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의 국보 -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숨은 명작 문화재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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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문화재를 보면서 가치가 엄청나다고 여길 때 국보'급' 이라고 한다. 실제로 국보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국보에 지정되어도 손색없는 큰 가치를 갖고 있다고 여겨지기에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이다. 국보와 보물은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가치 있는 문화재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유명한 문화재가 정작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경우가 제법 있다. 지정 문화재가 되기 위한 여러 조건에 합당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는데 그 이유라는 것이 비합리적인 경우도 많다. 아쉽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알만한 문화재라면 큰 박물관에서 관리중인 경우가 많아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이 책은 국가 공인 문화재로 지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국보급' 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비지정 문화재를 소개하고 있다. 국보나 보물을 소개하는 책들은 많지만 지정 문화재가 아닌 비지정 문화재만을 모아서 설명하는 책은 잘 없었기에 우리 문화재를 더 다양하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책이었다. 내용을 보니 평소 알지 못했던 내용도 많지만 잘못 알고 있었던 문화재도 있었다. 분명 국보나 보물로 지정이 되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니였던 것이다. 


내용은 총 8부로 나누어서 적절한 주제에 맞는 문화재를 소개하고 있는데 1부에서 인상적인 것은 '경주 열암곡 마애석불'이다. 그전에 언론을 통해서 알고 있었는데 책을 통해서 살펴보니 정말 기적이라는 말밖에 나올 것이 없다. 통일신라 시대 불상이 지진으로 추정되는 천재지변으로 무너졌는데 그것이 부서지기 5cm 전에 멈춰서 원형 그대로 보전이 되었다는 게 무슨 드라마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왕조가 바뀌고 전쟁에 일제강점기도 거친 이때 발견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런데 너무 무겁고 위치한 곳이 산 중턱이라서 복원이 쉽지 않다. 아마 이 유물은 복원만 된다면 바로 국보로 지정되지 않을까 싶다.


지정 문화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아님을 확인한 문화재는 '분청사기' 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유명 사립 박물관에 소장중인 명품 분청사기의 많은 수가 지정 문화재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에 놀랐다. 물론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국보는 6점, 보물은 27점이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책에서도 소개한 국보급 작품이 많은데 지정된 것은 적은 편이다. 고려 청자에 비해서 그 수가 많아서 희소가치가 떨어져서 그럴까. 그러나 분청사기가 많이 남아 있다고는 하나 더이상 실현되지 않는 조선 시대의 유물이다. 가치가 있다면 국가 문화재로 지정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문화재 중에서 회화 부분은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한다. 김홍도의 남은 그림은 진품이라면 대부분 지정 문화재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안 된 것도 많다. 책에서는 여러 다양한 '신선도'를 소개하고 있는데 유려한 필선과 색채가 돋보이는 명작들이 많다. 모두 큰 박물관에서 잘 보관하고 있지만 비지정 문화재인 것이다. 


한편 '세계 최고의 달마도'라는 찬사를 받은 김명국의 '달마도'도 비지정이라고 한다. 이 그림은 워낙 유명해서 당연 국보인줄 알았다. 아마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려 남겨두고 왔던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들여와서 그런것 같다. 그밖에 우리 회화사에서 '영묘화의 일인자'라고 불렸던 변상벽의 그림들도 거의 지정이 되지 않았다. 영묘화는 일종의 동물 그림으로 오늘날에도 독특한 화풍으로 사랑받는 경우가 많은데 명작 영모화 중에서 '화조구자'만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니 뭔가 홀대받은 느낌이다.


사실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지은이가 말한대로 무관의 국보급 문화재라서 거의 대부분 큰 박물관에서 소장중이다. 말만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을 뿐이지 대우는 국보와 마찬가지로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일반 사람들은 가치 있거나 급이 높은 문화재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에 지정 문화재에 비해서 관심을 덜 가진다. 문화재에 관심 있는 사람들한테는 지정이 되거나 안 되거나 상관이 없을테지만 말이다.


