는 뭐지?’하고 거리를 두고 분석해보세요.
화나는 장면들을 멀찌감치 남의 시각에서 되돌아본 2그룹 학생들만이 화를 지속적으로 가라앉힌 것으로 나타났다. ‘나’의 시작으로 화나는 장면들을 되돌아보는 것은 화를 가라앉히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딴생각을 함으로써 화를 덮어두는 것도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P339. 미슈코프스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처한 불행한 상황을 벽에 붙은 파리는 어떻게 바라볼까? 나를 벽에 붙은 파리라고 상상하면 내가 처한 불행한 상황에 파묻히지 않게 됩니다.”
P343. 하지만 지금은 화를 삭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대개 몇 분, 혹은 몇 초면 사라진다. 비결은? 화의 물결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몸 밖의 무한한 공간으로 자유로이 퍼져나간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화가 내 몸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화는 내 몸속에 갇혀버린다. 그래서 독이 된다. 하지만 ‘나’는 몸에 갇힌 존재인가? 아니다. 시야를 넓히면 넓힐수록 무한히 퍼져나가는 존재이다. 그래서 화가 몸 밖으로 퍼져 나간다고 상상하면 실제로 퍼져 나간다.
P349.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면 시간도 사라진다. 시간도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일엔 사실 앞뒤가 없다. 따라서 온갖 괴로운 생각으로 가득할 때 먼저 텅 빈 공간을 상상해보라. 모든 생각이 즉각 텅 비어버린다. 생각이 먼저 사라져도 텅 빈 공간이 되지만, 텅 빈 공간을 먼저 상상해도 생각이 사라진다.
P351. 페미 박사는 40여 년간 뇌파를 연구해온 최고의 권위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온갖 방법을 다 써도 안 되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생각을 텅 비우는 일이었다.
‘왜 뇌파가 바뀌지 않는 거지?’
...... “끝내 안 되는구나! 수년간의 연구가 물거품이 되는구나!”
긴장이 탁 풀렸다.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몽땅 포기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한숨을 길게 내뿜으며 머리에 착용한 뇌파 측정장치를 벗으려는 순간이었다.
“어, 이게 뭐야?”
뇌파 측정장치가 연결된 뇌파 측정기에 알파파가 큰 폭으로 물결치고 있는 것 아닌가!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 생각이 텅 비어버리네?”
P352. “어? 별 효과가 없네?”
자연이나 음악 감상, 혹은 향기나 빛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부정적 생각에 가득한 마음을 근본적으로 비워주지는 못한다.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이런 주문을 해보았다.
“두 눈 사이의 공간을 상상해볼래요?”
갑자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뇌파 기록장치에 큰 폭의 알파파가 그려지는 것이 아닌가!
“이번엔 두 귀 사이의 공간을 상상해볼래요?”
역시 큰 진폭의 알파파가 그려졌다. 박사는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더 큰 부위의 공간을 상상해보도록 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공간을 상상해 보세요.”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몸속 어느 부위의 공간을 상상해도 알파파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럼 사람이 아닌 벽과 벽 사이의 빈 공간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놀랍게도 똑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그는 무릎을 탁 쳤다.
“아하! 모든 게 공이로구나. 그래서 빈 공간을 상상할 때마다 모든 게 정말 공이 되는구나!”
만일 만물이 텅 빈 공간이 아니라면 텅 빈 공간을 상상한다고 해서 공이 될 리 없다.
몸도 마음의 거울이다. 마음이 맑아질수록 몸도 맑아진다. 텅 빈 공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과 몸이 맑아진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간단한 명상법이다.
P354. 눈뜨고 왓칭하려면?
“먼저 허리를 곧게 펴야 해요. 자칫하면 잠들게 되거든요. 그런 다음 눈의 초점을 완전히 풀고 멍하게 허공을 바라봐요. 그럼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이것이 바로 눈 뜨고 명상하는 원리다. 눈의 힘을 완전히 풀고 시야를 최대한 넓혀 허공을 바라본다. 시야를 넓히면 육안이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그럼 생각도 못하게 된다.
시야를 최대한 넓혀 넓은 공간 전체를 바라본다. 육안의 초점을 완전히 풀고 힘도 완전히 뺀다. 육안으로 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본다고 상상한다.
시야를 넓히면 마음의 공간이 넓어져 갇혀 있던 생각들이 풀려나간다.
