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비스마르크 - 전환의 시대 리더의 발견
에버하르트 콜브 지음, 김희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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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일컬을때 흔히 쓰는 수사다. 피도 눈물도 없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을 쓴 사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아주 틀린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말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추구한 정책이 무엇을 할려고 했던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이 모른다. 비스마르크는 힘을 비축했지만 힘 자체를 위해서 정책을 폈던 것이 아니다. 비스마르크가 팽창주의로 주위 나라를 침략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주위 나라에 침략을 안 당할려고 한 것이다.


그럼 비스마르크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평화였다. 평화? 군국주의자 비스마르크가 평화주의라니. 그렇다 비스마르크는 평화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왜 훗날 철혈재상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가 평화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강력한 힘을 키웠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힘이 아닌 다른 나라로부터 독일을 지키기 위해서 힘을 가질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힘만 가진다고 평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힘을 써야 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그럴러면 외교를 해야 한다. 외교로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끝없는 협의를 해야 하고 인내해야 한다. 그 밑바탕이 되는 게 힘이니 외교와 힘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독일의 상황을 이해해야 비스마르크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독일은 하나의 강력한 나라지만 당시 독일은 많은 작은 나라들로 나누어져 있었고 겨우 조금씩 통일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의 주위는 강대국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라는 강대국들을 상대로 독일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국력을 키운다고 해도 그들 모두를 상대로 이길수는 없는 법. 기본적으로는 강한 군사력을 가져야 했지만 가급적 피를 흘리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비스마르크가 전쟁을 불사하긴 했지만 그것은 최후의 수단이었을 뿐 전쟁부터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책은 비스마르크가 젊은 나이에 의회에 진출했을때부터 그가 프로이센의 수상이 되어서 각종 정책을 펼칠때 그리고 수상에서 물러나서의 일대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는 능란하게 정국을 주도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다양한 이해를 가진 여러 세력들을 어르고 달래서 충돌을 방지했던 것이다. 주위 강대국과 여차하면 전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군대를 길러놨지만 그것은 상대로 하여금 이성을 갖게 하는 일종의 제어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센이 약했다면 주위에서 바로 침략을 했을지도 모른다. 강했기에 섣불리 침략하지 않고 일단 말이라도 들어보자고 한 것이 아닐까. 


비스마르크의 일생의 목표는 조국의 부국강병이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 평화. 그가 꿈꾸는 그런 세상은 사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긴장하면서 갈등을 조절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군사력을 동원하면서 전체적인 균형을 잃지 않도록 노력했다. 같은 독일권인 오스트리아와의 통일도 분명 그의 생각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북부 독일의 통일을 우선적으로 추진했다.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와 평화적으로 지내게 함으로써 균형있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가 강력한 힘과 유연한 외교력으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시켰지만 그것만 한 것은 아니다. 강한 군사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국내가 안정되고 발전이 되어야 하는데 국내 정책에서도 일관되면서도 상황에 맞게 대처해서 그만큼의 국력을 쌓았다. 그가 단순히 독재자에 군국주의자가 아니었음은 나중에 일련의 사회 복지 정책의 입안을 보면 알 수 있다. 1880년대에 그는 벌써 의료보험, 재해보험, 상해와 노년 보장 보험등을 도입해서 서민들에게 최소한의 버틸 힘을 주게 된다. 당시는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하던 시기인데 이로인해 빈부격차는 커지고 이 틈을 노려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생각이 커지고 있던 때였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커지고 있는 그때 적절한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독일은 제국이 공고해지기도 전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