어쩌면 국보급 문화재라면 지정 비지정의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국가 문화재로 지정하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고 여러 상황과 여러 입장이 있어서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 문화재로 지정이 되면 국외 반출이 엄격히 규제되고 또 안전하게 관리가 되기 때문에 멸실의 걱정이 줄어든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에게 문화재의 가치를 알리는데도 더 수월한 면이 있기에 좀 더 적극적인 지정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는 걸작 문화재 35점을 소개하고 있는데 각 문화재의 예술적 의미와 역사적인 가치를 그림과 함께 잘 설명하고 있고 관련한 사진도 풍부하게 싣고 있어서 이해를 돕는다. 읽어 보면 새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깨닫게 된다. 전쟁이나 일제강점기가 없었더라면 더 명작들이 남아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도 느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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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위의 개척자, 황금 천막의 제국 - 세계를 뒤흔든 호르드의 역사
마리 파브로 지음, 김석환 옮김 / 까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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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황제나 제왕이 많지만 그 중 으뜸이라고 할 사람은 칭기스 칸이 아닐까 싶다.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지배했던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칭기스 칸이 살아 있을 때 최대 판도를 이룩한 것은 아니다. 그의 후계자들이 지속적인 정복 사업을 벌인 결과다.하지만 그 모든 것의 밑바탕은 칭기스 칸의 말발굽 아래에서 일어났기에 우리는 몽골 제국 하면 칭기스 칸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사실 인구도 얼마 안되는 몽골이 아무리 뛰어난 전사와 전법, 무기들을 갖고 있다고 해도 중국을 포함한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을 만들었다는 것은 다시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실제로 몽골 이전과 이후로 그만한 나라를 건설한 사람이 없었다. 다른 나라를 침공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몇 배 더 많은 인구와 국력이 필요한데 각 지역마다 터전을 잡은 나라들의 세력이 만만치 않아서 점령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 말은 점령을 한다고 해도 수성하기가 어렵다는 말과도 통한다. 몽골 제국도 마찬가지로 유라시아에 걸친 나라를 만들었지만 어떻게 유지를 했을까가 궁금해진다. 


몽골이라는 이름 아래 복속한 국가는 수도 없다. 그들이 쉽게 몽골의 통치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한 사람이 드넓은 제국을 다 다스리기 보다는 나누게 되는데 훗날 대원 제국이 되는 황제 직할지 외에도 킵차크 칸국, 일 칸국, 오고타이 칸국, 차가타이 칸국 이렇게 크게 다섯 개의 나라로 이루어진다. 각기 독립된 제국으로 기능을 했다고 해도 이들은 기본적으로 대몽골에 속해있고 대몽골의 관습과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결속과 협력을 다지게 되었다.


이 중 킵차크 칸국은 몽골에서 가장 서쪽으로 떨어진 지역이다. 본래 칭기스 칸의 맏아들인 주치가 원정을 떠났던 지역인데 몽골의 관습으로는 장자는 가장 멀리 있는 땅을 분봉 받는다고 한다. 이 지역을 지배하던 사람들이 킵차크인들이라서 킵차크 칸국이라고 불렀고 황금 천막의 제국이라는 뜻인 금장 칸국이라고도 불렀다. 몽골인들은 주치가 받은 땅에서 세운 나라라고 해서 주치 울루스 라고 불렀다. 여기서 주치 울루스는 주치 씨족의 영지라는 뜻이다.


주치 울루스를 세운 것은 주치지만 실질적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한 것은 주치의 아들인 바투다. 그의 형인 오르다를 대신해서 러시아등 서방 원정을 떠났고 그 결과 막대한 땅을 정복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치 울루스는 바투가 이어받게 되고 바투는 서부의 백장 칸국, 오르다는 동부의 청장 칸국으로 나누어서 통치를 한다. 두 칸국은 서로 협력하면서 주치 울루스의 더 큰 이익을 도모하게 된다.


책은 이렇게 킵차크 칸국이라고 불렸던 주치 울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몽골 제국이라고 하면 보통 칭기스 칸이나 그를 이은 대원제국에 대한 책들이 많고 각 칸국에 대해서 다룬 책은 적은 편인데 그 중에서도 주치 울루스에 대한 책은 잘 없었는데 이 책은 주치가 땅을 받고 하나의 독립된 나라로 존속하다가 쇠락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몇 십년을 갔던 다른 정복자들에 비해서 주치 울루스는 비교적 오래 존속했는데 사실 권력 지배층인 몽골인이나 튀르크인들은 피지배층에 비해서 그 수가 적었는데도 불구하고 효율적으로 통치를 했다. 이것은 유목 민족 특유의 유연성 있는 정책 때문이다. 이들은 점령한 땅을 절멸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살면서 세금을 몽골에 내는 형식이었다. 대신 통일된 도로를 통해서 문물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무역을 통한 부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칭기스 칸이 시행했던 여러 관용적인 정책들도 계승을 했는데 종교의 자유가 그 하나의 예이다.


