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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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다. 내가 놓친게 있었나 하고 다시 앞으로 읽기도 했다. 문든 지은이를 떠올리니 아 하는 느낌이 들었다.  '편의점 인간' 으로 아쿠타가와상을 탄 무라타 사야카는 독특한 등장인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작가다. 뭔가 평범한 사람은 아닌듯한 생각이 남다른 사람들이 주된 요소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비정상인.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면서 그 이면에 여러가지 생각할 꺼리를 남겨 둔다.


이번에 책의 등장 인물들도 예사롭지가 않다. 생각 자체가 흥미롭다. 자기 자신이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인이라는 것이다. 주인공인 나쓰키는 외계인인데 '포하피핀포보피아별' 에서 왔다고 믿고 있다. 자신은 모종의 이유로 지구라는 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미친게 아닌가? 아니면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인가? 사실 나쓰키는 어릴 때부터 가까운 사람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당하면서 살아 왔다. 그런 억눌린 상탱에서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서 지구별에 사는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하게 된 것이다.


나쓰키에게 인간 세상은 그저 공장일뿐이었다. 아이를 나아서 정해진 틀대로 커서 공부하고 직장 잡고 아이를 또 낳고. 그저 아이 낳은 공장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이런 보통 사람과 동떨어진 생각을 갖고 있는 나쓰키가 세상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사촌 유우만이 그 생각을 이해하고 그 자신도 외계인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그들 둘만 있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둘은 떨어지게 된다. 나쓰키는 인간 세상에 살아 남기 위해서 인간들처럼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이른바 인간들에게 세뇌를 당한 것이다.


시간을 흘러 세상에 적응해서 살던 나쓰키는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게 또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내용을 보면 계약 결혼이나 마찬가지다. 그냥 공동 공간을 같이 쓰는 동거인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다. 밖에서는 부부지만 집 안에서는 그냥 남이나 다름없다. 남편인 도모오미도 독특한 사람이긴 하다. 도모오미 또한 폭력적인 부모에게서 벗어날려고 결혼을 했는데 여러 가지로 나쓰키와 조건이 맞아서 결혼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지구인들의 체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야말로 번식 공장이라서 자신은 그것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느 정도 지구별에 적응하는 나쓰키에 비해서 지구인에게 세뇌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들은 유우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가서 함께 살면서 기존 관념과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산다. 그러다가 서서히 밝혀지는 사실들. 나쓰키는 외계인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결국 지구별에 정착 할 것인다. 후반부는 좀 더 빠른 전개로 결말에 치닫는다.


주요 등장 인물 3명은 공통적으로 오랜 기간 폭력을 경험했다. 특히 나쓰키는 정서적 학대와 육체적 폭력을 강하게 받았다. 나쓰키가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고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해도 다행일 지경이다. 지구별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아닐까. 자신이 마법 소녀이고 외계인이라면서 그래도 지구에 적응하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 지구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폭력이 치유되지 않은 것은 비정상이 아니겠는가. 정상과 비정상이 뒤틀려 버린 이야기 같다.


내용은 상당히 특이하면서 도발적이다. 느긋하게 읽다가 고쳐 앉아 읽게 한다. 쉽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여운이 길게 간다. 두 번은 읽어야 그 느낌이 밀려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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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로드 1 - 선사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한국사로드 1
김종훈 지음 / 텍스트CUBE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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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단순히 흘러간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미래에 다시 닥칠 수 있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사실 역사에서 배운다고 하지만 그런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제대로 배우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수 천년 동안 켜켜이 쌓인 역사는 너무나 방대하다. 그래서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은 끊임없이 읽어야 하고 봐야 한다. 그래서 자칫 글자로만 역사를 바라보게 된다. 학창 시절 역사를 싫어했던 사람들은 역사를 그냥 암기만 해야 하는 재미 없는 과목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저 보고 외우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단순 암기가 아니라 이해를 해야 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전개가 되었는지 등을 이해한다면 암기는 저절로 따라온다. 과거에 역사 교과서는 그냥 암기용 책이었다. 요즘에는 그림이나 설명을 많이 넣어서 이해도를 높인다고 하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역사는 사진이나 영상이 있으면 더 이해도 쉽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되는데 이번에 나온 책이 그것의 모범이 아닌가 싶다.


일단 지은이는 정규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기자다. 한능검, 즉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을 준비하면서 좀 더 시험을 잘 대비하고 좀 더 역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직접 답사를 하면서 역사적 사실들을 몸으로 느끼는 과정을 책으로 펴냈다. 어떻게 보면 고득점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한 것인데 이 과정이 아주 훌륭해서 내용이 충실한 책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한능검은 단순 암기로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 시험 형식을 보면 역사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를 해야 맞출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시험을 잘 치는데 도움도 주지만 그 자체가 역사를 더 쉽고 재미있게 느끼게 해준다.