분명 그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그의 정책이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가톨릭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을 강력하게 탄압을 했고 그의 정책을 잘 시행하기 위해서 의회를 잘 조종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가 20여년동안 수상에 있었다고 해서 독재자로 할 수는 없다. 왕정국가에서 관직은 자신이 오랫동안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의 신임이 절대적인데 당시 독일 황제 빌헬름 1세의 믿음이 그만큼 강했고 또 그만큼 능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책은 수상직에서 내려와서 말년을 보내는 비스마르크의 모습도 보여준다. 자기에게 믿음을 보이던 황제가 죽고 새로운 젊은 황제는 그를 크게 신임하지 않았다. 그래도 독일 국민들은 비스마르크에게 큰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여러 신문 기고 등을 통해서 정부 정책에 대해 쓴소리하는 것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영향력을 행사 했다. 한번은 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됨으로써 묘한 상황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족했을뿐 다시 권력의 중앙에 들어갈려고는 안했는것을 보면 선은 잘 지킨것 같기도 하다.


책은 어렵지 않게 흥미롭게 잘 읽힌다. 오늘날 우리에게 비스마르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주위에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라는 초강대국들에게 둘러 쌓여있다. 우리의 국력도 어디가서 약하다는 소리 들을 정도가 아니지만 주위에 워낙 깡패같은 나라들이 있어서 참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우리는 분단국이 아닌가. 북한이라는 시한 폭탄을 터트리지 않으면서 주위 나라들을 적절하게 대처해야 하는 현실은 비스마르크가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우리에게도 냉철한 사고로 유연하면서도 시의적절한 외교 정책과 그것을 받쳐주는 강력한 군사력을 길러야 하는데 군사력은 북한의 침략을 방비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한 결과 어느 정도 힘이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외교력은 어떨런지 모르겠다. 어쩌면 비스마르크보다 더 어려운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스마르크가 생각했던 평화가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다르지 않다. 그가 추구했던 것도 평화로운 독일 통일이고 우리도 평화로운 한반도 통일이다. 최대한 전쟁을 억제하면서 전쟁이 나면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키웠던 비스마르크의 정책이 우리에게도 많은 참고가 될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비스마르크의 생각을 통해서 우리를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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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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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은 역사학에서 파도 파도 또 연구할꺼리가 많은 사건이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세계 대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나라가 관련되었고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사실 1차 세계 대전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그전에 있었던 큰 전쟁에서 전선이 좀 더 확장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지구상 거의 모든 나라가 관련된 진짜 세계 대전이라면 역시 2차 대전이다. 삶과 죽음이 극명하게 갈린 이 전쟁이 어떻게 일어나고 전개가 되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 것은 더 중요하다. 이런 끔찍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나 중요하다고 여겼던 세계 대전에서 직접적인 전투가 아닌 '학살'에 의해서 수백만명이 죽어간 사실을 사람들은 많이 모른다. 아마 '홀로코스트'라는 말은 알 것이다. 유대인의 학살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도 수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학살을 저지른 사람들은 숨겼고 그것을 알아야 할 사람들은 학살의 일부만 알았다. 


그렇게 된 요인은 여러가지겠지만 그중에 하나가 전쟁 승전국인 소련이라는 사실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련의 스탈린. 독일은 패전국이었기에 히틀러가 저지른 사실이 훗날 알려졌지만 소련은 승전국이었고 패쇄적인 공산국가였기에 그 사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는 바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인류사 최악의 학살자로 히틀러를 꼽지만 그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하진 않은 인물로 스탈린을 들 수가 있다. 그가 소련을 통치한 이래로 수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쟁도 아닌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몇명도 아닌 수백만명을 죽였던 것이다. 히틀러의 초기 집권 6년간에는 유대인들에게 '떠날' 선택을 줬다고 한다. 살아나갈 기회 자체는 준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그런 것도 없었다. 이미 1933년부터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 


그는 스탈린식 사회주의 산업화와 집단화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숙청하고 죽이고 강제 이주를 시켰다. 그 와중에 수백만명을 굶어 죽게 만들었다. 스탈린의 집단화는 개인을 죽이는 정책이었기에 많은 농민들이 저항을 했고 스탈린은 그것을 죽음으로 대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수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히틀러에게 유대인 말살의 의지가 있었다면 스탈린에게는 우크라이나 박멸의 의지가 있었던 것인가. 