책은 호르드가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역경을 견뎌냈는지 잘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이슬람을 국교로 받아들인 부분은 호르드가 오래갈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튀르크인들이 이슬람화 되었다고 해서 몽골인까지 될 필요는 없었겠지만 정책의 확실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결단을 내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타 종교를 박해하지 않고 관대하게 대했다. 역사를 보면 다른 종교를 억압하면 국력이 약해지고 존중하면 국력이 커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호르드는 종교적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아서 큰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고 몽골 제국을 좀 더 폭넓게 알아가게 되는 내용이었다. 다만 내용 자체가 많은 사실들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칭기스 칸과 몽골에 대해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좀 더 읽기 편할 것 같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한 몽골 용어와 이름들이 나오기 때문에 초반에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초반부를 잘 넘기면 그나마 잘 읽힌다.


파괴와 약탈이라는 부정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었던 몽골 제국, 그 중에서도 호르드 제국이 어떠한 정책을 썼는지 그런 정책으로 유럽과 아시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되는 책이라서 몽골과 유라시아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219138)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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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망상 - 욕망과 광기의 역사에 숨겨진 인간 본능의 실체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노윤기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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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역사를 거듭하면서 발전을 해 온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합리적인 능력이라고 생각이 든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더 좋은 방안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그것을 수용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에 발전이 있는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성적이라는 말과도 연결이 되는데 과거보다 현재가 비교적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주장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살면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정말 말도 안되는 논리에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아왔다. 정치와 경제 부분에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최악 대신에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데 그것과 관련 없이 그냥 막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분명 과거보다 교육 수준도 좋아졌고 세상 보는 눈도 밝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결정을 보면 과거의 묻지마식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합리적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이분법적으로 딱 구분해서 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은 '합리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합리화'에 더 치중해왔다는 사실이다.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안을 합리적으로 차근 차근 살펴본다는 뜻이지만 합리화에 치중한다는 것은 정해진 결론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합리화 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 말 아니겠는가.


이 책은 대중이 합리적이 아니라 그냥 많은 수에 쫓아간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책이다. 역사상 수 많은 예를 들어가면서 합리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합리화'하면서 쫓아가는 군중들의 모습을 이야기 하는데 상당히 공감이 많이 가는 내용이었다.


사실 실제의 예를 보자면 최근 우리 주위에 일어난 일을 봐도 알 수가 있다. 바로 몇 년 전 전국에 휘몰아 쳤던 '부동산 광풍'을 보면 된다. 차근 차근 돈을 모아서 단계를 밟아서 집을 사는 것이 보통이었던 것이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영원히 사지 못한다는 '망상'이 전국에 퍼졌다. 그래서 이른바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영끌'로 대출을 해서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었나. 부동산 과열은 결국 부동산 하락으로 이어지고 지금은 집값이 많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이다.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투자 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려서 남이 하니까 나도 하다 보니 지금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책은 수 천 년의 인류 역사를 통해서 수 많은 망상에 빠졌던 인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비합리성을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돈이나 종교 등에 비이성적으로 열광했던 사례들을 연대순으로 이야기해준다. 책을 읽으면 정보가 개방된 현대에 와서도 망상에 빠지는 사람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과거처럼 어떤 사안을 판단할 근거를 알기 어려울 때는 이해하지만 지금처럼 정보가 많은데도 헛된 판단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똑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19세기 찰스 맥케이가 쓴 '대중의 미망과 광기'라는 책의 내용을 재해석해서 썼는데 사실 그 책에 나오는 내용만 봐도 인간의 특성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미 200년전에 경제적인 버블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날에도 비슷한 주기와 강도로 반복되고 있다고 하니 인간성은 변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책이 좋다. 본문만 거의 700여 쪽의 내용인데 쉽게 쓰여져서 금방 금방 진도가 나간다. 책에 나오는 역사상의 수 많은 예들은 군중이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가를 깨닫게 하고 그것을 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사실 남들 다 하는데 나 혼자 안 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도 과거와 달리 판단할 근거는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가. 근거 없이 군중을 쫓기 보다는 차분히 상황을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할 터이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개인이 많아 질수록 결국 망상에 빠지는 군중도 적어질 것이다. 