책은 총 3권이고 이번에 나온 1권은 선사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를 다루고 있다. 전체적인 각 시대별 역사는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중요한 부분은 직접 현장 답사를 해서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내용을 전개 시키는데 역사적 내용이 쉽게 이해가 되니까 암기도 잘 되는 것 같다.


사실 기록이 있거나 유물, 유적이 있는 역사는 찾아가거나 사진 등을 통해서 보기가 어렵지 않지만 간단하게 지나치는 선사 시대의 이야기는 단순 암기가 되기 쉽다. 이 책은 첫 장부터 우리 나라의 구석기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과거에 우리 나라에는 상대적으로 수준 낮은 구석기 문화만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주한 미군으로 있던 그렉 보웬이 한탄강 부근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깨진 항아리를 발견하고 그 후로도 주위를 관찰하다가 주먹도끼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수준 낮은 문화가 존재 한다던 기존 학설을 깨고 '고급' 문화가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귀중한 유물이었다.


책은 연천 전곡리를 직접 가서 한탄강도 보여주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다. 보충해서 선사 시대의 특징을 한탄강의 지리적 특성과 함께 설명하는데 이해가 쉽게 된다. 마무리로 연천에서 볼 곳, 먹을 곳을 소개하고 서울 기준으로 탐방 코스까지 안내해준다. 기존의 책들에서 볼 수 없었던 기동성과 현장성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전곡리의 구석기 시대 역사가 머리에 잘 들어왔다.


책은 이런 식으로 여러 중요한 장소를 직접 탐방을 해서 실제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왜'라는 의문에 친절하게 답해 준다. 지은이가 고생한 만큼 우리는 편하게 보면 되는 것이다. 책을 보면 지은이가 마냥 좋은 평가만 내리는 것은 아니다. 역사책 에서는 대단하게 느꼈는데 실제로 보니 기대에 못 미치는 것도 있었고 주위 정비도 아쉬운 부분도 있었는데 그것도 가감 없이 기술 하고 있다. 역사적 평가와는 상관없이 실제의 모습이 기대와 다른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는 대단하다고 해도 보통 사람들 입장에서는 느끼는 것이 다를텐데 지은이가 그런 점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더 사실적인 것 같다.


지은이가 안타깝게 여긴 것은 경주의 능 관리였다. 신라의 중요한 왕 중에 하나인 법흥왕과 진흥왕의 왕릉이 꼼꼼하게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경주는 파면 유물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유물 유적이 많아서 관리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기존의 이런 유적들은 정말 잘 관리를 해야 하는데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책이 많이 팔려서 관련 당국이 각성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책 좋다. 역사를 하나 하나 다 외울 필요는 없는데 이렇게 전체적인 역사 흐름을 이해하면서 중요 부분을 사진이나 지도, 영상 등 여러 자료를 통해 입체적으로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 좋다. 어차피 모든 사람이 역사 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히 한국사를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능검 시험을 잘 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역사를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알아가기 위해서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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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에타 마리아 - 혁명을 삼킨 불굴의 왕비
헨리에타 헤인즈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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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국의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들에게 '청교도 혁명'은 익숙한 역사다. 이른바 청교도들에 의해서 나라의 국체가 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바뀐 사건. 이것을 이끈 것은 크롬웰이라는 사람이고 그렇게 바뀌었던 나라가 크롬웰이 죽자 다시 왕이 다스리는 나라로 돌아갔다는 것. 그런데 요즘에는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해석이 달라져서 당시 왕이었던 찰스 1세가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고 크롬웰이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닌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래서 청교도 혁명이라고 하기 보다는 '잉글랜드 내전' 이라고 부르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명칭이 좀 더 맞다 생각한다.


잉글랜드 내전이 영국 역사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면 이때 도입된 여러 제도들이 결국 왕권이 아니라 국민이 우선인 근대 민주주의의 시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는 왕이 신과 다름없다는 '왕권신수설'이 강력할 때여서 영국 내전의 결과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제도가 만들어지고 왕권을 견제하는 의회가 더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잉글랜드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을까. 처음에 청교도 혁명이라고 불렸듯이 본질적인 문제는 '종교' 이었다. 개신교가 장악한 의회와 친가톨릭 성향의 왕과의 대립이었는데 이 둘 사이에서 유연하게 줄타기를 했어야 하는 왕이 의회를 무시하게 되고 이것이 누적되어 결국 내전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당시 왕인 찰스 1세의 아버지인 제임스 1세는 비교적 이 상황을 잘 통제했지만 찰스 1세는 그런 처세 능력이 부족했다. 