우크라이나가 대학살의 현장이 되었던 것은 대기근에 대한 책임을 우크라이나 농민들에게 지웠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굶주리게 된 것은 자신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고 그것에 대한 보복으로 대량 학살을 자행하게 된 것이다. 대체 이 해괴한 논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너무나 말도 안되는 이 논리로 수백만명이 굶어죽게 되었다. 


이 우크라이나에는 폴란드계가 많이 살고 있었는데 폴란드계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버금가는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독일과 소련 사이의 폴란드는 소련에게는 하나의 적으로 간주가 되었기에 소련 영토안의 폴란드인은 잠재적인 적국 병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폴란드 부농 박멸' 정책을 통해서 많은 폴란드인들 학살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폴란드 군사 조직'을 통해서 소련에 반란을 일으킨다는 죄로 또 총살을 당한다. 그야말로 이중 삼중으로 '폴란드인'이라면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히틀러가 유대인에게 그대로 적용하게 된다.


1939년은 스탈린과 히틀러 이 두 미치광이가 악수를 나눈 해다. 바로 독소불가침조약이 체결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폴란드에 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다. 폴란드는 서방의 지원 약속을 받았지만 그것은 불안하고 약한 신용의 말잔치였음이 곧 드러나게 된다.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 양쪽에서 침공하면서 폴란드 영토를 분할 점령했기 때문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학살자는 공동의 이익을 위한 협력자였다. 하지만 히틀러가 곧장 스탈린의 뒷통수를 치고 소련을 침공하면서 세계 전쟁은 확대된다. 이 와중에 폴란드에서는 수십만명이 또 학살된다. 그리고 독잍군은 소련 전쟁포로들과 포위한 레닌그라드 시민들을 굶겨서 400만명 이상을 죽였다. 또한 독일이 점령한 동부 유럽의 유대인들 540만명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죽였다.


그야말로 스탈린과 히틀러는 인류사 최악의 학살 전쟁을 벌인 것이다. 이들이 저지른 잔학 행위는 하나의 땅에서 하나의 시대에 벌어졌고 그것은 '블러드랜드'라고 불린다. 이 블러드랜드는 대략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연안국에 이르는데 독일과 소련의 중간지대에 해당한다. 여기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은 히틀러와 스탈린의 광기에 의해 희생들 당했건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폴란드인이라는 이유로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등등 전혀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대량 학살을 당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이런 대학살에 대한 진실은 금방 드러나지 않았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 것은 겨우 7~80년대이다. 하지만 그것은 서방쪽의 자료일뿐이다. 유대인은 서유럽에서만 산 것이 아니라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에서도 많이 살았고 거기서 수백만명이 죽었다. 그 자료가 누락이 된 것이다. 게다가 비유대인도 수백만명이 학살을 당했다. 스탈린이 죽은 이후에도 소련의 폐쇄적인 정책은 그대로 이어갔고 스탈린의 학살이 드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블러드랜드는 대부분 공산국가에 소련의 영향력이 있었다. 인류사 최악의 학살극에 대한 진실이 알려지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히틀러의 나치주의와 스탈린의 공산주의는 각각 극우와 극좌를 대표하는데 극과 극이 통한다는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이념에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이 이들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전체를 위해서 개인 한 명쯤은 없어도 되었고 그것이 수백만이 되었다고 해도 과감하게 제거할 수 있는. 이 극우와 극좌가 동시에 출연했다는 것이 천 만명이 넘게 학살당하게 되는 비극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차분하게 이 대학살을 조명한다. 방대한 자료를 차근차근 끼워 맞춰서 그 끔찍한 시대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낸다 그동안 2차 세계 대전에 대해서 많은 책들이 나왔지만 그 시대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관련 없이' 죽었는 것에 대해서는 밝히는 책이 거의 없었다. 이제 이 책으로 인해 2차 세계 대전의 함몰된 한쪽을 복원한다는 의미와 함께 잊혀져서는 안되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기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그리 어렵지 않게 잘 읽히는 편이긴 한데 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과 독일, 스탈린과 히틀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이해가 쉽다.승자에 대한 역사도 역사지만 관심을 덜 가지는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역사도 역사다. 승자와 피해자 모두를 봐야 진정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닐까. 대담하면서도 묵직한 충격을 주는 대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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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 강화도조약 Ominous 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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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는 단순 한국사의 영역에서 벗어나 세계사속에서 우리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느냐를 비교해서 알아보게 하는 시리즈이다. 만화로 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쉬운 내용으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어서 역사 초보자들에게도 좋은 책이다. 하지만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짧지 않다. 아주 세밀하게 나타낸 것은 아니지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핵심 내용은 다 들어 있어서 이 책만 읽어도 당시의 시대상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이번 책은 '강화도 조약'이다. 우리가 일제에 치욕을 당하게 되는 그 처음 단계. 이 강화도 조약으로부터 일제의 침략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우리가 강화도 조약이 1876년에 일어났고 근대적 개항이다 이런식으로 암기해서는 부족하다. 왜 그때 그런 일이 일어났었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보면 그때 강화도 조약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조선의 개항을 위해서 안배되고 준비되어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음모의 설계자는 일본이고 좋은 마음으로 한 것은 아니다.