물론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돈이나 종교에 결부된 비이성적 광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인간의 강렬한 욕망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위기게 휩쓸리지 않는 개개인이 늘어난다면 파국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다. 너무 희망적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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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의 신 유대인 이야기 - 자본주의 설계자이자 기술 문명의 개발자들
홍익희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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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은 숨은 손이라고 했지만 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대인이 얼마나 세계 경제계에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유대인은 여러 경제 분야의 중요한 부분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오랫동안 나라 잃은 민족으로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가장 확실한 생존 수단은 돈이었기에 상업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좀 더 과장을 보태면 유대인들이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금의 경제 시스템에 유대인이 끼친 영향은 크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대인들이 이렇게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끼치게 된 것일까. 이 책은 고난과 역경을 뚫고 경제를 장악한 유대인들의 경제 역사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기본적으로 유대인은 오랜 세월 나라가 없었다.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무너진 이후에 이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았다. 나라는 없었지만 유대교라는 종교와 관습으로 정체성을 유지했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박해를 받았고 여러 제약이 있었는데 그래도 그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돈이기에 일찍이 상업에 종사했던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도 지독한 구두쇠 고리대금업자로 유대인으로 설정했을 정도다. 유대인들이 단순히 상업에만 종사를 했다면 이토록 오랫동안 영향력을 유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경제를 장악하면 권력도 따르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안위를 지킬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어디를 가던 그 지역의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재능을 발휘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유대인이 움직이는 곳에서 경제가 발전했고 최종적으로 영국으로의 이주가 이후 산업 혁명과 자본 주의의 발전에 밑바탕이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유대인이 나라를 이루고 살았다면 이렇게 발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쫓기고 쫓겨서 정착한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더 큰 발전을 이룬 것을 보면 대단한 민족이긴 하다.


유대인은 스페인에서 잘 정착했는데 어느 날 스페인의 왕에게 추방을 당해서 이주를 하게 된다. 그렇게 정착한 곳이 네덜란드. 네덜란드에서 여러 경제 시스템을 안착시켰던 유대인은 프랑스와 영국의 침략에 막대한 전비를 마련해서 네덜란드의 왕 빌럼 3세를 돕게 된다. 누구라도 뻔하게 예상했던 전쟁에서 네덜란드가 승리한 배경에는 유대인의 전비 조달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영국에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고 명예혁명으로 네덜란드 왕 빌럼 3세가 영국 왕 윌리엄 3세가 되어 양국을 동시에 통치 하게 된다. 윌리엄 3세가 영국으로 떠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영국으로 따라가면서 영국의 경제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영국에서 네덜란드식 주식 시장을 도입하고 은행을 만들고 영국의 금융, 세제, 행정 전체를 개혁하게 된다. 그야말로 시스템을 선진적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비교적 후발 주자였던 영국은 이로써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밑바탕을 마련하게 된다. 막강한 금융 산업이 만들어지고 저금리가 지속되자 자본이 축적되고 이것이 결국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흔히 돈이 돈을 만든다고 하는데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유대인의 돈이었고 이들의 돈이 산업을 일으키고 또 그것으로 돈을 벌게 되었다. 