텅 빈 공간에 또 어떤 다른 생각이 떠오르는지 지켜본다. 지켜보고 있으면 안 떠오른다.
왓칭할 때 ‘난 육안으로 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본다’, 혹은 ‘마음의 눈에서 사방으로 빛이 퍼져나간다’라고 상상하면 왓칭이 편해진다. 또, 생각이 금방 사라지면서 마음이 공간이 무한히 넓어져 가는 걸 알 수 있다.
P361.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나를 알면 신을 알게 된다. 내 마음을 수정처럼 맑게 닦아 시야기 무한해지면 무한한 신과 하나가 된다. ‘원래의 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길이다. 모든 것은 영적 성장을 위해 설계된 수업이다. 지구는 거대한 학습장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 자체만으로 시야는 무한히 넓어진다. 모든 걸 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P363. 지구는 육신의 옷을 걸친 무수한 영혼들이 연기를 펼치는 연극무대이다. 모든 등장인물은 연기자들이다. 연극의 이야기도 각자의 영적 성장을 위해 짜인 각본대로 전개된다. 때로는 각본에 정해진 나의 배역이 너무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배역을 맡은 연기자는 연기자일 뿐이다. ‘진정한 나’는 연극 전체를 멀리서 지켜보는 무한한 마음이다. 시야를 넓혀 멀리서 큰 눈으로 내려다보면 무수히 많은 ‘개체 나’들이 한 무대 위에서 다 함께 연기를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따라서 내가 중간에 배역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 연극을 무사히 마치도록 해준다.
견디지 못할 시련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써놓은 각본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겪는 가장 힘겨운 시련이 내 인생의 가장 귀중한 선물이 될 수 있다.
P377. 누구나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누군가를 찾는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영영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땐 희망이 끊어진다. 그 누군가를 밖에서 찾기 때문이다. 내가 찾는 그 누군가는 내 마음속에 있다.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배에 음식이 들어오지 않으면 피어오르는 ‘배고프다’는 생각,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피어오르는 ‘슬프다’는 생각,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피어오르는 ‘절망스럽다’는 생각....이 모든 생각에 어떤 감정도 덧대지 않고 가만히 바라본다.
어디서 피어오르는 생각인가?
왜 피어오르고 있는가?
어디로 흘러가는가?
스쳐가는 것인가?
영원한 것인가?
P378. 이태리 파비아 대학 심장학과 베르나르디 교수는 사람들에게 베토벤, 비발디, 테크노 음악 등 모두 여섯 가지 음악을 차례로 들려줘보았다. 그러면서 혈압, 심박과 호흡 횟수 등을 살펴보았다. 결과는 너무나 간단했다. 고전음악이든 테크노 음악이든 상관없이 빠른 음악은 혈압과 심박수 등을 빨라지게 했고, 느린 음악은 혈압과 심박수 등을 느려지게 했다. 그러다가 문득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어? 음악이 바뀌는 중간에 형랍이 가장 많이 떨어졌네?”
.....“침묵이 가장 느린 음악보다 더 큰 휴식 효과를 갖다니!”
“참으로, 참으로 깊은 수준의 휴식은 생각을 텅 비운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P380. 내 힘으로 안 될 땐 너무 애쓰지 마라. 내 팔다리의 힘도, 내 몸뚱이의 열정도, 내 두뇌의 생각도, 나를 휘감는 온갖 감정도, 사실은 바깥세상에 속한 것이다. 바깥세상을 움직이는 모든 건 내 마음속에 들어 있다. 바깥세상은 착각의 세계이다. 그 속에서의 몸부림을 멈추고, 대신 마음 속을 들여다보라. 들여다보면 무한한 공간이 열린다. 시야기 무한해진다. 내가 그토록 매달리던 것도, 붙들고자 했던 것도, 얻으려 애쓰던 것도, 죄다 스쳐가는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무한한 공간 속에 사랑으로 가득한 무한한 존재가 들어 있다. 그 존재와 분리될수록 나는 점점 작아진다. 그 존재와 하나가 될수록 나는 점점 커진다. 그 존재 앞에 나의 모든 아픔과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맘껏 눈물을 뿌려라. 나에 대한 모든 비판과 심판을 내려놓아라. 나를 완전히 열어놓고, 나의 모든 것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무한한 존재와 하나가 된다. 그래야 비로소 참다운 안식을 얻게 된다. 참다운 안식 속에서 모든 새로움이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