일단 일본을 보면 개항이후에 많은 개혁이 이루어졌지만 분열과 대립도 극심했다. 난학이라는 학문이 발달할 정도로 외국 문물에 대해서 익숙했지만 전면적인 개항과는 또 달랐다. 그야말로 일본 사회 전체가 바뀌는 일이 일어났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세력, 그 기득권을 타파하려는 세력, 그 중간에 이득을 볼려는 세력 등등 일본의 개화가 그리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런 갈등속에서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서양을 배우기 위해서 2년간에 걸친 서양 열강 순방 사절단을 보내게 된다. 자신들이 우물안 개구리이고 내실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절단. 그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을때 국내는 여러가지 개혁으로 많은 갈등과 혼란이 있었다. 게다가 이때 대만과 한국을 정벌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있었다. 대만은 실제로 정벌을 강행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다. 비록 대만 자체를 점령하거나 식민지화하지는 못했다고 해도 당시 일본의 해군력은 중국 청나라를 압도했다는 사실은 훗날을 기약하게 했다.


하지만 조선 정벌, 즉 정한론은 일단 내실을 다져야한다는 집권 세력에 의해서 수면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나 혼란이 계속되자 해외 원정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한론이 새롭게 부상하게 된다. 참 이해가 안되는게 당시 조선은 일본을 무시하기는 했어도 군사적으로 적대하거나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일본은 곧바로 정한론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쳐들어가는가? 임진왜란때의 침략의 DNA가 수백년이 흐른 19세기까지 이어졌나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서 사전 정지 작업을 했다. 우선 청과 대만에서 충돌을 일으켜서 적어도 청이 일본의 조선 진출에 큰 간섭을 안하게 했다. 그리고 영토 분쟁이 있던 러시와와도 타협을 통해서 영토를 확정지었다. 일본의 대외 원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중국과 러시아를 주저앉힌 것이다. 그리고 영국,미국, 프랑스등 당시 열강들도 침묵시켜서 그야말로 조선을 상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던 것이다.


한편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10년 집권이 끝나고 말았다. 사실 고종의 나이도 20살이 지나서 친정할 때가 되었는데 흥선은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여러 상황을 거쳐 흥선이 물러나고 고종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는데 쇄국을 했던 대원군과 달리 적당하게 일본과 관계를 개선할려고 했다. 그러다가 일본 외교관을 접대하던 동래부사의 무리한 고집으로 상황은 급변한다. 안그래도 뭔가 트집을 잡으려던 일본은 이것이 자신들을 무시한 처사라고 여기고 곧바로 무력 충돌의 기운을 피운다. 바로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이 군함으로 우리의 전통 수군진을 박살내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사실 이때 대원군이 집권했거나 고종도 쇄국의지가 있었다면 수 많은 희생이 났다고 해도 일본과 전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함포의 위력에 눌린 것도 있었고 당시 고종이 근대적인 개항을 할 마음이 있었기에 일본과 결국 조일수호조규 즉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조약은 여러가지 조선에 불리한 점이 많았는데 근대적 조약에 무지했던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이 강화도 조약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그때가 1876년.