책은 유대인이 스페인에서 추방당해서 네덜란드로 이주하게 되고 또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어떻게 경제를 부흥시키고 여러 경제적인 혁신을 이루게 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공통적인 것은 유대인을 중용하면 결국 그 나라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박해는 이런 유대인들의 뛰어난 능력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도 없고 기댈 곳이 없는 민족이 능력은 뛰어났으니 처음에는 관용하다가 나중에는 두려워한 나머지 시기, 질투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금융이나 경제쪽에 많은 유대인이 진출했지만 그 머리가 한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의학 분야에도 유명한 사람이 많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을 필두로 수소 폭탄 발명의 폰 노이만, 소아마비 백신을 만든 조너스 소크 등 뛰어난 능력으로 인류사에 큰 업적을 남긴 유대인이 많은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가 일제에 패망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인 러일전쟁에 유대인이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쟁의 승패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전쟁 비용 즉, 돈이 많아야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시 일본은 러시아와 싸우면 대부분 진다고 봤다. 실제로 러시아가 힘이 약해지긴 해도 일본과 비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 많은 전쟁 비용을 바로 유대인이 빌려줬던 것이다. 러시아에서 유대인을 박해하고 억압하자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제이콥 시프라는 유대인 금융인이 일본 국채를 사서 전비를 마련해준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는데 여기에도 지원을 한다. 결국 러시아는 압도적인 전력에도 불구하고 전략의 차이와 부족한 전비, 그리고 어수선한 국내 정세 등으로 인해 일본에게 지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곧 당시 조선의 패망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대인이 조선의 멸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셈이니 역사란 참 알 수가 없다. 


책은 유럽과 미국 경제계에서 어떻게 유대인이 성공하고 영향력을 떨치게 되는지 역사적 사실을 들어서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최강국 미국의 정치계도 많이 진출해서 경제와 정치 모두에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세계 정책에는 유대인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다. 


책은 현대에 새로운 국가를 세울 때까지 이 천 년이 넘는 긴 세월을 박해와 고난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부를 축적하고 미래를 만들어 냈는가를 잘 알려주고 있다. 나라를 잃은 시기는 짧지만 수 많은 침략을 받고 역경을 헤쳐온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거대 아랍 국가에 둘러싸인 이스라엘같이 강대국들에 둘러 쌓이고 분단 까지 되어 있는 우리나라로써는 이스라엘의 생존 방식이 우리의 생존에 하나의 좋은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점은 전반적으로 유대인 찬양만 하는 내용이라서 균형 있게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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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의 나라 조선 - 그 많던 조선의 모자는 왜 그렇게 빨리 사라졌을까?
이승우 지음 / 주류성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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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안경은 주로 시력 보정을 위한 목적으로 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하나의 패션으로 많이 착용을 한다. 옷 이외에 다른 착용물들이 나를 좀 더 돋보이게 하는 요소가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모자도 단순하게 방한용이나 작업용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패션의 한 형태로 쓰는데 실제로 모자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인상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사실 평소에 모자를 많이 쓰지 않아서 모자가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 잘 몰랐었다. 단지 세계적인 모자 제작 회사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것이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조선이 바로 세계적인 모자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모자 천국이라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면 우리 나라에 모자가 종류가 참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역사극을 많이 보는데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신분에 따라서, 직업에 따라서, 성별에 따라서 각기 다른 모자를 썼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렇게 많던 모자가 오늘에 계승되고 있는가? 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찬란했던 그 모자들의 역사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깝게도 모자의 역사는 세세하게 기록된 것이 없고 관련된 연구도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온 이 책은 모자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반추 하게 하면서 잃어버린 전통을 다시 보게 하는 것 같다.


제목은 조선의 모자인데 여러 기록의 한계로 인해서 조선, 그 중에서도 중-후반기의 모자만 이야기할 수 있는데 모자를 쓰는 것이 갑자기 조선에 들어와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전의 왕조에서도 비슷하게 모자를 많이 썼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삼국 시대 중국 당나라에 조공하러 갔던 고구려, 백제, 신라 사신들의 그림을 보면 다른 나라와 다르게 특이한 모자를 썼음이 드러난다. 많은 사례는 아니지만 조선의 풍습에 견주어 봤을 때 삼국 시대에도 모자를 애용했다는 것을 예상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는 왜 그렇게 모자를 많이 썼을까. 지은이는 대체로 네 가지의 원인을 살피고 있다. 그것은 조선의 전통적인 상투 문화 , 머리를 중요시하는 존두 사상 , 문화가 장기간 이어진 왕조, 유교 계급 사회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각각의 원인들은 다른 원인과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먼저 상투는 당대 남자들의 머리를 대표하는데 단지 조선에서만 한 것이 아니라 한민족을 나타내는 표시라고 할 만큼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고구려 고분 벽화에 상투와 관련된 그림이 나오고 신라 시대는 가마인물형 토기에서 확인이 된다. 이것을 보면 상투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관습인데 이것은 왕조가 장기간 이어져야 전승이 되는 것이다. 