자신의 뜻에 반하는 의회를 해산하고 혼자서 통치를 했지만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으로 전쟁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의회에 도움을 바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의회가 그 요구를 순순히 들어 줄 수는 없는 법.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서 들고 나온 것이 왕의 종교 문제였다. 정확히 말하면 가톨릭교를 믿는 왕비에 대한 불만이었다. 왕은 비록 개신교였지만 왕비때문에 가톨릭에 관대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이때 등장한 왕비의 이름이 바로 헨리에타 마리아 이다.


헨리에타는 낭트 칙령으로 종교 내란을 잠재운 프랑스의 위대한 왕 앙리 4세의 딸이었다. 정략적인 이유로 찰스 1세와 결혼했고 초기에는 왕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는데 점점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여러 아이도 낳아서 행복하게 지내나 했다. 그러나 문제는 왕비의 종교를 문제 삼은 의회였다. 가톨릭을 믿는 왕비가 왕을 움직여서 영국의 개신교도들을 탄압할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 것인가 하겠지만 얼마 전까지 '공산당' 하면 논리와 이성이 마비된 세상에 살았던 우리 나라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수 있다. 당시는 종교가 모든 것인 세상이었다. 종교때문에 전쟁을 하던 시기였다. 헨리에타의 모국인 프랑스도 오랜 종교 내전을 겪다가 아버지 앙리 4세가 겨우 잠재웠고 유럽 각국이 신교와 구교로 나뉘어서 엄청난 전쟁을 하던 시기였다. 당연하게도 가톨릭을 믿는 왕비때문에 개신교가 다수인 의회는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당시 왕인 찰스 1세였다. 왕이 다스리던 나라에서 최고 권력가이자 최종 결정권자는 왕비가 아니라 왕이었다. 비록 왕비가 정치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는 있었어도 결국 왕이 모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헨리에타는 영국인이 아니었기에 영국에서 정치적인 기반이 없었고 그녀 자신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단지 가톨릭을 믿는 것 뿐이었다. 의회는 그것을 물고 늘어졌는데 그 사이에서 찰스 1세가 처세를 잘 했어야 했다. 왕과 의회의 대립은 이런 것이 누적이 되어서 결국 전쟁으로 치닫게 된 것인데 의회는 헨리에타의 종교를 빌미삼아 대대적인 공세를 취했고 이것이 훗날 그녀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책은 악녀로 불렸다는 헨리에타의 일대기를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프랑스에서 나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낯선 잉글랜드로 와서 잉글랜드 왕비가 되고 전쟁에 휘말리고 남편을 잃게 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잘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상 악녀로 불리는 사람이 몇 사람 있는데 사실 헨리에타 마리가가 악녀로 불리는 것은 부당한 면이 있다. 악녀로 불린다는 것은 그 만큼의 힘을 행사했다는 것인데 그녀가 그럴 힘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만일 그녀가 그토록 악랄하게 당대를 지배했다면 내전 중에 죽었어야 하는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어야 했을 것이다. 