책은 술술 잘 넘어간다. 만화긴 하지만 대사와 설명을 통해서 많은 내용을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서 더 가깝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안타깝고 분노를 일으키게 되는 일제 강점기의 서막을 여는 부분이라서 사실 한숨이 나온다. 이번 책에서는 이제 시작하는 부분이었지만 다음 책부터는 본격적으로 전개가 될터라서 우울해질것 같다. 하지만 다시는 그런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알아야 한다. 당시 조선이 약하기만 해서 망한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이 어떠했기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또 다시 안 당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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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자기 여행 : 동유럽 편 - 개정증보판 유럽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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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는 중국에서 시작해서 우리나라에서 찬란하게 빛났으며 그것이 일본으로 넘어가서 색다르게 발달을 했다. 이렇게 주로 동아시아 3개국 한국, 중국, 일본에서 많이 발달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 나라 말고도 많은 나라들이 도자기를 생산하는데 특히 유럽 쪽에 도자기가 많이 발달했다. 도자기 하면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유럽 도자기라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도 분명 오래전부터 도자기가 발달한 지역이고 그 맥이 아직 까지 이어져 옥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세계의 도자기 역사 중에서 특히 유럽의 도자기들을 살펴 볼 기회를 주는 시리즈다. 국내에 관련한 책이 없었는데 상당히 반가운 내용이다. 동양의 도자기는 어느 정도 책들도 있어서 가늠할 수가 있는데 유럽은 어떻게 발달을 했는지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그 첫번째 발걸음으로 동유럽의 대표적인 도자기 도시들을 방문해서 도자기 역사를 이야기 해준다.


역사적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있어왔지만 유약을 바르고 구워서 만드는 도자기 기술은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수 백년의 역사를 통해서 수 많은 명작들을 배출해 왔다. 중국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우리나라나 일본에만 흘러온 것이 아니라 무역을 통해서 유럽에도 전해졌다. 당시 유럽에서는 도자기 만드는 기술이 없었기에 중국 도자기는 그야말로 신문물 이었다. 중국에 이어서 일본산 도자기도 유럽인들의 마음을 훔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이 이렇게 수입만 했을까. 그럴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들도 도자기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결국 동양의 하이테크를 재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첫번째로 마이슨을 방문한다. 마이슨은 독일 작센 주의 도시로 오래된 유적을 갖고 있는 곳인데 여기는 도자기의 도시다. 유럽 국가 가운데 최초로 동아시아 3국에서만 생산 하던 경질 도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곳이다. 말하자면 유럽 도자기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1710년에 유럽 최초의 자기 공장을 설립한 이후로 마이슨은 도자기의 명가로 이름을 떨쳐왔다. 마이슨은 도시지만 이 도시 이름이 곧 도자기 회사 이름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청화백자를 기억해야 한다. 중국산 도자기가 큰 인기를 얻었는데 그 중에서도 푸른 빛이 도는 청화백자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 마이슨이 그것을 결국 재현해 냈던 것이다. 