조선 시대가 되면 상투는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서 더 중시 되었다. 그러기에 이 상투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자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머리 자체를 중시하는 존두 사상과 의관

정제 의식과도 연결이 된다. 머리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효와 직결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정갈하게 모자를 쓰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의미에서 의관 정제와도 통하는 것이 있다.


신분제는 모자의 종류가 다양해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화려하고 값 나가는 재료로 만든 모자는 아무나 쓰지 못하고 귀한 신분에서만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모자만 봐도 양반인지 상인인지 천민인지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신분과 계급에 따라서 모자가 달랐다. 따라서 낮은 신분의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좋은 모자를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옷이던 모자던 좋은 것을 입고 쓰고 하려는 욕망은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다르지 않다. 엄격하게 규제를 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규정의 틈을 찾아내었고 다른 사람과 다르게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고자 모양과 장식을 조금씩 달리해서 착용했던 것이다. 그것은 신분의 상하가 따로 없었다. 이것이 조선이 수많은 종류의 모자가 진화하게 된 원인이다.


책은 조선의 모자가 발달하게 된 배경 설명을 한 다음에 모자의 종류를 여러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있는데 정말 생각도 못한 수 많은 모자가 소개된다. 왕이 쓰는 모자도 시기에 따라서 다양하게 있고 양반 선비가 쓰는 모자도 여러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선인들은 평상시에 집안에 있을 때도 모자를 쓰고 있었고 평상 모자라고 해도 여러 모양의 모자가 있었다. 진짜 요즘 말로 패션 아이템이 풍부했던 것이다.


상투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자를 썼다고 하지만 추운 겨울에 대비해서 방한용 모자도 많이 썼다. 이른바 난모라고 불렀는데 이 난모가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부작용을 낳았다. 난모의 재료가 되는 것은 중국에서 생산되었기에 이 난모를 수입하면서 국부 유출이 심각했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명품 가방을 수입한다고 무역 적자 폭이 커졌다는 것과 비슷하겠다. 무역이 제한되어 있던 조선 시대는 이런 일종의 사치품으로 인해서 나라 경제에 큰 문제가 될 정도였다니 조선 시대 사람들의 모자 사랑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다양하게 발달했던 조선의 모자는 다 어디로 갔나? 기본적으로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사라진 많은 관습이나 유물 중에 하나겠지만 그 이전에 모자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 조선 말 고종의 단발령 시행 이후로 상투를 벗어나면서 상투를 보호하기 위한 모자의 효용성이 떨어진 탓이다.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외국 문물은 모자를 많이 쓰지 않는 문화였다. 고종 황제조차 단발을 하면서 양복을 입으니 정식 왕관을 쓸 일이 적어지게 되고 이것이 점차 퍼지게 되니 모자도 종류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되었다. 


책은 이외에 최근 외국에서 주목 받는 갓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재료는 무엇이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썼으며 이것이 어떻게 쇠퇴하게 된 것인지 잘 설명하고 있다. 갓을 포함한 조선의 모자가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인 강압이 있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이 있는 한국인의 기질에도 있다. 이른바 빨리 빨리 문화가 있는 우리에게 편리하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다 보니 모자의 영광도 사라지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은 조선의 모자에 대한 전반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이렇게 다양한 모자가 있을 줄 몰랐다. 그리고 모자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더 놀랍다. 모자가 실물로 남아있기 어려운 물건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애용되다가 몇 년 안에 급속도로 사라지게 되어서 미처 살필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도 이해하지만 이런 연구 광복이 된 지 70년이 넘도록 많이 되지 않은 부분은 안타깝다. 하긴 조선이 망하고 일제가 들어서면서 잃어버린 우리 일상의 생활사가 어디 모자뿐일까만. 


이 책은 갓이나 왕이 쓰는 관모 등 몇 개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화려하고 다양한 조선의 모자 세계를 잘 소개해준다. 외국에서 우리 나라 옛 모자에 대해서 감탄 하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모자의 관습이 발전적으로 계승되었다면 더 멋진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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