청교도 혁명라고 불렸던 잉글랜드 내전은 그 의미에 비해서 우리 나라에는 많이 소개되지 않았는데 이 책이 잘 설명하고 있다. 헨리에타 마리아라는 인물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듯 한데 잉글랜드 내전이 일어나게 되는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그녀 자신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전체적으로 잉글랜드 내전과 그 배경이 되는 헨리에타 마리아의 역사적 사실을 잘 알 수 있는 기회여서 관련된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괜찮은 책 같다. 다만 문단 나누기가 별로 없어서 읽는데 불편함이 있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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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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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름만으로도 책을 읽게 만드는 작가다. 기본적으로 대단한 이야기꾼이라서 여러 방면에서 여러 가지의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데 어떨때는 어떻게 저렇게 쓰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여러 번이다. 게다가 여러 편의 책을 많이 내는 편이라서 작업량도 대단하다. 물론 책을 많이 펴내는 만큼 별로인 작품도 여럿 있다. 주로 단편이나 중편에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 몇몇 장편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 외사랑을 읽고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술술 넘어가는 전개력도 그렇지만 어떻게 이런 소재를 가지고 이런 장편을 쓰는가 하는 감탄을 하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소설도 아니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01년이라니까 20년 전인 것이다. 이런 책이 왜 이제 나오지 했는데 글의 소재를 보니 그럴만도 했다. 20년전이라면 아무리 히가시노라고 해도 우리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소재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나라는 사회적인 인식이 20년전의 일본보다 더 보수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야기는 요즘에도 쉽게 하기 힘든 소재다. 성정체성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몸은 여자의 것을 갖고 있지만 마음은 남자인 그런 경우다. 어쩌면 동성애를 갖고 있는 사람보다 더 적은 사람들일 것이다. 책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과 그것의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데쓰로는 어느날 과거 대학 시절 미식 축구를 했던 동료들과 동창회를 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서 팀의 여성 매니저였던 미쓰키와 만나게 된다. 그런데 미쓰키는 분명 여자였는데 다시 만나서 보니 남자가 되어 있다! 이윽고 미쓰키의 고백을 듣게 되는데 그것은 그녀가 어렸을때부터 몸은 여자였지만 마음은 남자였다는 것이다. 그동안 순응하며 살다가 결국 남자가 되기로 했다면서 외관도 남자처럼 하고 목소리도 남자 목소리로 변했다. 그러나 그 정도 소식은 약과였다. 더 큰 고백, 아니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가 살인을 했다는 것이었다. 자수하기 전에 옛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고 한다.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도 놀랄 일인데 살인을 했다니! 자초지경을 들은 데쓰로는 역시 과거 같은 팀의 여성 매니저이자 지금의 아내인 리사코와 미쓰키를 집에서 보호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바로 자수를 하지 못하게 한다. 일단 그녀를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데쓰로와 리사코의 보호아래 있기로 했던 미쓰키는 어느 날 아무말 없이 사라진다.


미쓰키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 데쓰로는 살인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 사건속에 미쓰키가 있으니 미쓰키를 찾기 위해서는 탐정 아닌 탐정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사건의 진실을 찾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진다. 데쓰로가 생각치도 않았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미쓰키를 찾기 위한 것. 이야기는 미쓰키가 하나씩 하나씩 사건의 단서를 찾고 모아가면서 점점 사건의 실체에 접근 하는 것을 보여 준다. 그 과정에 여러 가까운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들 또한 미쓰키와 이리 저리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사건을 쫓던 중에 같은 미식 축구 부원이었으면서 기자가 된 하야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이미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터. 기자의 양심으로써 이 사건을 추적해서 신문에 실을 수 밖에 없음을 말한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다. 이제는 단순히 데쓰로만의 사건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연루된 큰 사건이 되어 버렸다. 경찰도 추적하고 있는데 그들을 아는 기자의 등장이라니. 데쓰로는 누구보다 먼저 미쓰키를 찾고 사건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만일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야기는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마음을 갖는 것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살인  사건의 이면을 찾아서 그 진실을 찾아가는 추리 소설의 형식이다. 과연 살인 사건은 어떻게 일어났는지 미쓰키가 어떻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피해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등을 다각도에서 다가가고 있는데 아주 복잡한 구조는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추리해 나가는 과정을 씨줄과 날줄로 정교하게 잘 짜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작은 것들을 하나씩 짜가면서 큰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잘 연결되고 이어지고 있다.


이야기는 참 재미있다. 히가시노 작가 특유의 쉽게 휘몰아치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색다른 소재지만 어렵지는 않고 추리해가는 과정도 복잡하지 않기에 책이 휙휙 넘어갔다. 그래도 단계 단계마다 세밀하게 이어지기에 책 분량이 적지 않은데 단순한 살인 사건에 젠더 문제와 결부 시켜서 이렇게 긴 장편으로 전개시킨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일본 사회가 배경이지만 소재를 본다면 우리 나라에도 분명 있을법한 일이다. 내 주위 가까운 사람이 이렇다면 어떻게 대해야 했을까 또 내가 데쓰로라면 어떻게 했을까 등등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당사자는 참 괴로웠겠다 힘들었겠다라는 생각도 든다. 책은 이들도 어쨌든 보통의 한 인간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보통 사람들과 똑 같이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소수의 성적인 다름을 별 것으로 여기지 말고 그냥 그대로 인정하고 봐주기를 작가는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추리라는 형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결국 사람의 사랑과 포용에 대한 이야기나 다름 없다. 평소 '다름'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책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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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 전 세계 아웃도어 시장을 석권한 텐트 장인 라제건의 특별한 경영 스토리
유승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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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브랜드만 알았는데 이미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책을 통해서 아웃도어 시장에서 어떻게 발전을 하고 인지도를 올리게 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하는 책이라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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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9-28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제 많은 인용글에 좋아요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살리에르 2022-09-28 21:03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은 좋은글을 많이 쓰셔서 자주 공감 누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