마이슨 도자기 회사는 코발트블루를 안료로 사용하는 중국의 청화백자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유럽인의 감성을 반영한 작품을 많이 만들게 되고 그것이 그 유명한 '쯔비벨무스터'의 탄생 배경이 된다. 화려한 문양이 돋보이는 쯔비벨무스터는 오늘날까지도 각광을 받게 된다. 마이슨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아리타 도자기의 영향도 받게 된다. 중국이 명에서 청으로 교체되는 도중에 무역이 정체되자 수입선이 교체되는 도중에 일본의 아리타 도자기가 유럽으로 수출되는데 이것이 유럽의 여러 왕실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일본이 임진왜란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도공들을 잡아가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불과 100년이 채 안되는 시간에 도자기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었고 이후 유럽으로 도자기를 비롯한 예술품들을 수출해서 막대한 이득을 본 것이다. 당시 조선도 좋은 도자기를 생산할 능력이 있었는데도 중국과 일본 외에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할 생각도 안해서 그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책은 마이슨을 지나서 드레스덴, 뮌헨, 그리고 더 동쪽으로 가서 바이예른,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차례로 방문하면서 쯔비벨무스터가 어떻게 전파되고 발달되어 갔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고급스런 골동품의 위치에 있었다면 유럽에서는 점차 대중적이고 일반인들이 편하게 사용하는 위치에까지 이르렀다. 당시 도자기의 생산과 유통은 큰 이익이 남는 장사였기에 수 많은 도자기 회사들이 일어났다가 망했다가 서로 합쳐지고 커지고 작아지고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 마이슨에서 만들었던 쯔비멜무스터가 체코에서도 폴란드에서도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발달을 했던 것이다.


책은 재미있다. 답사기 형태라서 어렵지않게 쓰여져서 술술 잘 읽힌다. 도자기는 아무래도 긴 설명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는게 더 큰 이해가 있기에 많은 사진이 실려있어서 이해를 돕고 있다. 사진을 보면 확실히 유럽의 도자기들이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미를 보인다. 오늘날에도 유럽 도자기 하면 고급으로 인식이 되고 오히려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의 도자기는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위치가 지금은 완전히 반대로 바뀐 것이다. 어찌보면 도자기를 향한 유럽인들의 끊임없는 열정이 원조를 능가한 위치에 오르게 한 것이 아닐까도 싶다.


시리즈는 이어서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이어진다. 사실 도자기로 유명한 도시가 워낙에 많아서 그것을 모두 책에 실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몇몇 대표적인 도시만 봤는데도 그 방대한 실물들이 참 놀랍다. 동유럽도 이럴진데 유럽의 다른 지역은 또 어떤 도자기로 유혹을 할런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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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륜선 타고 온 포크, 대동여지도 들고 조선을 기록하다 -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의 실존 인물 '조지 포크'의 조선 탐사 일기
조지 클레이튼 포크 지음, 사무엘 홀리 엮음, 조법종 외 옮김 / 알파미디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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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우리에게 끼친 해악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한데 그중에 하나는 조선 시대가 어떻게 흘러갔고 수 많은 조선의 모습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알기 어렵게 했다는 것이다. 큰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알지만 실제 백성들이 사는 모습이나 각양각색의 직업 등은 일제의 침략으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기에 그것을 복원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광복 후 대한민국과 이어지는 바로 윗 조선 후기의 생활사나 미시사를 알기가 어려웠는데 여기 생생한 기록물이 이번에 나왔다. 한 미국 외교관이 조선을 여행하면서 쓴 최초 조선 보고서. 개인의 단독 여행이 아니라 공무중으로 나라의 허가를 받아서 '가마'를 타고 여행을 했는데 주로 남부 지방을 순행하면서 많은 기록과 사진을 남겼다. 그 당시에 쉽게 볼 수 없었던 여행이었고 그것도 외국인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조선의 모습이어서 100년 후의 우리가 봐도 신기하고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지은이는 '조지 클레이튼 포크'. 미국 공사관의 해군 무관으로 조선의 사정을 파악하려는 미정부의 의도로 주로 조선 남부 지방을 여행하고 상세한 기록을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특이한 점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일기를 쓰듯이 자세하게 쓰고 있고 무엇보다 한국어를 할 줄 알아서 좀 더 정확한 기술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조'라고 불리는 일종의 '정식 여행 허가증'을 소지했고 그 허가증은 여러 고을의 관청에서 여행의 편의를 봐주게 했기에 큰 훼방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여행의 때는 1884년 11월에서 12월의 44일간. 조선과 미국이 국교를 튼 '조미수호통상조약' 이 체결된 것은 1882년이었고 1883년에 미국 공사관이 생긴 이래로 미국 외교관의 최초 조선 관찰기라고 할 수가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조선이 대체 어떤 나라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필요가 있었을것이다. 그래서 당시 조선 조정의 도움을 받아서 외교관을 파견 한 것인데 이것이 조선말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1884년이라면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이다. 정변이 일어난 그 해에 포크가 남부를 여행하고 있었다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갑신정변은 포크가 여행하는 도중에 일어났고 그 사실은 당연하게도 늦게 알게 되었다. 당시 정변에 희생된 민씨측 인물인 '민영익'과 가까운 사이였던 포크는 여러가지 곤란을 겪다가 결국 미국 공사관으로 무사히 귀환하게 되었다.


이 책의 가치는 조선이 일본에게 침략당하기 직전의 모습을 세밀하면서도 생생하게 그려냈다고 하는 것이다. 포크는 우리말을 할 수 있었기에 기록이 더 풍부했고 단순히 다른 나라의 외교관의 입장뿐만 아니라 여행을 하는 개인의 입장에서도 기록하고 있기에 당시 서구인들이 조선에 가지는 여러가지 생각을 솔직하게 쓰고 있다.


책은 각 지역을 방문하면서 있었던 일을 일기형식으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몇가지 특색이 있다. 우선 이 여행을 기획하면서 전체 여정을 짜는 과정에 '대동여지도'가 기본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과거 일제 시대에 대동여지도가 당시 조선 조정에서 무시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진실인냥 전해졌는데 이것만 봐도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대동여지도는 발간이 된 이후로 필요에 따라서 더 들어가고 빼고 하는 등의 첨삭을 통해서 여러 판본으로 사용되었는데 포크의 여행기는 왕실 어람용 대동여지도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만큼 더 정교하고 사실적인 지도를 사용한 셈이다. 왕이 직접 보는 지도를 제공했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 조선이 미국을 믿고 있었다는 반증이 된다.


조선 정부의 협조가 있었다는 다른 증거로는 통행 허가증이라고 할 '호조'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여행을 해도 된다는 허가증이 아니라 각 지역의 책임자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증서였다. 이 호조를 갖고 있으면 각 여행지에서 여행의 편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각 지역 책임자의 서명이 있다고 한다.


또 특이한 것은 포크가 자신이 방문한 지역들의 온도와 기압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당시는 수도인 한성도 근대식 온도 측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던 때인데 기압계를 이용해서 해발 고도를 측정하는 등의 과학적 측정 기록을 남기고 있어서 과학사에서도 중요한 자료다.


포크의 직위가 해군 무관이기 때문에 당연히 당시 조선의 수군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을 것인데 역시나 이순신과 거북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순신이 얼마나 대단한 장수였는지는 조선인들에게서도 들었겠지만 최초의 철갑선이라고 불리던 거북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 통제영이 있던 통영에 가려다가 불발 됐는데 그가 보고 기록을 했다면 거북선의 최후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으리라. 그가 거북선의 실존을 직접 목격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거북선의 구조와 특성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내용을 써 놨다고 한다. 


포크의 남부 여행은 갑신정변으로 더 이어지지 못한다. 정변이 없었더라면 북부 지방도 여행을 했을 것 같은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이 정도의 기록만 해도 일제로 인해 소실되었던 조선말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복원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책은 재미있었다. 당시를 바라보는 눈은 지금 현대인이 봐도 흥미롭고 신기한 것들이 많다. 비록 외국인이기 때문에 우리 문화를 이해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조선에 대한 솔직한 모습으로 통찰력있게 당시를 기록하고 있어서 후대의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이 기록물이 더 많이 분석되고 연구되어서 당대를 복원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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